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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의 인생 보고서
송호근 지음 / 이와우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 추가읽기, 고은 <1950년대>
- '아들아, 너만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연대감 확인을 통한 공감과 위로다.(9)
교육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다. 베이비부머들은 대체로 혼자 해결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농촌에 거주하는 초로의 부모들이 땅 팔고 소 팔아 학비 대는 풍습이야 한국의 못 말리는 미덕이라 해도, 아예 기둥뿌리 뽑아 교육시키고 결혼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무의식적 각오는 베이비부머들이 창안한 새로운 풍습이다. 베이비부머만의 책임은 아니다. 급작스레 팽창한 경제와 전 방위적 경쟁체제로 돌입한 사회가 베이비부머를 그렇게 몰고 갔다. 그들은 반성할 겨를도 없이 급변하는 조류에 편승하거나 휩쓸렸다.(44)
문제의 핵심은 현행 입시제도 그 자체다. '다양성'을 명분으로 대학마다 온갖 현란한 항목들을 개발해 제각각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대학마다 '비상한 자질'을 요구하지 말고 평범한 학생이 무난한 대학에 무난히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두어 과목만 잘해도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우선 시급하다. 수능을 3,4회로 늘려 가장 좋은 점수를 택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지 않으면, '나 재수해야 돼!'라고 절규하거나, 부모 품에 픽 쓰러져 대성통곡하는 수능 날 저녁 풍경이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대학입시와 엄마 점수>, 동아일보 2011.11.15 기사에서 인용)
고성장, 압축성장에 이골이 난 한국 사회는 더욱 그랬다. 설명과 동시에 새로운 현상이 돌발했다. 사회과학자는 쫓아가기 바쁜 추적자였고, 추적에서 찾아낸 법칙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럼 글쓰기는 뭔가? 나의 절삭 작업, 감성과 논리를 버무려 절삭하는 세공 작업은 그냥 시의에 맞추어 팔려나간 소모품을 생산했을 뿐인가?(84)
조선 후기와 식민 초기를 살아냈던 증조부와 조부가 영주의 한 빈촌에서 부친을 낳았고, 부친은 그곳에서 나를 낳았다. 농업으로 연명하던 증조부와 조부, 집안에서 최초의 월급쟁이였던 부친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사의 고난과 우여곡절이 뒤엉킨 현대사를 잉태하고 있던 시점에서 지금 글쓰기로 먹고사는 내가 태어났던 것이다.(89)
그렇다고 다시 자영업에 손을 댈 자신은 없었다. 2010년 통계에 의하면, 전국 자영업자는 약 559만 명으로 취업자의 23.5%를 차지할 만큼 많다. 가족 종사원을 합하면 718만 명에 이른다. 선진국의 두세 배에 달한다. 쉰 살 이상의 자영업자가 310만 명을 차지할 만큼 다수라고 보면, 출구가 없는 베이비부머들이 가장 손쉽게 시작하고 가장 빠르게 망하는 쪽이 자영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중 도소매가 29%, 음식/숙박업이 23%로 다수를 차지한다. 음식점은 60만 곳, 한 해 10만 점포가 폐업하고 10만 점포가 개업한다. 10만 명이 망한 자리에 10만 명의 망할 사람들이 뛰어드는 것이나 진배없다. 5년 정도 살아남을 확률은 20% 남짓이나 될까. 통계청에 의하면 월 매출액 40만 원 이하가 전체의 60%가량이고, 2,0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점포는 불과 8.5%이니 대체로 영세하고 어렵다는 얘기다.(111)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50세 이상 자영업자는 2011년에 비해 2012년에 17만 5000명이 증가했으며, 특히 숙박, 도소매, 음식업 등 과당경쟁이 일어나는 영역에 뛰어든다. 이들 중 월소득 121만 원 이하인 생계형 자영업자의 평균 연령은 55.9세였다.(111)
그렇지만 애들이 살아야 할 세상은 다르지 싶다. 아들이 아무리 노력한대도 제 집을 장만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그런 희망을 품기조차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흐지부지 돈 써 없애는 딸애한테 저금하라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힘이 덜 실렸다. 결국엔 내가 물려줘야 아들도 제 집을 가져볼 수 있을 터였다. 결국 벌 수 있는 데까지 벌어 먹고 살다, 늘그막엔 손주들이나 봐주고 병들면 집 물려주고 애들 곁에서 죽는게 소원이다.-56세 육아파출부(128)
열 받은 K 씨(55세, 전 은행원) 사회학자가 되어 있었다. 틀린 말이 없었다. 사회학자인 내가 받아 적어야 할 말들이었다.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전해야 할 현실적 고려 사항들이었다. 대선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 대선후보들은 앞 다투어 정년 연장을 약속했지만, 그걸 곧이든는 베이비부머 퇴직자들은 드물었다. 사회학자인 나도 '글쎄'였다. 베이비부머 일자리를 늘리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160)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유학 비용에 대학 등록금이 아직 엄청난 짐으로 남아 있는 나도 K 씨도 베이비부머의 트랩에 걸렸다... "어, 눈이 오네!"(161)
가족 관계망(Family Network, 송 30) - 친밀 관계망(Intimacy N.., 송 50) - 친근 관계망(Familiarity N.., 송 100) - 공적 관계망(Public N.., 송 500)(175)
퇴직자들에게는 이런 관계망에 어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가? 첫째, '공적 관계망'의 급격한 분리와 소멸이다. 퇴직 후 6개월이면 공적 관계망의 완전한 소멸을 경험할 것이다. 퇴직자들의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는 이유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나는 더 이상 공적 인물이 아니라는 심리적 충격을 감당해야 하는데 30년 지속된 오랜 '마음의 습관(habit of the hearts)'을 한 순간에 떨쳐내기란 어렵다. 따라서 퇴직과 동시에 공적 관계망에서 철수해야 한다. 본인은 퇴직했지만 공적 관계망에 자신의 명부가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다. 둘째, 자신의 행동반경이 3(친근..)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시 2(친밀..)로 서서히 후퇴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결국 퇴직자들에게 의미가 있는 관계망은 2와 1(가족..)이다. 결국 퇴직자들의 행동반경이 1과 2로 대표되는 '근린 관계망'으로 좁혀져 향후 20년 동안 이만큼 협소한 공간에서 생존해야 함을 뜻한다.. 퇴직은 30년 동안 방치해온 자신의 무지와 무관심을 낯섦과 소외로 돌려받는 지옥의 시간이자 각성의 시간이다.. 다른 연령대에 비하여 50대에서 자살률이 높은 까닭은 퇴직과 함께 찾아오는 갑작스런 관계 단절, 고립감, 그리고 경제적, 심리적 무력감 때문이다.(174~176)
그리하여 치킨집이 난립하고 한국은 음식점 천국, 커피숍 천국이 되었다. 앞 장에서도 지적한 바지만, 전국 음식점 60만 개 중 휴업점이 15만 개(2009년)에서 25만 개(2010년)로 늘어났는데, 여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창업자가 진입해 규모는 비슷한 상태를 유지했다.(184)
이런 재테크를 통해서 나는 단 한 가지를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현금 월 100만 원 만들기'를 시작하라는 권고다.. 개인연금이나 기타 약간의 소득과는 별도로 보유하고 있는 저축과 소유 주택을 활용하여 월수입 100만 원을 기어이 확보하는 전략을 구상하면 좋을 듯하다.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는 현금이 없으면 결국 가족 관계와 사회 관계가 파탄에 이른다. 한국의 베이비부머, 고성장 시대를 구가하고 청춘을 경제성장에 바친 한국의 50대 절반이 이런 절망의 균열 상태에 내몰리게 된 이유는 결국 십시일반 자신들의 자산을 할애해 공적 안전망을 만들지 않은 탓이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공적 안전망에 소홀했을 때에 어떤 노후를 맞게 되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주는 슬픈 집단인지 모른다.(188)
단순화한다면, 1960년대까지는 근대였고, 1980년대 이후는 현대였다. 1970년대는 근대와 현대 간에 느닷없이 형성된 절벽이었다. 이 절벽을 잇는 가교를 베이비부머들이 '내 몸을 누이는 방식'으로 설치했으며 스스로도 '그렇게 다리가 되어' 1970년대를 넘었다는 말이다.(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