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출판사를 찾아서 (6)] “사진을 통해 역사를 기록한다”
사진 전문출판사 ‘눈빛’
사진과 관련 책만 18년째 펴내··· "외국인에게 한국의 모습 보여주고 싶어요"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오래된 집이다. 이끼 낀 보도블록 옆으로 시멘트 담장이 서 있고, 그 담을 따라 담쟁이 덩굴이 손을 내밀고 있다. 붉은 벽돌로 경계를 두른 화단이 손바닥만하다. 듬성듬성 나있는 이름 모를 풀 사이로 몇 그루의 나무가 삐죽 서있다. 나뭇가지에 걸린 젖은 수건이 눈에 띈다. 그 옆엔 둘둘 말린 고무 호스와 삽자루가 놓여 있다. 물 주고 거름 줄 때 썼던 것이리라. 1988년 설립해 사진과 관련된 책만 18년째 펴내고 있는 전문출판사 ‘눈빛’. 마포 성산동에 있는 이곳은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시골집에 가까웠다.

“전엔 여기서 상추를 키워 먹었어요. 건평 25평에 대지가 35평쯤 되니까 별로 넓진 않지만 그래도 별미로 먹을 정도는 키울 수 있었거든요. 겨울에 눈이 쌓이면 분위기가 아주 그만이에요.” “사무실이 운치있다”고 말을 건네자 이규상(46) 대표가 말을 받았다. ‘눈빛’에 대한 그의 소개가 뒤를 이었다.

“사진은 역사의 기록이란 생각을 갖고 있어요. 사진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광고사진이나 살롱사진 아니면 누드사진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리고 실제로 사진에서 상업사진의 비중이 높은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저희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있어요. 사진을 역사를 기록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는 거죠. 글로 써서 기록하는 역사와는 다른, 현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생생한 매체라고 여기는 거예요. 그래서 시위현장이나 도시 빈민의 삶, 두메산골의 생활, 러시아의 한인들, 북한의 모습, 안데스나 히말라야 마을, 나아가 구한말 조선의 모습이나 독립운동 현장 같은 역사의 장면을 책에 담고 있습니다.”

여균동 감독과 함께 설립

이 대표는 통 넓은 구겨진 바지에, 체크무늬 남방,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가 긴장되는지 연방 오른쪽 다리를 탈탈탈 떨며 말을 이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1998년 당주동 볼룸댄스홀 5층에서 문을 열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밑에서 계속 차차차, 트로트가 들려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그럭저럭 괜찮더라고요. 따라 불러가며 사진을 만졌죠. 허허.”

지금은 껄껄 웃지만 17년 전 상황은 그리 편치 않았다. 결혼 3개월째인 새신랑이 무작정 사표를 낸 것이었다. “다니던 출판사를 석 달 만에 그만뒀어요. 어머님께는 말씀도 못드리고 집사람한테만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선 평소와 똑같이 아침에 출근하는 것처럼 나와서 도서관에 가있곤 했지요. 그러다가 하루는 예비군 훈련을 갔다왔는데, 집사람이 ‘여균동씨한테 전화가 왔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화를 했죠. 그랬더니 출판사를 해보자는 거였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지금은 영화감독이 된 여균동씨(당시 민중연극 기획자),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당시 월간미술 기자), 이기원 안성대안학교 교장(당시 사회사진연구소장) 등이 설립 멤버였어요. 사진을 통해서 사회적 역할을 해보자는 데 공감을 했던 거예요. 지금은 각자 제 갈 길로 갔지만 그땐 찰떡궁합이었어요.”

눈빛이 지금까지 펴낸 책은 약 270종. 18년에 달하는 출판 경력을 감안할 때 많은 분량은 아니다. 하지만 여순사건을 사진에 담은 ‘격동기의 현장’(1만부), 서울 달동네 모습을 담은 ‘골목 안 풍경’(3000부) 등의 책이 주목을 받으면서 어엿한 사진 전문출판사로 자리를 굳힌 지 오래다. “지난해 매출이 2억5000만원이에요. 많지는 않지만 저희 출판사 4명(사장 포함)이 올리는 것치고는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많을 땐 3억원 이상 매출이 오르기도 하니까, 현상을 유지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어요. 게다가 부채가 많지 않아요. 그러니까 욕심부리지 않고 아껴쓰면 그럭저럭 지낼 만하죠.”

‘눈빛’의 특징은 매출액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점. 사진이란 장르의 특성상 독자층이 고정돼 있는 데다 항상 일정한 수의 매니아가 책을 구입하기 때문에 매출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 경제위기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대형 서점도 부도를 맞고 쓰러지는 판이었는데 저희는 큰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 ‘11시에 만납시다’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 프로에 저희 사진집이 소개된 적이 있는데 그 다음날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질 않는 거예요. 보통 그렇게 소개될 경우엔 수백~수천 부씩 주문이 들어온다고 하던데 저희는 그렇지를 않았어요. 주문이 40부밖에 안들어왔거든요.”

이 대표는 원인을 곰곰이 분석해 봤다. “아무래도 그게 사진이란 장르의 특성 때문인 것 같아요. 저희 독자층은 사진 전문가나 매니아들, 아니면 영화 연극 무용처럼 사진예술과 관련을 맺고 있는 분이 대부분이에요. 이런 분들이 한 1000명 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이 꾸준히 저희 책을 사주시는 거죠. 반면에 사진에 관심이 없는 독자는 아예 저희 책에 흥미를 보이질 않습니다.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분도 없어요. 그러니까 매출이 크게 떨어지지 않지만 크게 오르지도 않는 거죠.”

경기변동과 매출 큰 관계 없어

이 대표는 “최근 들어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영상물의 기본이 되는 것은 스틸 사진이에요. 과학에도 기초학문이 있듯이 사진은 영상예술의 기초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진을 전문적으로 다룬 책은 그리 많지 않거든요. 저희는 그러니까 일종의 틈새시장을 공략한 셈이 된 거죠.”

독특한 장르를 추구하고 있는 출판사인 만큼 눈빛의 마케팅 전략은 여느 곳과는 다르다. 서적의 판매도 일반 대형서점보다 관련 장르를 다루는 전문서점을 통해 주로 이뤄진다. “홍보는 사진과 관련된 전문지를 통해서 합니다. 전시회를 가질 만큼 의미가 있는 사진일 경우엔 전시회를 열기도 하죠. 전시회장에서 책을 팔기도 하고, 인사동이나 충무로 같은 곳에 있는 예술전문 서점들을 통해 팔기도 합니다. 그런데 돈이란 게 꼭 옹달샘 같은 것이더라고요. 다 쓰고 없어졌다 싶으면 어느새 또 조금 고여있고, 고여있다 싶으면 또 어느새 없어지고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무리해서 금전을 따라갈 필요가 없지 않나 싶어요. 그런 것보단 자기가 하는 일에 얼마나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눈빛의 향후 과제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 이 대표는 “눈빛의 사진책에 외국인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쥘마(Zulma)출판사에서 김유정 단편집 ‘소나기(Une averse)’와 황석영씨의 소설 ‘오래된 정원(Le Vieux Jardin)’을 번역출간한 적이 있어요. 그때 쥘마출판사에서 저희 사진을 책 표지에 사용했어요. 김기찬 선생 사진이었는데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외국인들은 글로 표현된 한국의 모습보다 사진으로 표현된 한국의 모습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수출을 꾀해보려고 합니다. 이번에 낸 ‘한국전쟁’ 시리즈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어요. 전쟁의 실상을 한눈에 알려줄 수 있으니까 글보다 더 강력하지 않습니까?”

이 대표는 인천상륙작전 모습, 낙동강 전선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영국군 등을 담은 스틸 사진을 바라보면서 ‘눈빛’을 반짝였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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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출판사를 찾아서 (5)] “언제나 프랑스는 내 사랑”
프랑스 전문 출판사 `만남`
1983년부터 22년째 프랑스 문화·문학·여학 전문 서적만··· 상황 어려워 변신 모색 중

▲ '만남' 의 차상면 대표
형광등 빛이 꾀죄죄한 바닥을 비춘다. 일곱여덟 평밖에 안 돼보이는 공간. 낡은 간이 칸막이 두 개가 틈을 가르고 서 있다. 구석엔 손때 묻은 책상이 있고, 그 옆엔 손님맞이용으로 보이는 낡은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다. 커튼으로 가려놓은 창틀 위엔 휴대용 가스레인지 하나가 보인다. 가끔 찌개라도 끓여 먹는 듯, 국물 넘친 자국이 어지럽다. 그러고 보니 김치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이삿짐을 싸다만 것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 청소하다만 것 같은 칙칙한 분위기가 시금털털하다.

프랑스와 관련된 책만 발행하는 프랑스 전문 출판사 ‘만남’. 프랑스 전문 출판사라기에 내심 ‘안개 낀 센강’을 연상했었다. 하지만 기대는 무참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우중충한 건물 틈새로 가내공장들이 자리잡고 있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 ‘만남’은 그곳에서 프랑스와의 만남을 꾀하고 있었다.

“어이구~, 찾아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차상면(48) 대표가 맞는다. 붕긋이 부풀어 오른 장발, 양복 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아저씨다. “그렇습니다. 프랑스 문화, 프랑스 언어와의 만남이란 뜻이지요. 신(神)과의 만남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그 두 가지의 만남에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차 대표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사무실 안에 선교회를 마련하고 매주 세 번씩 묵상과 예배를 한다. 사무실 안은 종이박스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박스 안에는 책들이 빼곡했다. ‘프랑스 문화와 사회’ ‘인지과학 입문’ ‘예술과 웰빙’ ‘프롱뜨낙 가(家)의 신비’ ‘가을’ ‘끌로드의 삶과 꿈’ 등 알듯 모를 듯한 제목 일색이다.

프랑스 문부성이 출간 지원도

“원래 이름은 ‘어문학사’였습니다. 1983년부터 시작했지요. 당시만 해도 국내에 프랑스 관련 저작물이 전무하다시피 했었습니다. 원서를 구해 읽는 것이 정말 쉽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불문학을 전공하는 전공자들이나 조금씩, 그것도 리프린트(해적판)된 책들을 구해서 서로 돌려가며 읽던 시절이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도 리프린트를 많이 했습니다. 프랑스 문학이나 어학 관련 서적은 그것이 유일한 유통경로였었거든요.”

차 대표의 이야기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엔 우리 사회에 프랑스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어’ 하면 왠지 모르게 낭만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이 사실이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원서를 사서 읽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어서 저희가 리프린트한 책을 갖다 드리면 대학 교수님들이나 전공자들이 무척 좋아하곤 했어요. 그분들 좋아하시는 모습이 저도 좋았고, 좋은 책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공급해서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5년 상호를 ‘만남’으로 바꾸고 프랑스 관련 서적만 집중적으로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 관련 서적만 다뤄온 차 대표의 존재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도 알려졌다. 2002년 ‘인지과학입문’을 낼 때 프랑스 문부성이 대사관을 통해 출간을 지원한 것이다. “큰 금액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상징적인 측면이 있으니까, 상당히 기뻤지요. 뿌듯하기도 했고요. 지원금으로 번역료를 지불하고 출간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프랑스어 제대로 공부한 적 없어

‘프랑스 매니아’ 차 대표는 하지만 프랑스와 관련된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20년 넘게 프랑스 관련 서적을 내왔지만 프랑스에 가본 적도 없다. 하지만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어깨너머로 조금씩 배운 프랑스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 한번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어떻게 된 게 갈 기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바쁘기도 했지만 게으른 탓도 있었겠죠. 그런데 앞으로는 프랑스에 갈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사정이 워낙 어려워서.”

차 대표의 말처럼 ‘만남’의 오늘과 내일은 험난하다. “한 7년쯤 전부터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제2외국어를 도외시하기 시작했잖습니까? 대학 입시과목에서도 제2외국어가 빠졌고요. 그 결과 지금은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과 어학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교양 불어 같은 과목을 듣는 학생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지방대학의 경우엔 더합니다. 전공을 바꾼 학생이 많아서 불문과 3~4학년생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갈수록 프랑스에 대한 관심도 적어지고 프랑스 문화나 문학에 관한 책을 읽으려는 독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차 대표의 고민은 매출로 직결된다. ‘만남’의 지난해 매출액은 1억원대. 그가 상호를 바꾸고 본격적으로 프랑스 관련 출판물을 내기로 결심한 1995년 매출액의 절반을 밑도는 규모다. “당시엔 직원도 서너명 됐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하고 경리를 담당하는 여사원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등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저 사람이 경리 담당자인데요, 사실 제 집사람입니다. 저 사람과 저, 이렇게 두 사람이 꾸려가고 있습니다. 저희 매출액이 1억원이라고 하지만 제작비, 운영비 빼고 번역료 세금 떼고 나면 빠듯합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이 4500부

‘프랑스 전문’이란 특성상 만남에서 낸 책 중엔 베스트셀러가 없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낸 책은 총 90종. 그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지난해 8월 출간한 ‘프랑스 문화와 사회’로 약 4500부가 나갔다고 한다.

만남을 힘들게 하는 것은 또 있다. 바로 인터넷이다. “요즘엔 인터넷이 발달해서 프랑스 서적이 필요한 독자은 직접 현지에 주문합니다. 우리는 적당한 책을 찾아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데요, 저희 책을 읽을 만한 독자들은 상당수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아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책이 번역돼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곧바로 책을 사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2외국어가 위축되고 프랑스어 전공자가 줄어들다 보니, 마땅한 번역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주로 대학 교수님들이 번역을 해주셨어요. 그 분들도 사정을 아시니까, 어떤 경우엔 번역료를 받지 않는 분도 계십니다. 그냥 책을 낸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분이시지요. 사실 1995년 상호를 바꿀 때엔 뜻이 맞는 몇몇 불문과 교수님들과 함께 ‘제대로 번역을 해서 제대로 된 책을 내보자’는 의지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1997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그냥 물 건너가 버리게 된 거죠. 이젠 로열티가 부담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2~3년 전부터는 새 책을 내는 것보다 기존에 냈던 책을 다시 찍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차 대표는 “솔직히 어떨 땐 프랑스 관련 서적만 고집했던 것이 후회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른 출판사들처럼 실용서도 좀 하고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의 출판물도 좀 다룰 걸 괜히 고집을 피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무용·영화 등의 공연예술과 만화·애니메이션 같은 영사예술 관련된 책도 좀 내보려고 합니다. 굳이 프랑스 것이 아니더라도 소개하면 유익하겠다 싶은 책을 내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프랑스’를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프랑스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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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출판사를 찾아서 (4)] “매니아들 있어 행복합니다”
추리소설 전문 해문출판사
28년간 '추리 외길' 고수… 설립자 며느리가 시아버지 뜻이어 6년째 경영

서울 합정동 주택가. 간판도 안내문도 없이 현관문 하나만 덩그렇다. 열고 들어가니 여직원 둘이 쓰는 작은 책상이 달랑 있고, 그 한편에 경리직원인 듯 보이는 아가씨가 앉아 있다. 그녀 뒤쪽에 방 하나가 더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사장실이라 여겼던 그 방은 2명의 편집자를 위한 편집실이었다.

“사장님 계십니까?” 아가씨에게 물었다. “제가 사장인데요.” 아가씨가 답한다. 헉! 학생 같아 보이는데 사장이란다. 1977년 설립된 이후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 80권’ ‘팬더 추리걸작 시리즈 50권’ ‘Q미스터리 시리즈 46권’ ‘모스 경감 시리즈’ ‘세계 추리 걸작선’ 등 고집스럽게 추리소설만 300여권을 내며 외길을 걸어온 전문출판사 해문. 28년 역사를 지닌 이곳의 사장은 29세의 젊은이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 한 살 때부터 경영을 했을 리는 없고.’

“이화여대 영문과 94학번이에요.” 이경선(29) 사장이 자신을 소개했다. “맹종호 전 사장님이 추리소설광이셨어요. 해문은 그 분이 세운 출판사입니다. 저는 그 분의 며느리고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2000년부터 ‘해문’을 맡아 경영하고 있습니다.”

의문은 풀렸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았다. ‘그렇다면 남편은? 자신이 며느리라면 설립자에게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혹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깔깔 웃는 소리가 상큼하다. “남편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요. 아직은 경영보다 회사생활이 더 좋은가 봅니다.”

해문출판사의 식구는 6명. 창고 담당자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여성이다. 그것도 3명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다. 추리소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출판사라기에 엽기적 분위기의 남자들이 우글거리리라 기대했던 초반의 예상은, 꽃다운 분위기에 녹아 눈처럼 사그라들고 말았다.

“남자가 있으면 아무래도 제가 좀 다루기 불편해서요.” 젊은 사장이 겸연쩍은 듯 웃었다. “물론 남자가 없으면 불편한 점도 있어요. 작년 추석 땐 도둑이 들어서 금고를 홀랑 털어갔어요. 그럴 땐 좀 떨리기도 하고, 비오는 날 밤에 야근하면서 두개골을 깨고 목을 자르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으스스하기도 하고 그렇죠. 서점이 부도라도 나면 심각해요. 각 출판사에서 우르르 몰려와 기다리고 있다가, 잠깐이라도 문이 열리면 잽싸게 들어가서 자기네 책을 들고 나와야 하거든요.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가 나중에 반품을 요구하기라도 하면 출판사는 이중으로 손해를 보게 되니까요. 한 권이라도 더 들고 나와야 하는데, 여자들이 이걸 하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그럴 땐 남자 사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여자끼리만 있으니까 좋은 점도 있어요. 우선 복장에 신경 안써도 되니까 마음 편하고, 언니 동생 하면서 허물없이 지낼 수도 있고요. 우리끼리 점심 때 수다 떨면서 라면 끓여 먹기도 하고요.”

2004년 매출 2억5000만원

6명의 사원이 기록한 해문의 연매출은 2004년 기준 2억5000만원 규모. 결코 넉넉하다고 할 수 없는 살림살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추리소설의 인기가 괜찮은 편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별로예요. 2002년에 추리소설 붐이 다시 한번 일어나긴 했지만 그냥 반짝 하고 말았어요. 요즘엔 솔직히 현상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신간을 내도 초판 3000부가 다 나가지 않을 때가 많아요. 추리소설이란 장르가 참 특이해요. 우리나라에도 추리소설 동호인 사이트가 있거든요. 활동도 활발해요. 인터넷에 저희 추리물과 관련된 내용이 하나 뜨면, 리플이 수십 개씩 붙어요. 사람들이 추리소설에 관심을 보이기는 하는데 그게 매출로 곧장 이어지질 않아요. 광고를 해도 그래요. 광고를 하나 안하나 매출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왜 그럴까. 나름대로 분석해보고 결론을 내렸죠. ‘아, 이 분야에는 매니아층이 확실하게 형성돼 있구나. 그리고 시장은 그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구나’라고 말이에요.”

매니아층이 확실한 만큼 해문출판사는 신간 홍보 역시 매니아 중심으로 펼친다. “저희는 발간하는 책의 특성상, 언론 서평을 기대할 수는 없어요. 요즘 같아서는 광고를 할 수도 없지만 해봐야 아무런 반응도 없고. 그래서 추리소설 동호회에 신간을 보내요. 그러면 읽은 분들이 사이트에 서평을 올리고, 이것을 사람들이 읽고 그리고 나서 구매로 이어지는 거죠.”

매니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 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직접 찾아오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는 ‘다음 번에 나올 책은 뭐냐’ 묻기도 하고 ‘제목은 이러저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도 해주고 그러세요. 어떤 분은 외국의 추리소설 리스트를 한 200개 정도 들고 와서는 하나하나 동그라미를 치면서 ‘이 책은 꼭 내야 한다’ ‘이 책은 너무너무 재밌다’면서 꼼꼼히 설명해주기도 하세요. 갖고있는 원서를 직접 들고 와서는 그냥 빌려주겠다는 분도 계세요. 이런 분들이 계시니까, 어렵다고 해서 그만둘 수도 없어요. 해문을 그렇게 사랑해 주시는데, 저희는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새로운 장르의 추리소설 선보일 것

“7살 아들과 토끼띠 띠동갑”이라는 이 사장은 의외로 “해문에 들어오기 전엔 추리소설을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재미있겠다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된 건지 추리소설은 읽을 기회가 없었어요. 문학을 전공했는데도 말이에요. 그런데 그게 일단 읽기 시작하니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아, 이 맛이구나’ 싶어 요즘엔 추리소설 읽느라 밤을 새는 경우도 있어요.”

이 사장은 “새로운 장르의 추리소설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요리(料理)추리라고 해요. 서양에서는 ‘코지(cozy)추리’ 라고 해서 일반화한 장르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선 좀 생경한 부문이에요. 쉽게 말하면 살인사건이 요리와 결합되는 거죠. 주방에서 주로 사건이 벌어지고, 주방과 관련된 사람이 현장을 발견하게 되고, 사건은 전문 수사관이 아닌 아마추어 주방 아줌마가 해결하는 구조입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요리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수다 떨듯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가 사건이 요리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는 거죠. 여성 독자를 타깃으로 한 추리물입니다. 번역을 충실하게 해서 조만간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 사장은 “국내 추리작가 기반이 취약한 만큼 아직까지는 외국 추리물 번역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며 “추리소설은 장르의 특성상 번역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추리소설이란 게 그렇잖아요. 아주 작은 것 하나가 단서가 돼서 나중엔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 부분을 잘못 옮기거나 건너뛰거나 하면 정말 곤란하죠. 매니아를 봐서라도 그런 일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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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 2010-05-06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역이 새로운 해문...
오래 오래 좋은 책! 출판하세요!

Chris 2010-06-21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해문출판사 팬더공작시리즈 재판부탁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다시 사라날수있게...
 

[전문출판사를 찾아서 (3)] “출판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
10여년간 수소문제 다뤄온 `연매출 1억원` 미니 출판사... "현실 어려워도 타협 안할 것"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1933~), 존 홀러웨이(John Hollaway·1947~),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1960~), 펠릭스 가타리(F. Guattari·1930~1992), 질 들뢰즈(Gilles Deleuze·1925~1995)….

▲ `갈무리`의 조정환 공동대표
생소해보이는 이름의 주인공들은 현 시대를 대표하는 좌익 이론가들이다. 이들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와 차별화를 선언, 여성·마이너리티·실업·금융자본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유럽의 학자이자 행동가들. 도서출판 ‘갈무리’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진보주의 전문 출판사다.

“우리는 이탈리아나 영국의 진보주의를 국내에 소개·적용하고,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실험을 책을 통해 담아내고 싶은 것이죠. 마르크스 사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무엇을 찾아보려는 시도입니다.”

‘갈무리’의 조정환(50) 공동대표가 말했다. “저희는 형식적으로 독립출판사를 지향합니다. 여기서 독립이란 자본과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합니다. 좀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이윤추구로부터 벗어나서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 사이엔 ‘당(黨) 출판’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이념적 준비과정으로 출판을 바라본 결과였죠. 그런데 1991년 소련 사회주의가 붕괴되지 않았습니까? 이를 계기로 ‘당 출판’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공감을 이루게 됐습니다. 차라리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가자, 그래서 그들의 고민과 쟁점을 담아내는 ‘삶 출판’ 쪽으로 전환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배적 위치를 갖고 있는 대형 출판사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소수 마이너리티 출판사가 필요했습니다. 민중의 자기표현을 제대로 담아내는 독립 출판사가 돼야 했던 것이죠.”

조 대표는 “갈무리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육성 그대로 담아내려 한다”며 “소수의 목소리를 싣는 ‘마이너리티 총서 시리즈’를 내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성은 없지만 지식인의 필터링(filtering)을 거치지 않고, 소수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노맹’ 관련 9년간 수배생활

서울대 국어교육과 75학번인 조정환 대표는 2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조정환은 그의 본명. ‘소련의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 ‘오늘의 세계경제’ 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한 역자 이원영은 그의 또 다른 이름이다.

“1990년 사노맹 사건과 관련해 수배됐었습니다. 당시 저는 ‘노동해방문학’이란 월간지 주간 겸 편집위원을 맡고 있었는데, 공개수배로 활동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이원영이란 가명으로 번역 작업을 했죠. 그러다가 후배 서창현과 함께 ‘출판을 통해 의미있는 작업을 해보자’며 의견의 일치를 봤고, 그 결과 1994년 출판등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노맹 사건이란 1990년 10월 30일 안기부가 발표한 것으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란 혁명조직이 무장봉기를 통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고, 사회주의 노동자계급의 전위정당 건설을 추진했다’는 사건. 당시 안기부는 “사노맹은 노동자계급전위당 건설을 위한 1차 단계로 포항제철 등 전국 50여개 공장 및 노동자단체에 230여명의 소조원을 침투시켰으며, 서울대 등 40여개 대학에 침투해 1000여명의 조직원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박노해’란 필명으로 유명한 박기평씨, 백태웅씨 등 50여명이 구속된 이 사건과 관련해, 조 대표는 1999년 12월 수배가 해제될 때까지 9년 남짓 도피생활을 했다.

“조금씩 돈을 모아 500만원을 마련했습니다. 출판사를 차리기엔 부족한 금액이었죠. 보수는 없었습니다. ‘노동해방문학’ 식구들이 한푼도 받지 않고, 오히려 필요한 물품은 각자 알아서 조달해가며 일을 했습니다. 자금은 오로지 제작에만 투여됐습니다. 그랬는데도 딱 3권을 찍으니까 돈이 떨어집디다. 그때 후배 서창현의 장인께서 소를 팔아 4권째 책을 찍을 비용을 대주셨습니다. 그렇게 찍어낸 책이 ‘소련의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입니다.”

지금까지 ‘갈무리’가 낸 출판물은 약 80종. 조 공동대표는 “공식 출판한 단행본이 60~70여종, 출판사 이름을 넣지 않고 펴낸 운동권 서적이 약 20종 된다”고 말했다.

“돈이 최고”라는 주장에 동의 못해

현재 ‘갈무리’의 연매출 규모는 1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6명의 식구(6명 중 장민성 공동대표와 정남영 이사는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가 출판업을 지속하며 생계를 꾸려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적자죠, 뭐. 처음 3년 정도는 돈을 가져가지 않고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부터 또 한 3년 동안은 학원교재 제작 등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적자를 메웠습니다. 그러다가 ‘아우또노미아’가 좀 팔려나가면서(약 2000부) 출판방식에 변화를 줘서 약간이나마 활동비를 가져가고 있습니다.”

‘갈무리’에서는 월급이라는 말 대신 ‘활동비’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조 대표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많이 좋아진 것입니다. 500만원을 갖고 시작한 것이 지금은 전체 자산규모가 6억~8억원 가량 되니까요. 2003년부터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1억원 가량 됩니다. 저희 책의 성격이 학술·철학적 성향이 강한 만큼 매출은 높지 않습니다. 넉넉하진 않지만 다른 사회과학 출판사처럼 경제·경영서를 낸다든가, 아동·참고서를 내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출판업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부터 그렇습니다. 다른 출판사에 가서 번역을 하면 번역 원고료를 받거든요. 하지만 여기서 내면 제게 돌아오는 원고료는 전혀 없습니다.”

조 대표의 목소리가 강해졌다. “그렇다면 ‘출판을 왜 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이 나옵니다. 요즘 대중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대중성이 높은 책 중에는 세상에 큰 도움이 못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돈이 최고라고 한다거나, 출세가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는 책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대중성은 추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 대표는 “인문사회과학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라며 “이 자양분을 키워가려는 사회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각 자치단체 단위의 도서관에서 사회과학 분야의 출판물을 활발하게 구입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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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출판사를 찾아서 (2)] 한국문화 알리기의 선봉장
전통문화 고수하는 대원사
값싸고 좋은 책 만들기에 총력..."베스트셀러 없지만 꾸준히 팔리는 책 많아 고마울 뿐"

▲ 대원사의 김분하 편집부장.
‘빛깔있는 책들’이란 시리즈를 기억하시는지? 짚 문화, 팔도 굿, 옹기, 한국의 석등, 한국의 정자, 한국의 토종개, 꽃담, 토우(土偶), 옛 기와, 전통주, 다비와 사리, 한국의 가사(袈裟), 태껸, 대나무, 중요 무형문화재, 고려청자 같은 ‘돈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책들’이 바로 ‘빛깔있는 책들’이다.

전통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리라. 이런 종류의 책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지만 얼마나 상업성이 없는지를…. 서울 용산구 후암동, 남산자락에 자리한 대원사는 바로 이 분야에 16년간 천착, 한국의 전통과 문화에 관한 책 400여종을 발행해 온 전문출판사다.

1989년 100쪽 안팎의 분량으로 첫선을 보인 ‘빛깔있는 책들’의 특징은 수려한 사진과 그래픽. 한두 쪽 넘길 때마다 어김없이 들어있는 상세한 사진과 그림은 활자를 읽지 않더라도 책에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게 해준다. 작년부터 서구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보는 책’의 원형인 셈이다. 매니아들의 정보 욕구를 반영, 최근엔 170쪽 남짓 분량이 늘긴 했지만 화려한 비주얼은 여전하다.

‘빛깔’의 특징은 그것만이 아니다. 2800원(1989년)이란 파격적인 가격이 또 하나다. 인상된 물가와 제작비를 반영, 3500원→ 4800원→ 6400원으로 서서히 오르긴 했지만 아직도 이 책의 가격은 8500원에 머물러 있다. 도감 형태로 나온 비슷한 분야의 책값이 수만원대란 점에 비하면 여전히 싸다.

동국제강 창업자 장경호 회장의 유지

“대원사는 동국제강 창업자 고 장경호(張敬浩) 회장의 유지를 좇아 설립된 출판사입니다. 불교에 관심이 컸던 장 회장은 한국의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 ‘대원회’란 포교단체를 만들고 ‘대원정사’란 재단을 세워 장학사업을 폈습니다. 대원(大圓)은 그 분의 아호(雅號)입니다.” 김분하(39) 편집부장이 대원사의 설립 배경에 대해 말했다.

“고 장 회장의 2남인 장상문(張相文·작고) 전 사장은 UN대표부 대사를 지낸 외교관 출신입니다.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한 장상문 전 사장은 ‘한국을 외국에 소개할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선친의 유지를 따라 사재 10억원을 투자해 1989년 대원사를 세웠습니다. 본격적으로 전통문화 알리기에 나선 것이죠.”

현재 대원사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장상문 전 사장의 장남인 장세우(張世宇) 사장. 그는 입원 중이어서 인터뷰에 응하지 못했다. 김 부장의 말이 이어졌다.

“출판사 설립취지가 ‘널리 알리자’는 것이었으니까 당연히 책값을 비싸게 정할 수 없었어요. 장상문 전 사장은 ‘책값을 1000원으로 하자’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 가격으로는 도저히 책을 낼 수 없다’는 반대에 밀려 결국 2800원으로 값이 정해졌죠. 하지만 품질에 대한 요구는 절대 낮지 않습니다. 미술사학자 진홍섭 연세대 교수, 불교미술사학자 황수영 동국대 교수, 한옥문화원의 신영훈 대목장(大木匠) 등 전문가들이 편집위원으로 기획단계부터 참여해 날카롭게 품질을 평합니다.”

기획이 정해지면 다른 출판사와 마찬가지로 저자와 사진작가를 섭외하고, 원고 작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만만치 않다.

“저희는 책의 특성상,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이 전부 다 지면에 담겨야 합니다. 그러니까 촬영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죠. 공예나 무형문화 같은 경우엔 만드는 과정, 익히는 방식 등 전 과정을 모두 보여주려 합니다. 사진을 강조하는 만큼, 인쇄 후에도 여러차례 사진 교정을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수차례 원고를 수정하고 교열합니다. 원하는 함량을 담을 때까지 이 과정을 계속 되풀이합니다.”

이러니 책 한 권 내는 데 드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김 부장은 “그렇게 하다 보니 지난해엔 ‘빛깔있는 책들’을 한 권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타이밍과 스피드가 좌우하는 요즘 베스트셀러 시장에서 ‘열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마 베스트셀러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출판인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시장성보다는 품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실 베스트셀러는 단기 이익을 노리고 기획하는 것입니다. 광고를 크게 내면서 소위 말하는 ‘밀어붙이기’ 작업을 병행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책값을 올려야 하고 제작시간을 단축해야 합니다. 저희들 방식과는 맞지 않습니다.”

대원사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다. “광고를 내면 한동안 반짝하긴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내는 책은 특성상 그 효과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장님도 ‘광고하는 데 드는 노력을 책 만드는 데로 돌리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2~3년 전부터 광고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빛깔’ 시리즈를 포함해 대원사가 낸 400여종의 책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은 3만8000부가 나간 ‘약용식물’과 ‘집에서 기르는 야생화’다. 하지만 “가장 적게 나간 것도 7000~8000부는 팔렸다”고 하니, 대부분의 책들이 10년 이상 꾸준히 팔려나가는 스테디 셀러라 할 수 있다.

이훈 관리부장이 말했다. “2003년 총매출액이 6억원, 2004년엔 5억4000만원입니다. 9명의 직원(사장 포함)이 꾸려가는 것치고는 빠듯한 규모입니다만 현상을 유지해 갈 수는 있습니다.”

김분하 편집부장이 말을 받았다. “저희 책은 매년 20만~30만권 가량 꾸준히 팔리고 있습니다. 저희 노력을 알아주시는 독자들이 계셔서 감사할 뿐이지요.”

대원사는 민속, 고미술, 전통음식, 불교예술 등 한국 문화를 분야별로 정리한 ‘빛깔있는 사전(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 역시 상업성과는 거리가 있다.

“전통문화 관련 용어가 어럽다는 분들이 계세요. 학생들도 그렇고요. 그래서 관련 용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누구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용어사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 추구

대원사의 꿈은 현재까지 나온 256종의 ‘빛깔있는 책들’을 500권으로 늘리는 것. 김 부장은 “요즘엔 인터넷의 영향으로 웬만한 정보는 다 얻을 수 있다”며 “그것과 차별화를 꾀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정보를 골라 기대수준에 맞게 책을 내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물론 해외 수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을 낱권으로 수출하고 싶진 않습니다. 가급적이면 현지 법인을 통해 ‘빛깔있는 책들’ 전체를 외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 저희 생각입니다.”

김 부장은 “우리의 문화를 널리 알리자는 것이 대원사의 취지인 만큼 책을 너무 전문적으로 내진 말자는 생각”이라며 “대중성을 고려해 너무 어렵지 않도록 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원사가 2004년 낸 ‘목가구’(국립민속박물관 지음)는 올 10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선보일 ‘아름다운 책 100권’ 중 하나로 선정됐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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