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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평점 :
움베르토 에코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사실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 책이 내게 온 이상 그의 저서보다도 더 유명한 이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느끼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가장 권위 있는 기호학자이자 뛰어난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그리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베스트셀러 소설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최고의 지식인이라는 책의 표지에 적힌 작가에 관한 소개글을 보고, 내 인생에 등장한 이 뛰어난 새로운 인물에 대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책을 몇장 넘기지 않아서 나는 조금씩 그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일기의 형식을 통해 그가 제시한 인물인 시모네 시모니니가 솔직하고 거침없는 말투로 자신이 저지른 악행의 삶을 회고하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는 그 방식이 새롭지는 않았지만, 그가 제시한 인물과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183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태어난 시모네 시모니니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인지 세상 모든 것을 증오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불쾌한 인물이다. 유대인, 예수회, 프리메이슨, 심지어 여자까지. 물론 그가 예외적으로 증오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맛있는 음식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다섯가지 감각,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 이 중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이 불쾌한 인물에게 예외적인 특권을 부여한 것은 바로 미각이었다. 그렇다면 왜 움베르토 에코는 미각을 선택했을까? 이 질문에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책의 중심에 서있는 시모네 시모니니라는 인물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시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봐야 보자면,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 그는 부모의 곁이 아닌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났다.
어린 시모네 시모니니는 그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조금씩 프리메이슨이나 유대인 등에 관한 여러가지 편견들이 그의 마음 속에 깊숙히 자리 잡게 된다. 간사한 공증인 레바우덴고 사무실에서 문서 위조 기술을 배우고, 가리발디 장군의 진영에 첩자로 들어가고, 파리로 망명해 나폴레옹 3세의 독재정치에 맞서던 모리스 졸리를 감시하고,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이중첩자 노릇을 하고, 알퐁스 투스넬을 만나기까지. 이 모든 과정에서 그가 만나고, 겪었던 많은 사람들이 시모네 시모니니를 점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를 아무렇지 않게 모함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사람을 살해하는 혐오스러운 인물로 완성시켰다. 마치 작은 눈덩이가 굴러가면서 커다란 눈덩이가 되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충격적 위조와 날조가 지상 최대의 음모의 뼈대를 구성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음모론이다. 시모네 시모니니는 이러한 그의 삶 전반에 녹아있는 위조와 날조를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적인 사건을 초래한 음모를 탄생시킨다. 바로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근거 자료로 활용된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 그것이다. 시모네 시모니니가 대학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뒤마의 소설 '조세프 발사모'에 나오는 천동산 회의 장면을 유대인 랍비들의 프라하 묘지 회의 장면으로 바꾸고, 외젠 쉬의 '민중의 신비'에 나오는 예수회 신부의 글을 랍비의 연설로 변형시켜 유대인들이 세계 지배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음모을 퍼트린 것이다. 솔직히 시메노 시모니니가 바꾼 부분들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 음모로 재생산되고, 그 음모가 곧 증오 그 자체로 변하고, 그 증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확대된다.
시모네 시모니니가 유럽의 역사 한복판에서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뒤틀어 도달한 이 파국은 사실 현대와 비교해보자면 그렇게 크게 다르지도 않다. 현대에도 무수한 소문들이 또 다른 음모론들을 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얼마든지 새로운 파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 자체까지는 변하지 않는가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과 귀를 너무 쉽게 믿는 경향이 있고,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확실히 보이고, 확실히 들릴 경우에 말이다. 그럴 듯하면 그럴 듯할수록 사람들은 쉽게 속아 넘어가는데, 사실 그 그럴듯한 것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닌 셈이다. 현재 시중에 출판된 무수히 많은 소설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신들은 분명히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처럼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작가가 허구가 아닌 실제 이야기로 말만 바꾸면 충분히 그것이 사실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움베르토 에코가 그려낸 이 시모네 시모니니가 19세기 유럽을 넘나들며 이탈리아 통일정잰,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드레퓌스 사건, 1871년 파리코뮌 등 각종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방대한 범위를 품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몇몇 인물들의 이름이 눈에 익은 것이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지만, 작가가 그려낸 시모네 시모니니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실존 인물이라고 하니 더욱 이 소설을 더욱 설득력 있고, 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이 또한 거짓이다. 마치 시모네 시모니니가 여러 역사적인 문헌들을 교묘하게 뜯어고쳤듯이 말이다.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처럼 느껴지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그 사실과 허구의 중간에서 기묘하게 장난을 쳤다면, 그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분간하는 것은 그야말로 신만이 아실 것이다.
그래서 내가 왜 움베르토 에코가 시모네 시모니니가 유일하게 증오하지 않는 것이 맛있는 음식인지, 왜 그 다섯가지 감각 중에서 미각인지, 곰곰이 생각해본 결론은 이렇다. 청각, 시각, 후각, 촉각이라는 감각들은 피상적이라는 것이다. 귀에 들리는 소리, 눈에 보이는 물체, 코로 맡아지는 냄새,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 반대로 미각은 본질적이다. 유일하게 미각은 직접 혀로 맛을 보고 삼킨다. 어쩌면 가장 사실만을 담겨서 직접적으로 본인에게 느껴질 수 있게 해주는 감각인 것이다. 그래서 시모네 시모니니는 자신이 증오했던 그 모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코로 맡아지고, 피부로 느껴지는 것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왜곡할 수 있던 모든 것을 증오했던 것이다. 자신조차도 자신이 만든 그 음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제외한 모든 것은 증오한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날조와 위조 속에서 살아왔던 시모네 시모니니가 이 소설 속에서 자신 삶을 일기에 솔직하게 담아내다니. 이것은 말도 안된다. 그런데 왜 나는 그가 이번에는 날조도 위조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이 되는걸까? 역시 이것 또한 결국 음모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