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힘 - 능청 백단들의 감칠맛 나는 인생 이야기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 충남 보령 사위

- 자이랑식품, 자이랑숲연구소

 

약사가 노래 부르듯 혼잣말로 '반반'을 되뇌이며 약을 고른다. "이거 잡숴유. 한 번에 두 알썩." "두 알씩이요?" "첨엔 씨게 조지야 되니께 두 알썩. 엥간해지믄 한 알썩 잡숫구."(29)

 

"성님! 지 말은 기잘 안다는 게 아니라 테리비에 나왔다 이거유! 지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성님은 매사가 이런 식이유. 매사가! 뻬뜨콩 빤스를 입은 규? 노상 사램 말을 그 지경으루 의심을 헌데유? 야?"... "정성은 갸륵헌디, 암만 그려두 멧돼지가 닭 모양으루 짬뿌헌다는 것은 나를 무시허는 말이지 참말은 아녀!" "아, 됐슈!" "얼래? 별것두 아닌 거 가지구선 승질이여?" "됐대니께유. 인자 서루 침묵허믄서 빠스나 지둘려유."(34)

 

"월매나 똥을 몸부림치믄서 푸지게 싸질렀으면 지갑이 다 삐져 나간댜? 그라구 똥 누믄서 지갑은 원 초칠 맛으루다가 봉창에 넣어 가지구 들어가는 겨? 돈두 벨루 읎어 보이드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램이 둔혀두 저 모양으루 둔할까. 나는 봉창에서 탑시기(먼지) 하나만 삐져나가두 느낌이 팍 오는디 남 서방은 아녀? 지갑이 똥통에 빠져두 아무 느낌두 못 느낀 겨?"(38)

 

"나는 역마살이 독허게 낑겨서 암만 좋아두 한군데서는 오래 못 사는 출신이여. 이 집구석, 저 집구석 싸돌아댕기야 숨 쉬구 살지, 안 그러믄 하루두 못 산다니께. 천국이 암만 좋아두 가끔은 극락으루 마실 댕기구 혀야지! 안 그려? 우덜 동네 국회의원들은 야당, 여당 번갈아 댕기믄서 월급 처받구 노는디, 나는 내 돈 내구선 왔다리 갔다리 허갔다는디 그거 안 된다구 허믄 안 되지. 안 그려? 히히히." 아, 신실한 믿음이여...(44)

 

"어~ 구지다...(허전하다) 오뎅 몇 개만 줘 봐, 호떡하구." "거 있는 거 잡숴유. 팅팅 불어서 씹기에두 편할 틴께." "근디 꼬불탱이가 맛난가 아니믄 민자가 낫은가?" "거서 거기쥬 뭐. 꼬불탱이 먹는다구 똥까정 꼬불꼬불 싸지는 안잖유? 안 그류?"(61)

 

서루 빤히 아는 겨! 아~ 저놈은 제비, 아~ 저 아줌씨는 아싸루비아. 아싸루비아가 뭐냐구? '남편이 돈 벌러 싸우디아리비아 갔다~. 그르니께 난 외로워 죽겄다~' 그것두 몰러?(82)

 

"그래도 이제 담배 끊으세요! 친구 분들 중에 더러 끊는 분들 계시죠?" "많지..." "건강도 좋아지고 입맛도 돌고 좋다고들 하시죠?" "글씨... 물어보기가 좀 그려." "왜요?" 노인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다들 숫가락 집어던진 지 오래구 나만 꼴랑 남았는디 워찌케 물어? 담배 끊으니께 몸띵이가 가뿐허다 워쩐다 연설들 허더니 나보덤 먼저 가두 엄청 서울러 가데?"(93)

 

"서둘러 갔으야 허는디 팔자에두 읎는 똥물을 들이켰드만 질게 살었네! 니 사정 봐서는 가두 벌써 갔으야 허는 것인디 나두 헐만큼 허구 갈라니께 이 모양으루 심들어두 오래 먼문 줄만 알어 잉? 그나저나 니두 엥간히 똥물을 들이킨 걸 보믄 니두 허구 가야 헐 일이 산데미인 모양인디 진 세월을 다 어쩐다냐? 참말루 서룹겄다."(108)

 

희한허게 그때 생각허믄 그 말만 생각나구, 그 말만 생각허믄 시방두 맴이 쌍그러니 눈물이 날라구 혀. "고새 자유?" "고새 잠든 겨?" 딱 두 마디. 시방 내가 똑바루 살았다구 말허는 거 아녀..., 왜 허나구? 기냥 내가 워찌케 살았다는 사실만 말허는 겨. 나두 헐 만큼 허구 가야 쓰니께. 그래서 이라는 거니께 그란 줄만 알어.(111)

 

"술 냄새두 안 나는디 술 처묵은 눔 모양으루 눈깔은 뻘겋구, 잠을 못 잤는지 낯짝은 탑시기(먼지) 앉은 거맹키루 썩음썩음허구, 외박허구 온 날은 왼종일 송장 시늉허드끼 밥두 안 처먹구 천장만 쳐다보구 자다 깨다 허드라구." "영락읎는 노름병인디?"(113)

 

"택시 타믄 월매나 깨지는 겨?" "월전리에서 시내 나올라믄 못 줘두 만 원 이상은 주야 쓰구, 야동에서 나올라믄 칠판 천 원은 줘야쥬?" "그랴, 내가 밥 먹자구 불러 갖구 못 깨져두 돈 만 원썩은 깨지믄서 나오는 사램덜인디, 암만 못 사두 따불루다가 밥을 사야지 꼴랑 만 원짜리 멕일 수 있겄어? 안 그려? 돈 깨져, 시간 깨져, 나오는디 성가셔, 그란디 본전치기루다가 먹구 가라구 허믄 밥 사구두 욕먹는 겨! 근디 갸는 기껏 불러 갖구선 노상 오천 원짜리 뻬다구 해장국 한 그릇이여. 본전치기두 안 된다니께? 사램덜이 말은 안 혀두 속으루는 월매나욕을 혔겄어. 안 그려?" "성님이 말씀하시니께 하는 말이지만서두, 지두 속으루는 엥간히 흉봤슈!" "그려! 그르니께 인자 더 욕먹구 살믄 진짜루 욕보는 거니께 그만 살구 오라구 제수씨가 델꾸 간 겨! 인색헌 출신이 처복은 있다니께."(148)

 

"덥다 더워!" "얼래? 미쳤나 벼! 그 나이 처묵구두 여태까정 더위를 다 타구!" :"원판 더우야지! 나잇값두 못하게 드럽게두 덥네 참말루!" "금년만 참어." "잉?" "아, 내년에두 여름 날라구? 생각만 혀두 징하구먼 참말루! 인자 고만허구 가야지. 안 그려?"(188)

 

"우덜 사는 꼬라지는 이 지경인디 '여섯시 내 고향' 같은 거 보믄 시골 사램덜 죄다 부자여, 부자! 우덜 고향은 고향두 아니래니께? 우덜만 빙신인 겨, 빙신!"(216)

 

"노상 지자리에 앉은 눔의 콤퓨타가 워딜 싸돌아댕기믄서 쥐약을 처묵는댜?" "지가 댕기믄서 주워 먹간디? 큰눔 말루는 콤퓨타는 앉아 갖구선 전기 빨아먹는디 워떤 눔들이 전기에다가 쥐약을 쳐 갖구선 멕이니께 헐 수 읎이 지두 모르는 새에 샘킨다구 허데?"(224)

 

"말 한번 션하게 잘혔네! 지랄허구 시골 가믄 맨날 늙은것덜 천지라구 흉봐 쌓는디 우덜이 젊은것덜 못갈게 구박혀서 쫓가낸 겨 뭐여? 가만히 듣구 있으믄 꼭 우덜이 나라 골치덩이 된 것맹키루 기분이 드럽다니께!" "솔직한 말루 늙은이덜이 시골 조지구 농사 조진 겨? 우덜 모냥으루 벌거지마냥 나라에서 시키는 거 꼬박꼬박 토 안 달구 헌 눔 있으믄 나와 보라구 혀! 쥐약두 먹으라믄 먹은 우덜인디 그런 건 몰라주구 멜깡 농촌에 노인들만 득실댄다구 허니께 참말루 섭혀!"(227)

 

"조직 강화? 허야지! 애국적으루다가 우덜이 맬깡 새장가 들어 갖구선 새끼 치는 겨! 젊은것덜이 요새 애를 안 낳아서 나라 근심이 천근만근이라메? 워쩌겄어 늙은것덜이래두 나서야지! 새끼 쳐 갖구선 시골적으루다가 잘 키우는 수 밖에는 읎다니께?"(2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 거문도 출신의 작가, 그가 겪어온 바다, 그리고 고기, 그리고 사람들

 

- 손암 정약전 <자산어보>(1814)의 내용을 먼저 소개한 후, 본인의 경험을 서술해가는 형식

 

- (알아볼 것) 사리 / 조금 / 몇 물

 

(생계형), 그러니까 옛날형 낚시인 것이다. 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 주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고기잡이 다녀온 사람은 으레 이웃에게 나눠주곤 했다. "반찬이나 하소" 툭 던져주기도 하고 미안해서 안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슬그머니 놓고 휭, 사라지던 모습 흔했다. 가난과 풍요를 분별없이 공유하는 것, 그게 공동체이다.(58)

 

활어회는 의심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주인을 믿을 수가 없어, 살아 있는 놈을 눈앞에서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하지만 회는 여덟 시간 정도 지난 것이 가장 맛 좋다. 죽음의 시간이 주는 맛이다.(143)

 

횟집이나 일식집에서 나오는 날치알은 인기가 좋다. 가미가 되어 있고 수입 열빙어 알이 섞여 있기도 하지만..(156)

 

오로지 도망치려는 물고기와 잡아올리려는 사람 사이 힘의 기우뚱한 균형, 줄이 터지기 직전까지만 허용하며 녀석을 지치게 하는 긴장의 순간들만 이어진다. 낚시에 빠진 동료작가 한 명은 이 순간을 오르가슴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툭. 채비가 터졌다. 세상에 줄 끊어진 낚시대처럼 허무한 게 또 있을까. 낚시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몸에서 피가 쭈욱 빠져나가고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을. 집안이 망하는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절망을.(175)

 

(장어) 풍천은 지명이 아니라 바람이 들어오는 하천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이 녀석들은 날씨가 추어지면 잠시 강하구로 내려와 월동을 하는데 이때 주로 잡는다.(198)

 

기본적으로 갯바위 낚시는 들물 때가 유리하다.(213)

 

섬은 젊은 여자에게는 천형 같은 곳이다. 고된 노동, 물리적인 불편, 여러가지 제약 따위가 늘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처녀 한 명 청산도로 시집가게 되면 친구들과 사흘을 내리 울었다. 집안일, 밭일, 갯일에 논일이 더해지기 때문이었다.(228)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바다는 무엇인가. 아직도 나는 그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306)

 

그런 이유 때문에 섬 음식은 탕이 발달했다. 곡식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귀보시탕이라는 게 있다. 귀보시는 목이버섯이다. 귀처럼 생긴, 짬뽕에 한두 개 들어 있는 얇은 버섯이 그것이다. 그것을 말렸다가 물에 불린 다음 전분가루를 풀어 만든다.(324)

 

전반적으로 부유해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유해졌다는 것을 못 느끼는 모양이다. 이유 없이 불안하고 공연히 안달내고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는 게 증거이다. 스스로 웃을 능력이 사라져버려 개그와 예능 프로에 눈 박고 있는지도 모른다.(3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아마도 자주 들춰볼 책일 것이다.

- 죽음과 기억에 대해.. 기억이 없으면 죽음과 다를 바 없을 듯..

- 카그라스증후군..

- 해설은 읽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몽테뉴 <수상록>에서..)(14)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38)

 

수치심과 죄책감 :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타인의 시선이나 단죄는 원래부터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부끄러움은 심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죽이게 된 사람도 있다 - 나같은 인간이 더 위험하지.(105)

 

나는 철학을 모른다. 내 안에는 짐승이 산다. 짐승에게는 윤리가 없다. 윤리가 없는데 왜 이런 감정을 느낄까. 늙어서일까. 내가 지금까지 붙잡히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행복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날마다 살인을 생각하고 그것을 도모하던 때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바짝 조인 현처럼 팽팽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오직 현재만이 있었다.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111)

 

(악을 이해하고 싶다고?)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덧붙였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1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1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과 고서점, 그 책들과 관련된 소품적인 장치를 소재로, 보편적인 추리기법을 동원한 책.

 

- 그 서술방식은 평이하나, 책과 관련된 추억들을 적절히 가미한 책.(일본 100만 부??)

 

- 교정 118p 감시해서 -> 감시에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낡은 책에는 내용뿐 아니라 책 자체에도 이야기가 존재한다.(1권 327)

열십자로 묶는 건 대형 서적뿐이고, 일반 단행본 사이즈는 모두 한 줄로 묶는다. 잘 묶으려면 요령이 필요하다. 너무 느슨하게 묶으면 금방 풀어지고, 너무 꽉 묶으면 위아래 책에 끈 자국이 남는다.(2권 1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의 인생 보고서
송호근 지음 / 이와우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 추가읽기, 고은 <1950년대>

 

- '아들아, 너만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연대감 확인을 통한 공감과 위로다.(9)

 

교육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다. 베이비부머들은 대체로 혼자 해결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농촌에 거주하는 초로의 부모들이 땅 팔고 소 팔아 학비 대는 풍습이야 한국의 못 말리는 미덕이라 해도, 아예 기둥뿌리 뽑아 교육시키고 결혼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무의식적 각오는 베이비부머들이 창안한 새로운 풍습이다. 베이비부머만의 책임은 아니다. 급작스레 팽창한 경제와 전 방위적 경쟁체제로 돌입한 사회가 베이비부머를 그렇게 몰고 갔다. 그들은 반성할 겨를도 없이 급변하는 조류에 편승하거나 휩쓸렸다.(44)

 

문제의 핵심은 현행 입시제도 그 자체다. '다양성'을 명분으로 대학마다 온갖 현란한 항목들을 개발해 제각각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대학마다 '비상한 자질'을 요구하지 말고 평범한 학생이 무난한 대학에 무난히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두어 과목만 잘해도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우선 시급하다. 수능을 3,4회로 늘려 가장 좋은 점수를 택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지 않으면, '나 재수해야 돼!'라고 절규하거나, 부모 품에 픽 쓰러져 대성통곡하는 수능 날 저녁 풍경이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대학입시와 엄마 점수>, 동아일보 2011.11.15 기사에서 인용)

 

고성장, 압축성장에 이골이 난 한국 사회는 더욱 그랬다. 설명과 동시에 새로운 현상이 돌발했다. 사회과학자는 쫓아가기 바쁜 추적자였고, 추적에서 찾아낸 법칙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럼 글쓰기는 뭔가? 나의 절삭 작업, 감성과 논리를 버무려 절삭하는 세공 작업은 그냥 시의에 맞추어 팔려나간 소모품을 생산했을 뿐인가?(84)

 

조선 후기와 식민 초기를 살아냈던 증조부와 조부가 영주의 한 빈촌에서 부친을 낳았고, 부친은 그곳에서 나를 낳았다. 농업으로 연명하던 증조부와 조부, 집안에서 최초의 월급쟁이였던 부친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사의 고난과 우여곡절이 뒤엉킨 현대사를 잉태하고 있던 시점에서 지금 글쓰기로 먹고사는 내가 태어났던 것이다.(89)

 

그렇다고 다시 자영업에 손을 댈 자신은 없었다. 2010년 통계에 의하면, 전국 자영업자는 약 559만 명으로 취업자의 23.5%를 차지할 만큼 많다. 가족 종사원을 합하면 718만 명에 이른다. 선진국의 두세 배에 달한다. 쉰 살 이상의 자영업자가 310만 명을 차지할 만큼 다수라고 보면, 출구가 없는 베이비부머들이 가장 손쉽게 시작하고 가장 빠르게 망하는 쪽이 자영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중 도소매가 29%, 음식/숙박업이 23%로 다수를 차지한다. 음식점은 60만 곳, 한 해 10만 점포가 폐업하고 10만 점포가 개업한다. 10만 명이 망한 자리에 10만 명의 망할 사람들이 뛰어드는 것이나 진배없다. 5년 정도 살아남을 확률은 20% 남짓이나 될까. 통계청에 의하면 월 매출액 40만 원 이하가 전체의 60%가량이고, 2,0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점포는 불과 8.5%이니 대체로 영세하고 어렵다는 얘기다.(111)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50세 이상 자영업자는 2011년에 비해 2012년에 17만 5000명이 증가했으며, 특히 숙박, 도소매, 음식업 등 과당경쟁이 일어나는 영역에 뛰어든다. 이들 중 월소득 121만 원 이하인 생계형 자영업자의 평균 연령은 55.9세였다.(111)

그렇지만 애들이 살아야 할 세상은 다르지 싶다. 아들이 아무리 노력한대도 제 집을 장만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그런 희망을 품기조차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흐지부지 돈 써 없애는 딸애한테 저금하라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힘이 덜 실렸다. 결국엔 내가 물려줘야 아들도 제 집을 가져볼 수 있을 터였다. 결국 벌 수 있는 데까지 벌어 먹고 살다, 늘그막엔 손주들이나 봐주고 병들면 집 물려주고 애들 곁에서 죽는게 소원이다.-56세 육아파출부(128)

 

열 받은 K 씨(55세, 전 은행원) 사회학자가 되어 있었다. 틀린 말이 없었다. 사회학자인 내가 받아 적어야 할 말들이었다.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전해야 할 현실적 고려 사항들이었다. 대선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 대선후보들은 앞 다투어 정년 연장을 약속했지만, 그걸 곧이든는 베이비부머 퇴직자들은 드물었다. 사회학자인 나도 '글쎄'였다. 베이비부머 일자리를 늘리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160)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유학 비용에 대학 등록금이 아직 엄청난 짐으로 남아 있는 나도 K 씨도 베이비부머의 트랩에 걸렸다... "어, 눈이 오네!"(161)

 

가족 관계망(Family Network, 송 30) - 친밀 관계망(Intimacy N.., 송 50) - 친근 관계망(Familiarity N.., 송 100) - 공적 관계망(Public N.., 송 500)(175)

 

퇴직자들에게는 이런 관계망에 어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가? 첫째, '공적 관계망'의 급격한 분리와 소멸이다. 퇴직 후 6개월이면 공적 관계망의 완전한 소멸을 경험할 것이다. 퇴직자들의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는 이유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나는 더 이상 공적 인물이 아니라는 심리적 충격을 감당해야 하는데 30년 지속된 오랜 '마음의 습관(habit of the hearts)'을 한 순간에 떨쳐내기란 어렵다. 따라서 퇴직과 동시에 공적 관계망에서 철수해야 한다. 본인은 퇴직했지만 공적 관계망에 자신의 명부가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다. 둘째, 자신의 행동반경이 3(친근..)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시 2(친밀..)로 서서히 후퇴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결국 퇴직자들에게 의미가 있는 관계망은 2와 1(가족..)이다. 결국 퇴직자들의 행동반경이 1과 2로 대표되는 '근린 관계망'으로 좁혀져 향후 20년 동안 이만큼 협소한 공간에서 생존해야 함을 뜻한다.. 퇴직은 30년 동안 방치해온 자신의 무지와 무관심을 낯섦과 소외로 돌려받는 지옥의 시간이자 각성의 시간이다.. 다른 연령대에 비하여 50대에서 자살률이 높은 까닭은 퇴직과 함께 찾아오는 갑작스런 관계 단절, 고립감, 그리고 경제적, 심리적 무력감 때문이다.(174~176)

 

그리하여 치킨집이 난립하고 한국은 음식점 천국, 커피숍 천국이 되었다. 앞 장에서도 지적한 바지만, 전국 음식점 60만 개 중 휴업점이 15만 개(2009년)에서 25만 개(2010년)로 늘어났는데, 여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창업자가 진입해 규모는 비슷한 상태를 유지했다.(184)

 

이런 재테크를 통해서 나는 단 한 가지를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현금 월 100만 원 만들기'를 시작하라는 권고다.. 개인연금이나 기타 약간의 소득과는 별도로 보유하고 있는 저축과 소유 주택을 활용하여 월수입 100만 원을 기어이 확보하는 전략을 구상하면 좋을 듯하다.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는 현금이 없으면 결국 가족 관계와 사회 관계가 파탄에 이른다. 한국의 베이비부머, 고성장 시대를 구가하고 청춘을 경제성장에 바친 한국의 50대 절반이 이런 절망의 균열 상태에 내몰리게 된 이유는 결국 십시일반 자신들의 자산을 할애해 공적 안전망을 만들지 않은 탓이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공적 안전망에 소홀했을 때에 어떤 노후를 맞게 되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주는 슬픈 집단인지 모른다.(188)

 

단순화한다면, 1960년대까지는 근대였고, 1980년대 이후는 현대였다. 1970년대는 근대와 현대 간에 느닷없이 형성된 절벽이었다. 이 절벽을 잇는 가교를 베이비부머들이 '내 몸을 누이는 방식'으로 설치했으며 스스로도 '그렇게 다리가 되어' 1970년대를 넘었다는 말이다.(1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