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홈` 결심했던 K부장, 1년내내 고민만…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3억원짜리 전셋집에 사는 중견 A회사 김부장(42)은 결국 올해도 내집마련에 실패했다. 집 한 칸 마련해 보겠다며 지난 1년간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집값은 종잡을 수 없었고 대책은 수시로 바뀌었다.

불안한 시장이었다. 아파트 청약 당첨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만 막상 계약서에는 도장을 찍지 못했다. 김부장의 올 한 해 주택구입계획 일기를 들여다봤다. 새해 첫날에 그는 집을 사겠다는 결심이 대단했었다.

집 없는 설움은 올해로 끝이다. 2008년을 '유주택자 원년'으로 삼으리라.2007년에는 집값이 약세를 보였다. 2006년에 급등했으니 숨고르기를 한 것일테다.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하반기쯤에 반등하리라는 의견을 많이 냈다. 번번이 기회를 놓쳐 아직도 전셋집을 전전하고 있지만 나도 주택재산세라는 것을 내봐야겠다. 전셋값 오른다는 뉴스도 남의 일이 되겠지.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으니 경제 상황도 나아질거야.

부하 직원인 박대리가 요즘 살맛나는 모양이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지난 1월에 결혼한 박대리는 강북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대출을 많이 받아서 아파트를 샀다고 했을 때 젊은 사람이 겁도 없다고 핀잔을 줬지만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3억원짜리 아파트가 4억원을 호가한단다.

박대리가 너무 부러웠지만 꾹 참았다.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다급해진 국토해양부 장관이 노원구 일대 중개업소를 돌아봤다고 한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석 달 동안 서울 집값은 2.1% 올랐지만 노원구는 8% 올랐다. 도봉구와 강북구도 각각 3.2%와 3% 상승했다(1~11월 사이 노원구 18%,도봉구 10.9%,강북구 10.6% 상승).역시 집을 사야겠어.

신규 아파트 공급이 줄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로 건설업체들이 신규 사업을 벌이지 않는 데다 분양 성적도 신통치 않기 때문이라는 해설이 뒤따랐다.

국토해양부 자료를 보니 답답하다. 인허가 기준으로 오는 10월까지 주택건설은 수도권 11만1051가구와 지방 10만6580가구 등 모두 21만7631가구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56% 수준.정부는 올해 수도권 30만가구,지방 20만1000가구를 목표로 했다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1998년 이후 최저치라고 한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일반분양 물량이나 용산의 재개발 아파트에 관심이 가고 은평뉴타운,김포한강신도시,광교신도시 정도를 노려볼 만하겠다.

집을 좀 알아봐달라고 몇 번 연락을 했더니 동네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씨 아저씨와 친해져서 저녁 때 소주를 한 잔하게 됐다. 이씨 아저씨는 올해 단 한건도 중개를 성사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거래가 완전 두절됐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단다. 국토해양부의 아파트 거래신고 건수를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지난 4월 서울은 7870건의 거래가 일어났는데 6월에는 5782가구로 감소했다(거래건수는 급격히 줄어 8월에는 2441가구,11월에는 687가구로 집계됐다).

전국적으로도 4월 이후 거래량은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 전국 부동산중개업자 가운데 10분의 1만 거래를 주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을 사지 않았던 것이 요즘처럼 다행으로 느낄 때가 있었을까. '버블세븐' 집값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2006년 12월 강남에 입성할 때 무리하게 매입을 하지 않고 전세를 택한 것은 지금와서 보니 아주 잘한 일이었다.

한때 12억5000만원을 호가했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113㎡형은 10억원대를 밑돌았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단지가 몰려 있는 우리 동네는 집값 하락 소식에 야단이 났다.

최고점 대비 2억~3억원 정도 떨어진 아파트가 속출했다(국민은행 집계 결과 주택가격 변동률은 올1~11월 사이 강남 -2%,서초 -2.2%,송파 -0.9%,분당 -6.5%,용인 -5.2%다). 조금만 더 떨어지면 일 한번 저질러봐야겠다.

광교신도시는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명품신도시로 개발된다는 등의 소리를 듣고 한번 넣어 보자는 심정으로 청약을 했다. 하지만 막상 당첨이 되고나니 집값 전망이 밝지 않은 것 같아 포기했다.

아까운 청약통장만 날렸다. 계약 포기자는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계약률이 70%대에 불과했다. 청약경쟁률은 14대 1이었는데.길 건너 반포자이 아파트 계약률도 그저그런 것 같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청약률 '제로'를 기록한 아파트가 4곳 중 1곳이란다. 전국 388개 단지 가운데 98개 단지는 청약자를 구경도 못했다는 말이다. 이러니 지난 7월 미분양 주택이 16만가구를 넘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나 보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쏟아낸다. 지난 8월부터 6개 대책이 나왔다. 처음 대책이 나올 때는 집값이 반등해 내집마련이 어려워질까봐 불안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하락세를 탄 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꿈쩍도 안한다. 재건축 규제 풀어주고 양도세 줄여주고 종부세는 사실상 없애줬는데도 반응이 없다. 투기과열지구 풀어주고 일시적 2주택 기간도 늘려줬다. 그러면 뭐하나. 매물이 늘어서 가격만 더 떨어지지.

신문을 보니 글로벌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침체 영향으로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더 하락할 것이라고 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펀드가 반토막만 나지 않았어도 지금 당장 사는 건데.




 
 
 
집주인이 아쉬운 소리를 하고 갔다. 주변 시세에 맞춰 전세금을 내려주지 못하겠다는 얘기였다. 송파구에서 역전세난이 심각하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우리 집 일이 될 줄은 몰랐다. 3억원이던 전셋값은 2억3000만원까지 떨어졌다.

내가 집주인이었더라도 7000만원을 갑자기 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집주인은 중견건설업체 임원인데 회사가 어렵다고 했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7000만원이면 한 달 이자만 해도 얼마인가.

집주인은 금융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내년에는 반드시 집을 살 작정이었던 나는 조건을 달았다. 내년 상반기든 하반기든 언제든지 내맘대로 나가겠다고.두 달 전에 통보해 줄테니 그런 줄 알라고.상반기에 집값이 조금 더 떨어지면 내년에는 반드시 집을 사고 말리라.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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