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이후로 지금까지 전혀 글을 쓰지 못했다. 그 사이 내겐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후배의 사고, 그리고 진행했던 회사일... 그리고...  다시 서재에 글을 써본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카페에 올린 글인데... 앞으로는 서재 관리 잘 할 수 있을까?) 

 

따뜻하고 커피향 같은 글일지는 모르겠습니만, 어제 느꼈던 푸근한 기억 하나를 새겨봅니다.

 

세상은 벗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인데, 이러한 소중한 친구 가운데 한 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뇌출혈을 극복하고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인데, 지금은 직원이 몇 안되는 작은 제조업체에서 제조와 영업, 그리고 배달까지 도맡아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아시다시피 최근까지 제가 조금 바쁘게 돌다보니, 1년 남짓 가끔 전화로 소식만 주고받고 만나지는 못했던 사이였지요.

 

"날도 쌀쌀해지는데 언제 저녁이라도 한번 하자."

"그래, 한번 봐야지."(바다, 그 카페에서 제 닉네임이 '바다'입니다)

"그런데 다른 얘들은 잘 있나?"

"글쎄, 얼마전에 A하고 통화했는데, 학원일이 바쁜 모양이야. 그리고 지난 주에 B한테 전화왔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었어."

"야, 그런데 우리 홍교수 모시고 동기들 송년회한 게 몇 년이나 지났지?"

"글쎄, 그게... 2003년인가 4년인가? 내가 파주로 이사온 전후였던 것 같은데..."

 

옛기억을 떠올리다가 제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내일, 너 시간 어때."(바다)

"엉, 강원도에 제품 배달하고 올 일이 있는데, 늦지 않게 올라올 거야."

"그럼, 너희 집 근처인 안양문예회관 앞에서 내일 7시쯤 보자."

"어, 너 건너올 수 있어?"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지만, 남들이 하는 '번개'라는 것을 해보자는 꾀가 발동했습니다. 휴대폰에 내장된 연락처를 일별하면서, 외국에 있거나 먼 지방에 있는 녀석들을 제외하고, 수도권에 있는 동기들을 세어보니 열 명 가량 되더군요.

 

'번개. 국문 84 모임. 11월 11일(수) 저녁 7시, 명학역 근처 안양문예회관. 문의는 바다에게..'

 

그리고 답신을 기다려보았습니다. 한 두 명 정도가 내일은 어렵다는 둥, 아무리 번개라도 며칠 시간을 두고 해야지 깰 수 없는 선약이라서..(그래서 번개야 임마^^) 등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여덟 정도는 어떨지...

 

한참 공사중이라 어수선한 안양문예회관 앞에 제일 먼저 닿아서 누가 저 골목길을 돌아올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연락했던 친구는 용인 근처에서 길이 막혀서 30분쯤 기다려달라고 하더군요.

 

낙엽이 떨어지듯 시간도 툭툭 지나가고...

한 친구가 골목길을 돌아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내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걸 어찌 알고 날을 이렇게 잡았냐. 기특하다."

중국과 평택공장을 오가며 바쁘게 살고 있는 벗이었습니다.
한 건 성공!

 

"오는 녀석들은 전화할테니, 우선 당구라도 한 게임..."

말 그대로 당구 한 게임이 끝나도 제 전화는 조용했습니다. 그리고는 용인에서 부랴부랴 올라온 친구가 들어왔지요.

 

"니 온다 해서 내 단골식당에 상을 봐놓으라고 했으니 가자."

 

셋은 같이 단골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정말 단골이었는지 메뉴판에도 없는 성찬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통통한 생굴회에 미나리무침, 그리고 보쌈고기와 얇게 썬 사과, 맛있는 된장, 그리고 생태탕까지... 집 나갔던 입맛이었더라도 되돌아왔을 음식을 나누며,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월초에 교통사고가 있었네. 그리 불편하지 않아서 드러눕지는 않았어."(미안하다! 친구야)

"그래도 나이 생각해서 며칠 쉬면서 진찰을 받아보지 그랬어."(바다)

"내가 안 나가면 회사 문 닫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그래도 인마, 너 성한 몸 아니야."

 

중국쪽에서 활동중인 벗은 그쪽 근황을 전하기도 하고, 교과서 이야기도 하고...

다들 아시겠지만, 이럴 때 시간은 화살 같이 지나갑니다. 시간이 흐르고, 역시 갑자기 번개 치면 어려울 나이들이야. 아줌마들은 한창 아이들 저녁 챙겨야 하고...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를 옮기려고 생각하는 즈음이었습니다.

 

나이를 곱게 먹은 듯한 여인 한 명이 식당문을 열고 들어오더군요.

 

그 순간, 25년전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모습이 영화처럼 오버랩되면서, 긴가민가 하는 찰나!

 

"야, 바다! 넌 도대체..."

"누구신데요? 어, 어, 너.... 넌!"

"그래, 나야. 그런데 너 엉뚱한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우리 몇 년만이지? 그리고 너는 00이고, 넌 00이지? 너희들은 정말 이십 년만에 보는구나."

 

그 얼굴 속에서 예전의 모습이 찾아지더군요. 15년전에 마포 사무실 앞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었던 기억도 다시 떠오릅니다. 그때 어머님이 많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는데...

 

"야, 근데 니들 정말...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어? 우리 아들 수능시험 보는 날이야. 그런데 이렇게 불러내면 어떡해!"

 

사내녀석들은 아직 아이들이 초중등생들이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렇지요. 여자동기들은 대개가 그렇지요. 그렇구나.....

 

"그리고 바다, 너! 그때 15년전에 만나고 나서 한번 연락이 없냐? 난 수첩을 잃어버려서 그랬는데, 너는?"

"나도 잃어버려서...^^ 하지만 우리 회사로 전화하면 알려줄텐데, 네가 먼저 연락하지!"

 

만나자마자 투닥투닥.

 

내일이 아들 수능일인데, 마다않고 찾아와준 친구가 고마웠습니다.

 

"난 오래 있지는 못해."(당연하지요)
하면서도 석 잔의 술을 나누기도 한 동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세 명의 친구들은 그녀의 출현으로 인해 예전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수업시간에 가장 안 들어간 동기가 나인지, 너인지.(물론 접니다)

무기고 속의 권총은 누가 더 많았는지.

그리고 그때 누가 누구를 좋아했던 것 같다든지.

술 취해 학교 벽에 페인트로 썼던 문장이 누구의 시였는지.

 

그렇게 과거 추억 속에 놀다 보니, 그때의 그 청순함을 떠올리다 보니 이제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녀 눈가의 잔주름이 보이더군요. 작은 가게를 하다가 힘들어서 지금은 부업 삼아서 친구 가게로 일을 나간다고 하네요. 거친 손마디도 보이더군요. 술잔을 기울이고... 자작을 하려하니 "야,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그래도 술은 여자가 따라주는 게 낫단다." 하며 잔을 채워주는 넉살도 느껴집니다. 예전과 똑같은 것도 많지요. 나이가 두 살 많다는 이유로 그때나 지금이나 '누나라고 불러라' 하는 충고투는 마치 25년 전에 들었던 소리가 환청으로 다시 살아나는 듯 하더군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아이 때문에 먼저 일어서며,

 

"다음 만날 때는 미리 상의해서 일정을 잡아. 이렇게 공치지 말고... 그리고 너무 반가웠다."

 

하는 그녀 눈가에 환한 웃음으로 피어나는 잔주름이 아름다웠습니다.

 

남은 친구들끼리 맥주 한 잔을 더 나누고, 대리운전을 불렀지요. 안양에서 일산으로 건너오는 고속도로에서 오래도록 떠올리지 못했던 가게 이름 하나가 떠오릅니다.

 

'아침이슬 꽃잎에'

 

그 당시를 기억해보면 인테리어를 근사하게 한 카페가 커피숍이나 다방보다 늘어나고, 입소문이 나는 카페는 단골들이 생기고, 특히 여대생들이 흡연장소로 많이 이용했던 곳이지요. 그 친구가 살던 아파트 앞 2층에 있던 카페 이름입니다.

 

그 카페에 앉아서, 수석으로 들어와서 1학기만 다니고 학교를 그만 두겠다기에 그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했고, 많이 싸우기도 했고... 조그만 체구인데 주량이 만만치 않아서 그녀 집앞의 선술집에서 늦게까지 토론하다가, 그만 막차를 놓치고 홀로 공원 벤치에 신문지 깔고 덮고 모기회식을 시키기도 하고... 심한 숙취와 고열로 앓아누운 제 자취방 부엌에서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기도 했던 기억. '그래, 네가 누나 맞다!'... 홧김에 '만약 우리가 고민하는 이 문제에 대해 네 생각보다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00일 00시까지 청량리역 시계탑으로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그 역 앞에서 세 시간을 홀로 기다리다가 돌아설 때 서있던 그녀(점점 신파조로 넘어갑니다). 그때 '삶과 죽음'이라는 뭐 거창한 주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돌맹이와 도서관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겨울산에서 찍은 그녀 사진이 제 앨범에 들어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녀 어머님께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라고 배짱 부리기에는 대학교 1학년생은 너무 어렸겠지요.^^(제 아내가 이 글을 읽으면 화를 낼까요? 저 선수 또 가을 타고 있구나 라고 할까요^^)

 

그녀 눈가에 곱게 내린 잔주름을 보며, '곱게 나이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미처 하지 못했고, 미처 못한 이야기라고 문자메세지로 넣어 줄까 휴대폰을 꺼내다가 도로 집어넣었습니다.

그저 푸근한 기억으로 자리매김할 밖에요.


따뜻하고 커피향 같은 그런 글일런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추억 하나가 그대들의 옛 추억을 떠올려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충분하겠지요.
이제부터는 또 서류를 만져야 할 시간입니다. 이만 총총.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빛푸른고개 2009-11-1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아이들도 이 글을 읽겠지요. 엄마한테 이를까. "엄마~ 아빠가 서재에 올린 이 글 읽어봤어?" 라고 말할까? 아니면 씩 웃으며 '그랬었군!'이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아내는 뭐라 할까. "여보, 정신 차려. 아무리 사내들이 나이 들면서는 추억 속에 빠진다고 하지만서도.."라고 할까? 아니면 토라질까. 궁금하다, 궁금해!

소나무집 2009-11-1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들도 부인도 탓하기보다는 함께 공유하고 싶어할 것 같은데요.
저는 남편의 여자 친구나 제 남자 친구 이야기를 남편이랑 함께 수다꺼리로 삼는데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사실은 제가 더 많이 하긴 해요.
국문 84라는 단어에 무작정 공감대 형성, 저는 국문 86이기에.
아침이슬이라는 카페는 80년대 대학 근처라면 종종 있었는데
아침이슬 꽃잎에는 어디쯤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도 대학 졸업한 지 20여 년이 다 되어가니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문득 마음에 품고 강의실에 앉아 뒤통수만 무정하게 바라보았던 동기도 생각나고 그럽니다.
저는 여자라서 그런지 남자 동기들이 더 많이 생각나는군요.

달빛푸른고개 2009-11-22 16:42   좋아요 0 | URL
볼품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전출처 : 소나무집님의 "친정아버지 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제 페이퍼에 옮겨봅니다. 그 모습 그대로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치유 2009-08-19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맘 아팠는데 오늘 더 맘이 아프네요.
 

5월 23일 오후 5시.. 

방송국 채널을 바꿔가면서 확인해봐도 

유서의 내용조차 온전히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 조사와 관련한 본인의 심경, 즉 유서의 일부 내용이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문 앞에 설치된 분향소도 경찰의 진압에 의해 차단되고 있습니다. 

평소 생각으로 알라딘은 책만 파는 곳이 아닙니다.  

어찌 인터넷 분향소도 만들지 않는지요. 그저 (남들과 다르지 않은) 그냥 서점인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문] “막힌 남북관계 풀려는 뜻…나는 변하지 않았다”
인터뷰 전문
 
 
하니Only 최재봉 기자 황준범 기자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남북관계를 풀라고 촉구하는 선언에 서명했던 제가 그 사이에 ‘변신’을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제가 변한다면 황석영의 문학 전체가 무너지는 건데 어떻게 제가 변하겠어요? 제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남과 북 사이에 화해와 협력이 와야 하고, 그러자면 정부의 협조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소설가 황석영(66)씨는 자신의 카자흐스탄 발언이 불러일으킨 파장에 적잖이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내 의도가 잘못 전달됐다”며 “생각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다 접고 조용히 글쓰는 일로 돌아갈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판자들도) 다 아는 사람들이니 오해도 풀리고 일도 잘 진척될 것으로 낙관한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해서 지난 13일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현 정부의 ‘중도 실용’적 성격, ‘광주사태’, 보수·진보 논쟁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한 발언 때문에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선 황석영씨를 15일 오후 경기도 일산 자택 부근 찻집에서 만났다.

 황씨는 지난 14일 저녁 귀국한 뒤 자택에 돌아가 새벽 두시까지 인터넷으로 파장의 실태를 살펴본 뒤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질 않아 수면제를 먹었다고 했다. 약 기운 때문에 몸이 늘어져 점심 무렵 깨어나 인터뷰 시간에 30분 정도 지각했다.

 그는 평소 ‘진보’로 분류돼 온 자신이 왜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했는지, 자신이 밝힌 ‘몽골 + 2 코리아’ 및 ‘알타이 연합’ 구상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할 자신의 복안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두 시간 가까이 열정적으로 털어놓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세상 난리가 났더라…대통령 순방 동행 신중했어야  

 -와보니 어떻던가.





 =아주 세상이 난리가 났네. 이번에 (순방에) 따라간 게 가장 큰 실수였다는 심정이 들 정도다.

 -밤새 인터넷 보면서 든 소감은.

 =잘못 전달된 점 많다. 또 하나는 내가 사회적으로 설명이 안 된 채로, 아무 이유도 모르게 대통령 순방에 동행했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 전에 좀 설명이 있었으면 서로 납득을 할 수 있었겠는데 그게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킬 수 없지 뭐.

 -그 정도 파장 반향은 예상했을텐데….

 =일하는 과정에서 비난이 있을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드셀 줄 몰랐다.

 -다녀온 걸 후회하나.

 =후회라기보다 아, 좀 신중하게 결정할 걸 그랬나 싶네.

 -지금 와서 말 취소하고 접는다 할 수는 없지 않나.

 =속에서는 ‘물의를 빚어서 안됐다, 미안하다’ 말 하고 싶지만, 일을 시작했는데 접을 수는 없고 이해를 해주십사 설득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나이가 많아서 힘에 부치는데….

 

 작년 금강산 사건 뒤 이 대통령 먼저 연락…‘오바마 정권’은 남북문제 풀 찬스 

 -오해하는 분들을 설득할 계획이나 복안이 있나.

 =전말을 얘기해야 전달이 될 거 아니야. 우선 이걸 먼저 얘기를 해야 한다. 나는 김대중 정권 때나 노무현 정권 떄는 진보정권이었기에, 그때는 우리 사람들이 (정부랑) 같이 많이 하고 일도 같이 했다. 그럴 때는 나는 거리를 두고 접근을 안 했다. 너무 많으니까. 근데 이게 막히고 나니까 완전히 남북관계 막힌 것처럼 재야와 정부 창구도 완전히 막혀버렸다구. 그러니까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옛날 같으면 사안마다 반정부에 섰겠지. 그런데 이제 그건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잖아. 나이 든 사람이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고 후배들도 그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기 시작한 거다. 지금 쌍방이 시간낭비하면 안된다, 강경책으로 하면 안된다. 미국은 강경책으로 할수록 고립되고 협상 안 될 것이다.

 작년에 금강산 사고 나서인가, 대통령 쪽에서 보자고 연락이 왔다. 내가 시내에서 사회단체 몇몇 후배들하고 또 지금은 일선서 물러났지만 장악력 있는 사람들과 얘기했다. 그랬더니 “우리 중에 누군가는 대화창구 있어야 하지 않냐. 얘기 들어보고 대북정책 얘기 좀 합시다. 이런 식으로 하면 나라 망한다”고 하더라. 내 생각에도 지금 오바마 정부 들어온 뒤 대북정책 바뀌면서 이 기간 한 2년 안에 뭔가 가시적 변화를 끌어내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고 북미수교를 하고 남북도 연방제든 국가연합으로 갈 수 있는 게 돼야 하는데 그걸 시작할 수 있는 찬스라고 본 것이다. 두번째는 전세계가 지역별로 권역이 변동하는 이행기에 있고 그리고 그런 몇가지 이유를 들면서 시간낭비를 할 수 없는데 도저히 현 정권은 대북관계를 개선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걸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한 노동자·남한 청년백수 손잡고 몽골 개척, 몽골+2코리아 구상”

 나더러 변신, 변신 그러는데 두달 전까지 남북관계 풀라고 촉구하는 재야원로인사 서명했다. 내가 나이가 있는데 두달만에 생각이 바뀌겠냐. 내 생각을 물어봐야지.

 지난 연말에 몽골 총리 일행들이 왔을 때 민간 쪽 사람들이 따라왔다. 거기에 문화인도 있고 그러니까 한번 나와서 대화해보지 않겠냐 해서 나갔다. 그 전부터 자료를 통해서 내가 알았지만 몽골이 동몽골을 같이 개발하자고 한 지 벌써 10년 됐다. 우리 한반도 넓이의 배 정도인데 남한이 산지를 빼고 경작지가 120만 헥타르니까 사람마다 수치는 다르지만 한 400만 헥타르 된다고 한다. 같이 참석한 농업관계 전문가에 의하면 고추도 재배되고 옥수수, 콩, 밀이 된단다. 그 안에는 수많은 지하자원이 있다. 이 사람들이 재미있는 게,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주장이다. 몽골+2코리아 하자는 거다. 나는 내년 상반기까지 남북관계 풀리면 북한 노동자와 남한 청년백수들이 같이 가서 그땅을 개척해내고 여러가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꿈이었던 ‘느슨한 연방제’를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남북관계만 풀린다면. 동북 중앙아시아 연합이 가능하단 말이다. 옛날처럼 전쟁하고 정복하는 게 아니고 경제, 외교 관계 바꾸고 한 울타리에 협력하면서 살 수 있으니까. 그러면 남북이나 통일문제를 그런 식으로 아우르면서 갈 수 있지 않냐. 그 안을 같이 얘기했더니, 현 정부가, 이 대통령이 “그건 내 생각이다”라고 하더라. 아, 이건 생각이 같구나. “대북관계 풀 생각이냐”고 하니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안 하면 어떻게 가겠느냐” 하더라. 거기다 나는 이걸 문화적으로 풀어야 하지 않냐 생각한 것이다.

 ‘유라시아 평화열차’도 그런 것이다. 르 클레지오가 한국 왔는데 나더러 “평화열차 어떡하냐”고 하더라. 평화열차 내용은 세계적 작가들을 파리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파리서 그 다음에 베를린, 모스크바, 옴스크 거쳐서 이르쿠츠크. 거기서 동서양이 만나. 바이칼호에서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세계적 쇼를 하고. 울란바토르 거쳐서 베이징 내려서, 다른 기차편으로 압록강 넘어 평양 들어와서 행사하고, 그 기차를 타고 개성 지나서 도라산역으로 와서 비무장지대에서 큰 행사하고 서울로 오는 것이다. 그런데 우선 알타이연합을 상정해서 몽골과 중앙아 연결을 먼저하고, 포럼을 하면서 문화연합 선언을 하고, 거기엔 북한이 안 오면 빈자리를 남겨두고, 그 뒤 평화열차를 내년에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내년이 한국전쟁 60주년이다. 그해에 북-미수교 이뤄지고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된다면 한반도에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적 이목 집중되고 좋잖아. 그걸 하겠다는 거야. 현 정부가 밀어주겠다는 거야. 내가 기업 협찬도 받고 팀도 짜고 있었다. 근데 이게 이번 동행하면서 뚜껑이 열리면서…. 물밑에서 진행돼야 하는데 할 수 없이 내가 얘기하는 것이다. 내가 이걸 그간 글로 흘려놨다. 주변서는 이걸 다 알고 있다. ‘그게 되냐, 설마 이명박 정부가 동의했을 리가 없다’는 게 대부분 반응이고, 내막을 아는 이는 ‘가능성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둘 사이에 있는 거다.

 내가 보수 쪽에도 얘기해봤다. 대북정책에 뭐라고 하던 사람들이 알타이연합에는 너무 좋아하더라. 나는 문제를 풀려고. 나이값 하려고.

  

 작가 아니면 누가 이런 꿈 꾸겠나?  

 진중권이 사랑하는 후배인데, 나더러 ‘코미디’라고 하는데 작가가 이런 꿈 안 꾸면 누가 하나. 나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구. 정치할 사람도 아니고. 나는 작가예요.

 -몽골+2코리아는 대민족주의 아닌가.

 =민족주의를 오히려 풀어내는 거에요. 남북문제로 하는 게 민족주의 접근이라면, 더 벌려서 하는 게 민족주의와 거리 있어. 또 이렇게 협조해서 하면 근대화에 대한 내용이 달라진다. 왜냐면 거기가 대부분 농토이기 때문에. 나는 현정부가 쓰는 말도 기분 나빠서 안 쓴다는데, 녹색성장도 가능해진다. 400만 헥타르를 남북 청년이 새로운 땅으로 일군다면 과거의 근대화와는 다르다. 평화열차도 그런 식으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동북중앙아서 무지개연합을 할 수 있다는 것. 거기에 남북관계를 넣어서. 이건 보수, 진보 다 힘합칠 수 있는 것. 그걸 오해했다면….

  나는 노동당 창당 발기인이다. 우린 겨우 진보정당이라고 설정했기에 북한이 있기에 한국에서는 진보정당이 노동조합주의를 벗어날 수 없지 않냐. 그런 고민들을 얘기한 거다. 민노당이 내게 섭섭하고 슬프다면,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니까, 내 잘못이니까 믿어달라고 하고 싶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가?

  =시간이 필요없다. 나를 아니까 사람들이.

  -낙관하는가.

  =나는 철딱서니 없이 낙관적이지. 이제까지 불가능하다는 것을 뛰어들어서 했고, 좌절되든 안 되든 작가로서는 하는 것. 작가는 금기나 얼어붙은 것, 타부를 깨고 사회적으로 일상화시키는 사람이다. 황석영이 그런 사람이다. 지켜봐주면 되는 것.

  

 이명박, 중도 실용적 생각 갖고 있는 것 같다 

  또 하나, 현 정권 지지하냐, 이 부분은 지지하지. 현 정권 성격규정에서 중도실용이냐 아니냐는 부분서 나올 때 그걸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나와서 당선됐잖아. 근데 촛불시위로 정신 없었을테고, 또 하나는 그 주위 둘러싼 세력이 10년 동안 해온 진전된 국면의 반대방향으로 가니까, 중도실용주의라는 자기 생각을 관철할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러니 과거 진전됐던 것을, 좋은 것을 끌어안고 갔어야 하는데 우편향 심해졌어. 분명히 기자간담회 때도 얘기했지만 이명박은 중도실용적 생각 갖고 있는 것 같다, 왜? 같이 얘기를 해보니까. 조아무개, 이아무개 등 부담스럽다는 얘기도 했고, 한쪽서는 내부서 자기를 빨갱이라고 한다고 했고. 정부를 둘러싼 현실적 여건은 그렇지 않은 게 있죠.

 그래서 지지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다. 어떤 정권이든 현실적 거리두고 했는데 특히 남북관계는 정부 협조 없으면 불가능하고 국보법에 걸리니까. 옛날처럼 내가 할 수 없잖아. 그러니 부문협조를 하면서, 해낸다면 현 정부가 성공하는 거 아닌가. 현 정부가 성공하는 게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나쁜 일인가.

  -그럼 좋은 일이다.

  =근데 나보고 왜 이러나. 하하하. 나는 어젯밤에 ‘안 하겠다, 이명박 정부와 담쌓고, 진보와도 이렇게 하고’ 생각했다. 누구는 ‘저게 정치적으로 야욕 있어서 그런다’고 한다. 그런데 봐라. 나는 독자들 사랑 받았고 지금 죽어도 여한 없다. 문학적으로. 내가 무슨 다른 여한이 있겠나, 황석영이가. 정말 젊은 식구들 사랑하기에 이 일을 해보자 한 것이다. 먹고 살아야 하고 남북문제 풀어야 하고. 정말 근사하고 자부할 수 있는, 세계 나가서 자부할 수 있는 공동체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몽골+2코리아가 허황한 얘기 아니다. 자료가 다 나와 있다. 몽골과 남북정부가 협상했던 게 다 있다. 이게 왜 안 되냐, 부시 정권 들어온 뒤 남북분단체제 관리하는 강대국에 적응하느라 모든 힘 쏟았다. 6자회담이 비핵화에 유리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그러나 남북문제를 열강들의 요리에 떠맡긴 것만은 사실이다. 그 다음에 두번째는 뭐냐면, 이게 물밑에서 다 논의가 돼야 하는데 자세히 얘기할 수가 없다. 왜, 중국 때문이다. 이미 중국과의 무역고가 35%다. 좀 있으면 중국경제권 바다에 푹 빠지게 돼 있다. 제2의 종속국 된다. 그러니까 중국이 두려운 거다. 북한도 자기들 거라고 보는데. 우리가 자주적으로 합쳐서 몽골과 합친다고 하면 중국은 전쟁수준으로 볼 거다. 이걸 물밑서 해야. 중국도 설득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느냐, 창비도 그렇고 노무현 김대중 정부가 다, 우리 지식인들 다 동북아연대로 갔다. 근데 동북아연대라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봤잖아. 맨날 탁상공론하다 끝났어. 10년 동안. 분단체제와 동북아연대는 서로 맞질 않아.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우리가 할 수가 없다. 힘 없는데다 분단까지 돼 있어. 중국과 맹렬한 다툼서 우리가 무슨 균형. 균형을 먼저 이뤄야 한다. 

 지금 일본은 우라늄 때문에. 작년에 고이즈미 총리가 경제협정 차관 맺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징기스칸 유적탐사해준다며 전국 다녔고 지금은 지도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우리는 감성적으로 가는 거다. 몽골 지도자들이 뭐라고 하냐면, 전세계서 자기들 민족이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몽골반점이라는 것. 정서적으로 접근해야. 알타이연합이라는 애매모호한 문화역사적 용어를 갖고 가자는 것. 저는 런던과 파리 동양학부 4년 있으면서 죽 생각을 했다. 하루 아침 즉흥적으로 한 게 아니고. 다만, 글을 써서 발표할 수 없는 게 한이다. 물밑에서 해야 하는데. 내가 워낙 시끄러운 사람이라 이번에 실수한 것.

 

 광주가 곧 나…광주민주화 운동 폄하 논란은 말꼬리 잡기  

  -앞으로 어떻게 할건가.

  =좀 맥이 풀리지만 후배들과 의논하면서 추스려가야지. 욕은 내가 먹지. 그것만은 알아줘, 공동체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 두달 전까지도 남북정책 변화하라고 촉구한 사람이고 지금도 그러고 있고. 그리고 황석영이 변하면 내 문학이 다 없어지는 건데.

  ‘광주사태’라고 했다고 하는데, 내가 광주 중심에서 뼈를 깎는 그걸 다 겪은 사람이야. 광주가 나야. 나의 문학이고. 지금 와서 가치 변했냐 하는데 그건 말꼬리 잡기다.

  -유럽에서도 그런 일 많더라고 한 것도 문제되고 있는데….

  =왜 그런 얘기 나왔냐면, 이명박 집권 이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유모차 구속, 용산 참사 등 그러는데 당신은 그럼 뭐요 하기에, 이건 나쁜 일이다, 현 정부 실책이고 비판받아야 한다, 근데 내가 젊은사람이면 사안마다 싸우겠다, 지금도 하고 있고, 근데 나는 늙은이인데 현 정부를 변화시키는 일을 폭넓게 그런 일을 노력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 그러면서 우리는 근대화 기간 동안에 여러가지 나쁜 일들이 있었잖냐. 밖에 나가면 창피하고 그랬는데 서구도 가보니 지들도 바로 70년대 광부들 파업 있을 때 시위 군중들에게 발포를 해서 사오십명 죽었더라. 그게 서구서 가능하다고 보겠냐. 그 뿐 아니라 파리서는 아랍 폭동 나서 차량 8만대가 탔잖냐.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광주 같은 참사가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전세계가 그러고 간다. 사안마다 싸울 때도 있지만 큰 선에서 변화시키는 것도 있다는 말인데 마치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그런 오해 있다면 나를 믿어달라.

  -이명박 정부와 부분적으로 손을 잡으려다 보니 립서비스가 좀 지나쳤다는 말인가.

  =그런 면이 있지. 그런 면의 경솔함 사과합니다. 일을 같이 하자니까. 근데 여기 단서가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도 대북문제를 풀려는 아무런 노력이 없을 때 저는 현 정권에 대해 희망 접고 포기한다고 대통령한테도 분명히 밝혔다. 그 바로 직전에 또 뭐가 있냐면 피에스아이 때도 지난달에 밝혔다. 피에스아이 동참하면 나는 끝이다. 이 일도 접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좀더 진전돼서 나간 것. 이 대통령에 대한 친화성이 왜 더 갔냐면 몇사람 있는데서 대통령이 “그저 제가 보류시켰다”고 하더라. 그래서 한걸음 더 가까워진 것이다.

  -올해 방북 20주년 아니냐.

  =그렇다. 누구는 나더러 ‘발효됐냐’고 하던데, 발효된 거지 진짜.

  -북에 갔을 때와 지금 사람들 반응 비교하면.

  =그때와 똑같다. 그때도 진보진영에서 엄청 욕먹었어. 노동자 탄압 빌미를 줬다고. 작가는 작가로서 봐달라, 사랑해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 문학 전체 엎어버리는 걸 할 수가 없다.

  -정부에서 직간접 지원하나.

  =해야지. 집 팔아서 하나? 일의 성격이 정부하고 하지 않으면 못해.

  -르 클레지오 와서 황 선생 등 한국 작가들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얘기했는데.

  =뭐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 문학이 번역 때문 그렇지, 그 수준으로 말하면 노벨상 받을 만한 사람이 한 10여명이 있는데. 노벨상 소동을 그동안 몇년동안 너무 많이 벌여서…. 늠름하고 의연하게 하다보면…. 가장 중요한 건 작가는 일상적 행위로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아, 좀 속이 후련하네. 근데 다 털어놓지 못했어.

  

 남북문제 정치적 계산하면 일 더 꼬여 

 -더 할 말은.

  =북에 대해서는, 서바이벌 게임을 너무 오래 지속하지 말았으면 하고. 시간이 없다. 남한에 대해선 비정치적 결단으로 대북문제 풀어야지, 정치적 계산하면 일일 점점 더 꼬일 것 같다. 아까 말한 느슨한 정신, 그게 대북관계에 필요하지 않나 한다.

  정말 그때랑 반응 똑같더라. 방북했을 때. 우리 쪽서 욕먹고 보수 쪽서 욕먹고. 지금 그렇게 됐다. 진영 가르자는 것.

  -엠비 정부와 대북정책 큰 틀서 협조하는 건데 국내정책, 4대강 정비라는 것, 세금 정책, 서민 정책 등에도 충고를 하나.

  =그래서 내가 얘기가, 그걸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합리적 사람들이 몇 있잖아요. 그 사람들과도 얘기가, 북한이 저렇게 경직돼온 과정을 보면 사회주의에도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원칙이 있고, 자본주의에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원칙 있는데 정부 핵심이 가진 권력이 집중될 때 경직되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더구나 우리가 민주화 산업화 동시에 이뤄냈다고 하는데 지금 단계면 권력분점을 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최소한 큰 책임만 주고, 나머지는 사회 시민단체가 정책적 제안을 하고 참여하고 그렇게 해서 국내문제를 풀어가는 것. 그런데 그 반대방향으로 계속 가고 있잖나. 그러면 시민단체가 정책적 참여나 정책적 견인해내고 변화시키는 역할이 안 되면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 사회는 변질돼가고. 그런 충고를 한다. 이대로 내년 상반기까지 가면 현 정권은 끝나는 것 아니냐. 돌파구가 필요하고 그렇기에 우리들의 기회다. 합리적 보수와 극우를 떼어내자는 것이다. ‘야 임마 그게 가능하냐’ 그러는데 해볼만 하잖아. 나는 침체되면 내 탓인 줄 알고 총대를 메잖아. 마누라가 어제 밤새 “그놈의 메시아 콤플렉스 좀 버리라”고.

 

 북한문제 풀기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현 정권정책 용인  

  -왜 그걸 황석영이 나서냐는 얘기도 있다.

  =그게 뭐냐면 자기 문학과 삶을 일치시키겠다는 게, 소설 등장인물 같이 하자는 게 젊을 때부터 있는 것 같아. 자기 문학을 살아내고자 하는 게 있다.

  -극우 보수 떼어내고 합리적 보수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역할은.

  =지난번에 노무현 정권 말기에 그런 얘기 하기 시작했잖아. 그때도 나왔던 얘기. 너무 우편향이 심한 사회로 우리가…. 저쪽에서 좌파라고 하는데 좌파 역량의 절반 이상을 북한이 잡고 있어서 남한좌파 입지 좁다. 여지가 없지. 그러니까 어떻게 돼야 하냐면 조금씩 수평이동을 하는 것. 한국현실에서 중도좌파 정도 접근하면 저쪽서 중도우파, 합리적 보수 방향으로 움직여주면 전통적인 꼴보수, 이 쪽들이 입지가 없어질 것 아니냐. 그렇게 해서 작년에 열린당 판 깨서 제3의 세력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낙천적인 구도였는데 아마 모범생이었던 것 같아. 금방 저쪽으로 들어가버리면서 판이 형성되려다 들어가 버렸지. 지금도 그 생각.

  근데 남북관계서는 특히 바로 그 중도적인 접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북의 인민의 의사가 남북관계에 적용이 되나. 당의 의사지. 그렇다면 우리가 민간 혼자서 저쪽의 당을 상대한다는 것은 분단체제서 불합리하고 가능치 않아. 어떻게든 정부가 끌고, 민간을 데리고 가서 양자를 앉혀야 한다. 남북관계의 딜레마가 그거다.

 ‘보수로부터는 북의 첩자 소리, 진보로부터는 변절자 얘기를 듣는 백척간두에 줄타기에 서 있는 광대’, 이렇게 자조적으로 얘기하고 싶다.

  -희망이 보이나, 이 정부에.

  =시간이 충분치 않지만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면 가능하다고 봐. 아킬레스건이 대북문제라고 본다. 한국사회 진보 보수 가를 때 그 척도가 북한이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등 나머지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은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용인한다는 건가.

  =한시적이죠. 내년 상반기까지다. 내년 상반기를 넘기면 현 정권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시간이 없지. 한 일이 없는 거지.

  -6월에 몽골 간 이후에는 다른 액션은?

  =알타이 연합을 가을에 지식인 문화인들을 중앙아와 몽골 지식인들 모아서 가칭 알타이연합을 띄우고 싶은데 여론이 이러한즉 이게 제대로 잘 될지 의문인데, 이걸 양쪽 잘 설득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 지금 생각 중이다.

  -이명박 정부는 중도실용이라는 규정이 유효한가.

  =말만 들었을 뿐이다.

  -현재까지 보인 것은 중도실용이라고 보나.

  =중도실용을 들고 나왔는데 그걸 실행할 수 없었다.

 

 이명박 국민 선택 받은 것…사회적 저항 좋지만 현실 참여해야   

  -지난 대선 때는 이명박 후보를 부패세력이라고 비판했는데.

 =그 뒤 선거를 했고 투표했고, 자기들 표현으로 압도적 과반이라고. 국민 선택 받은 것이다. 현실적 조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사회적 저항도 좋지만 투표를 열심히 하고, 좋은 후보가 대통령 될 수 있게 과감하게 발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오물 튈까봐 전부 뒤로 빠지고. 투표 안 하고. 결론 나온 뒤엔 싸우자고 하고.

  교육 정책도 그렇다. 교육감 투표에 왜 투표 안 하나.

 -대통령은 (발언 파장 뒤) 뭐라고 하지 않던가.

 =그 분은 나한테 친화성을 보인다. 참 친밀감 있게 한다.

  -학생 때부터 아는 사이인가.

  =건너 건너 친구지 뭐. 계기는, 내가 징역살이 갔을 때 문인들이 나 면회 오면서 국회의원 한명씩 데리고 왔는데,. 그때 여야 다 왔어. 안 온 사람 없어. 대통령이 면회도 하고 그랬다. 나더러 마당발이라는데, 내가 진보 보수 다 알아.

  -정부 출범 뒤에는 언제부터 대화하기 시작했나.

  =촛불와중에 본 것이다. 그 다음에 내가 우리 쪽에서 알타이 연합 정책 제안을 했지.

  -후회되는 말 없나. 카자흐스탄에서 했던 말 중에.

  =따라가지 말았어야 한다는 심정이 든다. 또 하나는, 섭섭했다. 민노당 얘기를 안 했어야 하는데 싶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침햇발] MB 품에 안긴 황석영 / 정석구
아침햇발
 
 
한겨레 정석구 기자
 


 

» 정석구 논설위원
 

대표적 ‘진보 작가’로 알려진 소설가 황석영씨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특별수행원으로 동행했다. 이 대통령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성향인 그가 어떻게 해외 순방길에 동행했을까? 엊그제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기자들에게 풀어놓은 그의 변을 듣고 궁금증이 조금은 풀렸다. 그는 지금까지 밖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정치적 성향도 변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변신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개인의 변신을 놓고 왈가왈부할 수는 있지만 그게 잘못됐다고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그 변화의 방향과 왜 그렇게 변하게 됐는지다. 그가 내세운 변신의 이유가 잘못된 상황 인식과 개인적인 야망 때문이라면, 일반 대중을 오도할 뿐 아니라 부당한 사회 현실을 정당화시켜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황석영의 변신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그는 이 대통령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해 “일부에서는 보수·우익으로 규정하는데 스스로 중도 실용 정권이라고 얘기했고, 또 중도적 생각을 뚜렷하게 갖고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2005년부터 중도를 얘기해온 자신과 대통령이 이념적으로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중도로 변했다는 데에 시비 걸 생각은 없다. 문제는 이 대통령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판단이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권의 정체성은 그들이 현실에서 어떤 정책을 펴나가는 것인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로는 뭐라 하든 이 정부는 소수 기득권층과 특정 지역의 이익 관철을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극우·보수 정권이다. 이런 정부를 중도·실용 정부라고 보는 황석영의 상황 인식은 분명 잘못됐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그의 해석에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영호남 토착인 한나라당·민주당으로는 진보, 보수를 따지기 어렵다”고 말한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서울의 지지를 얻어서 전국 정당의 기틀을 잡은 것은 진전이자 진보로 본다”는 그의 평가는 엉뚱하다. 서울에서의 한나라당 우위는 뉴타운 ‘사기 공약’ 탓이 크다.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서울에서 한나라당이 기틀을 잡은 것을 무슨 기준으로 진보라고 평가하는지 모르겠다. 무개념의 극치다.

“용산 참사는 이 정부의 ‘실책’이고, ‘광주 사태’ 같은 일이 다른 나라에도 있었고, 사회가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가는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그의 사고체계가 민중의 삶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대표적인 민중지향 진보 지식인으로 알려져 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그의 태도는 좀더 복합적이고 미묘하다. 그동안 남북 모순에 관심을 기울여온 그로서는 악화한 남북 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욕심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려면 일부 오해를 받더라도 이 정권과의 타협도 불가피하다고 보는 듯하다. 어디서 많이 듣던 자기변명 논리다. 그러나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정권의 노리개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사람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그는 앞으로 “큰 틀에서 (현 정부에) 동참해서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조용히 이 정부를 도우면 된다. 다만 자신의 변신을 통해 이명박 정권의 본질까지 변화시키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환상이고 만용이다. 변신하는 사람들의 명분은 늘 이처럼 거창했지만 결과적으로 권력 품에 안겨 개인의 영달만 누리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심찮게 노벨문학상 후보감으로 거론되는 황석영이기에 그런 추한 꼴만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석구 논설위원 twin86@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