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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평점 :
이번에 읽게 된 책은 미야베 미야키라는 일본의 여성 작가의 작품인 <눈의 아이>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본 결과, 그녀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으로, 이미 수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출간되어 있었다. <눈의 아이>는 최근에 번역된 그녀의 작품으로 간만에 나온 현대물이라고 한다. 책의 표지에 그려진 빨간 장화와 빨간 타탄체크 머플러, 그리고 대지에 소복이 쌓인 하얀 눈밭은 아주 선명한 색채대비를 이루고 있다. 한 손에 들어오는 200쪽이 살짝 넘는 분량의 이 책은 총 다섯가지의 단편이 담겨 있다. 제목과 표지에서 짐작해볼 수 있는 <눈의 아이>, 그리고 <장난감>, <지요코>, <돌베개>, <성흔>이 나머지 이야기들이다.
우선적으로 나를 맞이해준 것은 바로 <눈의 아이>, 책 표지의 느낌을 참고 삼아 읽어내려간 이 이야기는 여자 주인공이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들과 연락하고 만나기로 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 친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과거의 일을 회상한다. 건조한 여자 주인공의 말투와 함께, 의문의 죽음을 당한 친구에 대한 회상이 절묘하게 겹쳐지면서 결말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단숨에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생각보다 허무한 결말이었지만, 일단 반전이 있기는 했다. 비록 그 반전이 영화 식스센스 이후 최고로 흔한 반전이 되어버린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눈 내린 배경과 함께, 빨간 파카에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빨간 고무 장화를 신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자 아이의 시신이 그려진 장면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두번째 이야기인 <장난감>은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사건의 발단은 상가 근처에 퍼진 소문, 그리고 그 소문의 가운데에는 그녀의 작은 할아버지가 있다. 비록 한번도 할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는 남보다도 못한 할아버지이긴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이는 사건의 제3자도 아니고, 주요인물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입장에서 객관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주관적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아이는, 점점 할아버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작은 어린 아이가 너무 일찍 겪게 되는 어른들의 세상은 너무 차갑고, 잔인하다. 현대 사회에서 충분히 찾아 볼 수 있는 소재를 어린아이의 솔직한 시선으로 그려냄으로써, 이야기의 비극성은 한껏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현대 사회의 비정함과 냉정함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세번째 이야기는 <지요코>, 인형탈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시험삼아 꾀죄죄하고 허름한 인형탈을 머리에 쓰게 되고, 그 인형탈이 보통 인형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인형탈을 통해 그녀는 놀랍게도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장난감이 가득한 동화같은 세상을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에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대한 희미한 기억들이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었다. <지요코>는 이 책의 다섯 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몇일 전에 길거리에서 인형탈을 쓰고 홍보를 하는 사람들을 봤었는데, 보자마자 딱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었다. 저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말이다. 처음에 이 이야기의 제목을 보고 솔직히 공포 이야기인 줄 알았다. 지요코. 뭔가 귀신 이름으로 딱이지 않나? 사다코나 하나코 같은 이름의 귀신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인 토끼 인형의 이름이었다. 여자 주인공이 어렸을 때 너무 좋아해서 이름까지 붙여준 토끼 인형 말이다.
네번째 이야기 <돌베게>는 동네에서 벌어진 여학생 살인 사건을 두고, 한 아버지와 딸이 그 사건에 대해서 조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 속의 돌베게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인상이 깊었던 것 같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금품을 갈취하던 한 부부의 파국은 끔찍하고 잔인하지만, 아주 강렬한 여운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이에 비해서 이야기의 전체적인 내용의 진행은 조금 느슨한 느낌이 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주제는 사실 처음의 부녀가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새로운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된다. 내가 이 이야기에서 조금 더 눈여겨 봤던 부분은 사실 따로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아버지가 바로 그 부분인데, 그는 비록 딸과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세대 차이라는 벽에 부딪쳐 딸과 공감도 형성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사달라는 딸의 부탁도 거절하는 조금은 무뚝뚝하고 엄한 아버지이지만, 속으로는 딸은 무척이나 생각하고, 위해준다. 정의감에 불타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침착하면서도 관심 없는 듯 하지만, 나중에는 딸의 부탁을 마지못해 승낙하고, 딸의 사건 조사에 결국 일조해 그 사건에 대해 딸보다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며, 딸의 글 솜씨에 뿌듯해하기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마지막에 딸의 남자친구를 처음 만나는 모습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참 의미가 남다른 만남이 아니겠는가?
마지막 이야기인 <성흔>은 처음에는 가장 흥미진진했던 내용이었다. 조사사무소에 방문한 반백머리의 남자는 조심스럽게 자기 전부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말한 아들이 겪었던 과거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그의 아들은 14살에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어머니의 애인도 역시 죽였다. 바로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14살의 소년이 겪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했던 과거의 상처는 시간지 조금씩 지나면서 겨우 아문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이야기의 방향이 약간 달라지는데, 나는 너무나 급격한 이러한 변화에 솔직히 정신을 못차렸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검은 메시아아 검은 어린양>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시작으로 메시아나 예언자 따위의 단어가 사이비 종교와 같은 양상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여기에 철퇴의 유다니 유다스 마카베우스니 하는 결말이 나에게 조금이나마 남았던 기대를 싹 다 걷어가 버리고 말았다. 더군다나 이러한 부정적인 결말이라니. 앞 이야기와 뒷 이야기가 따로 나눠지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아예 나눠져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묘하게 합쳐 놓으니 그야말로 괴기스러움 그 자체였다.
이렇게 총 다섯가지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단편 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성흔>을 제외하면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와 내용을 바탕으로 작가가 개인적인 시각을 덧붙여 보다 전체적인 이야기가 완결적으로 구성될 수 있게 꾸며져 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내용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충분히 진실성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가볍고 흔한 소재이지만, 사람들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어렵지도, 난해하지도 않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