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가다]<5>獨 베텔스만 

 
TV 신문 잡지 책… 가능한 모든 미디어로 콘텐츠 전달

인쇄소로 출발… 방송 출판 통신 인터넷으로 영역 확장

계열사 100곳 직원 10만명 ‘세계4대 미디어그룹’ 성장

휴대전화-e북 등 뉴미디어 결합… 디지털시대 선제대응

《베텔스만=출판사? 아니다. 베텔스만은 우선 방송이고 잡지 회사다. 또 인터넷 비즈니스 회사다. 물론 베텔스만은 출판사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일반서적 출판그룹이 베텔스만에 속해 있다. 베텔스만은 CD DVD를 찍어내는 회사이기도 하고 거대한 인쇄시설을 갖추고 기업체에 각종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지난달 15일 프랑스 파리에서 베텔스만 본부가 있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귀테르스로로 가는 동안 수많은 이명(異名)을 가진 베텔스만을 마주쳤다.》

파리 북역에서 국제선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서점에서 유명인 잡지 ‘갈라’를 집어들었다. 영미권의 ‘피플’과 비슷한 ‘갈라’는 베텔스만의 잡지부문 그루너+야르 그룹에서 나온다. 

독일 쾰른까지 가는 열차에 올라타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와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을 펼쳐들었다.

두 신문 방송프로그램면 맨 윗단에 놓인 시청률이 가장 높은 6개 방송 중에 각각 M6와 RTL이 들어있다. M6와 RTL은 베텔스만의 방송부문 RTL 그룹에 속한다.

쾰른에서 독일 국내선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다시 서점에 들렀다. 시사주간지 슈테른이 슈피겔과 나란히 놓여 있다. 화려한 사진물 위주로 기사를 싣는 잡지 GEO도 눈에 띄었다. 슈테른, GEO는 그루너+야르 그룹에서 나오는 잡지다.

열차로 귀테르스로에 도착해 호텔로 가면서 시내를 둘러봤다. 베텔스만의 다이렉트 그룹에 속한 북클럽 ‘데어 클럽(Der Club)’을 볼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인 추리작가 존 그리셤의 ‘피자를 위해 뛰다(Playing for Pizza)가 ‘터치다운’이란 제목으로 독일어로 번역 출간돼 꽂혀 있었다. 베텔스만의 출판부문 랜덤하우스 그룹에서 나온 책이다.

베텔스만 본부를 방문했다. 그루너+야르 그룹 본부는 함부르크, 랜덤하우스 그룹 본부는 뉴욕, RTL 그룹 본부는 룩셈부르크에 있다. 귀테르스로에는 다이렉트 그룹과 미디어 서비스 제공회사인 아르바토 그룹의 본부가 있고 이들 5개 그룹을 총괄하는 총본부가 있다.

직원의 안내로 아르바토 그룹의 몬 인쇄소(Mohn Druck)를 둘러봤다.

유럽 최대의 옵셋 인쇄기를 갖춘 이곳은 1835년 조그만 인쇄소에서 직원 14명으로 출발해 오늘날 100여 개 기업에 직원 10만여 명을 거느린 세계 4대 미디어 그룹 중 하나인 베텔스만의 원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독일 경건파 운동의 중심지 귀테르스로에서 기독교 성가를 주로 출판하던 베텔스만은 인기를 얻어가던 소설로 분야를 넓힌 후 독자들을 대상으로 북클럽을 조직하며 몸집을 키워나갔다.

인터넷에서 가격을 비교 검색해 책을 사는 시대에 회원에게만 책을 파는 북클럽 모델이 오늘날에도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베텔스만의 기업사가(史家) 우베 타크 씨는 “1950년 처음 등장한 북클럽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며 “당시만 해도 주로 부르주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책의 세계에 노동자 계급을 회원으로 끌어들여 신분 상승의 느낌을 갖게 해줬고 그것이 성공비결이었다”고 말했다.

베텔스만이 북클럽에서 발전해 현대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하르트 몬 씨가 경영권을 이어받으면서부터다. 현재 88세인 라인하르트 몬 베텔스만 지주회사(BVG) 이사회 명예의장을 직원식당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는 지금도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몬 의장은 경영을 맡으면서 ‘내적 다원주의’를 추구했다. 그는 1972년 발표한 논문 ‘대형 출판사와 사회적 책임’에서 “베텔스만과 같은 거대 미디어 그룹은 그 어떤 정치적 추세에도 얽매여서는 안 되며 모든 사회적 흐름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잡지로 사업 영역을 넓혀 1969년 그루너+야르의 지분 25%를 인수한 뒤 점차 지분을 늘려 독일 미디어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1984년 독일에서 민영방송의 시대가 처음 열렸을 때 최초의 독일어 민영방송 RTL 플러스의 지분을 획득했다. 오늘날 RTL 그룹은 유럽 최대의 방송사로 베텔스만 그룹 전체의 이익 중 50% 이상을 차지하는 알짜 그룹이 됐다.

2000년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발행하는 영국의 피어슨 그룹과 합작으로 ‘파이낸셜타임스 도이칠란트’라는 신문을 발행했다.

베텔스만은 1998년 토니 모리슨, 마이클 크라이턴 등의 작가가 소속한 미국 랜덤하우스 출판사를 인수해 출판계의 글로벌 주자로 올라선 이후 2003년에는 존 그리셤, 스티븐 킹 등의 작가가 몸담고 있는 독일 뮌헨의 하이네 출판사를 인수해 덩치를 키웠다.

특히 랜덤하우스 인수 프로젝트는 당시 코드명 ‘프로젝트 블랙’으로 불렸으며 이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면서 베텔스만은 독일어권과 영어권을 넘어서 세계 최대의 일반서적 출판사로 거듭나게 된다.

당시 베텔스만은 ‘30년을 투자해 세계 1위 기업이 될 수도 있고, 세계 1위 기업을 인수해 30년을 단축할 수도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심영섭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베텔스만은 단기간에 돈을 벌기 위한 금융투자보다는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상태에서 관련 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고집한다”고 말했다. 

귀테르스로=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밑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脫중심화’로 전문성 키워”▼

리에페 총본부 부사장
 
“소비자는 이제 TV만, 혹은 신문만, 혹은 잡지만, 혹은 책만 갖고 있지 않다. 오늘날 베텔스만의 목적은 고객들이 보기를 원하는 모든 방법으로 우리가 가진 콘텐츠를 보게 하는 것이다.”

토비아스 리에페(사진) 베텔스만 총본부 부사장을 지난달 15일 독일 귀테르스로 베텔스만 본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뉴 미디어 시대에 베텔스만이 나아갈 길은….

“RTL 그룹은 TV 라디오 영화를 만들지만 소비자가 온라인이나 휴대전화로도 프로그램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한다. 그루너+야르 그룹은 신문 잡지를 펴내면서 단지 프린터 버전뿐만 아니라 온라인 버전을 낸다. 랜덤하우스 그룹은 책뿐만 아니라 e북도 낸다. 각 부문이 디지털화의 도전에 어떻게 적응할지 스스로 모색한다.”

―각 부문은 어떻게 시너지(synergy)를 실현하는가.

“과거에 우리는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만 갖고 있었다. TV 라디오 신문 잡지 책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100가지가 넘는 수단을 갖고 있다. 우리는 콘텐츠를 가능한 한 많은 수단으로 사용자에게 전달할 방법을 궁리한다. 과거 그루너+야르는 요리를 종이로만 보여 줬지만 지금은 비디오 화면으로 실제 요리하는 방법을 보여 준다. 각 부문은 지식과 기술을 공유해 어떻게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할 것인지 궁리한다. 위에서 어떻게 하라고 시키지 않는다. 각 부문은 자기 분야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베텔스만의 ‘탈중심화’ 정신이다.”

―단순화와 다양화, 어느 것이 좋은가. 가령 독일의 악셀 슈프링거 그룹은 신문 잡지에 집중돼 있다.

“경제위기를 고려하면 다양화가 장점을 갖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짙은 안개가 낀 상황에 비교할 수 있다. 운전자는 200m 앞이 어떤지 모른다. 우향할지 좌향할지를 결정할 때 운전자는 최대한 신중을 기해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기업의 운전자는 직원이다. 라인하르트 몬 씨는 직원들에게 스스로 기업가인 것처럼 행동하라고 강조했다. 위에서 결정해서가 아니라 밑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그것을 통해 다양한 사업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베텔스만에 깊게 뿌리내린 기업가 정신이다.

―북클럽이란 사업모델이 여전히 유효한가.

“지난해 취임한 하르트무트 오스트로우키 최고경영자(CEO)는 북클럽이라는 사업모델을 검토했다. 그 결과 북클럽은 유럽에서만 집중하고 이익이 나지 않는 작은 북클럽은 팔아버리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이 매우 강하고, 중국은 북클럽에 그리 익숙하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미국의 북클럽을 팔고 중국의 클럽 비즈니스를 닫은 이유다.”

귀테르스로=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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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진 “김석기 사퇴요구는 체제전복 시도”
“반정부 세력, 춘투와 촛불의 재판으로 만들려”
참사 당일 ‘책임론’ 말 바꿔…민주당 강력 비판
 
 
한겨레 신승근 기자 송호진 기자
 








 

» 공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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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2일 용산 참사와 관련한 ‘과잉진압 책임자 사퇴론’에 대해 “반정부 세력의 체제 전복 시도”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공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반정부 세력이 이 사건을 춘투와 (연계하고) 촛불시위의 재판으로 만들어 체제 전복을 꾀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공 최고위원은 이번 참사를 “철거 현장의 과격 시위를 주도한 전국철거민연합의 도심 테러 결과”로 규정하고, “경찰은 한국 공권력의 상징이자 마지막 보루이고, 망루는 전철련이 주도하는 폭력시위에 빠지지 않는 불법 폭력시위의 상징인데, 우리는 공권력 보루와 불법 망루 사이에서 혼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경찰의 특공대 투입은 불가피했으며, 오히려 시위대에 의한 무고한 시민의 희생이 발생했을 경우 경찰에 대한 비난이 더 커졌을 것”이라며 “진상규명 전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 사퇴 요구는 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05년 참여정부 당시 시위 농민 사망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허준영 경찰청장을 경질한 것에 대해 “당시 감정적으로 (경찰) 총수에게 정치적 희생을 강요했다”며 “법치 확립을 높은 가치로 삼았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해 이후 불법 폭력이 사라지지 않고 촛불시위에서 보듯 국가 공권력이 유린당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전철련은 오산 망루 투쟁 때 이미 철거용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을 화염병으로 불태워 죽인 전력이 있다”며 “살인폭력 시위꾼”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망자의 원혼을 달래지 못할망정 이를 정략적 도구로 삼는 한나라당의 파렴치함을 드러낸 것”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김유정 대변인은 “이성이 있는 분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용산 참사와 관련된 국민들의 요구를 체제 전복 세력이라고 말한다면, 그들이 바라보는 국민은 도대체 누구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한편, 공성진 최고위원은 용산 참사 발생 직후인 지난달 20일 <한겨레>와 한 전화에서 “서민의 대명사인 철거민을 죽게 한 것은 정말 적절치 못한 무리한 대응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신승근 송호진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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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어디까지 갈 셈인가. 이명박 대통령에 묻는다. 먹고살게 해 달라고 절규하던 철거민 다섯 명이 새까맣게 불타 숨졌는데도 진솔한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 철거민 단체 탓이라며 되술래잡는다.

비극적 참사 앞에서 ‘고의 방화’ 가능성을 들먹인 국회의원이나 그 또래를 새삼 거론하고 싶진 않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조차 없는 정치 모리배가 국회의사당에 들꾄 지 오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이 더 어둔 곳에 똬리 틀고 있어서다. 바로 청와대다.

임기가 아직 4년 남은 대통령이 입만 열면 ‘법치’를 부르댈 때, 이미 한자리씩 꿰차고 앉은 출세주의자들이 무슨 일을 꾀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더 높은 감투를 쓰려는 부라퀴들의 과잉 충성도 눈에 선하다. 대통령 눈에 들면 언제든 장관에 발탁될 상황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잔혹한 ‘공권력’을 어떻게 두남두며 언구럭 부릴까도 미루어 알 수 있다.

기실 국민을 시들방귀로 여기는 대한민국 ‘공권력’의 문제점은 뿌리가 ‘친일’까지 닿아 있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을 대낮에 때려죽인 전과가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무엇이었을까? 그나마 눈치 살필 수고 없이 마구 휘둘러도 된다는 보증 아니었을까?

그래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처참한 죽음의 행렬이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프랑스 사르코지 정권처럼 세계적으로 소문난 우파마저 신자유주의를 벗어나려는 판에 금산분리 완화, 방송 사영화, 비정규직 확산 따위의 신자유주의 법안을 언죽번죽 ‘경제 살리기’로 호도하는 저들을 보라.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 영세 자영업자들과 그 가족이 피와 눈물을 쏟아야 하는가.

비단 신자유주의 악령만이 아니다. 철거민 참사로 묻히고 말았지만, 서해에서 남과 북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무장 높아가고 있다. 이미 북쪽은 “빈말이 아니다”라며 일촉즉발의 위기 사태라고 공언했다. 봄이 오면 서해의 풍부한 꽃게를 남과 북이 웃으며 함께 잡자는 합리적 논의는 실종되고, 근거도 모호한 ‘국경선’을 외마디처럼 질러대며 일방적이고 자극적 선동으로 군사 충돌을 부추길 때, 또다시 남과 북의 애먼 젊은이들이 목숨 잃을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제공황을 맞은 미국이 탈출구로 전쟁을 선택할 수 있다는 진단마저 솔솔 나오는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정권이 들어섰다고 마음을 모두 놓기엔 미국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부익부 빈익빈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강행하고 남북 대결주의로 무람없이 치닫는 이명박 정권 아래서 죽음의 행렬은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 종교 갈등마저 곰비임비 불거질 만큼 신앙에 ‘독실’하다는 이명박 장로에게 죽음의 행렬에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누가복음은 쇠귀에 경읽기일까. 성경과 정반대로 되레 국민의 생때같은 목숨을 빼앗고 있지 않은가.

찬찬히 저 긴 죽음의 행렬을 보라. 비참하게 죽은 원혼들만의 행렬이 아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직시할 때다. 줄 이은 행렬에 저들의 살붙이는 전혀 없다. 저들이 끼리끼리 볼맞아 희희낙락 즐길 때 차가운 죽음의 문은 노동자·농민·빈민, 영세 자영업자들 행렬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설 수밖에 없다. 저들이 제 동족과 대화보다 대결을 즐길 때, 죽음의 악령은 저들의 자식들과 달리 ‘국방의 의무’로 군에 온 애먼 젊은이들 꼭뒤를 벅벅이 덮쳐올 수밖에 없다.  


저 멀리 들려오는 곡성의 흐느낌 담아 이명박 정권에 다시 묻는다. 줄 선 행렬에도 눈 슴벅이며 묻는다. 어디까지 갈 셈인가.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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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문화가 희망이다](7) 인터넷 비평공간 ‘비평고원’

ㆍ“계급장 떼고 필력으로 자웅” 인문학 재야 고수들 ‘맞장방’

계급장 떼고 실력으로 논하자. 인터넷 비평카페 ‘비평고원’(http://cafe.daum.net/9876)은 인터넷 무림의 고수들이 학벌이나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필력으로만 자웅을 겨루는 공간이다.



대안적 비평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인터넷 비평카페 ‘비평고원’의 핵심 회원들이 신년회를 겸해 오랜만에 지난 21일 저녁 서울 신촌에 모였다. <김정근기자>

“온라인이기에 오히려 적나라하게 자신을 보이는 논쟁이 가능합니다. 학교에서는 체면을 따지느라 선배를 대놓고 비판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여기서는 15살 차이나는 사람들이 피 튀기는 논쟁을 벌입니다. 이력을 가린 채 오디션을 보듯, 글로써만 승부합니다.”(ID 아이온)

인터넷 비평 공간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꼽히는 비평고원은 2000년 4월 문을 연 이후 이제 10년째를 맞았다. 그간 회원수도 7500여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인문학도라면 비평고원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로, 웬만한 학회나 문예지 못지 않은 수준 높은 비평과 담론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서양 철학 서적부터 황석영·신경숙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 영화에 이르기까지 인문학 전반이 이들의 ‘안주거리’. 기존 학계나 문단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비판적이며 새로운 담론이 게시판 속에서 펄떡거린다.

“재작년 말에 보고 2년 만이네요.” 비평고원을 이끌어가는 핵심 멤버인 ‘불멸회원’ 등이 신년회를 겸해 지난 21일 한자리에 모였다. 카페장 조영일씨(ID ‘소조’), ‘로쟈’ ‘폭주기관차’ ‘로카드’ ‘ensoph’ ‘K’ ‘n-69’ 등은 “항상 글을 통해 만나다 보니 어제에도 본 것 같다”고 말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비평고원의 매력은 무엇일까. “글의 저자가 글 뒤에 바로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입니다. 글에 댓글을 달면 바로 반응이 오죠. 논쟁이 뜨겁게 붙으면 잠이 안 올 지경입니다.”(아이온)

회원들은 아무래도 대학 강사, 대학원생 등 인문학 전공자들이 많지만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들 가운데는 약사·회사원·군인 등 ‘비전공자’도 수두룩하다. ‘폭주기관차’는 전라도 광주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고, ‘K’는 식품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러나 비평고원 공간에서만은 이들은 누구보다 진지한 학자이자, 토론가다. ‘폭주기관차’는 “인문학 전공자뿐 아니라 노동자 등 누구나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해외파’ 회원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비평고원에 가입해 활동하다 귀국한 대학 연구교수 ‘아이온’은 “외국에서 국내 학계의 동향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라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10살 먹은 비평고원과 함께 고원의 회원들도 성장했다. 카페장 조씨는 제도권 문단에 대해 가차없이 쓴소리를 내뱉는 소장파 문학평론가로 자리잡았고, 인터넷 서평꾼 ‘로쟈’는 인터넷 서점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며 네티즌 사이에 가장 권위있는 서평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쌍수대인’ 복도훈씨는 문학평론가로 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회원들이 각자의 영역을 찾아 나가면서 종전보다 활발한 논쟁이 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회원들은 비평고원의 앞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로쟈’는 “아고라, 블로그로 인터넷 공간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것 같다”며 “기존 회원들을 대체할 신인의 출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비평고원의 그간 성과를 정리하기 위해 동인지 ‘비평고원 프로젝트’를 올 봄에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는 ‘가라타니 고진’으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쓴 새로운 글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로쟈’는 “비평고원이 대표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사회에 학술 커뮤니티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며 “이런 공간이 여기저기에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경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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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9-01-3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익은 서재 운영자의 이름도 보이는군요. 혹시 사진 속의 저분?
 

영업부장에 복귀한 마쓰시타 창업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뚝뚝 떨어지던 경기가 올해 초에는 더욱 얼어붙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 한파를 넘어 경제 빙하기로 접어든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생겨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일부 증권사들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고 청와대도 비상경제상황실을 지하 벙커에 만들어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미디어에 나오는 전문가들의 불황 대책을 보면 한가롭기 짝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불황기가 인수ㆍ합병(M&A)의 적기라는 지적이다. 주가가 폭락해 있으니 헐값으로 경쟁사를 살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업계 순위를 단번에 뒤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 M&A할 자금 여유가 있는 기업이 몇 개나 되겠는가?

광고 투자도 마찬가지다. 어느 광고대행사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불황기에 마케팅 광고 투자를 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오히려 투자를 동결하고 있고 경비 삭감을 위해 광고비마저 줄이고 있는 처지다.

그러면 불황에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 영업으로 승부해야 한다.

영업은 기업 활동 중 유일하게 매출을 일으키는 활동이다. 광고나 투자 등이 돈을 쓰는 활동인 데 비해 영업은 돈을 벌어다주는 유일한 활동인 것이다. 이 때문에 불황기에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영업 전문가를 전진 배치하고 영업인력을 풀가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영업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불황기에 고객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분석해 보면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고객들이 충동구매를 자제하고 보다 합리적으로 구매한다는 점이다. 고객들의 이러한 행동 패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영업 담당자들이 자사 제품의 우수성이나 특성을 자세히 알려주는 설명형 영업을 보다 활발하게 전개해야 한다.

불황기 고객의 두 번째 특성이 아예 제품에 대한 구매 빈도와 구매 수량을 줄이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역으로 구매 수량을 유지하도록 제안하거나 경쟁사와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제안형 영업이 유용하다.

예로부터 불황기는 영업의 계절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불황기에는 말보다 몸으로, 입보다 발로 때우는 영업이 보다 각광받게 된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올해를 머리보다는 발이 부지런해야 되는 한 해로 규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영업은 계획보다는 매출이라는 결과로 말하는 속성이 있다. 이 때문에 영업의 진가를 아낌없이 발휘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불황기인 것이다.

불황에는 능력 있는 영업 담당자나 영업부서들과 그렇지 못한 담당자나 부서들과 실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그 결과 영업 부문은 더욱 정예화되고 이러한 결과는 향후 회사 조직 전체를 정예화된 영업이 끌고 나가는 기초가 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고 불려 온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창업자는 호황도 좋지만 불황은 더 좋다는 명언을 남겼다. 호황 때는 가만히 있어도 잘 팔리니 좋다는 것이고, 불황 때는 그간의 낭비를 모두 떨쳐내고 기업의 실력을 새롭게 담금질할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쓰시타가 불황으로 자신의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노구를 이끌고 은퇴한 회사에 복귀하게 되었는데 그때 단 직함이 바로 영업부장이었다. 불황을 영업으로 돌파하겠다는 그의 경영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하겠다. 한국 기업들도 이 미증유의 불황을 영업으로 돌파하자.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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