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에서 1월 1일이 된다고 해도, 그냥 살아가는 날 중 하루일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즘 2020년이라는 숫자도 낯설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다운되어 있다.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온 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런 정답이 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쇠약해진 부모님의 모습도 유독 마음에 걸린다. 내 삶에 대한 아쉬운 생각이 큰데, 그렇다고 이제서야 새롭게 도전할 것이 있는 것도, 뚜렷하게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몇 발짝 떨어져서 나의 인생을 바라볼 때,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은 아니어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해보기도 한다.

하필 이럴 때 이 책을 만났다. 병렬 독서를 하는 편이라 잠자기 전에 침대에서 읽을 책으로 선택했다. 예전에 영화는 본 적이 있어서 아예 모르는 내용도 아닌데, 읽는 내내 눈물과 먹먹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흔히 사람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라고, 다 비슷하다고 하지만 푸구이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살았던 삶을 거기서 거기라고 담담히 말할 수 있을까?

비극적인 시대를 살았던 인생이라 해도 다 기구하게 살았던 것은 아닐 텐데, 시대를 탓하기에도, 개인을 탓하기에도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누구나 계획한 대로 인생을 살 수 없고, 인생에는 또한 영원한 것이 없으니, 언젠가는 사라지고 이별해야 하는 것 투성이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슬프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또 살 수밖에 없는 것. 그렇지만 때로는 기쁨도 있고, 조금의 운도 따라주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 살다 보면 남들 하는 대로 비슷하게 살 수도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다르게 살 수도 있는 것.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된다.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되고, 백만 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 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

서문

 

하나의 문학 작품이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되고,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된다고 말한 작가의 말처럼, 77억 명의 전 세계 사람들의 인생도 77억 개가 될 것이다.

77억 개의 인생 중 하나, 내 인생.

사람이 한 평생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리저리 생각해 본다.

이 책은 개인의 삶에 시대가 얼마나 아프게 다가올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중국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 대목에서 펄 벅의 대지가 떠올랐다.) 중국 인민해방군과 국민당군의 전투, 토지 개혁과 인민공사, 대약진과 자연재해 그리고 문화대혁명. 중국의 1940년대~1970년대까지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삶이 너무나 기구해서 그 시대가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정말 좋아!'라고 말하기에 너무너무 슬퍼서, 순수하게 좋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된다.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되고, 백만 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 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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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05 0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 년 전에 읽으면서 내내 슬펐어요. 그래도 체념한 듯 홀로 남아 소 몰아 밭 가는 노인 보면 살아간다는 건 원래 저렇게 지난한 건가 했어요.

지유 2020-01-05 14:40   좋아요 1 | URL
맞아요. 각자 위치에서 인생이란 뭘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