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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컬러링 - 마음이 설레는 한 끼
고영리 글, 허이삭 그림 / 꿈꾸는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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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한 끼’의 행복,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지 않나요?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음식에 내 맘대로 컬러를 입히며
상상으로 가득한 요리의 세계로 떠나 보세요!


 







*


  요즘 트렌드 중 하나는 과거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어른들까지 즐길 수 있도록 그 입지를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일명 키덜트 문화, 컬러링도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이 좋아서 컬러링이지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색칠공부 아닌가. 물론 어렸을 때 즐겼던 것보다는 난도가 높아졌겠지만,  솔직히 겉보기에는 어떤 이유에서 현대인들이 컬러링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건지 제대로 감이 오질 않았다. 과연 컬러링에는 어떤 매력이 숨어 있는 것일까. 때마침 카페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중에 컬러링북이 있어서 바로 신청했고, 운 좋게 당첨까지 되었다. 제목도 멋지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컬러링.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수식어는 어느 누구에게나 큰 인상을 심어준다. 그건 바로 최고라는 이야기니까.


  당첨되고 이틀 정도 뒤에 책이 도착했다. 이럴 때 난 세상이 참 빠르게 돌아간다는 걸 느낀다. 자주색 포장지에 깔끔하게 담겨 있는 책 한권이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생일선물을 일찍 받은 아이처럼 들떠했다. 책 크기는 생각보다 컸다. 가로, 세로 25cm! 색칠을 해야하는 책이기에 면적이 넓은 것이 확실히 편할 것 같긴 하다. 색칠 할 수 있는 그림은 총 40장! 각각 세계의 다양한 음식들을 담아놔서 보는 것만으로 즐거워진다. 더불어 허기질 수가 있기 때문에 공복에 색칠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총 40장의 그림 중 어떤 것을 먼저 색칠할까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일단 난이도가 너무 높으면 안 될 것 같았고, 계절에 맞는 음식을 칠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렇게 해서 내가 선택한 요리는 바로 굴라쉬다! 헝가리식 스튜로, ​포만감도 가득, 온기도 가득 느낄 수 있으니 겨울에 먹기엔 딱 좋은 음식이 아닐까. 몇년 전 헝가리에서 먹었던 굴라쉬를 추억하며 사진도 찾아봤다. 생각해보면 헝가리 음식은 대체적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가장 중요한 거다. 가격!






  본론으로 돌아와서 책을 펼치면 오른쪽 페이지는 음식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색칠한 예시가 있고, 그 옆페이지에는 똑같은 그림이 큼지막하게 밑그림만 그려져 있다. 그러니까 나는 저 큼지막한 밑그림에 맞춰서 색을 칠하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 내가 선택한 도구는 파스텔이었다. 이유는 가장 찾기 좋게 내 책상 바로 윗서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색칠하면서 알게됐다. 파스텔이 칠하기 어렵다는 것을. 엄청 많이 번지고, 좀만 칠해도 손이 미대생 부럽지 않게 되버린다. 색감도 진하게 나지 않기 때문에 이걸로 하다간 오늘 내에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파스텔로 대략 한시간 정도 칠했는데 반에 반도 못 채운 것을 보고는 파스텔을 도로 집어 놓고 창고에 있는 리빙박스에서 색연필을 꺼내왔다. 결론은 색연필이 짱이다.






  파스텔로 뻘짓 하다가 살짝 위기가 찾아왔으나 색연필로 무사히 성공했다.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서 다 끝내고 나니까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색칠만 하면 좀 심심해서 영화를 보면서 칠했었는데, 굴라쉬 하나 칠하는데 영화를 두 편이나 봤다. 하나는 스위니 토드》이고, 다른 하나는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영화다. 시간이 길어진 이유 중 하나는 파스텔이라는 도구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를 보다가 칠하고, 보다가 칠하고를 반복해서 그런 것 같다. 맘 잡고 제대로 칠하면 한 음식을 완성하는데 2시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면 진짜 음식을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그림도 예쁘고 아기자기하다. 색칠해야 할 공간도 너무 크지 않고, 아쉬울만큼 작지도 않은 딱 적당한 크기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책 제본에 있어서는 살짝 감점의 요소가 있다. 책이 쫙 펴지지가 않기 때문에 책이 접히는 사이는 색을 칠할 수가 없다. 밑그림은 그 안쪽까지 다 그려져 있는데, 색을 칠할 수가 없으니 뭔가 미완성된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아예 스프링 제본으로 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예시로 색칠된 그림이 차라리 사진이었으면 훨씬 맛깔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컬러링북을 처음 접해본 소감은 생각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는 것이었다. 뭔가 어렸을 때로 돌아간 느낌도 나고, 여기엔 어떤 색을 칠할까 고민하며 색연필을 고르는 것도, 전체적인 조화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끝을 향하는 과정이라기보단 그 자체로 즐겁고 매력적인 일이었다. 마치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 위를 조심조심 걷는 듯한 기분이랄까. 신기한 것은 컬러링북을 칠하면서 빨리 완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진 않았다는 거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저절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아마 이러한 매력 때문에 사람들이 컬러링북을 찾는 게 아닐까 싶었다. 바쁜 일상에선 이런 여유를 느끼는 것이 어려울테니까. 여러분도 언젠가 한번쯤 컬러링북을 통해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보길 바란다. 어쩌면 그것이 그동안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일깨워주는 계기를 제공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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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파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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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셋 파크>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결코 희망찬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 작품의 분위기를 비춰서 본다면, 꽤나 시간적인 배경으로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제목과 함께 책의 표지는 한 남자가 어딘가를 응시한 체 벤치에 앉아있다. 선셋파크라는 공원의 벤치에 홀로 앉아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남자의 뒷모습. 그야말로 쓸쓸해보이기가 그지없다. 그런 느낌일것이라. 나는 그렇게 지레짐작해버렸다. 줄거리도 역시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바로 상실감, 이 소설의 한 가운데에는 현대인의 깊은 상실감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럴까. 작가는 꽤나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그려내지만, 냉정하다는 느낌보다는 꽤나 감정을 억누르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척박한 생활에 너무 목이 졸리지 않게 말이다.

 

   번듯한 대학에 다니던 촉망받던 대학생이었던 마일스, 그는 형 보비와의 사소한 말다툼 끝에 형을 도로로 떠밀어 죽게 만들었다. 그 죄책감 때문일까. 마일스는 도망치듯이 부모의 곁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앞이 창창할 것 같던 젊은이는 순식간에 노동자로 전락해 버려진 집들을 돌아다니며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일을 하게 된다. 미국에 닥쳐온 급격한 경제 불황은 미국인에게 자신들의 터전에서조차 도망치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빈 집들이 생겨났다. 마치 전쟁 후의 처참한 잔해와 같이 말이다. 마일스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 잔해들을 치우면서 살아간다. 그때 그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필라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 둘의 사랑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단 필라가 미성년자였었고, 그녀의 가족들도 역시 문제가 있었다. 결국 필라의 언니의 협박을 받고, 7년 만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마일스. 하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가 간 곳은 불법으로 선셋파크의 빈집 점유하고 살아가는 몇몇의 친구들의 곁이었다. 선셋파크에는 마일스와 마찬가지로 그의 친구들인 엘런, 앨리스, 빙, 역시 모두 각자의 암담한 현실에 짓눌려 있다. 이는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미국의 젊은이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한자리에 모여들 수 있었을 것이다. 비슷한 사연을 가진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 누가 그들만큼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그들은 사회에서 분리된 또 다른 사회를 꾸리면서 선셋파크에서 살아간다. 이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선셋파크라는 장소에 한데 뭉치면서 각각의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서로 앙상블을 이루며 그들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선셋파크에서 생활을 통해 마일스는 다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 놓을 수 있늘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된다. 가족과의 관계도, 필라와의 사랑도, 모든 그의 삶도 말이다. 하지만 마일스는 다시 결승점을 거의 눈 앞에 두고, 다시 또 좌절하고 만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을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다. 소설에서 마일스는 끝내 진실을 받아들였지만, 그 곳에는 또 다른 벽이 놓여져 있었다. 이렇게 비관적인 상황 가운데서 폴 오스터는 우리에게 꽤나 낙관적인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만을 위해 살자. 현재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작가가 전해주고자 하는 일종의 메시지인 셈이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는 완결이 아닌, 또 다른 나날들을 기약하며 끝을 맺는다. 솔직히 딱히 긍정적이라고 말할 것도 없지만, 하나 뚜렷한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단 시도는 보류해두더라도 그것이 결코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느낌이랄까. 나 아직 살아있어요. 아직 죽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일단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이야기 아닌가?

 

  <선셋 파크>를 뒤덮고 있는 상실감은 비단 미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상실감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단지 우리는 그 밝은 면만 볼 뿐이다. 하지만 모두들 과거를 가지고 있고, 잊고 싶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어두운 면에 가려져 밝은 면을 못보고 산다면 그 또한 비극이 아닌가. 여기에서 그 밝은 면은 친구, 가족, 그리고 사랑이라는 어찌보면 다소 진부한 소재로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그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지 않나? 유명한 작가라도 아주 작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딱히 다른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일말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비록 현재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결국 정답은 우리 근처에 있는 것이다. 조금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사회는 다시 굴러갈 것이고, 언젠가는 다시 우리들의 관계도 회복될 것이다. 그냥 이렇게 믿는편이 오히려 속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를 위해 살자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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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꾼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밀수꾼들
발따사르 뽀르셀 지음, 조구호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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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기로 했다. 대략 3시간에 걸리는 긴 시간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미용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거나, 미용실에 배치된 잡지를 읽거나, 틀어놓은 음악을 읊조리거나, TV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의미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가져갔다. 3시간 동안 전부 다 읽어버리리라.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내 욕심이었을까? 머리 손질이 다 끝났을 때, 나는 고작 책의 절반을 읽었을 뿐이었다. 책이 생각보다 술술 읽히는 그런 책은 아니었다. 한장한장 넘어갈때마다 뭔가 명확해진다는 느낌보다는 더욱 모호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그래도 어떠한 느낌은 있었다. 그것이 각 등장인물들의 모든 삶을 바다라는 광활한 곳에 토해놓은 것 같다는 다소 두루뭉술한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 그 깊고 끝없음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그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우리를 황홀하게 하지만 바다는 여러모로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해준다. 우리는 바다를 육지와 육지를 연결하는 통로로 이용하기도 하고, 바다에 살고있는 무수한 생명체들로 우리들의 배를 채우기도 하며, 심지어 휴양지로 우리에게 큰 편안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간들은 어쩌면 바다를 톡톡히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의 모습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바다라고 생각하고 접하는 것은 바다의 표면일 뿐이다. 그렇게 바다는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간이 설 수는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바다로 내몰린 사람들이 있다. 레오나르 주베라, 뿌익-사발, 빼레 마르꼬, 요렝 까브레, 쁘루덴시 등, 그들은 각자의 이유와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목적은 같다. 배에 밀수품이 가득 싣고, 지중해 한가운데에 있는 마요르까 섬으로 가는 것. 그래야 그들은 각자의 몫으로 각자가 원하는 이상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그 길은 역경과 고난의 연속일 뿐이다. 해양경찰들을 피해 쥐죽은듯이 숨어있어야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유령같은 존재들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밀수꾼으로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바다라는 장소는 등장인물들에게 그렇게 달가운 존재는 아니다. 분명히 바다를 통해서 새로운 길을 찾았고, 나름대로의 희망을 품고 있지만, 그 길은 비참하고 험악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이 바다 위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것. 그것은 바다가 아닌 육지였다. 인간은 바다를 그리워 하지만, 막상 바다 한가운데서는 살 수가 없다. 그리고 이내 육지를 소망한다. 그래서 그들은 또 다른 육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바다에 되는 대로 몸을 맡기고, 배에 승선하였지만, 변덕스러운 바다는 그들의 안식처가 되주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육지를 밟기를 원하고, 육지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각 인물들의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이 마치 파도가 출렁거리듯이 왔다갔다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이 더 지나갈수록 바다는 더 이상 그들이 기댈 곳이 아닌, 극복해 나가야 할 하나의 시련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삶은 참 기가 막힌 것 같다. 무언가 피했다고 생각하면 다른 장애물이 놓여져 있고,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전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에서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육지에서 그들은 바다를 꿈꿨고, 그래서 바다로 향했다. 그런데 이제는 바다에서 다시 육지를 꿈꾸고 있다. 결국 그들은 바다에서든, 육지에서든 만족할 수가 없다. 육지에서의 상처를 바다가 씻어주리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바다는 육지에서의 상처를 덧나게 만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상처를 각자의 마음 한 구석에 있으리라. 그래서 그들 스스로 그 상처를 극복하지 않는 한, 그 상처는 바다에서든, 육지에서든 결코 아물 수가 없다. 하지만 마음 속의 상처가 너무 깊은지, 아니면 그것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모르기 때문인지, 그들은 계속 바다와 육지를 왔다갔다 표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바다 위의 행위가 어떻게든 미래를 바꾸어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아마도 영원히 밀수꾼으로 남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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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연기하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로버트 고다드, 현재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범죄소설, 역사소설 작가로, 스티븐 킹이 극찬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찾아보니 국내에서 출간된 작품은 아마 이것 뿐인듯 싶다. 그만큼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소 생소한 작가이기도 하다. 일단 이 책의 표지를 살펴보면, 한 남자가 정면을 응시하면서 마리오네트 인형을 조종하고 있다. <끝까지 연기하라>라는 책의 제목과 꽤나 잘 어울린다. 표지의 남자가 미국 드라마의 휴 로리를 닮았는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의 주인공은 왕년의 스타 토비 플러드로, <목구멍에 세 든 남자>의 순회 공연차 영국의 휴양도시인 브라이튼에 방문하게 된다. 그 곳에서 토비는 이혼 확정 판결을 앞둔 그의 아내 제니와 만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부탁도 역시 들어주게 된다. 그녀의 부탁은 자신을 스토킹하는 토니의 극성팬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처리해 줄 것, 토니는 그 남자(데릭 오스윈)를 만나게 되고, 데릭은 토니의 아내인 제니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며, 다시는 제니의 앞에서 얼쩡대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게 된다. 그렇게 일은 순조롭게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제니의 전화로 데릭이 또다시 그녀를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공연을 앞두고, 토니는 데릭에게서 온 편지를 한 통 받게 된다. 오늘 저녁 8시 홀링딘 로드 철교 근처로 나와주십시오. 안나오면 후회할 것이라는 반협박적인 데릭의 편지에 토비는 분개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 친구인 데니스에게 공연의 대역을 부탁하고 편지에 적힌 약속 장소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만난 데릭은 콜보나이트 유한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제 아버지가 이 공장에서 일을 했었고, 이 건물을 무슨 건물이고, 이 곳은 어떤 부지고, 토니는 계속되는 데릭의 이야기에 슬슬 짜증이 났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공연을 포기하고 약속 장소로 나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니의 짜증에 데릭의 이야기는 보다 본론에 접근하고 있었다. 바로 콜본 가족이 운영했던 콜로나이트, 십삼 년 전에 폐쇄된 이 회사는 보유하고 있던 염색 기술 분야의 특허권을 매각하고, 사업을 정리해버렸다. 그 주축에는 로저 콜본이 있었다. 그는 바로 제니와 곧 결혼할 남자였다. 로저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하는 데릭, 그는 콜보나이트의 역사에 관한 원고 <플라스틱 인간들>의 검토를 토니에게 부탁하게 되고, 토니는 다시 한번 제니에게서 떨어지겠다는 약속을 데릭에게서 받아내게 된다.

 

  이후에 그 날 공연에서 토비의 대역을 맡았던 데니스가 심장 마비로 사망하고, 데릭 오스윈이 실종되면서 사건의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설상가상으로 데릭이 전해준 원고마저 분실되면서 토비는 어떤 진실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체, 무작정 로저 콜본의 주위를 조사하면서, 데릭이 자신에게 해줬던 몇가지 이야기를 토대로 살을 덧붙이고, 연결해나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토니는 콜로나이트에 관계된 어두운 비밀을 대면하게 된다. 이렇게 이 책의 전체적인 전개 방식이 마치 직소퍼즐을 맞추듯이 세밀하면서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명료한 문장은 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진 않지만 긴장감을 선사했고, 조금씩 풀리고 있는 미스터리의 실체는 책의 뒷부분의 내용을 기대하게 만들면서, 이와 동시에 나의 흥미를 돋구었다. 막상 그 실체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에서 충분한 스릴을 느낄수 있어서 그 부분에서 충분히 만족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전개 방식에 비해 다소 스토리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제 의식이 명확하지 않았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니까 결국 데릭 오스윈이나 로저 콜본은 딱히 토비 플러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단순히 별거 중인 아내 제니를 위해 이 모든 미스터리를 떠안은 토비 플러드가 맞닥뜨려야할 거대한 음모라고 하기에는 너무 목적 의식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토비는 어찌어찌하다가 사건에 휘말리게 된 주인공치고는 꽤나 사건을 당연하게 사명감을 가지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게임이나 동화에서 나오는 용사 혹은 왕자 같은 느낌? 괴물을 무찌르고 공주님을 구하자. 이 책의 내용을 빌려서 말하자면 별거중인 아내가 위험하고, (데릭의 표현을 빗대자면)신용할 수 없는 로저 콜본이라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막고 아내를 되찾자. 그렇게 따지면 토니는 완벽하게 게임을 클리어한 셈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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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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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읽게 된 책은 미야베 미야키라는 일본의 여성 작가의 작품인 <눈의 아이>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본 결과, 그녀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으로, 이미 수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출간되어 있었다. <눈의 아이>는 최근에 번역된 그녀의 작품으로 간만에 나온 현대물이라고 한다. 책의 표지에 그려진 빨간 장화와 빨간 타탄체크 머플러, 그리고 대지에 소복이 쌓인 하얀 눈밭은 아주 선명한 색채대비를 이루고 있다. 한 손에 들어오는 200쪽이 살짝 넘는 분량의 이 책은 총 다섯가지의 단편이 담겨 있다. 제목과 표지에서 짐작해볼 수 있는 <눈의 아이>, 그리고 <장난감>, <지요코>, <돌베개>, <성흔>이 나머지 이야기들이다.

 

  우선적으로 나를 맞이해준 것은 바로 <눈의 아이>, 책 표지의 느낌을 참고 삼아 읽어내려간 이 이야기는 여자 주인공이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들과 연락하고 만나기로 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 친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과거의 일을 회상한다. 건조한 여자 주인공의 말투와 함께, 의문의 죽음을 당한 친구에 대한 회상이 절묘하게 겹쳐지면서 결말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단숨에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생각보다 허무한 결말이었지만, 일단 반전이 있기는 했다. 비록 그 반전이 영화 식스센스 이후 최고로 흔한 반전이 되어버린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눈 내린 배경과 함께, 빨간 파카에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빨간 고무 장화를 신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자 아이의 시신이 그려진 장면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두번째 이야기인 <장난감>은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사건의 발단은 상가 근처에 퍼진 소문, 그리고 그 소문의 가운데에는 그녀의 작은 할아버지가 있다. 비록 한번도 할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는 남보다도 못한 할아버지이긴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이는 사건의 제3자도 아니고, 주요인물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입장에서 객관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주관적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아이는, 점점 할아버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작은 어린 아이가 너무 일찍 겪게 되는 어른들의 세상은 너무 차갑고, 잔인하다. 현대 사회에서 충분히 찾아 볼 수 있는 소재를 어린아이의 솔직한 시선으로 그려냄으로써, 이야기의 비극성은 한껏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현대 사회의 비정함과 냉정함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세번째 이야기는 <지요코>, 인형탈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시험삼아 꾀죄죄하고 허름한 인형탈을 머리에 쓰게 되고, 그 인형탈이 보통 인형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인형탈을 통해 그녀는 놀랍게도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장난감이 가득한 동화같은 세상을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에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대한 희미한 기억들이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었다. <지요코>는 이 책의 다섯 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몇일 전에 길거리에서 인형탈을 쓰고 홍보를 하는 사람들을 봤었는데, 보자마자 딱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었다. 저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말이다. 처음에 이 이야기의 제목을 보고 솔직히 공포 이야기인 줄 알았다. 지요코. 뭔가 귀신 이름으로 딱이지 않나? 사다코나 하나코 같은 이름의 귀신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인 토끼 인형의 이름이었다. 여자 주인공이 어렸을 때 너무 좋아해서 이름까지 붙여준 토끼 인형 말이다. 

 

  네번째 이야기 <돌베게>는 동네에서 벌어진 여학생 살인 사건을 두고, 한 아버지와 딸이 그 사건에 대해서 조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 속의 돌베게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인상이 깊었던 것 같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금품을 갈취하던 한 부부의 파국은 끔찍하고 잔인하지만, 아주 강렬한 여운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이에 비해서 이야기의 전체적인 내용의 진행은 조금 느슨한 느낌이 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주제는 사실 처음의 부녀가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새로운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된다. 내가 이 이야기에서 조금 더 눈여겨 봤던 부분은 사실 따로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아버지가 바로 그 부분인데, 그는 비록 딸과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세대 차이라는 벽에 부딪쳐 딸과 공감도 형성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사달라는 딸의 부탁도 거절하는 조금은 무뚝뚝하고 엄한 아버지이지만, 속으로는 딸은 무척이나 생각하고, 위해준다. 정의감에 불타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침착하면서도 관심 없는 듯 하지만, 나중에는 딸의 부탁을 마지못해 승낙하고, 딸의 사건 조사에 결국 일조해 그 사건에 대해 딸보다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며, 딸의 글 솜씨에 뿌듯해하기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마지막에 딸의 남자친구를 처음 만나는 모습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참 의미가 남다른 만남이 아니겠는가?

 

  마지막 이야기인 <성흔>은 처음에는 가장 흥미진진했던 내용이었다. 조사사무소에 방문한 반백머리의 남자는 조심스럽게 자기 전부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말한 아들이 겪었던 과거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그의 아들은 14살에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어머니의 애인도 역시 죽였다. 바로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14살의 소년이 겪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했던 과거의 상처는 시간지 조금씩 지나면서 겨우 아문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이야기의 방향이 약간 달라지는데, 나는 너무나 급격한 이러한 변화에 솔직히 정신을 못차렸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검은 메시아아 검은 어린양>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시작으로 메시아나 예언자 따위의 단어가 사이비 종교와 같은 양상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여기에 철퇴의 유다니 유다스 마카베우스니 하는 결말이 나에게 조금이나마 남았던 기대를 싹 다 걷어가 버리고 말았다. 더군다나 이러한 부정적인 결말이라니. 앞 이야기와 뒷 이야기가 따로 나눠지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아예 나눠져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묘하게 합쳐 놓으니 그야말로 괴기스러움 그 자체였다.

 

  이렇게 총 다섯가지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단편 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성흔>을 제외하면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와 내용을 바탕으로 작가가 개인적인 시각을 덧붙여 보다 전체적인 이야기가 완결적으로 구성될 수 있게 꾸며져 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내용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충분히 진실성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가볍고 흔한 소재이지만, 사람들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어렵지도, 난해하지도 않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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