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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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다.

냉철한 통찰력.

리뷰를 잃고, 기억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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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술잔
현기영 지음 / 화남출판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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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가란 언어로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닐까? 순간에 살고 순간에 죽을 것같이, 찰나적 시간 속에서 예리한 섬광으로 타오르는 것이 시인의 감수성이라면, 소설가는 긴 시간에 걸쳐 집 짓는 근면한 목수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5. 저자 서문에서)

 

일요일마다 거기(성당)에 가는 것은 순전히 그녀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신을 나도 믿고 싶었다. 여학생들 무리 속에 어울려 먼 빛으로만 존재하던 그 소년가 어느 날 문득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내 정신 속에서 막연하고 몽상적이던 것이 사랑으로 구체화되는 그 기적의 기쁨을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그녀의 편지를 처음 받고 들뜬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그 편지를 개봉도 않은 채, 품에 품고 용두암 바닷가로 달려갔던 일이 생각난다.(22)

 

일요일 성당에서 만나 건네주는 편지 말미에는 언제나, "I belong to you, I am yours."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는 서로 열정적으로 사랑의 편지를 쓰긴 했으나, 만나서는 손도 잡지 않은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였다.(23)

 

좌판 장수 아줌마가 보기에 나는 아마 괴짜 관광객일 것이다. 소주 두 병과 안주 접시를 들고서 물가의 바위 끝에 가 홀로 앉아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시끄러운 관광객들을 등지고 앉아 혼자 소주를 마신다. 앉아 있는 바위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이다. 그해 겨울, 수평선까지 헤엄쳐 가 죽어버리겠다고 바닷물에 뛰어 들었던 바로 그 바위다. 내가 그리워했던 것처럼, 이 바위도 내가 올기를 기다렸을까? 곰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 표면도, 그 위에 널려 있는 눈곱만한 총알 고동들도, 바위 틈의 노란 거북손들도 옛모습 그대로다.(29)

 

내 고향 제주의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그 드넓은 청정 바다이다. 서울에서는 집에 있어도 마치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처럼 언제나 구속감으로 답답하다. 아마도 포로로 잡혀와 아스팔트 거리에 꽃혀 있는 가로수들이 내 처지일 것이다. 빌딩과 빌딩 사이의 협곡이 일으키는 왜곡된 바람은 또 얼마나 을씨년스러운가.(36)

 

여름이면, 바다에서 아주 살다시피했는데 눈의 흰자위만 제외하고 온몸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던 벌거숭이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 그러니까 햇볕과 바람, 밀물과 썰물, 잔 물결과 거센 물결들이 우리의 심신을 단련시켜 무른 뼈는 굳혀주고 잔뼈는 굵혀주었던 것이다. 헤엄치며 작살질하기, 자리돔 잡는 뗏목배까지 멀리 헤엄쳐 갔다 오기, 높은 데서 다이빙하기, 돌덩이를 안고 물밑을 오래 걸어가기, 건착선 배 밑을 잠수로 통과하기, 강풍이 부는 날에 파도 타기, 등등. 몸이 가벼운지라 헤엄치다 지치면 수면 위에 번듯이 드러누워 쉴 수도 있었다.(36)

 

오름 정상에서 멀리 내려다본 해변의 도시는 아름다운 풍경화에 눌어붙은 땟자국처럼 보였고, 그래서 위대한 것은 오로지 황금빛 대초원 뿐이었다. 일렁거리는 초원의 빛, 스러져가는 생명이 마지막으로 발산하는 그 눈부신 아름다움... 바람을 피해 분화구 안으로 들어서면, 늦가을의 따뜻한 햇볕에 마치 자궁 속처럼 아늑하지 않았던가. 대지의 자궁, 그 늙은 테우리가 이제 곧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돌아갈 곳은 바로 그 초원이었다. 그러므로 초원은 인간이 그로부터 태어나 죽어서 돌아가야 할 원점인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거기로 돌아갈 것이다.(중략..) 저 초원의 야초와 바람 속에 서면, 그렇게 욕심과 허위로 가득찬 내면이 잠시나마 시원하게 비워지면서 허심으로 환원되어지는 것이다. 관광은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탄식을 위해, 우리의 영혼의 정화를 위해 저 산과 저 초원은 야생의 거친 모습 그대로 존재해야 옳다.(42)

 

인간의 착취와 학대로 병든 지구는 더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맨 먼저 가해자인 인간 종을 지표 밖으로 쓸어내 버림으로써 제 몸을 정화시킬 것이다.(<가이아> 저자 제임스 러브록)

 

죽어있는 마을, 소등해버린 자정 이후의 먹칠 같은 어둠으로 지원진 마을...(<아버지> 일부) 이 표현은 말하자면 객지에 나와 있으면서, 더 이상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내 고향 마을을 상상해본 것이다 .숲을 벗어나야 숲의 전모가 보이듯이, 일단 고향을 떠나서야 고향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멀리 떠나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게 되니까, 막연히 잠재의식으로만 존재하던 4.3이 의식의 표면 위로 뚜렷이 떠올랐다. '지도에서 먹칠로 지워진 곳'으로서 고향을 상상했을 때, 나는 4.3이 슬픔과 분노의 모습으로 꿈틀거리며 되살아남을 실감했다.(177)

 

(<순이 삼촌> 취재) 어느 할머니는 나를 보고 4.3때 죽은 큰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내 손목으 ㄹ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가슴 속 옹매듭으로 맺혀 있는 쓰라린 사연을 끝내 털어놓지 않아, 나 역시 덩달아 울기만 하고 발걸음을 돌린 적도 있었다. 취재 내용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 때 나는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하던 증언자들의 달랠 길 없는 한과 분노가 고스란히 내 작품에 반영되기를 원했다. 작품 형상화의 과정에서 나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겪는 고난이 마치 내 자신이 겪은 듯한 뜨거운 일체감을 느꼈다. 글을 쓰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여러 번이었다.(179)

 

(<순이 삼촌>으로) 필화를 입은 뒤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의기소침한 사내가 되어버렸다. 일년 이상 절필하고 술로 허송했는데, 그러다가 안되겠다싶어 다시 펜을 들었으나, 4.3얘기 외에는 도대체 염두에 떠오르는 소재가 없었다. 그때 써낸 것이 단편 <길>인데, 매맞은 효과가 그대로 나타나서 종전의 뜨거운 분노는 종적을 감추고 그 대신 4.3의 상흔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애잔한 정서가 자리잡고 있었다.(181)

 

이 장편(<변방에 우짖는 새>)을 써놓고 혹시 천주교 쪽으로부터 욕을 먹지 않을까 했는데, 별탈은 없었다. 오히려 격려받기도 했는데 어느 속 트인 신부는 한국천주교교회사가 다시 씌어져야 한다고 했고, 명동성당의 젊은 풍물패는 교인들을 학살한 이재수를 오히려 메시아로 내세워 마당극을 벌이기도 했다.(182)

 

1931년을 전후한 식민지 시대의 민중 속으로. 장편 <바람 타는 섬>에서 나는 약 3개월에 걸쳐 연인원 1만 7천여 명이 참가한 제주 잠녀의 항일투쟁을 다루었다. 그 투쟁은 제주 특유의 항쟁 전통에 신사상인 급진주의가 접목되어 일어난, 식민지시대의 탁월한 항일투쟁이건만 본토와 격절된 탓에 역사의 조명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도내의 진보적 젊은 지식인들이 총망라하다시피 이 투쟁에 전위로 가담했는데 그들은 그 후 10여 년간 감옥에서 혹은 지하생활로 일제의 전쟁 암흑기를 보내고 중년의 나이로 해방정국에 재등장한다. 해방정국의 제주사회에 끼친 그들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였다. 그러므로 4.3항쟁의 성격과 동력이 바로 그 잠녀투쟁에서 유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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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힘 - 능청 백단들의 감칠맛 나는 인생 이야기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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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충남 보령 사위

- 자이랑식품, 자이랑숲연구소

 

약사가 노래 부르듯 혼잣말로 '반반'을 되뇌이며 약을 고른다. "이거 잡숴유. 한 번에 두 알썩." "두 알씩이요?" "첨엔 씨게 조지야 되니께 두 알썩. 엥간해지믄 한 알썩 잡숫구."(29)

 

"성님! 지 말은 기잘 안다는 게 아니라 테리비에 나왔다 이거유! 지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성님은 매사가 이런 식이유. 매사가! 뻬뜨콩 빤스를 입은 규? 노상 사램 말을 그 지경으루 의심을 헌데유? 야?"... "정성은 갸륵헌디, 암만 그려두 멧돼지가 닭 모양으루 짬뿌헌다는 것은 나를 무시허는 말이지 참말은 아녀!" "아, 됐슈!" "얼래? 별것두 아닌 거 가지구선 승질이여?" "됐대니께유. 인자 서루 침묵허믄서 빠스나 지둘려유."(34)

 

"월매나 똥을 몸부림치믄서 푸지게 싸질렀으면 지갑이 다 삐져 나간댜? 그라구 똥 누믄서 지갑은 원 초칠 맛으루다가 봉창에 넣어 가지구 들어가는 겨? 돈두 벨루 읎어 보이드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램이 둔혀두 저 모양으루 둔할까. 나는 봉창에서 탑시기(먼지) 하나만 삐져나가두 느낌이 팍 오는디 남 서방은 아녀? 지갑이 똥통에 빠져두 아무 느낌두 못 느낀 겨?"(38)

 

"나는 역마살이 독허게 낑겨서 암만 좋아두 한군데서는 오래 못 사는 출신이여. 이 집구석, 저 집구석 싸돌아댕기야 숨 쉬구 살지, 안 그러믄 하루두 못 산다니께. 천국이 암만 좋아두 가끔은 극락으루 마실 댕기구 혀야지! 안 그려? 우덜 동네 국회의원들은 야당, 여당 번갈아 댕기믄서 월급 처받구 노는디, 나는 내 돈 내구선 왔다리 갔다리 허갔다는디 그거 안 된다구 허믄 안 되지. 안 그려? 히히히." 아, 신실한 믿음이여...(44)

 

"어~ 구지다...(허전하다) 오뎅 몇 개만 줘 봐, 호떡하구." "거 있는 거 잡숴유. 팅팅 불어서 씹기에두 편할 틴께." "근디 꼬불탱이가 맛난가 아니믄 민자가 낫은가?" "거서 거기쥬 뭐. 꼬불탱이 먹는다구 똥까정 꼬불꼬불 싸지는 안잖유? 안 그류?"(61)

 

서루 빤히 아는 겨! 아~ 저놈은 제비, 아~ 저 아줌씨는 아싸루비아. 아싸루비아가 뭐냐구? '남편이 돈 벌러 싸우디아리비아 갔다~. 그르니께 난 외로워 죽겄다~' 그것두 몰러?(82)

 

"그래도 이제 담배 끊으세요! 친구 분들 중에 더러 끊는 분들 계시죠?" "많지..." "건강도 좋아지고 입맛도 돌고 좋다고들 하시죠?" "글씨... 물어보기가 좀 그려." "왜요?" 노인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다들 숫가락 집어던진 지 오래구 나만 꼴랑 남았는디 워찌케 물어? 담배 끊으니께 몸띵이가 가뿐허다 워쩐다 연설들 허더니 나보덤 먼저 가두 엄청 서울러 가데?"(93)

 

"서둘러 갔으야 허는디 팔자에두 읎는 똥물을 들이켰드만 질게 살었네! 니 사정 봐서는 가두 벌써 갔으야 허는 것인디 나두 헐만큼 허구 갈라니께 이 모양으루 심들어두 오래 먼문 줄만 알어 잉? 그나저나 니두 엥간히 똥물을 들이킨 걸 보믄 니두 허구 가야 헐 일이 산데미인 모양인디 진 세월을 다 어쩐다냐? 참말루 서룹겄다."(108)

 

희한허게 그때 생각허믄 그 말만 생각나구, 그 말만 생각허믄 시방두 맴이 쌍그러니 눈물이 날라구 혀. "고새 자유?" "고새 잠든 겨?" 딱 두 마디. 시방 내가 똑바루 살았다구 말허는 거 아녀..., 왜 허나구? 기냥 내가 워찌케 살았다는 사실만 말허는 겨. 나두 헐 만큼 허구 가야 쓰니께. 그래서 이라는 거니께 그란 줄만 알어.(111)

 

"술 냄새두 안 나는디 술 처묵은 눔 모양으루 눈깔은 뻘겋구, 잠을 못 잤는지 낯짝은 탑시기(먼지) 앉은 거맹키루 썩음썩음허구, 외박허구 온 날은 왼종일 송장 시늉허드끼 밥두 안 처먹구 천장만 쳐다보구 자다 깨다 허드라구." "영락읎는 노름병인디?"(113)

 

"택시 타믄 월매나 깨지는 겨?" "월전리에서 시내 나올라믄 못 줘두 만 원 이상은 주야 쓰구, 야동에서 나올라믄 칠판 천 원은 줘야쥬?" "그랴, 내가 밥 먹자구 불러 갖구 못 깨져두 돈 만 원썩은 깨지믄서 나오는 사램덜인디, 암만 못 사두 따불루다가 밥을 사야지 꼴랑 만 원짜리 멕일 수 있겄어? 안 그려? 돈 깨져, 시간 깨져, 나오는디 성가셔, 그란디 본전치기루다가 먹구 가라구 허믄 밥 사구두 욕먹는 겨! 근디 갸는 기껏 불러 갖구선 노상 오천 원짜리 뻬다구 해장국 한 그릇이여. 본전치기두 안 된다니께? 사램덜이 말은 안 혀두 속으루는 월매나욕을 혔겄어. 안 그려?" "성님이 말씀하시니께 하는 말이지만서두, 지두 속으루는 엥간히 흉봤슈!" "그려! 그르니께 인자 더 욕먹구 살믄 진짜루 욕보는 거니께 그만 살구 오라구 제수씨가 델꾸 간 겨! 인색헌 출신이 처복은 있다니께."(148)

 

"덥다 더워!" "얼래? 미쳤나 벼! 그 나이 처묵구두 여태까정 더위를 다 타구!" :"원판 더우야지! 나잇값두 못하게 드럽게두 덥네 참말루!" "금년만 참어." "잉?" "아, 내년에두 여름 날라구? 생각만 혀두 징하구먼 참말루! 인자 고만허구 가야지. 안 그려?"(188)

 

"우덜 사는 꼬라지는 이 지경인디 '여섯시 내 고향' 같은 거 보믄 시골 사램덜 죄다 부자여, 부자! 우덜 고향은 고향두 아니래니께? 우덜만 빙신인 겨, 빙신!"(216)

 

"노상 지자리에 앉은 눔의 콤퓨타가 워딜 싸돌아댕기믄서 쥐약을 처묵는댜?" "지가 댕기믄서 주워 먹간디? 큰눔 말루는 콤퓨타는 앉아 갖구선 전기 빨아먹는디 워떤 눔들이 전기에다가 쥐약을 쳐 갖구선 멕이니께 헐 수 읎이 지두 모르는 새에 샘킨다구 허데?"(224)

 

"말 한번 션하게 잘혔네! 지랄허구 시골 가믄 맨날 늙은것덜 천지라구 흉봐 쌓는디 우덜이 젊은것덜 못갈게 구박혀서 쫓가낸 겨 뭐여? 가만히 듣구 있으믄 꼭 우덜이 나라 골치덩이 된 것맹키루 기분이 드럽다니께!" "솔직한 말루 늙은이덜이 시골 조지구 농사 조진 겨? 우덜 모냥으루 벌거지마냥 나라에서 시키는 거 꼬박꼬박 토 안 달구 헌 눔 있으믄 나와 보라구 혀! 쥐약두 먹으라믄 먹은 우덜인디 그런 건 몰라주구 멜깡 농촌에 노인들만 득실댄다구 허니께 참말루 섭혀!"(227)

 

"조직 강화? 허야지! 애국적으루다가 우덜이 맬깡 새장가 들어 갖구선 새끼 치는 겨! 젊은것덜이 요새 애를 안 낳아서 나라 근심이 천근만근이라메? 워쩌겄어 늙은것덜이래두 나서야지! 새끼 쳐 갖구선 시골적으루다가 잘 키우는 수 밖에는 읎다니께?"(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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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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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문도 출신의 작가, 그가 겪어온 바다, 그리고 고기, 그리고 사람들

 

- 손암 정약전 <자산어보>(1814)의 내용을 먼저 소개한 후, 본인의 경험을 서술해가는 형식

 

- (알아볼 것) 사리 / 조금 / 몇 물

 

(생계형), 그러니까 옛날형 낚시인 것이다. 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 주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고기잡이 다녀온 사람은 으레 이웃에게 나눠주곤 했다. "반찬이나 하소" 툭 던져주기도 하고 미안해서 안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슬그머니 놓고 휭, 사라지던 모습 흔했다. 가난과 풍요를 분별없이 공유하는 것, 그게 공동체이다.(58)

 

활어회는 의심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주인을 믿을 수가 없어, 살아 있는 놈을 눈앞에서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하지만 회는 여덟 시간 정도 지난 것이 가장 맛 좋다. 죽음의 시간이 주는 맛이다.(143)

 

횟집이나 일식집에서 나오는 날치알은 인기가 좋다. 가미가 되어 있고 수입 열빙어 알이 섞여 있기도 하지만..(156)

 

오로지 도망치려는 물고기와 잡아올리려는 사람 사이 힘의 기우뚱한 균형, 줄이 터지기 직전까지만 허용하며 녀석을 지치게 하는 긴장의 순간들만 이어진다. 낚시에 빠진 동료작가 한 명은 이 순간을 오르가슴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툭. 채비가 터졌다. 세상에 줄 끊어진 낚시대처럼 허무한 게 또 있을까. 낚시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몸에서 피가 쭈욱 빠져나가고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을. 집안이 망하는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절망을.(175)

 

(장어) 풍천은 지명이 아니라 바람이 들어오는 하천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이 녀석들은 날씨가 추어지면 잠시 강하구로 내려와 월동을 하는데 이때 주로 잡는다.(198)

 

기본적으로 갯바위 낚시는 들물 때가 유리하다.(213)

 

섬은 젊은 여자에게는 천형 같은 곳이다. 고된 노동, 물리적인 불편, 여러가지 제약 따위가 늘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처녀 한 명 청산도로 시집가게 되면 친구들과 사흘을 내리 울었다. 집안일, 밭일, 갯일에 논일이 더해지기 때문이었다.(228)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바다는 무엇인가. 아직도 나는 그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306)

 

그런 이유 때문에 섬 음식은 탕이 발달했다. 곡식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귀보시탕이라는 게 있다. 귀보시는 목이버섯이다. 귀처럼 생긴, 짬뽕에 한두 개 들어 있는 얇은 버섯이 그것이다. 그것을 말렸다가 물에 불린 다음 전분가루를 풀어 만든다.(324)

 

전반적으로 부유해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유해졌다는 것을 못 느끼는 모양이다. 이유 없이 불안하고 공연히 안달내고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는 게 증거이다. 스스로 웃을 능력이 사라져버려 개그와 예능 프로에 눈 박고 있는지도 모른다.(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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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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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자주 들춰볼 책일 것이다.

- 죽음과 기억에 대해.. 기억이 없으면 죽음과 다를 바 없을 듯..

- 카그라스증후군..

- 해설은 읽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몽테뉴 <수상록>에서..)(14)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38)

 

수치심과 죄책감 :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타인의 시선이나 단죄는 원래부터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부끄러움은 심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죽이게 된 사람도 있다 - 나같은 인간이 더 위험하지.(105)

 

나는 철학을 모른다. 내 안에는 짐승이 산다. 짐승에게는 윤리가 없다. 윤리가 없는데 왜 이런 감정을 느낄까. 늙어서일까. 내가 지금까지 붙잡히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행복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날마다 살인을 생각하고 그것을 도모하던 때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바짝 조인 현처럼 팽팽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오직 현재만이 있었다.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111)

 

(악을 이해하고 싶다고?)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덧붙였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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