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맥을 만드는 7가지 “ㅍ" | 인맥관리 칼럼 2006/01/30 10:04 
  http://wnetwork.hani.co.kr/bluewhale/730  

“젊었을 때는 돈을 빌려서라도 좋은 인맥을 만들어야 한다.물은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지만 사람은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위의 글은 일본 아사회 맥주 前회장, 히구치 히로타로가 한 말이다.맥주회사 대표답게 물과 그릇으로 인맥의 소중함을 비유한 것이 흥미롭다.이에 덧붙여 좋은 인맥을 만드는데 필요한 7가지 “ㅍ"에 대해 알아본다.

 

첫째,품.

인맥만들기는 누가 더 많이,더 오래 품을 파느냐에 달려있다.머리품,발품,손품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만이 좋은 인맥을 만들 수 있다

 

둘째,폼.

짧은 만남이 빈번한 현대사회에서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좋은 이미지,좋은 첫인상을 줄 수 있도록 자신을 가꿔야 한다. 폼은 결국 어울림이다.때와 장소,상황에 맞게 의상, 표정,자세를 가꿔야 한다.

 

셋째,판.

내가 현재 속해있는 판(사회,네트워크)과 앞으로 가고자 하는 판에 대해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패.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나의 브랜드,나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다섯째,펀(fun).

만남이 즐겁고 유익해야 한다.피터 드러커는 <생산성이야말로 올바른 인간관계를 나타내주는 가장 적합한 단어>라고 말하였다.일적으로, 정신적으로 즐겁고 생산적인 만남이 돼야 한다.

 

여섯째,필(feel).

서로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면 인간관계가 가까워지지 않는다 .말이 통하고, 느낌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고, 마음이 통해야 한다.

 

일곱째,편.

내 편을 만들지 말고, 먼저 상대방의 편이 되어야 한다.네 편이 돼 주지 않으면 결코 내 편이 되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상으로 인맥을 만드는 7가지 요소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품”이다.좋은 인맥을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머리품,손품,발품을 팔아야 한다.

 

일본 교세라 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젊은 시절 마츠시타 고노스케의 댐경영 강연회에 참석하였다. 청중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고노스케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간절히 생각하고 원해야 한다”고 답변하는 것을 듣고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커다란 충격과 감명을 받았다.그 후부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항상 간절히 생각하고 염원한 결과 교세라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좋은 인맥을 갖고 싶은가? 지금 당장 계획하라! 지금 전화기를 들라! 지금 만나러 나서라! 반드시 좋은 인맥이 얻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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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출판사들 진입 문학출판 시장 지각변동
작가 섭외 경쟁 등 문학 인스턴트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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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문학 출판사들 관행 성토


여론조사

여러분은 목사, 스님, 신부 등 종교인들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찬성(89.2%) 반대(10.8%) 
 
총투표자수 : 955명 

이판사판 이시대이사람 -->
순(純)문학 출판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진입 장벽이 높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던 이 시장에, 최근 자본력과 영업력 조직력 등을 앞세운 몇몇 대형 출판사들이 거센 기세로 진입해 기존 문학출판 강자들의 장악력 와해에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향후 수년 내에 문학출판계 시장 구도가 바뀔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대형 출판사들의 공세

이 같은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랜덤하우스중앙’이 있다. 미국의 다국적 출판ㆍ미디어 그룹 랜덤하우스와 중앙M&B가 2004년 합작해 출범한 랜덤하우스중앙은 지난 해 초 계간지 ‘문예중앙’의 편집 진용을 젊은 문화비평가들로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단행본 출간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소설의 경우 최근까지 20명 내외의, 비교적 잘 알려진 작가들과 출판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랜덤하우스중앙·웅진씽크빅 등 선두로… "차세대 중심 전력" 장기적 투자 시작
기성작가 확보에 신인들과도 잇단 계약… "기회 확대" "문화 체질 약화" 문단 술렁

아동출판의 강자인 ‘웅진씽크빅’(모기업)의 단행본 사업본부도 지난 해 11월 ‘랜덤하우스중앙’의 원년 사령탑이던 최봉수씨를 대표이사로 영입, 문학출판 시장 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 대표는 “문학이 그룹 출판 매출의 차세대 중심 전력이 되도록 하기 위해 향후 최소 3년간은 성과에 관계없이 집중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당 팀이 기성ㆍ신인 작가와의 접촉을 시작했고, 해외문학 번역 출판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문학시장의 실지(失地) 회복을 위해 신진 작가와의 연쇄 계약 등 의욕을 보여온 민음사도 최근 박상순 사장의 퇴진으로 주춤한 상태지만,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긴장하는 기존 출판계

기존 출판사들이 소위 ‘작품도 되고, 돈도 되는’ 협소한 작가군을 분점해 온 순문학 출판 시장 구도에 강력한 출판 수요가 창출되면서 출판계는 난 데 없는 ‘작가 부족’ 사태를 맞고 있다. 가뜩이나 작가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중소 문학 출판사들은 물론, 소위 메이저출판사로 꼽히는 곳들도 긴장하는 눈치다.

작가들이 비교적 선호하는 한 출판사의 관계자는 “출판 계약 제의를 하면 수상 경력도 없고 지명도도 그리 높지않은 등단 3~5년차 작가들도 최근 계약을 했다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연초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인 작가나 발표작이 단편소설 한 두 편에 불과한 작가들조차 출판 계약을 맺은 예가 드물지 않다. 첫 작품집을 출간하려면 등단후 5~ 8년씩 걸리던 10여년 전과 사뭇 대비되는 현실이다.

이에 대해 ‘문예중앙’관계자는 “처음 두어 번 다른 출판사들보다 많다면 많은 계약금을 제시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현재는 편집ㆍ기획위원들이 판단해 좋은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만나 출판계약을 추진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웅진씽크빅 단행본 사업본부 관계자는 “오히려 작가와 출판사간 인연으로 엮여있는 기존 시장 구도와 여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문학 시장에 미칠 영향은

이 같은 변화가 사뭇 위축된 문학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인 것은 사실이다. 기존의 과점적 문학출판 시장을 와해할 수도 있고, 기왕의 완고한 출판 구도 하에서 덜 주목 받은 작가에게 출간의 기회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독자 입장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폭 넓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문학의 체질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책을 쉽게 내게 되면서 설익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엄연하기 때문이다. 한 평론가는 “비평의 관점을 무시한 문학 출판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짓”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최근 검증되지 않은 작가에게 그 막연한 가능성만을 보고 출판 계약을 제의하는 사례가 흔해지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는 소비자들의 실망을 자초해 가뜩이나 인색한 문학 소비자들이 아예 등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책 내는 게 어렵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어려울수록 자신의 문학을 고민하고 작품을 다듬는 혹독한 훈련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80년대 중반에 등단한 한 작가는 “당시 등단하고 첫 책을 내기까지의 힘들고 긴 기간이 직업 작가로 거듭나는 참다운 습작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며 “요즘은 책으로 습작하는 시대가 되어 문학이 인스턴트화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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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허물고 몸집 키우는 출판사들   2006/03/14 11:12 추천 0    스크랩 0

프랑스 아셰트 리브르, 미국 타임워너 북그룹 인수… 시장 확대 노려


 

세계 출판시장에 지각변동의 조짐이 보인다. 진원지는 프랑스인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출판시장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앞으로 그 움직임과 여파가 어디에 어떻게 미칠지에 대해 벌써부터 세계 출판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월 6일, 프랑스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셰트 리브르(Hachette Livre) 출판그룹 회장이자 최고경영자인 아르노 누리(Arnuad Nourry)는 미국 출판시장에서 6%를 점유하고 있는 타임워너 계열 출판그룹인 타임워너 북그룹(Time Warner Book Group) 인수합병을 공식 선언했다. 인수액은 5억3750만달러(약 5000억원). 이로써 아셰트 리브르는 랜덤하우스와 스콜라스틱을 각각 4, 5위로 밀어내고 피어슨과 맥그로힐 출판그룹에 이어 매출규모 세계 3위의 자리에 올라섰다.

 

타임워너 북그룹은 그간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빌 게이츠의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그리고 최근 대형 베스트셀러인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냈고, 2005년에만 69개 타이틀의 베스트셀러를 낸 출판그룹으로 연 매출규모 세계 21위에 랭크됐다.

 

타임워너 북그룹은 세계적으로 온라인 출판시장의 붐이 일던 수년 전 아메리카온라인(AOL)과의 전격적인 합병으로 온라인 시장에서의 사업을 적극 추진했으나, 기대와 달리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결국 AOL과 결별했다. 이어 타임워너 북그룹은 매각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간 대형 출판그룹으로부터 몇 차례의 입질이 있었으나 선뜻 사겠다는 곳이 나서질 않아 그냥 몇 해를 보내다가 이번에 임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타임워너 북그룹의 회장 데이비드 영(David Young)은 앞으로 아셰트 리브르 미국(Hachette Livre USA)의 ‘좌장’을 계속 맡을 예정이며, 아셰트 리브르의 회장에게 모든 업무를 보고하게 됐다. 타임워너 북그룹의 직원 800여명은 부서장에서 일반 실무담당자까지 본인이 이동을 원하지 않는 한 인원변동은 없다. 하지만 그룹 사무실은 현재 뉴욕 맨해튼에 있는 ‘타임 앤 라이프’ 빌딩에서 나와 다른 곳에 둥지를 틀 가능성이 높고 회사 이름도 새롭게 모색 중이라고 알려졌다.

 

아셰트 리브르는 파이야르, 그라세, 스톡 등 다수의 유명출판사를 거느린 프랑스 최대 규모의 출판그룹으로 각종 잡지와 유통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거대 미디어그룹 라가르데르(Lagardere) 산하에 있다. 또 아셰트 리브르 그룹은 프랑스 외에도 스페인의 아나야(Anaya) 그룹, 영국의 호더 헤드라인(Hodder Headline) 그룹 등 거대 출판사를 폭넓게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의 거대 출판사를 본격적으로 경영한 적은 없다. 다만 1988년 4억5000만달러에 그롤리어(Grolier) 출판그룹을 사들였다가 2000년 스콜라스틱에 팔아넘긴 경험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 출판시장에서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열망은 식지 않았다. 타임워너 북그룹을 사들이기 전에 미국 최대 출판그룹 중 하나인 사이먼 앤 슈스터(Simon & Schuster)에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수액이 10억달러 수준으로 오르자 분석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포기했다. 이후 거래 조건의 부담이 덜하면서 미국 출판시장에서 견실한 실적을 유지해 오고 있는 출판사를 물색하다가 이번에 전격적으로 타임워너 북그룹을 사들인 것이다.

 

2004년 영국 출판사인 호더 헤드라인 그룹을 4억달러에 사들인 것에 이어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에 100여명의 직원이 일하는 지사까지 두고 있는 타임워너 북그룹을 사들인 아셰트 리브르의 목적은 유럽권역을 넘어 세계 출판시장으로 그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있다. 그 교두보가 바로 영어권은 물론 세계 출판시장의 관문으로 불리는 미국 시장으로의 진출이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그들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첫걸음이다. 아셰트 리브르 미국의 회장인 데이비드 영이 인수합병 합의 회견문에서도 밝혔듯이 향후 2년 안에 미국의 유력한 출판사를 몇 개 더 인수하겠다는 계획 또한 내놓고 있어 몸집 불리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세계 출판시장은 갈수록 거대화되고 있다. 이제 국경도 언어도 경계가 되지 않는다. 세계인이 모두 독자이고, 세계 시장이 전부 출판 영업의 장이다. 한국 출판시장에도 랜덤중앙처럼 이미 해외 출판사의 자본이 유입됐고, 그런 출판사와의 경쟁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웅진씽크빅이나 위즈덤하우스 등 몇몇 한국 출판사도 점차 대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만의 개성과 특징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출판사는 점차 그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검고 두툼한 뿔테 안경을 쓴 편집자들이 난로 주위에 모여 기획회의를 하던 소규모 출판사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풍경을 발견하기는 정말 힘들다.

 

<이구용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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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의 내일, 온라인에 묻지마

국제뉴스 특화로 파이 늘리기에 나선 격주간지 <쿠리에 자폰>의 창간
과도기 겪는 일본 인터넷 시장, 디지털 부문도 단행본 제작에 나선다

▣ 도쿄=글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지난해 일본 광고회사 덴쓰가 꼽은 2005년 상반기 히트상품 1위는 블로그였다. 2001년 1만여 명에 불과하던 일본 초고속 인터넷 이용자 수는 어느덧 3천만 명을 돌파했다. NHN, CJ 인터넷 등 국내 게임포털들도 일본 공략에 나선다. 그러나 당장 다음주의 스쿠프(scoop·특종)가 시급한 <주간현대>에게 온라인 전략을 묻는 건 한가한 일처럼 보인다. 줄어드는 잡지 시장, 밀려오는 인터넷. 잡지의 내일은 어디에 있을까.

한 사람의 아이디어, 전격 지원하다

지난해 말 고단샤는 오랜만에 저널리즘 잡지를 창간했다. 세계 1천여 매체에서 뉴스를 골라 게재하는 국제뉴스 격주간지 <쿠리에 자폰>(COURRiER japon)이 그것이다. 새 잡지는 2003년 말 고단샤 100주년 기념 사내공모에 응모한 고가 요시아키(41) <쿠리에 자폰> 편집장의 기획안이 채택되면서 준비가 시작됐다. 그는 이 잡지의 아이디어를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얻었다.


△ "미국만이 '세계'일까요" 고단샤의 새 잡지 <쿠리에 자폰>의 창간 광고 문구다. <쿠리에 자폰 >은 '와인부터 국제 정치까지' 세계 미디어의 수많은 뉴스를 실어나르는 국제 뉴스 전문지다.

1989년 고단샤에 입사해 <주간현대> <프라이데이>를 거친 고가 편집장은 후겐다케 화산 폭발과 옴진리교 사건을 다룬 두 권의 사진집을 낼 정도로 현장형 편집자였다. 멀어지는 현장과 다가올 관리직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2001년 사내유학제도를 이용해 훌쩍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프랑스 사진주간지 <파리마치>(PARISMATCH)에서 1년간 연수를 하고 싶었던 그가 문의 이메일에 연락이 없는 <파리마치> 편집장을 휴가 기간에 직접 찾아가 연수 허가를 얻어낸 다음의 일이었다.

“2001년 파리에서 미국의 9·11 테러를 맞이했다. 그때 수십 권의 잡지를 사서 비교해 읽었는데 가장 재미있었던 게 ‘pourqui?”(왜)라는 타이틀을 단 국제뉴스 전문주간지 <쿠리에 인터내셔널>(CURRiER International)이었다.” 그는 미국, 유럽, 그리고 아랍, 이스라엘, 동아시아 언론의 사설과 기사들이 한데 모여 그렇게 강력한 힘을 뿜을 줄은 몰랐다. 독특하게 날것을 가공하는 이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다. 1990년 4명의 젊은이들이 창간한 <쿠리에 인터내셔널>은 현재 전세계 127만여 명이 보고 있다.

2004년 5월 1차 시험판을 제작한 뒤 2004년 12월 신잡지편집준비팀이 꾸려졌다. 개인의 아이디어는 회사의 지원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기초사항이 게재된 사내 인명록을 뒤져 어학과 편집 능력을 겸비한 편집자를 물색하는 한편 별도의 공개 채용을 진행하고, 편집장 경험이 없는 자신을 지도해줄 요시오카 미치오 고문을 타 부서에서 영입해왔다. 종이와 디자인으로 아이덴티티를 강조하고 제호를 <쿠리에 자폰>으로 확정지었다. ‘세계는 일본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잡지관도 정리됐다. 2005년 9월부터 나온 3권의 ‘0호’로 제작 시뮬레이션도 끝났다. 2005년 12월, 스쿠프와 스캔들이 없는 고단샤의 저널리즘 잡지가 세상에 등장했다.

<쿠리에 자폰>은 <쿠리에 인터내셔널>과 제호, 잡지 아이디어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다. 콘텐츠의 구성은 전적으로 <쿠리에 자폰> 편집진 몫이다. 유럽·아프리카팀, 아메리카팀, 아시아·태평양팀 편집자들은 전문 통역가와 외부 프리랜서와 함께 1천여 종의 해외 언론을 살핀다. 게재 기사가 결정되면 판권 담당자가 일일이 해당 언론사나 저널리스트와 접촉한다. <한겨레21> 제578호 “용감한 우리, 삼남매를 키운다”가 <쿠리에 자폰> 제8호 “세계의 저출산 현상, ‘낳지 않기’라는 선택” 기획에 게재된 것도 그런 과정을 거친 것이다. 판권 담당자 유모토 치에코씨는 “해외 언론사와 일본 언론사의 제휴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말한다. 100여 년 된 고단샤도 국제뉴스 분야에선 신생아다.


△ <쿠리에 자폰>의 모태는 프랑스 주간지 <쿠리에 인터내셔널>. 2004년 5월 <쟈나겐>이라는 제호로 시험판이 제작되고, 2005년 6월 <쿠리에 자폰>으로 제호가 바뀌어 시험판이 다시 제작됐다. 잡지 크기, 제호 디자인, 표지 질감을 조정해 2005년 9월 현재의 디자인으로 결정했다.

“<주간현대> <프라이데이> 같은 기존 잡지는 광고 유치나 속보 경쟁에서 한계가 있다.” 고가 편집장이 말한다. “조사를 통해 2001년 이후 신문·방송에서 국제뉴스가 조금씩 증가하는 걸 확인했다. 특파원을 수십 명씩 두지 못하는 잡지사도 <쿠리에 자폰> 같은 방식을 취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세계 유수의 저널리스트가 쓴 기사를 내보낼 수 있다. 인터넷에 국경은 없지만 언어의 장벽은 있다. 우리의 번역은 고급 정보에 쉽게 접근하게 해준다.” 국내 문제에 더 집중하고 특파원도 주로 영어 매체로 현지 정보를 수집하는 일본 신문사의 제약이 <쿠리에 자폰>엔 기회다. ‘일본’이라는 필터가 완전히 제거된 현지어 매체에서 경쟁력을 찾는다. 잡지의 고급 이미지 덕분에 IBM 등 외국계 광고주도 유치했다. 고가 편집장은 10호, 20호를 기점으로 잡지 콘셉트 홍보를 펼칠 예정이다. 고단샤의 강력한 편집력이 만든 새 잡지가 시장에 무사히 안착할지 기대가 된다.

블로그 베스트셀러 <생협의 시라이시씨>

일본 출판 정보지 <쓰쿠르>는 2006년 2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미국에선 잡지를 출판물로 판매하면서 동시에 같은 내용을 디지털 콘텐츠로 판매한다. 일본에서 이런 비즈니스가 확대되면 출판계는 대응할 수 있을까.” 또한 <전차남> 같은 인터넷 발신 히트작들은 아직까진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선 ‘출판물’이라는 중재자가 필요하며 이런 상황을 과도기적 현상으로 해석했다.

2000년 설립된 고단샤 디지털 사업국의 요시이 준이치 국장에게 잡지의 온라인 전략을 묻자 “특별히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2000년 ‘Web현대’로 웹저널리즘을 주창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지금은 잡지의 일부 콘텐츠를 무료로, 유로로 공급하는 수준이다. “인력과 기술이 사내에 있다고 기계적으로 종이를 디지털화하면 성공할 수 없다.” 그는 “콘텐츠 생산자가 처음부터 디지털화를 염두에 두고 생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 요시이 준이치 디지털 사업국장(왼쪽)과 고가 요시아키 <쿠리에 자폰> 편집장. 이들은 각기 '디지털'과 '종이'라는 다른 도구로 잡지. 출판 시장의 새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고단샤는 인터넷 광고나 콘텐츠 유로사업에 기반을 둔 회사가 아니다. 컴퓨터, 게임에 독자를 뺏겼다는 건 흥미로운 콘텐츠를 못 보여주는 출판사의 변명이다.” 요시이 국장은 “고급 콘텐츠로 사람들을 모아 단행본이나 잡지로 유도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최근 디지털 사업국은 고단샤 콘텐츠 포털 사이트 ‘MouRa’(http://moura.jp)를 매개로 서적 <생협의 시라이시씨>(生協の白石さん)를 발간해 인기를 끌고 있다. 2006년 2월 중순까지 88만 부 이상 팔렸다. 시라이시씨는 도쿄농공대 소비생활협동조합의 직원으로 식당, 점포에 비치된 의견엽서에 적힌 학생들의 질문에 항상 성실하고 재미있게 답을 달아준다. 그의 얘기가 블로그에서 화제가 되자 ‘MouRa’ 편집자는 시라이시씨를 취재해 온라인에 게재했다. 그리고 2005년 11월 의견엽서의 문답을 모아 단행본으로 발간해 히트를 친다. <쓰쿠르>가 말한 ‘과도기적 현상’이다.

현재 디지털 사업국의 매출액 20억엔의 절반은 모바일 게임에서 나온다. 요시이 국장은 “출판사는 재능을 대리해 돈을 버는 회사다. 요즘 문예지나 만화 잡지에 응모하는 사람이 적다. 하지만 문자 사용량은 증가하지 않았나. 종이를 쓰는 이들이 줄었을 뿐이다. 지금의 출판사 구조로는 재능을 모으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디지털 사업국의 비전은 인터넷에 널린 재능들을 발굴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소설가 가네하라 히토미는 휴대전화 이메일로 틈틈히 메모를 남긴 뒤 집에서 컴퓨터로 이메일을 정리하며 소설을 쓴다. 문학은 변신 중이다. 종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고단샤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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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판 新주류 70년대생
굿바이 386, 우리는‘쿨’한 세상으로 간다
‘신세대’ ‘X세대’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란 70년대생들이 한국 문화판을 이끈다. ‘80년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 없이 90년대의 다양하고 풍족한 문화를 누리며 자란 세대.
그들이 만든 영화는 2시간짜리 CF처럼 현란하고, 그들의 문학은 ‘가벼움’과 ‘자본주의’를 사랑한다.

“몇 년 전인가. 비디오 가게에 갔더니 주인이 ‘고객님 올해 총 340편의 비디오를 보셨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확 기분이 상하대요. ‘아, 올해 하루 한편도 보지 못했다니’ 싶어서요. 허허. 그냥 영화가 좋았어요.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에서 하는 외화들을 빼놓지 않고 봤고 지금도 하루 종일 비디오를 끼고 사니까요.”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은 ‘범죄의 재구성’은 최동훈(33) 감독의 데뷔작이다. 올해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영화의 시나리오도 그가 직접 썼다. 1971년에 태어난 최 감독은 ‘영화광’이 될 수 있었던 90년대의 문화적 토양이 없었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1990년 대학에 입학해 열심히 ‘운동’을 하고 군대를 다녀왔는데, 대학문화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처음엔 좀 혼란스러웠지만 곧 익숙해졌다. 달라진 문화가 어릴 적부터 반쯤은 겪어왔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밀려드는 대중문화 속에서 그를 사로잡은 건 영화였다. 영화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또래 영화광 친구들과 함께 일반 극장에서는 상영되지 않았던 영화를 ‘구운’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돌려봤다. 그가 몰두했던 건 범죄 스릴러와 할리우드 B급영화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주제의식이 강한 영화보다는 영화적인 재미를 주는 영화가 좋았어요. ‘범죄의 재구성’은 범죄 스릴러, 말 그대로 장르영화죠. 범죄 스릴러를 좋아하다 보니 관련된 영화들을 많이 봤고 결국 영화로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가 뭐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뭐랄까, ‘사기꾼도 경찰에 잡히지 않고 잘살수 있다!’쯤 될까요. 이게 현실이기도 하고요.”

영화아카데미 졸업 후 보습학원에서 국어강사를 하면서 데뷔자금을 모았다는 그는 “재미를 위한 투쟁은 영원하다”며 웃었다.

80년대라면 광주항쟁보다는 3S (Screen, Sports, Sex)를 먼저 떠올리는 세대, 90년대 들어선 ‘신세대’ ‘X세대’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한 20대를 보냈던 세대,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풍족한 문화적 토양을 누린 세대. 이들이 바로 1970년대생이다. 만 나이로 현재 25세에서 34세인 이들은 어느덧 한국 문화계의 중심축이 됐다.

된장냄새에서 벗어나고 싶다

영화계는 이미 70년대생 감독들이 주류를 형성해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최동훈 감독을 비롯해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34), ‘킬러들의 수다’의 장진(33),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류승완(31),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김동원(30),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의 용이(30) 등이 주목받는 70년대생 감독들이다. 데뷔작을 찍고 있거나 데뷔를 준비하는 감독들도 대부분 70년대생이다. ‘슈퍼스타 감사용’의 김종현(34), ‘그놈은 멋있었다’의 이환경(34), ‘남극일기’의 임필성(32), ‘신부수업’의 허인무(30) 등이 대표적이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 ‘연출감각이 새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70년대생 감독들. 이들은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이른바 386세대라 불리는 전세대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광활한 남극대륙의 설원을 배경으로 한 한국 최초의 남극 탐험물 ‘남극일기’를 찍고 있는 임필성 감독. 남극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6명의 탐험대원이 겪게 되는 원초적인 갈등을 담고 있다.

“서스펜스적이면서 호러적인 느낌이 강한 드라마예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본 사람들이 ‘재미는 있는데 한국영화 같지가 않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기뻤어요. 제가 원했던 바거든요. 된장냄새 나는 정서보다는 국제적 보편성, 즉 영화 자체의 재미로 세계 어디서나 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이런 점이 예전 세대의 감독들과 다른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매년 100편 이상의 영화를 보면서 컸다는 임 감독은 대학입학 후 바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독립영화 워크숍’ ‘영화제작소 청년’ 등 독립영화단체에서 활동하며 단편영화 ‘소년기’ ‘베이비’ 등을 만들었고, 이 것들이 베니스영화제 등 다수의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영화제작소 청년’에 있었던 선배들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총과 칼’이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저는 영화 자체가 중요한 거지, 사회현상을 담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서스펜스와 호러, 스릴러 장르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런 장르의 영화를 만들면서 그 내용이 사회참여적일 수는 있겠죠. 하지만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 먼저는 아닙니다.”

‘남극일기’ 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서스펜스, 호러, 스릴러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그는 좋아하는 장르여야 자신 속에 체화(體化)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를 비롯한 70년대생들은 6·25전쟁이나 4·19혁명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경험의 폭은 예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고 다양해졌죠. 배낭여행, 어학연수 등을 하면서 외국을 체험했던 첫 세대이기도 하고 시네마테크 운동이나 다수의 영화제를 통해 수많은 영화들을 접하면서 간접경험을 많이 한 영화광 세대이기도 하거든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혜성처럼 나타나 ‘다찌마와Lee’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을 만든 류승완 감독은 70년대생을 대표하는 감독이다. 그는 다른 또래 감독들에 비해 사회참여활동을 많이 하는 편. 2년 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때는 삭발을 하기도 했고 지난 총선 때는 민주노동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류 감독은 자신의 성향과 영화를 연계해서 보지는 말라고 잘라 말한다.

“류승완을 지우고 영화 봐달라”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부시가 싫고 어린 소녀를 죽이고도 진심 어린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내빼버린 미국군인이 싫은 거지, 무조건 미국이 싫은 건 아닙니다. 전 미국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맥도널드 햄버거를 잘 먹으며 미국 냄새가 물씬 나는 히피스러운 옷을 입고 다녀요. 제 사회활동은 거대한 이즘(∼ism)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그냥 제가 이성적으로 판단해 옳은 것을 따라가려는 것뿐이죠. 그런데 이런 제 활동과 영화를 연계해서 바라볼 때는 정말 어이가 없어요.”

1973년 충남 온양에서 태어난 그는 시대적인 억압을 심각하게 느꼈던 기억이 없다. 온양이 관광도시라 유신의 잔재였던 ‘통행금지’를 경험하지 않았고, 청소년 시절 대학가 근처에서 통학하면서 최루탄 가스를 맡고 흘린 눈물의 의미도 앞 세대와는 전혀 달랐다. 그에게 80년대는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동시상영관에서 보던 람보와 성룡의 시대였다. 특히 성룡의 액션영화는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릴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90년대 성인으로 첫발을 내딛자 이른바 ‘공공의 적’이 사라져버렸다. 덕분에 그는 절대적인 악과 치열하게 싸워본 경험도,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도 없다. 그래서일까. 류 감독의 영화를 보면 절대적인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는다. 또 시대의식에 얽매여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강요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는 그가 만든 영화의 스타일이 모두 다르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이번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이후 아라한)’은 ‘신나게 즐겨보라’고 만든 오락영화입니다. 그런데 ‘재미는 있으나 류승완식의 뭔가가 아쉽다’는 평가를 받게 되더군요. 그냥 류승완이라는 인물을 지우고 영화를 즐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말처럼 저의 관심사와 환경이 다 변하는데 어떻게 똑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겠어요?”

류승완 감독 역시 영화광 세대로 다양한 영화를 섭렵했다. 하지만 그는 일찍 ‘액션’이라는 ‘전공분야’를 택해 파고들었다. 마음에 드는 장면은 수십 번씩 반복해서 봤다. 주로 리얼한 액션 장면들이었다.

“‘아라한’ 중반 이후에 나오는 액션장면이 지나치게 길고 늘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꼭 그 부분을 부각시키려고 했던 건 아닌데. 예전부터 액션장면에 탐닉했던 게 무의식중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죠. 사람들은 비판하지만 전 그 장면들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영화를 DVD로 다시 본다면 액션장면만 자꾸 돌려서 볼 것 같은데요.”

시네마테크에서 자란 그들

최동훈 감독은 범죄 스릴러, 임필성 감독은 호러와 서스펜스 스릴러, 류승완 감독은 액션. 같은 70년대생이지만 이들은 좋아하는 장르도, 표현하는 방식도, 살아온 경험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들 70년대생 감독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영화광’이다.

90년대 초반은 시네마테크 운동(기억해야 할 유수한 영화문화 유산들을 공유하고 보존하려는 운동)이 태동했던 시기였다. 엄밀히 말하면 ‘비디오테크’였다. 90년대 들어 비디오가 보편화되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문화학교 서울’ 등 대학내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전 명화들을 구해 비디오테이프로 ‘굽고’ 자막을 만든 후 돌리거나 모여서 보곤 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70년대 초반생들은 비디오테크 운동을 통해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고전명화들을 섭렵할 수 있었고, 이중 상당수가 ‘영화광’이 됐다.

90년대 중반 이후 복사 테이프가 아닌 영화필름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시네마테크 운동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02년 전국 15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연합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를 구성했고 그해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한 후 지금까지 다양한 포럼 형식으로 고전명화들과 제3세계 명화를 상영하고 있다.

“시네마테크 운동은 70년대생 영화감독들이 영화광이 될 수 있었던 토양이었죠. 이들은 지금도 포럼 기획이나 영화 선정에 참여하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거장 감독에 대한 강연도 합니다. 현재 시네마테크 운동의 주역 역시 70년 전후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설명이다.

한편 70년대생 감독들은 대부분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 임필성 감독은 “영화광의 최종 목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시나리오 작성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충무로의 속성상 시나리오를 직접 써야 빨리 쉽게 데뷔할 수 있는 점도 물론 크게 작용한다.

 

70년대생들이 청소년기를 보냈던 80년대의 놀이문화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또 다른 공통점이다. ‘아라한’의 주인공이 80년대 텔레비전 만화의 주인공이었던 마루치 아라치인 점, 1974년생인 김동원 감독의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에 나오는 디스코텍 문화, 그 외에 서울우유병, 88올림픽, 롤러장 문화 등 70년대생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 속엔 80년대적인 소품이 가득하다. 이는 단순한 소품 이상의 작용도 한다.

“386세대인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이소룡이 나왔지만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는 성룡이 나옵니다. 두 감독의 차이는 바로 이소룡과 성룡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이소룡은 완벽했지만 비극적 인물이었던 반면 성룡은 약간 어수룩하면서도 희극적인 인물이죠. 이는 ‘말죽거리 잔혹사’와 ‘아라한’이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씨의 설명이다.

영화광세대와 영상세대의 차이

한편 현재 영화판 스태프들은 대다수가 70년대생이다. 특히 연출진과 마케팅 담당자들 중 60년대생을 찾아보기는 힘들 정도. 조감독도 이미 70년대 후반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감독의 나이에 관계 없이 연출진의 젊은 피가 영화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영화 ‘싱글즈’의 시나리오를 쓴 노혜영(28) 작가의 이야기.

“주인공들이 제 또래였기 때문에 제 감각대로 쓰긴 했지만, 글을 쓴 후 반드시 스태프들의 ‘검열’ 과정을 거쳤어요. 특히 젊은 여성 스태프들이 공감하는 내용이라면 관객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감독님(권칠인·43) 역시 스태프들을 통해 많이 배웠다고 해요. 사실 시나리오만 볼 때는 몇몇 부분이 의아하기도 했는데 저와 젊은 여성 스태프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문맥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하죠(웃음).”

그런데 영화 스태프들은 같은 70년대라도 중후반생이 많다. 이미 70년대 초반생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상황이니 연출진이 더욱 젊은 것은 당연한 일. 류승완 감독은 “70년대 후반생인 조감독이나 80년생인 동생(배우 류승범)과 이야기하다 보면 같은 세대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다른 면이 많다”고 한다.

“70년대 초반생을 영화광세대라고 한다면 중후반생은 그냥 영상세대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스토리보다는 영상 자체에 맞춰져 있죠. 저희만 해도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겨 문학작품을 읽고 고전영화를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중후반생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와 다를 뿐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나리오는 전문작가에게 맡기고 빼어난 영상을 만드는 데만 몰두할 수 있으니까. 그보다는 극영화의 쇠퇴가 문제인 것 같아요.”

류 감독은 요즘 70년대 중후반의 젊은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실험적 독립영화들이 상당수 다큐멘터리인 점에 주목했다.

“70년대 초반생들은 극영화에 몰두했어요. 극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을 극복하려고 하죠. 하지만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만든 독립영화 중엔 현실을 재가공해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많아요. 사회 속에 감춰진 다양한 이면들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에요. 그게 아쉽죠.”

죽음을 이야기했던 신세대 문학

70년대생이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영화계뿐만이 아니다. 문학에서도 70년대생 작가들은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았다. 1970년생인 김연수(34)는 지난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2002년에 등단한 새내기 정이현(32)은 첫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올해 동인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새롭고 톡톡 튀는 젊은 감각으로 문단을 자극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권위 있는 문학상까지도 휩쓰는 ‘주류’가 된 것이다.

사실 문화계에서 70년대생 작가들이 주목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이들은 ‘신세대 문학’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빠이, 이상’의 김연수, ‘내가 사랑한 캔디’ ‘목화밭 엽기전’의 백민석(33), ‘검은 사슴’ ‘내 여자의 열매’의 한강(34),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의 김경욱(33), ‘무정한 짐승의 연애’의 이응준(34) 등이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1990년대 초반 등단한 이들은 당시 사회와 국가, 민족이라는 거대담론이 무너지고 소비자본주의,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커지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내부로 참잠해버리고 마는 개인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 ‘큰 것’에 억눌려 있던 1980년대를 보상하기라도 하려는 듯 ‘작은 것’, 즉 개인을 극대화하는 경향을 보인 것. 하루키적(的), 허무주의, 쿨(cool), 재즈, 암흑 그리고 죽음 등이 당시 이들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정서였다.

 

문학평론가 홍기돈씨는 “90년대에 들어서 투쟁 대상, 즉 공공의 적이 사라졌는 데도 세상은 여전히 지저분하다는 것을 깨달은 70년대생 작가들은 냉소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는 일정한 ‘거리두기’, 즉 ‘쿨한’ 태도를 가지려 했고 결국 세상 밖의 영역인 죽음을 이야기하게 됐다.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육식원숭이’로서의 인간을 그린 것이다. 백민석이나 김연수, 한강의 초기작들을 보면 모두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육식원숭이는 백민석의 대표작 ‘목화밭 엽기전’에 등장하는 말.

이렇듯 10년 이상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이들을 70년대생 작가 1세대라고 한다면 비슷한 나이라도 90년대 후반~2000년대에 등단해 2000년 이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은 2세대라 할 수 있다. 2세대 작가들로는 ‘야살쟁이록’의 김종광(33), ‘바늘’의 천운영(33), ‘삼오식당’의 이명랑(31),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정이현, 그리고 68년생이지만 등단시기 및 작품 성향에서 70년대생 작가로 분류되고 있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박민규(36) 등이 있다. 이 두 집단은 같은 70년대생이지만, 생물학적 나이의 같음과 등단시기의 차이에 따라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성을 보인다.

촛불시위 같은 세대

1세대의 대표주자는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지난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연수다. 그 역시 60년대 초중반생 선배작가들이 갖고 있었던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자유롭고 민족과 사회에 대해 과도한 부담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전형적인 70년대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촛불시위가 딱 70년대생의 성향을 대표한다고 봐요. 무척 진보적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위험이 없는 한에서만 그렇게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는 않는 딱 그 정도. 이게 선배 세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죠.”

그가 처음 ‘빠이, 이상’을 쓸 때 선배 작가들은 “왜 그런 사람(이상)을 소설로 쓰느냐”며 나무랐다고 한다. 20대 내내 카프(KAPF·1925년 한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조직한 대표적인 문예운동단체)문학만 공부한 선배들로서는 친일행위자에 자유주의자였던 이상을 논할 수 없었겠지만 김연수 자신은 달랐다. 자유주의자 이상의 면모에 대해 파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한,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제 소설의 자료는 문헌이에요. 문헌을 살피다보면 치명적인 역사적 경험을 하지 않은 것이 정말 행운이라고 느껴져요. 6·25 등 너무 강렬한 체험을 한 사람의 경우 모든 상황을 그 체험에 비춰보려고 하거든요. 일종의 편견이 생긴다고 할까. 그런 상태에서는 상상하는 데도 한계가 있죠. 사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이야기만 계속 하게 되는데, 그건 수필이나 보고서지 소설이 아니라고 봐요. 무채색의 상태이기 때문에 가장 편견 없이 자료를 살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가장 진실한 소설을 쓸 수 있죠.”

김연수는 요즘 1930년대 만주지역을 배경으로 삼은 역사소설 ‘밤은 노래한다’를 문예지에 연재하고 있다. 집필을 위해 옌볜에서 체류하고 있는 그는 옌볜, 일본, 남한, 북한의 자료를 모조리 모아 일일이 살핀다고 한다. 각각의 입장에 따라 나온 자료를 읽어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은 반쪽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게 됐다.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실을 담고 싶다는 그는 공산게릴라 소설이나 일본은 무조건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소설로 쓰지는 않겠다며 웃었다.

“과거의 이념은 낡아버렸고 사회는 새로움을 요구하고…. 그래서 10여년 동안 나름대로 모색의 시간을 가졌어요. 치열함이 아닌 가벼움으로 살아왔던 70년대생들의 사랑을 대중문화 코드를 적절히 섞어 감각적으로 그려보기도 했고(‘사랑이라니, 선영아’) 자전적 소설을 쓰기도 했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그런데 이젠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현대를 보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개인을 통해 구조를 본다

김연수가 70년대생 작가의 맏형이라면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정이현은 2세대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막내급에 속한다. 2002년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등단한 후 지난해 같은 제목의 소설집을 내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그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문학계의 중론이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정이현의 소설이 2000년대적 문학의 포문을 열었다”고 평했다.

정이현의 소설집에는 ‘나쁜 여자’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혈흔’을 이용해 일등 신랑감을 잡으려는 20대 여성(‘낭만적 사랑과 사회’), 자신의 성을 이용해 승진을 거듭하다 정부를 살해하기까지 하는 여자(‘트렁크’), 남자친구와 짜고 부모를 상대로 가짜 납치극을 벌이는 10대 소녀(‘소녀시대’) 등등. 도덕적 가치나 윤리가 아닌 욕망에 따라 행동하지만, 이들에게 욕망 역시 하나의 전략에 불과하다. 그런데 적나라하게 그려진 그녀들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아주 평범한 이야기예요. 분명 현실에 존재하지만 문학에서는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던. 실제로 제 주변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이야기들이고요. 독자들, 특히 20∼30대 여성들은 ‘내 이야기 같다’고 해요.”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강남지역에서 쭉 살았다는 그는, 자신이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영화와 가요 등 대중문화와 호흡하며 순탄하게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어릴 적 매달 용돈이라는 것을 받아 사고 싶은 무언가를 사면서 ‘돈이 참 유용하구나’ 느꼈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무척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여대에 입학한 데다 학생운동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1학년 때 데모 조금 나가본 게 ‘운동’의 전부였다. 주변에 여자친구들이 사랑이니 결혼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까 싶었다. 죽을 만큼 사랑했다면서 이혼하거나 맞바람을 피우고, 혼수 때문에 결혼이 취소되고, 양다리 걸치면서 연애하고…. 그런 현실 이면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나름의 진실을 찾아 소설 속에 녹였다.

“평범한 일상사를 통해 나와 내가 속한 사회적 관계의 위선과 속물근성 등을 냉소적이면서도 적나라하게 그려보고 싶었어요. 80년대가 구조를 통해서 개인을 그렸고 90년대가 개인으로만 침잠했다면, 2000년대에는 개인을 통해서 구조를 봐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이현의 소설에서 자본주의는 완전히 일상이 돼버렸다. 문학평론가 백지연씨는 “90년대 중반 ‘신세대 문학’이 뜨던 시절만 해도 소비자본주의는 놀라움의 대상이었고 또 자아와 충돌하는 기제였다. 하지만 정이현의 소설에서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놀라울 것도, 대립각을 세울 것도 아니다”고 말한다.

“와인색 코트보다는 막스마라 코트를 입었다고 하면 더 와닿지 않나요? 100만원짜리 고급가방보다는 프라다 가방이 더 와닿고. 한 원로 소설가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소설에서는 그냥 나무라고 하지 말고 그 이름을 모두 이야기해줘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다 이름 모를 나무일 뿐이에요. 대신 맥주의 경우 하이트, 버드와이저, 기네스로 명명하면 그 느낌을 더욱 선명하게 알 수 있겠죠.”

강남과 영등포시장의 리얼리즘

정이현이 사회에 대한 냉소를 날린다면 비슷한 나이의 여류작가 이명랑은 가슴속부터 터져나오는 뜨거운 진정성을 쏟아내는 스타일이다. 이명랑은 ‘삼호식당’ ‘나의 이복형제들’을 통해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살아온 영등포시장을 무대로 인간 본연의 사랑과 욕망을 솔직하고 구성지게 그려내고 있다.

“제가 살면서 만나온 사람들은 전혀 냉소적이지 않았어요. 아이를 배고 쉼터를 찾아온 10대 미혼모도, 목돈을 빌린 후 매일같이 이자를 갚아야 하는 영등포시장 아줌마도, 바람피우다 남편에게 들켜 매일 맞고 지내는 아줌마도 모두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었죠. 저는 세상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체험했고 그런 삶의 진정성을 제 문학을 통해 나타내려고 했어요.”

이처럼 70년대생 작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바로 ‘다름의 미학’이다. 문학평론가 고영직씨는 “70년대생 작가들은 역사적 부채의식이 엷고 인터넷과 대중문화에 친숙하다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거대담론이 사라진 후 개별적으로 각기 다른 경험을 함으로써 작품으로 표현하려는 이야기도 각기 달라진 것”이라고 정리한다.

하지만 소설가 김종광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스스로를 ‘전교조 세대’라 부르는 그는 90년대에 ‘왕따’를 당했던 순수 리얼리즘을 지키고 있는 작가다.

“작가라면 자기 세대를 기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 전교조 교사들이 무지막지하게 끌려나가는 모습을 봤고 이들과 함께 투쟁했으며 대학에서는 전대협에서 한총련으로 바뀌는 시대에 학생운동을 했어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너무 미약한 움직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아요. 전교조 교사들이 해직될 때 서울에서만 100여개 학교 학생들이 데모에 나섰어요. 학생운동도 나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요. 오늘날 한국엔 4·19세대와 6·10세대뿐 아니라 전교조세대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른 70년대생 작가들도 자신들이 겪은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과 같이 리얼리즘 작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전교조세대를 그리고, 이명랑이 영등포 시장을 나타내고, 정이현이 강남의 삶을 표현하는 것 역시 리얼리즘 문학이라는 것. 즉 내용도, 표현방식도 다르지만 자신의 세계, 자신의 속한 계급을 그리는 것은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꾼의 시대

70년대생 작가들은 문학 외 다른 장르에도 관심이 많고 이를 자신의 작품에 표현한다. 정이현의 소설집에는 영화, 뮤직비디오와 같은 대중문화와 자동차, 명품 브랜드 등이 넘쳐난다. 그는 “케이블 OCN에서 하는 영화들, ‘섹스 앤 더 시티’나 ‘프렌즈’ 등을 자주 봤고 여성 포털 사이트 마이클럽에서 죽치고 있었던 적도 많다. 이런 것들이 작품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면서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의 10계명(완전무결한 첫날밤을 치르기 위한 계율. 작가가 여성화자를 냉소하기 위해 만든 소설적 도구)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돌아다니는 걸 각색한 것”이라고 말한다.

박민규의 소설 ‘지구영웅전설’을 보면 만화와 영화 캐릭터인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이 등장하고 ‘삼미슈퍼스타즈’에는 프로야구와 대중가요가 나타난다. 예전 작가들이 대중문화에 빠져드는 가운데서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들 작품에서 대중문화는 완전히 생활의 일부가 돼버렸다.

“예전엔 새로 등장한 세대가 선배 세대를 ‘타도’하면서 입지를 굳혀나갔어요. 하지만 이젠 선배작가가 아닌 영화나 방송 등 타 장르가 타도 대상이 됐죠. 실제로 영상시대다 보니 문학을 할 사람들이 시나리오작가나 아예 영상을 찍는 감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타 장르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가 70년대생 작가의 중요 화두가 된 거죠.” 문학평론가 고영직씨의 이야기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70년대생 작가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불필요한 권위의식을 없애고 재미있는 이야기꾼으로 친근하게 다가선다는 점이다. 이명랑은 “인터넷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도 잘 읽는다. 진정성만 드러난다면 소설에 우열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인터넷 소설이 대세라고 했을 때 내가 거기에 적응하면 살아남고 안 되면 도태될 뿐”이라고 말한다. 김연수 역시 “사회 구성원이 공유해왔던 공동체적 경험이 사라진 지금 소설가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보고 상상해야 한다. 독자의 시선을 끌 만한 새로운 소설이 아니면 읽히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영화계와 문학계에서 주류로 자리잡은 이들 70년대생들에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70년대생의 한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영화평론가 이상용씨와 문학평론가 홍기돈씨 모두 ‘경험의 부재’와 ‘주제의식 없이 감각으로만 승부한다’는 점을 꼽았다.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다’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무지와 탈(脫)역사성은 자랑스러워할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표현하지 않는 것과 아예 모르는 것은 다르다. 주제의식 없이 영상적인 기교로만 승부하려는 모습도 있다. 이런 영화는 거의 실패할 수밖에 없다(이상용).”

“감각이 글을 풀어나가는 전략인 것과 감각이 글의 전부인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다양성, 감각적, 영상적이라는 포장 하에 최소한 소설로서 지켜야 할 틀, 즉 말하고자 하는 바와 최소한의 서사조차도 없는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홍기돈).”

자본주의의 포로 될 수도

또 70년대생들은 정치적, 사회적 억압을 받았거나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진 않으나 그에 못지않은 자본주의의 억압을 받고 있다. 영화잡지 ‘필름 2.0’의 장병원 취재팀장은 “데뷔하려는 70년대생 감독들은 첫 작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흥행에 실패하면 어떤 기획사도 그 감독을 다시 쓰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한번 쓰이고 버려지는 소모품이 되는 것이다. 몇몇 70년대생 감독들이 데뷔작 실패 후 지금까지 후속타를 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임필성 감독은 “기획사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작품의 경우 감독은 소모품 역할밖에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저도 ‘남극일기’를 준비하면서 난항을 많이 겪었어요. 기획사도 여러 번 바뀌었고 투자자가 모이지 않아 고생도 했고요. 그때 한 기획사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로 영화를 만들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즉 기획사의 아이디어를 시나리오작가가 쓰고, 그 시나리오로 감독은 연출만 하는 거죠. 고민했지만 거절했어요. 제게 체화되지 않은 것을 잘 만들 자신도 없었고, 데뷔작이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물론 있었겠죠.”

출판시장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다. 몇몇 거대 출판자본이 원하는, 잘 팔리는 기획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럴 경우 신인작가인 70년대생들은 출판자본에 꼼짝없이 옭매이게 된다. 이는 최근 70년대생의 소설들이 쉽게 읽히고 무엇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70년대생들을 얘기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이 ‘낀세대’다. 경험과 사상의 깊이에서는 60년대생에게 떨어지고 개성과 감각에서는 80년대생보다 처지는, 중간에 낀 세대. 하지만 90년대 초 거대담론이 이끌었던 사회의 끝물에서부터 서태지로 상징되는 대중문화시대,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정보화시대, 그리고 소비자본주의가 꽃피었던 시대와 그 정반대인 IMF 관리체제 상황까지 70년대생들이 겪은 경험의 스펙트럼은 다른 어떤 세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70년대생 문화인들은 한결 같은 소리로 말한다. 위, 아래의 다양한 문화를 나름의 방식으로 체화(體化)해 흡수하고 있다고. 이런 자양분은 다른 세대는 결코 만들어내지 못한 작품으로 나타나게 될 거라고.

   (끝)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발행일: 2004 년 07 월 01 일 (통권 538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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