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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선셋 파크>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결코 희망찬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 작품의 분위기를 비춰서 본다면, 꽤나 시간적인 배경으로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제목과 함께 책의 표지는 한 남자가 어딘가를 응시한 체 벤치에 앉아있다. 선셋파크라는 공원의 벤치에 홀로 앉아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남자의 뒷모습. 그야말로 쓸쓸해보이기가 그지없다. 그런 느낌일것이라. 나는 그렇게 지레짐작해버렸다. 줄거리도 역시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바로 상실감, 이 소설의 한 가운데에는 현대인의 깊은 상실감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럴까. 작가는 꽤나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그려내지만, 냉정하다는 느낌보다는 꽤나 감정을 억누르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척박한 생활에 너무 목이 졸리지 않게 말이다.

 

   번듯한 대학에 다니던 촉망받던 대학생이었던 마일스, 그는 형 보비와의 사소한 말다툼 끝에 형을 도로로 떠밀어 죽게 만들었다. 그 죄책감 때문일까. 마일스는 도망치듯이 부모의 곁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앞이 창창할 것 같던 젊은이는 순식간에 노동자로 전락해 버려진 집들을 돌아다니며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일을 하게 된다. 미국에 닥쳐온 급격한 경제 불황은 미국인에게 자신들의 터전에서조차 도망치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빈 집들이 생겨났다. 마치 전쟁 후의 처참한 잔해와 같이 말이다. 마일스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 잔해들을 치우면서 살아간다. 그때 그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필라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 둘의 사랑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단 필라가 미성년자였었고, 그녀의 가족들도 역시 문제가 있었다. 결국 필라의 언니의 협박을 받고, 7년 만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마일스. 하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가 간 곳은 불법으로 선셋파크의 빈집 점유하고 살아가는 몇몇의 친구들의 곁이었다. 선셋파크에는 마일스와 마찬가지로 그의 친구들인 엘런, 앨리스, 빙, 역시 모두 각자의 암담한 현실에 짓눌려 있다. 이는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미국의 젊은이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한자리에 모여들 수 있었을 것이다. 비슷한 사연을 가진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 누가 그들만큼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그들은 사회에서 분리된 또 다른 사회를 꾸리면서 선셋파크에서 살아간다. 이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선셋파크라는 장소에 한데 뭉치면서 각각의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서로 앙상블을 이루며 그들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선셋파크에서 생활을 통해 마일스는 다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 놓을 수 있늘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된다. 가족과의 관계도, 필라와의 사랑도, 모든 그의 삶도 말이다. 하지만 마일스는 다시 결승점을 거의 눈 앞에 두고, 다시 또 좌절하고 만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을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다. 소설에서 마일스는 끝내 진실을 받아들였지만, 그 곳에는 또 다른 벽이 놓여져 있었다. 이렇게 비관적인 상황 가운데서 폴 오스터는 우리에게 꽤나 낙관적인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만을 위해 살자. 현재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작가가 전해주고자 하는 일종의 메시지인 셈이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는 완결이 아닌, 또 다른 나날들을 기약하며 끝을 맺는다. 솔직히 딱히 긍정적이라고 말할 것도 없지만, 하나 뚜렷한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단 시도는 보류해두더라도 그것이 결코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느낌이랄까. 나 아직 살아있어요. 아직 죽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일단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이야기 아닌가?

 

  <선셋 파크>를 뒤덮고 있는 상실감은 비단 미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상실감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단지 우리는 그 밝은 면만 볼 뿐이다. 하지만 모두들 과거를 가지고 있고, 잊고 싶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어두운 면에 가려져 밝은 면을 못보고 산다면 그 또한 비극이 아닌가. 여기에서 그 밝은 면은 친구, 가족, 그리고 사랑이라는 어찌보면 다소 진부한 소재로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그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지 않나? 유명한 작가라도 아주 작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딱히 다른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일말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비록 현재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결국 정답은 우리 근처에 있는 것이다. 조금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사회는 다시 굴러갈 것이고, 언젠가는 다시 우리들의 관계도 회복될 것이다. 그냥 이렇게 믿는편이 오히려 속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를 위해 살자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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