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출판사를 찾아서 (5)] “언제나 프랑스는 내 사랑”
프랑스 전문 출판사 `만남`
1983년부터 22년째 프랑스 문화·문학·여학 전문 서적만··· 상황 어려워 변신 모색 중

▲ '만남' 의 차상면 대표
형광등 빛이 꾀죄죄한 바닥을 비춘다. 일곱여덟 평밖에 안 돼보이는 공간. 낡은 간이 칸막이 두 개가 틈을 가르고 서 있다. 구석엔 손때 묻은 책상이 있고, 그 옆엔 손님맞이용으로 보이는 낡은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다. 커튼으로 가려놓은 창틀 위엔 휴대용 가스레인지 하나가 보인다. 가끔 찌개라도 끓여 먹는 듯, 국물 넘친 자국이 어지럽다. 그러고 보니 김치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이삿짐을 싸다만 것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 청소하다만 것 같은 칙칙한 분위기가 시금털털하다.

프랑스와 관련된 책만 발행하는 프랑스 전문 출판사 ‘만남’. 프랑스 전문 출판사라기에 내심 ‘안개 낀 센강’을 연상했었다. 하지만 기대는 무참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우중충한 건물 틈새로 가내공장들이 자리잡고 있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 ‘만남’은 그곳에서 프랑스와의 만남을 꾀하고 있었다.

“어이구~, 찾아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차상면(48) 대표가 맞는다. 붕긋이 부풀어 오른 장발, 양복 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아저씨다. “그렇습니다. 프랑스 문화, 프랑스 언어와의 만남이란 뜻이지요. 신(神)과의 만남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그 두 가지의 만남에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차 대표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사무실 안에 선교회를 마련하고 매주 세 번씩 묵상과 예배를 한다. 사무실 안은 종이박스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박스 안에는 책들이 빼곡했다. ‘프랑스 문화와 사회’ ‘인지과학 입문’ ‘예술과 웰빙’ ‘프롱뜨낙 가(家)의 신비’ ‘가을’ ‘끌로드의 삶과 꿈’ 등 알듯 모를 듯한 제목 일색이다.

프랑스 문부성이 출간 지원도

“원래 이름은 ‘어문학사’였습니다. 1983년부터 시작했지요. 당시만 해도 국내에 프랑스 관련 저작물이 전무하다시피 했었습니다. 원서를 구해 읽는 것이 정말 쉽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불문학을 전공하는 전공자들이나 조금씩, 그것도 리프린트(해적판)된 책들을 구해서 서로 돌려가며 읽던 시절이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도 리프린트를 많이 했습니다. 프랑스 문학이나 어학 관련 서적은 그것이 유일한 유통경로였었거든요.”

차 대표의 이야기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엔 우리 사회에 프랑스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어’ 하면 왠지 모르게 낭만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이 사실이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원서를 사서 읽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어서 저희가 리프린트한 책을 갖다 드리면 대학 교수님들이나 전공자들이 무척 좋아하곤 했어요. 그분들 좋아하시는 모습이 저도 좋았고, 좋은 책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공급해서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5년 상호를 ‘만남’으로 바꾸고 프랑스 관련 서적만 집중적으로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 관련 서적만 다뤄온 차 대표의 존재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도 알려졌다. 2002년 ‘인지과학입문’을 낼 때 프랑스 문부성이 대사관을 통해 출간을 지원한 것이다. “큰 금액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상징적인 측면이 있으니까, 상당히 기뻤지요. 뿌듯하기도 했고요. 지원금으로 번역료를 지불하고 출간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프랑스어 제대로 공부한 적 없어

‘프랑스 매니아’ 차 대표는 하지만 프랑스와 관련된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20년 넘게 프랑스 관련 서적을 내왔지만 프랑스에 가본 적도 없다. 하지만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어깨너머로 조금씩 배운 프랑스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 한번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어떻게 된 게 갈 기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바쁘기도 했지만 게으른 탓도 있었겠죠. 그런데 앞으로는 프랑스에 갈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사정이 워낙 어려워서.”

차 대표의 말처럼 ‘만남’의 오늘과 내일은 험난하다. “한 7년쯤 전부터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제2외국어를 도외시하기 시작했잖습니까? 대학 입시과목에서도 제2외국어가 빠졌고요. 그 결과 지금은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과 어학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교양 불어 같은 과목을 듣는 학생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지방대학의 경우엔 더합니다. 전공을 바꾼 학생이 많아서 불문과 3~4학년생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갈수록 프랑스에 대한 관심도 적어지고 프랑스 문화나 문학에 관한 책을 읽으려는 독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차 대표의 고민은 매출로 직결된다. ‘만남’의 지난해 매출액은 1억원대. 그가 상호를 바꾸고 본격적으로 프랑스 관련 출판물을 내기로 결심한 1995년 매출액의 절반을 밑도는 규모다. “당시엔 직원도 서너명 됐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하고 경리를 담당하는 여사원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등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저 사람이 경리 담당자인데요, 사실 제 집사람입니다. 저 사람과 저, 이렇게 두 사람이 꾸려가고 있습니다. 저희 매출액이 1억원이라고 하지만 제작비, 운영비 빼고 번역료 세금 떼고 나면 빠듯합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이 4500부

‘프랑스 전문’이란 특성상 만남에서 낸 책 중엔 베스트셀러가 없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낸 책은 총 90종. 그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지난해 8월 출간한 ‘프랑스 문화와 사회’로 약 4500부가 나갔다고 한다.

만남을 힘들게 하는 것은 또 있다. 바로 인터넷이다. “요즘엔 인터넷이 발달해서 프랑스 서적이 필요한 독자은 직접 현지에 주문합니다. 우리는 적당한 책을 찾아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데요, 저희 책을 읽을 만한 독자들은 상당수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아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책이 번역돼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곧바로 책을 사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2외국어가 위축되고 프랑스어 전공자가 줄어들다 보니, 마땅한 번역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주로 대학 교수님들이 번역을 해주셨어요. 그 분들도 사정을 아시니까, 어떤 경우엔 번역료를 받지 않는 분도 계십니다. 그냥 책을 낸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분이시지요. 사실 1995년 상호를 바꿀 때엔 뜻이 맞는 몇몇 불문과 교수님들과 함께 ‘제대로 번역을 해서 제대로 된 책을 내보자’는 의지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1997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그냥 물 건너가 버리게 된 거죠. 이젠 로열티가 부담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2~3년 전부터는 새 책을 내는 것보다 기존에 냈던 책을 다시 찍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차 대표는 “솔직히 어떨 땐 프랑스 관련 서적만 고집했던 것이 후회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른 출판사들처럼 실용서도 좀 하고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의 출판물도 좀 다룰 걸 괜히 고집을 피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무용·영화 등의 공연예술과 만화·애니메이션 같은 영사예술 관련된 책도 좀 내보려고 합니다. 굳이 프랑스 것이 아니더라도 소개하면 유익하겠다 싶은 책을 내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프랑스’를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프랑스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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