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없이 조롱당한 그들…귀막고 있을 뿐이고…
[뉴스 쏙]
 
 
한겨레 최혜정 기자 성연철 기자
 








 

» 쉼없이 조롱당한 그들…귀막고 있을 뿐이고…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한해 정치권은 어느 해보다 풍성한 신조어가 인구에 회자됐다. 올 한해 정치권을 달군 ‘말’을 통해 2008년 한국 정치판을 반추해본다.


열쇳말로 돌아본 2008 한국정치


■ 어륀쥐

“미국 가서 오렌지를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들어서 ‘어륀쥐’라고 하니 알아듣더라고요.”(1월30일,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그러지 않아도 ‘과속’ 비판을 받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영어 몰입교육을 주창한 이 위원장의 ‘어륀쥐’ 발언으로 결국 사달이 났다. 국민들은 이 위원장의 ‘오버’에 실소했다. 한때 인수위원들끼리 ‘굿~모닝’을 주고받으며 ‘잉글리시 프렌들리’에 열 올리던 인수위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영어 몰입교육 방침을 접었다.


■ 강부자·고소영·에스라인


이명박 정부의 첫 내각, 청와대 인사는 실망감과 소외감을 줬다. 1기 내각 평균재산은 36억7천만원에 이르렀다. 강부자(강남 땅부자) 내각이란 조롱이 작렬했다. 투기 의혹을 받은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 것일 뿐”이란 기상천외한 변명을 남겼다. 고려대·소망교회·영남에 치우친 인사는 신조어 ‘고·소·영’을 낳았다. 서울시청 인맥을 중용해 에스(S)라인이란 말도 나왔다.


■ 명박산성·쥐박이

촛불집회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6월10일 아침.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5.4m 높이의 컨테이너 바리케이드가 깜짝 등장했다. 시민들의 청와대 행진을 막으려 경찰이 하룻밤 만에 쌓은 흉물에 촛불들은 유쾌한 작명으로 조롱했다. ‘명박산성’, ‘쥐박산성’, ‘용접명박’, ‘국보 0호’ …. 하루살이 성의 이름은 차고 넘쳤다. 대통령의 친미·굴종적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 체결 행태에 분노한 시민들은 대통령을 ‘쥐박이’, ‘2MB’라 일컫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 영일대군·만사형통

6선 의원, 전직 국회부의장인 대통령의 형. 이명박 대통령 집안의 기둥이던 ‘형님’을 둘러싼 소용돌이는 1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4월 총선 국면 당시 이상득 의원은 이재오·정두언 의원 등의 ‘불출마 쿠데타’를 가볍게 제압했다. 청와대 등 권력 핵심이 그의 수하들로 채워졌다는 풍문이 돌았다. 11월엔 당내 의원에 대한 성향분석 문건을 읽는 장면이 렌즈에 잡혔다. 정치권은 ‘영일대군’(포항 지역구인 대통령의 형), ‘만사형통’(만사가 형을 통해야 한다는 뜻)이란 말로 그의 막후 권력을 풍자했다.


■ 월박·복박·주이야박

권력은 미래를 지향한다.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엘(L)자형’ 지지율은 한나라당내 권력 지형에 영향을 끼쳤다. 친이는 흔들렸다. ‘미래 권력’ 박근혜 계보는 세가 불었다. ‘월박’(친박으로 넘어온 의원), ‘복박’(애초 친박에서 친이로 갔다 친박으로 돌아온 의원), ‘주이야박’(낮엔 친이, 밤엔 친박)이란 말이 권력을 향한 부나방들의 염량세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친이와 친박은 말의 진원지와 유포자를 두고도 서로 탓하며 정치적 유불리를 셈했다.


■ 리만(李-萬) 브러더스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세계 경제위기의 시작을 알렸고, 한국판 ‘리만 브러더스’의 탄생은 ‘제2의 아이엠에프’라는 비아냥을 낳았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정책 실정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 여권에서도 사임 압력이 높았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강 장관에 대한 신임을 거두지 않았고, 이에 시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李)와 강만수 장관의 ‘만’(萬)자를 딴, 새로운 형제를 탄생시켰다. 한국판 ‘리만 브러더스’는 태평양 건너 미국 <뉴욕 타임스>에 소개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 강달프·반쥐원정대

미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미 쇠고기 수입 국정조사에선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도포 자락을 휘날렸다. 흰 머리와 긴 수염이 <반지의 제왕>의 마법사 ‘간달프’와 비슷하다 해서, 네티즌들은 강 대표를 ‘강달프’라고 부르며 환호했다. 그는 단숨에 ‘간지나는’ 대중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최근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 위기에 몰린 그를 구하기 위해 시민들이 ‘반쥐 원정대’(anti-mouse tourists)를 꾸려 ‘강달프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 노방궁·봉하대군·오리쌀

10월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 차관의 쌀 직불금 부당수령이 정국의 쟁점으로 부상하자,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뒤 지내고 있는 봉하마을을 공격하고 나섰다. ‘노무현+아방궁’의 합성어인 이른바 ‘노방궁’ 논란이다. 한나라당은 봉하마을에 수천억원의 혈세가 투입됐다고 공격했고, ‘이봉화 대 노봉하’ 대결로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얼마 뒤 청와대에는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재배·수확한 오리쌀 세 포대가 도착했다. 보낸 이는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이었고, 수취인은 ‘이명박님’이었다. 봉하마을이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봉하대군’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는 세종증권 매각 과정에서 거액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 2중대

이달 초 새해 예산안 협상 과정에 ‘복병’이 나타났다. ‘2중대’ 논쟁이었다. 새해 예산안 처리 시기를 두고 여야가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던 중이었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보조를 맞추는 자유선진당을 향해 “한나라당의 2중대”라는 논평을 내자, 선진당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협상이 파행을 겪었다. 선진당은 민주당을 향해 “김정일의 2중대” “민노당의 2중대”로 맞불을 놓는 등 감정싸움이 치열했다. 느닷없는 ‘야-야 갈등’에 되레 여당인 한나라당이 중재에 나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최혜정 성연철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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