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특별기획](1)이소선의 ‘80년, 내가 살아온 이야기’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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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39년을 싸웠는데, 요즘 현실보면 억장이 무너져”
ㆍ이소선-오도엽 대담

참 모질게도 걸어왔다.




이소선씨(오른쪽)와 오도엽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봉제골목을 함께 걸어오고 있다. |정지윤기자
먼저 간 아들을 가슴에 묻고, 그 아들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현장에 뛰어든 지 39년. 사람들은 그녀를 ‘노동자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 그녀의 삶은 질풍의 시대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삶에 다름 아니다. 한국 노동운동사와 한국 현대사의 고갱이다.

신산(辛酸)한 그녀의 팔십 평생을 꼼꼼히 살려낸 이가 있다.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시인 오도엽씨. 지난 2년 동안 이씨와 함께 먹고 자고, 울고 웃으며 이씨가 들려준 이야기를 녹취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나온 책이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후마니타스)이다. 사실 책은 이씨가 가슴 밑바닥부터 토해낸 이야기의 2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오씨는 5일부터 매주 3차례씩(월·목·금) 못다한 이야기들을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진눈깨비가 흩날렸던 지난달 29일 종로구 창신동 봉제골목 한쪽에 자리잡은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작은 방에서 두 사람이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워냈다.


이소선 “사람이 똑같이 살 때까지, 죽으면 안돼 싸워야해”

오도엽 “어머니 삶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힘을 느낍니다”


오도엽=몸도 안 좋으신데 요즘도 유가협(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어머니들과 싸우러 가시죠.

이소선=무슨 일 있다고 하면 모여서 같이 가야지. 어제도 두 군데나 갔다 왔지. 추도식이 많아. 자식들 죽은 날짜 잊지 않으려고. 지금도 유가협 어머니, 아버지 보면 속이 아파. 내가 노동조합 18년, 유가협 20년을 했어. 주야장천 싸움하면서 얻어 맞고 잡혀가고…. 우리 아들이 죽었는데 우리야 죽으면 뭐 어떠냐면서 싸우지. 사실 시위 도중 경찰에게 많이 맞아서 지금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 오늘 같이 흐린 날은 온 몸이 쑤셔. 그래도 애쓰는 사람들 입장을 봐서 안 갈 수가 없지. 하나 하나 싸우면 안돼. 같이 싸워야지.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오도엽=지금까지 그렇게 해오신 데는 무슨 이유가 있으신 것 같아요. 사람들을 그리워하시고.

이소선=유가협 어머니들이 미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속에 열이 치밀어 돌아가시는 분이 많아. 그래서 ‘나도 아들 죽고 살고 있지 않으냐’고 얘기하고 두세 달 같이 살기도 해요. 서로 위로해주면서 울면 달래고 아프면 약 사주고 안 먹으면 죽 끓여주면서 같이 살지. 그러다 보니 밤에 잠을 못 자. 옛날 생각하다 보면 목숨이 길기도 하고 질기기도 해. 같이 싸운 분들 생각해보면 너무 고맙고 태일이 친구들 보면 얼마나 착한지 그 사람들이 태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나요. 태일이가 얼마나 하다하다 못하니까 죽었겠어. 그때 아무 얘기 말고 자기 말만 들어달라고 하더라고. 자기가 죽은 뒤 어떤 유혹이 올지라도 엄마는 과감히 반대할 수 있다고, 나한테 해당하지 않는 돈이나 물질은 돌 같이 보라고. 말한 거 지켜주겠다고 했어. 현장 나와서 어떻게든 싸워야 된다고 생각했어. 그때 태일이 친구들과 학생들이 같이 해줬지요.

오도엽=어머니는 세상 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항상 텔레비전을 켜놓고.

이소선=내가 두 달 동안 팔순 잔치 안한다고 했어요. 경제도 이렇고 서민도 죽어가고 비정규직도 많이 생기는데…. 사람들 죽는 거는 극단적이고 순간적이야. 올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잠이 안 와. 1970·80·90년대 이 산을 넘으면 소외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올 거라고, 얻어맞고 발로 차이고 감옥 가면서도 헤매고 다녔는데 이제 보니 억장이 무너집디다. 경제는 점점 더 나빠지고 투쟁하는 것도 없어지면서 여러 가지가 작년부터 실망스러웠어. 사람들이 곧 죽게 생겼는데 대운하를 한다 무엇을 한다는데 그 돈 가지고 중소기업을 살리고, 비정규직을 줄일 생각은 안해요. 경제가 악화되면 생기는 건 비정규직이야. 이제는 싸우면 될 거다라는 말도 못나오는 세상이 됐으니까 이제까지 살지 않았으면 그런 거 안 보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 없는 사람들이 또 짐승처럼 되어가는 현실이 올까봐 자다가도 놀라.

오도엽=어머니는 항상 ‘내가 이런 음식을 먹고 이런 옷을 입어도 되나’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전태일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는지…. 가족까지 그런 굴레에 묶여 있는 것 같고요. 자식들이 무슨 행동을 하면 어머니에게 전화가 오니까요. 어머니도 자식들에게 항상 행동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세요.

이소선=알아서들 하겠지. 도둑질만 안하고 살면.

오도엽=무슨 일이 있으면 몸이 아픈데도 가시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기도 합니다. 이제는 좀더 젊은 분들이 해야할 부분인데 아직까지 어머니 같은 분이 하고 계시니.

이소선=축소되고 ‘찌끄러기’ 되어가는 게 안타깝지. 옛날 거리로 나간 학생들이 잡혀가면 <전태일 평전>을 보고 운동하게 됐다고 했어요. 국가보안법이 없어지고 감옥 가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더 이상 죽으면 안돼.

오도엽=2년 전 어머니께 인사하러 갔을 때 ‘내가 1, 2년 더 살겠어’ 하셨을 때 전율이 들었습니다. ‘노동자의 어머니’로 항상 쩌렁쩌렁 힘있는 모습이었는데…. 어머니의 기억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노동운동가나 어머니를 잘 알고 있는 분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전태일의 어머니’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똑같은 고민을 가진 분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거든요. 그때부터 어머니와 밤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몰래 녹음을 했어요.

이소선=어휴, 녹음을 한다고 말이나 했나. 혼자 감추고 했는데. 녹음한다고 했으면 좀더 잘했을 걸.

오도엽=어머니는 오히려 한밤중에 기억력이 좋아지고 이야기하는 힘이 생기시는 것 같아요. 한번 말씀을 하시면 4~5시간을 하시고. 제가 피곤해서 눈을 감을 때마다 ‘니 자냐’며 뭐라 하시고.

이소선=70년대 미싱하던 열네살, 열다섯살 아이들이 밤이면 우리 집에 왔어. 월급을 제대로 못받았지. 나도 태일이 죽고 직접 가보고 나서야 형편을 알았어. 기가 차서…. 얘기를 듣다 보면 너무 한 거야. 태일이가 나한테 좀 가르쳐 준 게 있거든. 잘못 없는데 해고하면 부당노동행위다, 너희가 모여 투쟁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청계노조를 7평 사무실에 만들었지. 그때만 해도 사람 취급을 안했어. 그래서 모여 가지고 농성해 보자고 얘기했지. 몇 년을 잠 안자고 이야기했으니까 이게 습관이 되어서 지금도 밤이면 정신이 나고 낮이면 빌빌해.

오도엽=책 쓰면서 어머니하고 다투기도 했지요. 어머니는 당신이 부각되는 걸 말리셨습니다. 유가협이나 청계노조를 나 혼자 했느냐면서요. 또 사람 관계라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데 그런 건 쓰지 말라고.

이소선=그분들 없었으면 내가 무엇을 했겠어. 그래서 지겹도록 고맙다고 했지요. 모든 사람이 집에 발만 디디는 것도 고맙지. 이야기를 같이 한 것도 고맙고. 길에서 만나면 얼마나 고마운지.

오도엽=책에는 구술한 내용의 20분의 1밖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 연재에선 책에서 밝히지 못했던 얘기들이나 어머니의 소중한 얘기들을 담을 겁니다. 어머니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굵직한 사건마다 하신 역할이 있으시니까 좀 알려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이나 근현대사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제가 옆에서 보면 사람들이 어머니를 뵈러 오면 무릎을 꿇고 앞에서 말을 잘 못하고 거리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저녁 먹었는지 챙겨주시고 방에 불 넣고 자는지 챙기고 잔정이 많더라고요. 사람을 그리워하시고 사람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시고.

이소선=사람보다 귀중한 게 또 어디 있겠어.

오도엽=지금 시대가 어렵고, 사회가 후퇴한 거 같다고 하는데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새로운 희망과 힘을 느꼈어요. 어머니 삶이 희망을 주고 응원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머니 삶은 과거로 묻혀진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마음가짐과 힘이 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세상이 힘들다가 아니라 세상을 적극적으로 바꿔갈 수 있는 힘이 됐으면 합니다.

이소선=죽는 힘을 다해 싸워야지 죽으면 안돼. 싸우는 것도 다 같이 싸워야지. 내가 노동자도 학생도 같이 싸워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거든. 처음 노조 만들 때 내가 힘이 있었나. 태일이 친구들이 해줬지요. 정보부인지 형사들이 와서 돈 줄 테니 태일이 장례식 하자고 하니까 막 (속이) 끓더라고. 그 아까운 아들, 사랑하는 아들 뼈하고 피를 팔아서 살지 않았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안 받았지. 말 안듣고 버티니까 계속 탄압하고. 태일이 풀빵 사 먹여 줬던 시다들, 태일이가 사랑했던 그 얘들이 태일이 죽었다고 하니까 ‘그 오빠가 죽었다고요’ 하면서 울더라고. 지금 힘없는 사람을 이리저리 발로 차버리고 권력이나 돈 있는 사람 걸어가는 세상 만들자는데 얼마나 야비하고 치사하고 분통터지는지. 사람이 똑같이 같이 살자. 이거 100%는 못하겠지만 양심은 조금 가지고 살아야하지 않겠어.


▶오도엽 서울의 한 대학을 다니다 1989년부터 창원으로 내려가 공장에 다녔다. 오랜 수배와 감옥생활을 겪었다. 97년 ‘굵어야 할 것이 있다’로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고 99년 시집 <그리고 여섯 해 지나 만나다>를 냈다. 최근까지 농민과 노동자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에 몰두해왔다.


▶이소선‘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자의 어머니’. 1970년 11월13일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며 분신한 아들의 뜻을 이어 청계피복노조를 만드는 등 평생 노동·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그 탓에 180차례 ‘범법자’가 됐고 3번 감옥에 갔다. 86년 창립된 유가협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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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9-01-0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소선 여사의 구술을 오도엽씨가 풀어낸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후마니타스) 올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책입니다.
 

[Art] 2009 문화지도, 올해의 키워드 [중앙일보]


 



 
  일러스트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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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갈망일까. 영웅이 살아온다. 현실이 팍팍해서일까. 극단의 감성이 충무로를 달군다. 출판계는 해리포터의 뒤를 이을 대작을 찾아 헤매고, 학계는 100년 전 한국의 정체성을 찾아 기억의 귀환을 준비한다. 2009년 문화계 나침반을 돌려라.

■영웅의 재조명
난세 … 영웅이 그립구나
안중근 뮤지컬·오페라, 고려‘천추태후’드라마


고난을 뚫고 난세를 이겨갈 리더십을 소망함인가. 2009년 문화계엔 ‘영웅’이란 테마가 지배적이다. 독립운동가 안중근(1879~1910)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의사의 행각과 리더십을 재조명하는 문화 콘텐트가 차례로 선보인다. 안방극장엔 여걸을 주인공으로 한 대형 사극이 속속 예정돼 있다. 문화란 대중의 욕구가 투사되는 장이다. 지금 대중이 갈구하는 것은 역경을 딛고 강해지는 리더십이다. 그러니, 문화예술계여 답하라,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를.

▶ 평화사상가 안중근의 부활

2009년 문화계는 고난의 근세사에서 한 영웅을 호출했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일제의 심장부에 총부리를 겨눈 의사 안중근. 100년 만에 문화콘텐트로 부활한 그는 투사이기에 앞서 평화사상가이고, 지사이기 이전에 고뇌하는 한 인간이다. 올 한 해 ‘단련된 영웅’의 면모가 뮤지컬·오페라·소설 등으로 차례로 변주된다.

뮤지컬 ‘영웅’이 조명하는 안중근은 성당에서의 번뇌 장면으로 요약된다. 가톨릭 신자이자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던 안중근에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은 고뇌에 찬 선택이었다. 제작·연출을 맡은 윤호진 대표(㈜에이콤)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동양평화론’을 저술했던 그는 인간적 고뇌를 평화사상의 대의로 극복한 인물”이라며 “민족주의를 넘어서 아시아의 공동 번영을 꿈꾸었던 그가 분열과 갈등에 처한 우리 사회에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제작하는 오페라 ‘대한국인 안중근’ 역시 평화주의자 안중근에 초점을 맞춘다. 지광윤 예술총감독(46·서울 로망스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은 지난해 12월 제작발표회에서 “민족주의나 항일보다는 안 의사의 평화정신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거 100주년을 맞아 학계와 기념사업회가 준비하는 학술행사와 논문집도 평화사상가 조명에 맞춰져 있다.



▶ 스케일은 남성, 리더십은 여성

미국 흑인 대통령은 피부색의 장벽을 깨뜨렸지만, 2009년 한국 문화계에선 성(性)의 장벽을 깬 여성 리더들이 화두다. 드라마 ‘명성황후’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선 굵은 왕녀들은 ‘구중궁궐 내 모략과 암투’란 통속화된 이미지를 깬다. 호쾌한 여걸들은 남성적 권위를 넘어서 양성이 조화된 카리스마를 꿈꾼다.

21세기적 여성 리더십의 모체를 찾기 위해 역사는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천추태후’(KBS)는 고려 초기, ‘왕녀 자명고’(SBS)와 ‘선덕여왕’(MBC)은 삼국시대가 배경이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기에, 남성의 타자(他者)가 기록될 자리가 드물었던 탓이다. 게다가 ‘섭정을 통해 폭정을 일삼은 요부’(천추태후) 등으로 폄훼되기까지 했다. 2009년판 해석은 다르다. 오히려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거란과 맞선 ‘국내 최초 여장군’으로 치켜세운다. “남성 위주의 틀을 깨고 뻗어나가려는 요즘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천추태후’ 신창석 PD) 캐릭터인 셈이다. 이들은 남성의 보조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승부하고 국가의 명운을 고민하는 리더들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대중의 상처를 보듬어야 할 불황기에 여성 리더들이 대중문화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만 패권 지향적인 남성화된 리더십보다 ‘대장금’(MBC)의 한상궁이나 ‘주몽’(MBC)의 소서노처럼 모성에 바탕한 리더십을 어떻게 잘 구현할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포스트 해리포터

 
 
“대작을 찾아” 사활 건 출판계


2009년 문학·출판계에 던져진 가장 굵직한 화두는 ‘포스트 해리포터를 찾아라’다. 국내외 출판업자들은 해리포터의 뒤를 이을 대작을 찾아 헤매고 있다.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사진)’ 시리즈는 전 세계 4억 부, 국내에서만 1300만 부 이상 팔리며 성공신화를 썼다.

지난해 황석영의 성장소설『개밥바라기별』, 김려령의 『완득이』 등이 성공하면서 국내 출판계는 ‘포스트 해리포터’에 대한 열망을 더 키웠다. 우선 김종광·김도언·김숨·손홍규·김도연 등 기성작가들이 성장소설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문학과지성사 청소년문학 시리즈 ‘문지 푸른 문학’을 통해서다. 현기영의 자전적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도 실천문학사에서 청소년 버전으로 재출간된다. 사계절·비룡소·주니어시공사·푸른책들 등 아동물에 집중하던 기존 출판사는 물론 창비·문학동네 등 주요 문학 출판사들도 아동·청소년물의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특히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하는 ‘2009년 볼로냐 아동도서전’(3월 23~26일)은 아동·청소년물 출판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이 아동도서전에서 한국은 국내 작가와 작품을 널리 알릴 기회가 될 것이라서다.

이경희 기자




■기억의 귀환
‘과거를 되살린’ 박물관 100년



 
 
문명은 미래를 향한 사투이면서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주술이다.

100년 전 우리의 ‘마지막 황제’는 조선 왕조와 그 이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의 문을 열었다. 1909년 11월 1일 창경궁의 양화당(사진)·명정전 등에 만든 ‘제실(帝室)박물관’이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근대적 박물관의 효시다.

일본과 서구의 문물에 경탄한 개화파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박물관’의 건립을 상소했다. 황실은 삼국·통일신라 시대 불교 예술품, 고려자기, 조선시대 도자기와 회화 작품 등을 전국에서 수집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박물관을 통해 기억의 문을 열자마자 이듬해 미래의 문을 닫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올해는 우리의 근대 박물관이 100주년을 맞는 해다. 근대 문명의 의지를 갖고 불러낸 역사의 기억이 ‘박물관’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역사를 통한 근대의 기획이 한 세기를 맞는 해, ‘기억의 귀환’을 학술·문화재 분야의 2009년 키워드로 뽑았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근대 박물관 100주년을 기해 5월과 11월에 국제학술대회와 포럼을 열고 곳곳에서 박물관 축제를 연다.

한편 인간과 문명은 현재의 모습 그 자체가 인류사 진화의 박물관이다.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기도 하다.

배노필 기자




■극단의 감성
‘더 센 이야기’ 경연장 충무로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쉬리’는 한국영화 흥행사를 다시 썼다. 남북대치의 냉엄한 현실을 대담하게도 액션·멜로로 소화해 ‘타이타닉’을 앞지르는 관객을 불러모았다. 불황기일수록 ‘안전빵’의 뻔한 기획으로는 관객의 지갑을 열지 못한다. 창작자의 지향과 개성이 뚜렷한 이른바 ‘센 이야기’가 대두되는 때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 3부작’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센 이야기로 돌아온다. 송강호 주연의 신작 ‘박쥐(사진)’는 존경받는 신부가 흡혈귀가 되고, 친구의 아내와 불륜에 빠지는 파격적 내용이다. 올 충무로 기대작에 첫손 꼽힌 봉준호 감독의 ‘마더’ 는 범상한 모성애 드라마가 아니다. 철부지 아들을 살인죄에서 구하기 위해 이 어머니, “세상과 맞장을 뜬다”는 게 제작진의 전언이다.

이럴 때일수록 눈물은 진해야 한다. 원태연 시인의 감독 데뷔작은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라는 제목부터 절절한 멜러 감성을 내세운다. ‘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은 신작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루게릭 병으로 온몸이 마비되어가는 남자의 사랑을 그린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이현세 만화’공포의 외인구단’은 드라마 ‘2009외인구단’으로 돌아온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열등 선수들의 인생역전 드라마야말로 이 혹독한 절망의 시기에 최적의 판타지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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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20년 前 종이자료를 꺼내며…







 



방학을 한 김에 자료 정리에 들어갔다. 재놓기만 한 종이자료를 잘 분류해서 책처럼 만드는 일과 1만여 권의 책에 나만의 분류번호를 만들어 붙이는 일이다. 종이자료는 주로 20여 년 전 유학시절 때 집에다 복사기까지 사다 놓고 저널논문과 단행본을 복사한 것이었다. 양이 제법 되어서 4cm 두께의 파일박스 400개를 사서 라벨을 붙이고 담았다.

그러다 문득 이 자료들 가운데 죽기 전에 한 번도 안 읽어볼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내 전공은 건축역사이지만 소속이 공대라서 더 그랬다. 옆 교수들을 보면 최신 컴퓨터 몇 대 가지고 훌륭한 연구들을 척척 해내고 중학교 다니는 딸내미는 인터넷 검색만으로 거의 모든 과제를 다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50평짜리 시골 아파트를 전세 내서 서재로 쓰면서 5톤 트럭 3대분의 책을 짊어지고 2~3년마다 쫓겨나듯 이사를 다니는 수고를 하며 살고 있다. 종이자료 정리하는 걸 옆에서 본 누군가가 말했다. 자기라면 파일박스 400개 살 돈으로 스캐너를 사서 그 자료를 스캔받겠다고. 순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면서 시대에 너무 뒤떨어져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종이자료를 주제별로 분류하기 위해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입가에 작은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주옥같은 연구물들이라서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학문세계가 몇 단계는 성숙해지는 느낌이었다. 종이의 촉감을 지문 끝으로 비벼대는 쾌감도 제법 컸다.

온라인 자료만 잘 검색해도 웬만한 일이 꾸며지고 심지어 학자 흉내까지도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피라미드의 맨 끝 최고수가 되기 위한 진짜 고급 자료는 아직 모두 세계 유수의 도서관들 저 구석에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꽁꽁 숨어있다.

지금이야 집에 앉아서도 쉽게 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활자매체를 만들어내는 일 자체가 큰 노동이었던 수십 년 전, 심지어 100여년 전 연구물들을 훑어보노라면 활자 하나하나가 화살이 되어 내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나라와 인종을 떠나서 이렇게 힘들게 연구를 한 꼿꼿한 선배들의 결과물들을 복사기 몇 번 돌려서 쉽게 손에 넣는 호사를 누려놓고도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저런 불평만 하고 있는지 내 자신이 창피해졌다.


임석재 건축가ㆍ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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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인상도 진급도 안 바라요… 잘리지만 않았으면"
감원공포에 숨죽인 직장인 백태
시무식 바글바글 눈도장族… 생계형 절약 금연·금주族
이직준비·생존차원 열공族… 불만있어도 삭이는 묵묵族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올들어 기업들이 긴축경영으로 각종 경비와 복지혜택을 대폭 줄이자 직장인들이 이에 적응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발은커녕 감원바람에서 살아 남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도 치열하다.

2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인근 제조업체 W사 본사 강당에서 시무식이 열렸다. 지난해만 해도 참석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았지만 올해 시무식에는 전 직원 500여명이 거의 대부분 참석했다.

김모(36) 과장은 "지난해 50명 구조조정에 이어 추가 구조조정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임원들에게 눈 도장을 찍기 위해 시무식에 적극 참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시무식에서 본사를 경기도 성남으로 이전한다는 말이 나왔는데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직원들이 관리자 눈치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조조정이나 회사 폐업에 대비, 생존차원에서 외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잡지사 직원 김모(33ㆍ여)씨는 "계속된 적자로 회사가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면서 "이직에 대비해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IT회사에 다니는 한모(38)씨는 "새해 첫 출근해 동료들과 한 이야기가 구조조정에 대한 걱정이었다"면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영어학원에 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에 대한 복지혜택이 줄어들자 부서마다 군살빼기에 골몰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제조업체는 팀원 1인당 매년 12만원씩 지급되던 팀 운영비를 5만원으로 삭감했다.

박모(43) 팀장은 "지난해 여름에는 팀원 전체가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했었는데 올해는 회식비로 쓰기에도 빠듯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불필요한 회식을 최대한 줄여 월 1회 정도만 할 계획"이라고 했다.

복지혜택 감소가 점심시간을 앞당긴 곳도 있다. 광고회사 직원 이모(41)씨는 2일 점심을 먹기 위해 다른 때보다 30분 이른 오전 11시30분쯤 회사 건물 지하상가를 찾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하상가 모든 음식점에서 회사 식권을 내면 6,000원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단 한 곳에서만 식권을 이용할 수 있어 늦으면 대기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기 때문이다.

월급이 오를 기미가 없자 '생계형 금연, 금주'로 용돈을 줄이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선 직장인들도 있다. 공기업 직원 김모(35)씨는 "술과 담배를 끊어 한달 용돈을 10만원 줄이기로 했다"면서 "이 돈으로 적금을 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직원 김모(41)씨는 "담배를 사는 데 한 달 7만~8만원을 써왔다"면서 "금연하는 대신 이 돈으로 책을 사서 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36)씨는 이날 평소보다 1시간 빠른 오전 6시에 집에서 나왔다. 승용차로 압구정역 인근 사무실까지 40~50분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 회사가 올해부터 주차장 이용을 팀당 1대로 제한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올해 소망은 직장에서 살아 남는 것"이라며 "출퇴근이 힘들거나 윗사람이 못마땅해도 살아 남으려면 어쩌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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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9-01-03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소망은 직장에서 살아남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참으로 절절합니다.
 



거버넌스에 관하여


[창비주간논평] 2009년을 맞이하며


기사입력 2008-12-30 오후 5: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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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거버넌스(governance)와 거번먼트(government)는 원래 '다스림[政]'을 뜻하는 동의어다. 다만 후자가 공권력을 갖고 다스리는 '정부'라는 뜻으로 자주 쓰임에 따라 더 넓은 의미의 이런저런 다스림을 가리킬 때 '거버넌스'라는 낱말을 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국가가 아닌 기업(business corporation)이 다스려지는 방식을 corporate governance라 하며 우리말로는 '기업의 지배구조'라고 (약간 부정확하게) 번역한다. 또한,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치하지 않고 시민사회의 여러 세력과 협동하고 합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행태를 거버넌스라 칭하면서 더러 '협치(協治)'로 옮기곤 한다.

그러나 완전한 전제정치가 아닌 한에는 정부권력의 행사 자체가 여러 세력의 협동을 통해 이뤄지게 마련이다. 예컨대 입헌군주제만 해도 군주가 의회 등 헌법기관들과 '더불어 다스리는' 체제이며, 여기에 정당정치가 가세하면 민·관 사이에 '정치권'이라는 독특한 국정참여집단이 형성된다. 삼권분립은 국가의 입법·행정·사법부가 일정하게 분리돼서 협동하며 통치하는 체제요, 언론을 '제4부'라 일컬을 때는 언론도 국가 거버넌스의 한몫을 담당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정경유착은 정치권과 재계가 서로 상대방의 다스림에 간여하는 나쁜 체제지만 그 또한 거버넌스의 한 형태다. 이 모든 것을 '협치'라는 새 낱말을 만들어 지칭하는 데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을지라도, 그것은 '거버넌스'의 특정 용법에 대한 해석이지 정확한 번역은 아닐 터이다.

나라 다스리기가 고장난 대한민국

2009년 새해를 맞으며 이런 낱말풀이를 해보는 것은 대한민국의 나라 다스리기(=거버넌스)에 심각한 고장이 난 징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거번먼트)의 고장 사태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의회 기능이 실종되고 독립된 사법부 권력이 위축되는 등 삼권분립이 무너져가는 가운데, 정부권한을 온통 틀어쥔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스스로 내건 목표를 달성할 능력이 태무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더하여 언론이 자신의 탐욕 때문이건 정부의 탄압 때문이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시민사회의 운동들도 국정의 방향설정에 참여할 능력을 결한 상황이라면, 나라의 거버넌스가 총체적인 위기에 들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정부의 난조는 다분히 예견 가능한 것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후보의 도덕성 문제는 '경제 살리기' 구호 속에 묻혀버렸지만, 지도자의 도덕성을 개인윤리 차원에서보다 그의 통치능력과 연관시켜 판단할 것을 촉구하는 발언이 당시에도 없지 않았다. "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너무 거침없이 한다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짓이요, 시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부패를 척결하며 서민생활을 안정시킬 능력을 원천적으로 내팽개치는 길입니다."(각계인사 33인 시국성명, 2007.12.17)

신뢰의 결여가 통치능력의 결함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경제위기 국면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신뢰만 해주면 문제를 풀어갈 다른 능력은 있는 걸까? 함부로 단정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 세간의 불신이 '능력'에 대한 불신을 포함하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CEO 대통령'의 신화는 어느새 무너졌고, 정주영 회장 휘하에서 진짜 CEO(최고경영자)가 배출될 여지가 없었으리라는 깨달음이 뒤늦게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정주영식 거버넌스가 통하는 시대도 아니지 않는가.

이명박정부의 신뢰성은 2008년 촛불시위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심하게 손상되었다. 끝없이 꼬리를 문 촛불행렬을 청와대 뒷산에서 내려다보며 즐겨 부르던〈아침이슬〉을 들었다던 눈물겨운(?) 발언 이후에 곧 대대적인 촛불탄압이 자행되었다. 그러다가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에서 정부의 권위는 거의 완전한 파탄에 빠졌다. 정치지도자가 국민 앞에서의 말바꾸기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바람에 설혹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실효를 보기 어렵게 되었거니와,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빙자해서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완화와 부자들의 특권강화에 몰두하는 행태는 도덕성의 문제를 넘어 초보적인 통치능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의 입법현안을 국회의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달성할 것을 공언하며 '전쟁'을 선포하고 '속도전'을 다짐한 상태다. 비록 국회의장의 입장표명 이후 원내대표들의 회담이 열림으로써 한 박자 늦춰지기는 했으나 다수 국민의 반대와 야당의 저항을 물리력으로 진압하고 방송법 개악 등 세칭 'MB악법'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그럴 경우 대통령과 여당은 승리를 해도 이른바 '피루스의 승리'(Pyrrhic victory), 즉 전투에는 이겼으나 너무나 많은 사상자를 낸 끝에 결국 멸망하고 만 고대 그리스 피루스왕의 전례를 고스란히 재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명박정부가 스스로 운명을 재촉할 때 나라는 어찌되는가? 경제위기의 한복판에 헌정위기마저 겹친다면 민생이 완전히 망가질 것은 물론, 극도로 심란해진 국민이 또 한번 불행한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막연히 4년 뒤에 보자고 벼르는 것은 4년을 어찌 견딜 거냐고 한숨짓고 앉아 있는 것만큼이나 한가한 짓거리다.

그러니 어찌할 건가?

유일한 해답은 남은 4년 동안 대통령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대통령에게 남겨주면서 나머지는 내각과 입법부, 사법부, 언론, 시민사회 등의 몫으로 배분하는 정교한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나라의 거버넌스 체계를 다시 짜는 일이다.

이것이 말처럼 쉬울 수는 없다. 대통령의 '대오각성'으로 될 일이라면 애초에 사태가 이 지경에 오지도 않았을 테지만, 실은 이명박 대통령 아닌 그 어느 대통령이라 해도 자기가 획득한 권력을 그런 식으로 선선히 나눠줄 사람은 없다.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정부 내에서 책임있게 행사할 권력을 상당부분 자진해서 방기한 전례를 남기기는 했으나 정부와 비정부 분야의 진정한 파트너십을 설계할 의지도 경륜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른 한편 민주정부 아래서는 시민사회도 거버넌스 혁신을 위해 총력전을 펼칠 동기가 약하다. 죽기살기로 달려들어도 될까 말까 한 일이건만 정부가 알아서 해주기를 촉구하거나 안해줄 때 질책하는 역할에 안주하기 일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시대야말로 획기적인 시민참여 확대를 위한 절호의 기회다. 지금은 나라 다스리기의 새로운 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국가 전체가 일대 혼란에 빠지고 민주화 20년의 성취, 아니 대한민국 60년의 성취마저 물거품이 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 거버넌스의 일부를 담당할 만한 책임성과 전문성을 함양하면서, 정당·사회단체·노동조합·종교계 들이 연대하여 입법부의 활성화, 사법부의 독립, 언론의 건전성 등을 확보할 범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는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이는 일이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발상과 열성으로 연대를 추구해야 된다는 성찰이 여기저기서 이미 시작된 것 또한 사실이다.

시민참여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거버넌스'의 개편까지 안 가고 '거번먼트' 차원에서 국정위기에 대처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거국내각이다. 그러나 이따금 거론되는 박근혜 전 대표나 그 어떤 인물이 총리가 되더라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일종의 범국민적 협약이 없는 상태라면 실제로 얼마나 힘을 쓸 것이며 도대체 그 자리를 맡으려고나 할 것인가? 이처럼 거국내각도 거당내각도 안되다 보면 한국의 이른바 보수세력에도 분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자신들의 단기적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한 세력으로서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무리들과, 대한민국의 정당한 성취를 간직하고 지키려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 갈라설 때가 온다는 것이다. 당장에는 후자가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들이 가세함으로써 대한민국 거버넌스의 쇄신은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어차피 선택은 파국 아니면 새로운 거버넌스다. 내년 봄에 대규모 군중시위가 벌어지는 일은 그 누구도 막기는 어려울 듯하며, 정권이 하기에 따라 겨울이 채 가기 전에 그런 사태가 도래할 수도 있다. 그 주력부대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노래하는 촛불군중일지 아니면 횃불 들기도 마다 않는 배고프고 성난 군중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아마도 양자의 결합으로 시작되기 십상인데, 정부로서는 후자의 '불법 폭력시위'를 오히려 선호할 가능성도 크지만 그것이 정부에 꼭 유리한 씨나리오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졸고 〈'선진화 원년'과 '잃어버린 10년'〉, 《월간중앙》 2009년 1월호 참조). 어느 경우든 2008년 초여름의 별처럼 아름다운 축제마당이 그대로 재연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관건은 '촛불소녀'로 상징되는 발랄함과 유쾌함이 한층 절박해진 군중과의 결합을 통해 또 한번 새로운 시위문화를 창출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대중의 토론과 합의를 이어받아 언론과 여러 전문집단, 권익집단을 포함한 시민사회가 정당들과 함께 건설적으로 국정에 기여하는 ― 단순한 시위참여가 아니라 국가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 길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자면 길을 닦는 작업이 상당정도 미리 진척되어 있어야 하며, 그랬을 때 한국사회에서 국민주권과 민중자치, 그리고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이 2009년의 새로운 촛불과 함께 큼직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물론 2009년이 종착점은 아니다. 도중의 가장 눈부신 이정표가 못 되어도 좋다. 그러나 전진이 계속됨을 실감할 때 어떤 경제위기도, 정치혼란도 견뎌낼 만해지고 이겨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백낙청 문학평론가 <창작과 비평> 편집인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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