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없이 조롱당한 그들…귀막고 있을 뿐이고…
[뉴스 쏙]
 
 
한겨레 최혜정 기자 성연철 기자
 








 

» 쉼없이 조롱당한 그들…귀막고 있을 뿐이고…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한해 정치권은 어느 해보다 풍성한 신조어가 인구에 회자됐다. 올 한해 정치권을 달군 ‘말’을 통해 2008년 한국 정치판을 반추해본다.


열쇳말로 돌아본 2008 한국정치


■ 어륀쥐

“미국 가서 오렌지를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들어서 ‘어륀쥐’라고 하니 알아듣더라고요.”(1월30일,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그러지 않아도 ‘과속’ 비판을 받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영어 몰입교육을 주창한 이 위원장의 ‘어륀쥐’ 발언으로 결국 사달이 났다. 국민들은 이 위원장의 ‘오버’에 실소했다. 한때 인수위원들끼리 ‘굿~모닝’을 주고받으며 ‘잉글리시 프렌들리’에 열 올리던 인수위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영어 몰입교육 방침을 접었다.


■ 강부자·고소영·에스라인


이명박 정부의 첫 내각, 청와대 인사는 실망감과 소외감을 줬다. 1기 내각 평균재산은 36억7천만원에 이르렀다. 강부자(강남 땅부자) 내각이란 조롱이 작렬했다. 투기 의혹을 받은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 것일 뿐”이란 기상천외한 변명을 남겼다. 고려대·소망교회·영남에 치우친 인사는 신조어 ‘고·소·영’을 낳았다. 서울시청 인맥을 중용해 에스(S)라인이란 말도 나왔다.


■ 명박산성·쥐박이

촛불집회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6월10일 아침.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5.4m 높이의 컨테이너 바리케이드가 깜짝 등장했다. 시민들의 청와대 행진을 막으려 경찰이 하룻밤 만에 쌓은 흉물에 촛불들은 유쾌한 작명으로 조롱했다. ‘명박산성’, ‘쥐박산성’, ‘용접명박’, ‘국보 0호’ …. 하루살이 성의 이름은 차고 넘쳤다. 대통령의 친미·굴종적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 체결 행태에 분노한 시민들은 대통령을 ‘쥐박이’, ‘2MB’라 일컫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 영일대군·만사형통

6선 의원, 전직 국회부의장인 대통령의 형. 이명박 대통령 집안의 기둥이던 ‘형님’을 둘러싼 소용돌이는 1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4월 총선 국면 당시 이상득 의원은 이재오·정두언 의원 등의 ‘불출마 쿠데타’를 가볍게 제압했다. 청와대 등 권력 핵심이 그의 수하들로 채워졌다는 풍문이 돌았다. 11월엔 당내 의원에 대한 성향분석 문건을 읽는 장면이 렌즈에 잡혔다. 정치권은 ‘영일대군’(포항 지역구인 대통령의 형), ‘만사형통’(만사가 형을 통해야 한다는 뜻)이란 말로 그의 막후 권력을 풍자했다.


■ 월박·복박·주이야박

권력은 미래를 지향한다.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엘(L)자형’ 지지율은 한나라당내 권력 지형에 영향을 끼쳤다. 친이는 흔들렸다. ‘미래 권력’ 박근혜 계보는 세가 불었다. ‘월박’(친박으로 넘어온 의원), ‘복박’(애초 친박에서 친이로 갔다 친박으로 돌아온 의원), ‘주이야박’(낮엔 친이, 밤엔 친박)이란 말이 권력을 향한 부나방들의 염량세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친이와 친박은 말의 진원지와 유포자를 두고도 서로 탓하며 정치적 유불리를 셈했다.


■ 리만(李-萬) 브러더스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세계 경제위기의 시작을 알렸고, 한국판 ‘리만 브러더스’의 탄생은 ‘제2의 아이엠에프’라는 비아냥을 낳았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정책 실정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 여권에서도 사임 압력이 높았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강 장관에 대한 신임을 거두지 않았고, 이에 시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李)와 강만수 장관의 ‘만’(萬)자를 딴, 새로운 형제를 탄생시켰다. 한국판 ‘리만 브러더스’는 태평양 건너 미국 <뉴욕 타임스>에 소개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 강달프·반쥐원정대

미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미 쇠고기 수입 국정조사에선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도포 자락을 휘날렸다. 흰 머리와 긴 수염이 <반지의 제왕>의 마법사 ‘간달프’와 비슷하다 해서, 네티즌들은 강 대표를 ‘강달프’라고 부르며 환호했다. 그는 단숨에 ‘간지나는’ 대중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최근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 위기에 몰린 그를 구하기 위해 시민들이 ‘반쥐 원정대’(anti-mouse tourists)를 꾸려 ‘강달프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 노방궁·봉하대군·오리쌀

10월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 차관의 쌀 직불금 부당수령이 정국의 쟁점으로 부상하자,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뒤 지내고 있는 봉하마을을 공격하고 나섰다. ‘노무현+아방궁’의 합성어인 이른바 ‘노방궁’ 논란이다. 한나라당은 봉하마을에 수천억원의 혈세가 투입됐다고 공격했고, ‘이봉화 대 노봉하’ 대결로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얼마 뒤 청와대에는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재배·수확한 오리쌀 세 포대가 도착했다. 보낸 이는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이었고, 수취인은 ‘이명박님’이었다. 봉하마을이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봉하대군’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는 세종증권 매각 과정에서 거액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 2중대

이달 초 새해 예산안 협상 과정에 ‘복병’이 나타났다. ‘2중대’ 논쟁이었다. 새해 예산안 처리 시기를 두고 여야가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던 중이었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보조를 맞추는 자유선진당을 향해 “한나라당의 2중대”라는 논평을 내자, 선진당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협상이 파행을 겪었다. 선진당은 민주당을 향해 “김정일의 2중대” “민노당의 2중대”로 맞불을 놓는 등 감정싸움이 치열했다. 느닷없는 ‘야-야 갈등’에 되레 여당인 한나라당이 중재에 나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최혜정 성연철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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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면 정상용 교사 “딸에게 시험 선택권 준 것일뿐”
[뉴스 쏙]한겨레가 만난 사람 일제고사 거부로 ‘파면’된 정상용 교사

 
 
한겨레 유선희 기자
 








 

»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고 파면된 정상용 전 구산초등학교 교사가 23일 서울 은평구 구산초등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며 등교하는 아이들과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root2@hani.co.kr
 

‘파·면’. 달랑 서류 한 장에 적힌 두 글자가 19년 교직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평가지, 아이들에게 읽어줄 책 <몽실언니>를 넣어 다니던 가죽가방은 장롱 속에 모셔뒀다. 대신 등산 배낭에 깔개와 무릎담요, 장갑 그리고 헨리 소로의 책 <시민의 불복종>을 넣는다. 정장 대신 오리털 파카를 입고 그는 교실 대신 교문 밖 아스팔트 위로 출근한다. “안녕하세요” “안녕” 인사를 건네던 교문 앞에서 “징계철회” “복직투쟁”이란 구호를 외치고 있다. 10월 실시된 전국 단위 일제고사 때 아이들의 체험학습을 허락하고, 학부모들에게 일제고사의 부당성을 알리는 편지글을 썼다는 이유로 파면된 정상용 교사(서울 구산초·42)는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불렀다. 시험 감독을 거부하는 ‘적극적인 저항’ 대신 시험 응시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편지를 보내는 ‘소극적 저항’을 선택한 것은 ‘징계’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자고 일어나니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저항한 ‘투사’가 돼 있었다. 영하 9도의 매서운 추위가 덮친 22일 서울시교육청 앞 커피숍에서 정 교사를 만났다.


“징계 두려워 소극적 저항…사실 난 겁쟁이
복직 못하더라도 내 결정 후회하진 않을것

인터뷰 내내 학생·학부모 응원전화·문자
“혼내던 아이들 편들어주니 힘이 불쑥 나요”



-파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엇입니까?


“부모님 모두 칠순을 바라보십니다. 충격으로 쓰러지시지 않을지 걱정이 돼 징계 사실을 숨겼습니다. 열흘 정도 아무것도 모르시던 부모님께서 뉴스에서 저를 보시고 제 방으로 뛰어오셔서 ‘저거 너 닮았는데, 너 아니냐?’고 물으셨습니다. 일제고사가 뭔지 모르시는 어머니는 제가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된 줄 아십니다. 할 수 없이 거짓말 좀 했습니다. 2년만 참으면 자동으로 복직될 테니 조금만 참으시라고요.”

-부모님이 더 속상하실 것 같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다음날 어머니가 용하다는 점집에 가셨답니다. 평소 미신이라며 펄쩍 뛰시던 양반이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곳엘 가셨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점쟁이가 ‘당신 아들은 관운이 좋아서 2년만 참으면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했다네요. 어머니께서 얼마나 한시름 놓으시던지. 점쟁이가 그렇게 고맙기는 난생처음이었습니다. 하하하.”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시험 한 번 안 보게 했다고 자르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셨습니다. 칠순을 바라보시는 경상도 양반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무뚝뚝하시겠어요? 신문도 꼭 보수신문만 고집하십니다. 그런 분이 결국 일제고사에 반대하신 셈이 됐죠. 하하하.”

그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말을 마칠 때도 항상 “하하하” 웃음으로 끝냈다. 교사로서 생명줄이 끊긴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고서도 웃는 표정으로 너무나 담담하게 말해 기자가 민망할 정도였다. 기자가 “담담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하자 그는 “어차피 복직될 거라 믿기 때문에 의연하고 싶다”며 또 웃었다.

-당분간 생활도 걱정이겠어요?

“아내도 교사인데, 이제 ‘외벌이’가 된 거죠. 얼마 전에 국회의원 나경원씨가 여교사 대우가 너무 좋다고 했잖아요? 교육 경력 13년 아내가 한달에 278만원 정도 법니다. 두 아이에 부모님까지 모시는 6인 가족이어서 넉넉한 돈은 아니죠. 파면당해 퇴직금도 절반으로 깎였는데 저축 좀 많이 해 놓을걸 하고 후회가 좀 되네요. 하하하.”

-부인은 뭐라고 하던가요?

“갑자기 아내가 저를 옷가게에 데리고 갔어요. 그 가게에서 제일 두껍고 따뜻해 보이는 오리털 파카를 하나 골라서 입혀주는 겁니다. ‘방송에 나오는 당신, 너무 추워 보이더라’면서요. 아내도 일제고사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인데, 파면까지 당할 줄은 몰랐다고 좀 놀란 눈치였어요. 이젠 복직투쟁에 나서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깁니다.” 그는 부인 자랑에 신이 난듯, 갑자기 “사실 아내는 눈이 예쁘다”는 뜬금없는 말을 해 기자를 웃게 만들었다.

지난 10월 일제고사 때 정상용 교사의 6학년 딸은 시험을 치렀다. 일부 보수 언론들은 ‘반 학생들은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하고 자기 딸은 시험을 치르게 한 비도덕적인 교사’라고 정 교사를 공격했다. 정 교사는 딸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일러줬고, 그 뒤 딸이 시험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여러 차례 해명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언론보도를 본 딸은 “내가 시험 안 봤으면 아빠 학교에서 안 잘렸을지도 모르는데…”라는 말로 정 교사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딸 이야기가 나오자 정 교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 정상용 전 구산초등학교 교사
 

-딸이 상처를 받진 않았습니까?

“딸이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다닙니다. 징계가 결정된 다음날 자기 담임 선생님한테 ‘선생님, 파면이 뭐예요?’라고 묻더래요. 그 이야기를 전해듣는데 이번 사건을 겪으며 처음으로 눈물이 핑 돌았어요.”

-자녀들도 이 상황을 조금은 이해를 하나요?

“집회에 갔다가 11시쯤 집에 돌아왔는데, 10시면 자는 아이들이 뭘 하고 있어요. 첫째 딸이 4학년 동생하고 제가 집회 때 시민들에게 나눠주려고 만들어 놓은 유인물을 찍개로 찍고 있더라구요. ‘아빠, 나 잘했지? 잘했지?’ 하면서요.”

늘 웃는 얼굴인 그도 자식들 이야기가 나오자 담담해지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그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출근투쟁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교장·교감 선생님의 반응이 너무 싸늘했습니다. 전날까지 같이 소주잔 기울이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불렀던 교장·교감 선생님이 교문을 막고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영하의 날씨에 밖에 서 있으면 낯선 사람들도 커피를 건네며 ‘힘내라’고 하는데, 한솥밥 먹던 동료가 그토록 냉정한 것이 가장 힘들고 슬프죠.”

인터뷰 도중에도 정 교사의 휴대전화가 계속 울렸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계속 전화하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잠깐 봐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해 들여다보니 “선생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선생님, 내일 방학식인데, 우리 보러 꼭 오시는거죠?”라는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었다. 몇몇 학부모들은 “시험을 안 보기로 한 건 우리들인데 , 왜 선생님을 징계하냐”며 탄원서를 만들어 17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건네줬다고 한다.

-요즘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은 뭔가요?

“아이들이 ‘선생님 가지 마세요, 졸업장은 선생님한테 받고 싶어요’라고 해주는 말입니다. 가장 말썽꾸러기인 ○○와 ○○이가 손팻말을 만들어 와 교문 앞에서 같이 시위를 했어요. 아이들이 간식도 사다주고, 교장·교감 선생님이 저를 밀어낼 때 울면서 매달리기도 하고요. 제가 혼도 많이 내고 나머지 공부도 많이 시켰는데, 서운하지도 않은지 아이들이 제 편을 들어줘요. 교사 생활 허투루 한 건 아닌 것 같아 없던 힘이 불쑥 납니다.”

-학교를 떠나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학급문집을 만들기로 했어요. 졸업 선물로 계획한 건데, 포기해야 하나 싶어요. ○○이는 중학교 가기 전에 공부 좀더 봐주려고 했고, ○○이한테는 야단만 치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못 했는데…. 제가 몸이 아파서 체육을 2번 못했더니 아이들이 ‘체육 2시간 저금해 놨다’고 했어요. ‘푹~ 삭혀놨다가 졸업하기 직전에 맘껏 눈싸움이나 하자’고 했는데, 결국 그 약속도 못 지키네요.”

정 교사는 1989년 6월, 교사가 됐다. 첫 담임을 맡은 뒤 ‘장학사가 오니 청소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교실 비품을 보니 빗자루도, 쓰레받기도, 걸레도 없었다. “학부모들에게 손을 벌리라는 이야기”였다. 교장을 찾아가 빗자루 살 돈을 달라고 요청하고 학부모들에게는 “학급 물품 사 올 필요 없다”고 말했다. 며칠 뒤 한 아이가 “우리 엄마가 선생님은 참교육자라고 했다”고 그에게 말했다고 한다. “빗자루 사오란 말 안 하면 참교육자라니…. 대한민국 교육 현실이 그랬어요.”

마침 전교조가 결성돼 한창 떠들썩하던 와중이었다. 가입 사실이 들통나면 해직되던 시절이어서 그는 그해 연말 몰래 전교조에 가입했다.

-왜 ‘일제고사’를 거부했던 건가요?

“5년 전 공정택 교육감이 서울시 교육을 책임지면서부터 이미 ‘학교별 일제고사’는 부활됐어요. 우리 반은 학교별 일제고사도 안 봅니다. 대신 제가 문제를 만들어서 풀도록 합니다. 학부모들에겐 1년에 네 번 편지로 아이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알립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가 낸 시험을 보면서도 ‘선생님, 우리는 진짜 시험 언제 봐요?’ 합니다. 학교 전체, 혹은 전국 초등학교 전체가 보는 시험만 ‘진짜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반 아이들에 대해서는 담임이 제일 잘 압니다. 점수로 줄 세우고 등수 매기는 시험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만 주고 부모들에겐 사교육만 조장할 뿐입니다.”

-그래도 전체 교육정책에 따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적지 않은데?

“처음 임용돼 임용장 받으러 갔더니 장학사가 제게 ‘교사가 노동자라고 생각하냐, 전문가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교사는 전문성을 가진 노동자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교육당국은 늘 교사를 전문가라고 치켜세웁니다. 그런데 정책을 만들 때는 왜 교사들에게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합니까? ‘너희는 국가의 녹을 먹는 종이니 찍소리 말고 따라야 한다’는 건가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제 위치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고용자를 가장한 교육당국이 ‘너 나가’하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는 ‘노동자’일 뿐입니다.” 정 교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복직이 안 되면 어떻게 할 건가요?

“소청심사위에서 결정이 번복될 거라곤 기대도 안 합니다. 결국 소송하게 될 테고, 최소 2~3년은 걸리겠죠. 길게, 멀리 내다보기로 했습니다. 복직에 실패해도 제 결정을 후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 인생에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여기까지였다고 편하게 생각하려고요. 복직이 안 되면…, 음… 제게도 꿈이 있습니다. 생태·환경운동에 투신할까 합니다. 우리 집사람은 ‘귀향해서 주말농장이나 하자’고 합니다. 하하하.”

이날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교사 파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방호원(경비)하고 전경하고도 정들겠어요. 하하하.” 정 교사는 가방 안에서 깔고앉을 깔개를 꺼내 시위대 속으로 합류하며 예의 그 너털웃음으로 기자를 배웅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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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홈` 결심했던 K부장, 1년내내 고민만…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3억원짜리 전셋집에 사는 중견 A회사 김부장(42)은 결국 올해도 내집마련에 실패했다. 집 한 칸 마련해 보겠다며 지난 1년간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집값은 종잡을 수 없었고 대책은 수시로 바뀌었다.

불안한 시장이었다. 아파트 청약 당첨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만 막상 계약서에는 도장을 찍지 못했다. 김부장의 올 한 해 주택구입계획 일기를 들여다봤다. 새해 첫날에 그는 집을 사겠다는 결심이 대단했었다.

집 없는 설움은 올해로 끝이다. 2008년을 '유주택자 원년'으로 삼으리라.2007년에는 집값이 약세를 보였다. 2006년에 급등했으니 숨고르기를 한 것일테다.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하반기쯤에 반등하리라는 의견을 많이 냈다. 번번이 기회를 놓쳐 아직도 전셋집을 전전하고 있지만 나도 주택재산세라는 것을 내봐야겠다. 전셋값 오른다는 뉴스도 남의 일이 되겠지.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으니 경제 상황도 나아질거야.

부하 직원인 박대리가 요즘 살맛나는 모양이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지난 1월에 결혼한 박대리는 강북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대출을 많이 받아서 아파트를 샀다고 했을 때 젊은 사람이 겁도 없다고 핀잔을 줬지만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3억원짜리 아파트가 4억원을 호가한단다.

박대리가 너무 부러웠지만 꾹 참았다.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다급해진 국토해양부 장관이 노원구 일대 중개업소를 돌아봤다고 한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석 달 동안 서울 집값은 2.1% 올랐지만 노원구는 8% 올랐다. 도봉구와 강북구도 각각 3.2%와 3% 상승했다(1~11월 사이 노원구 18%,도봉구 10.9%,강북구 10.6% 상승).역시 집을 사야겠어.

신규 아파트 공급이 줄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로 건설업체들이 신규 사업을 벌이지 않는 데다 분양 성적도 신통치 않기 때문이라는 해설이 뒤따랐다.

국토해양부 자료를 보니 답답하다. 인허가 기준으로 오는 10월까지 주택건설은 수도권 11만1051가구와 지방 10만6580가구 등 모두 21만7631가구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56% 수준.정부는 올해 수도권 30만가구,지방 20만1000가구를 목표로 했다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1998년 이후 최저치라고 한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일반분양 물량이나 용산의 재개발 아파트에 관심이 가고 은평뉴타운,김포한강신도시,광교신도시 정도를 노려볼 만하겠다.

집을 좀 알아봐달라고 몇 번 연락을 했더니 동네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씨 아저씨와 친해져서 저녁 때 소주를 한 잔하게 됐다. 이씨 아저씨는 올해 단 한건도 중개를 성사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거래가 완전 두절됐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단다. 국토해양부의 아파트 거래신고 건수를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지난 4월 서울은 7870건의 거래가 일어났는데 6월에는 5782가구로 감소했다(거래건수는 급격히 줄어 8월에는 2441가구,11월에는 687가구로 집계됐다).

전국적으로도 4월 이후 거래량은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 전국 부동산중개업자 가운데 10분의 1만 거래를 주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을 사지 않았던 것이 요즘처럼 다행으로 느낄 때가 있었을까. '버블세븐' 집값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2006년 12월 강남에 입성할 때 무리하게 매입을 하지 않고 전세를 택한 것은 지금와서 보니 아주 잘한 일이었다.

한때 12억5000만원을 호가했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113㎡형은 10억원대를 밑돌았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단지가 몰려 있는 우리 동네는 집값 하락 소식에 야단이 났다.

최고점 대비 2억~3억원 정도 떨어진 아파트가 속출했다(국민은행 집계 결과 주택가격 변동률은 올1~11월 사이 강남 -2%,서초 -2.2%,송파 -0.9%,분당 -6.5%,용인 -5.2%다). 조금만 더 떨어지면 일 한번 저질러봐야겠다.

광교신도시는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명품신도시로 개발된다는 등의 소리를 듣고 한번 넣어 보자는 심정으로 청약을 했다. 하지만 막상 당첨이 되고나니 집값 전망이 밝지 않은 것 같아 포기했다.

아까운 청약통장만 날렸다. 계약 포기자는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계약률이 70%대에 불과했다. 청약경쟁률은 14대 1이었는데.길 건너 반포자이 아파트 계약률도 그저그런 것 같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청약률 '제로'를 기록한 아파트가 4곳 중 1곳이란다. 전국 388개 단지 가운데 98개 단지는 청약자를 구경도 못했다는 말이다. 이러니 지난 7월 미분양 주택이 16만가구를 넘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나 보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쏟아낸다. 지난 8월부터 6개 대책이 나왔다. 처음 대책이 나올 때는 집값이 반등해 내집마련이 어려워질까봐 불안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하락세를 탄 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꿈쩍도 안한다. 재건축 규제 풀어주고 양도세 줄여주고 종부세는 사실상 없애줬는데도 반응이 없다. 투기과열지구 풀어주고 일시적 2주택 기간도 늘려줬다. 그러면 뭐하나. 매물이 늘어서 가격만 더 떨어지지.

신문을 보니 글로벌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침체 영향으로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더 하락할 것이라고 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펀드가 반토막만 나지 않았어도 지금 당장 사는 건데.




 
 
 
집주인이 아쉬운 소리를 하고 갔다. 주변 시세에 맞춰 전세금을 내려주지 못하겠다는 얘기였다. 송파구에서 역전세난이 심각하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우리 집 일이 될 줄은 몰랐다. 3억원이던 전셋값은 2억3000만원까지 떨어졌다.

내가 집주인이었더라도 7000만원을 갑자기 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집주인은 중견건설업체 임원인데 회사가 어렵다고 했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7000만원이면 한 달 이자만 해도 얼마인가.

집주인은 금융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내년에는 반드시 집을 살 작정이었던 나는 조건을 달았다. 내년 상반기든 하반기든 언제든지 내맘대로 나가겠다고.두 달 전에 통보해 줄테니 그런 줄 알라고.상반기에 집값이 조금 더 떨어지면 내년에는 반드시 집을 사고 말리라.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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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이 찍은 얼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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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부산 자갈치에서 잡았다. 모성애는 사랑의 절정이요 완성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삭막한 현실 속에서 어머니의 품은 언제나 포근한 고향이다. 여러분!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 옆에 앉아 주름진 손을 한번 잡아보시라. 여러분이 영원한 사랑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될 터이다. (부산,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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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이 찍은 얼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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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식이 찍은 얼굴 10
 

우리들의 이웃, 그들의 표정엔 가식이 없고 그들의 모습만큼 진실한 것도 없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서 서민들의 순수한 삶을 담았고 의미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곳엔 절대적인 빛이 있다. 나는 상상력이 발휘되고 대상이 명료해지면서 의미가 담기게 될 때까지 내가 관찰하고 있는 것을 깊이 탐구하였다. (부산,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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