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미만의 국민들은 보시오!

우석훈 선생의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2006, 녹색평론)을 읽다가 요근자에 읽은 어떤 FTA관련 서적들에 비해 확실히 알기 쉽게 FTA를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읽다가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 함께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일일이 타이핑을 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부분적으로 본래 책의 원고와 틀린 부분은 내가 교정을 본(교열이 아니라) 부분이거나 아니면 타이핑 하다가 오타가 난 부분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부부합산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를" 벌어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노무현호 아니 현재 흐름대로라면 '대한민국호'에 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현재의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부부합산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를 벌어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노무현호'를 타고 미래로 갈 이유는 없다. 만약 '고향' 혹은 '우리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어서 이 특수한 상품 혹은 서비스를 소비하는데 매우 특별한 만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재'를 찾는 것이 절실한 순간이다. 어차피 학교에서도 이제는 '우리말'이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인데, 우리 말을 사용하는 편리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높다. <21쪽>

그리고 "7장. 그럼 도대체 정부가 아는 건 뭐야"라는 부분을 한참 신나서 읽고 났더니 몹시 슬픈 이야기였다. 원고 내용 중 밑줄 치고, 굵은 글씨 부분은 별도로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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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럼 도대체 정부가 아는 건 뭐야?

한미 FTA의 결과, 무역수지는 손해인데, 서비스업도 별로 밝아보이지 않고, 미국 시장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한국 시장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럼 대체 정부가 아는 게 뭔가? 보통의 경우라면 정부가 모르는 것을 중심으로 논의를 하고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이 한 얘기를 빈틈없이 뒤집어보면 정부가 뭘 제대로 아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정부가 도대체 지금 무엇을 알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렇게 용감하게 “최단 시일 내에 성공적 협상을 하겠다”며 질주하는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을까? 한번 정부가 알고 있는 걸 찾아보기로 하자.

가. 농업은 망한다
어쨌든 노무현 정부는 농업이 망한다는 정도는 아는 것 같다. 이건 새로운 미국과의 통상 관계 때문이 아니라 농업은 그만둔다는 정책 기조로 지난 3년간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다. 졸저 <아픈 아이들의 세대>에 노무현 정부의 농업 정책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분석한 적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이 정도로 농업의 얘기를 접기로 하자. 현재 국민의 8% 정도인 농민이 4%대로 줄어들지, 아니면 정부의 목표대로 1%대로 내려앉을지가 문제일 뿐이다.

나. 월마트한테는 안 당한다
월마트와 까르푸가 국내 유통업계에서 철수하게 된 것이 금년(2006년) 초이다. 정부는 대형유통시장에서 한미FTA로 경쟁조건을 바꾸더라도 국내 업체에게 승산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계속 죽어나갈 것이다. 월마트가 다시 들어올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하여간 정부는 “월마트한테 안 당한다”는 정도는 안다.

다. 한국영화 안 본다고 죽는 거 아니다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서 국내 영화산업은 일단 현재의 절반 정도로 축소될 것이다. 국내영화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로 유지가 되어야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스크린쿼터 146일 규모에서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생겨서 몇 개의 경쟁력 있는 한국영화가 나온 것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이 규모가 73일이 되면 기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반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에 미치지 못하는 그만그만한 영화가 나오게 되는 것이 현대 영화시장의 특징이다. 이것까지는 정부가 몰랐던 거다. 정부가 아는 것은 다만 “한국 영화 안 본다고 안 죽는다”는 점이다.
멕시코의 일류 감독들이 지금 CF감독으로 연명하면서 3~4년간 돈을 모아서 겨우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 한 편 만드는 상황을 보면서도, 정부는 미국에 일단 스크린쿼터를 내주고 협상을 시작하고 있다.

라. 병원 안 간다고 다 죽는 건 아니다
보건경제학 쪽에서 조금 더 자세한 분석이 나오려면 6개월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숫자를 정확하게 내기는 어렵지만 아마 국민의 30%에서 40%정도는 한미FTA 이후 5년이 지나면 의료비와 보험비가 비싸져서 병원에 가기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다. 계산하기 어려운 것은 얼마나 되는 국민들이 병원에 갈 수 없을지 여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건 소득분배의 재구성 모델이 나와야 숫자가 정확히 나온다.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비싸지는 것은 시나리오 형태로 추정할 수는 있는데, 단지 국민들이 “얼마나 가난해질지를 몰라서” 계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정부에서는 한 가지를 알고 있다. 병원에 안 간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물론 그렇기는 하다. 돈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것이 서럽기는 해도, 아프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다. 약초요법과 전통의학 등 ‘대체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할 수도 있다.

마. 공무원들한테는 별일 안 생긴다
사실 정부라는 것은 공무원들의 총합이기도 하다. 공무원들의 운명은 사실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FTA는 민간부문과 민영화되는 공공부문까지 영향을 크게 미칠 뿐, 공무원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이 거의 없다. 국민들이 겪게 될 평균적인 변화와는 다른 미미한 변화만이 생길 뿐이다. 만약 공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지금 같은 방식으로 한미FTA 추진이 가능했을까? 확실히 정부는 공무원들에게는 별일 안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정부 내에서 저항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물론 지금 정부가 조심스럽게 준비 중인 ‘행정민영화’ 프로그램이 진짜로 강도 높게 추진된다면, 원칙론적인 ‘희망’과는 달리 공무원 세계도 격랑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바. 국민들은 농민 편 안 들어준다
정부도 인정하는 것과 같이 사실 한미FTA로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을 사람들은 농민들이다. 꼭 한미FTA에서 특별한 규정이 생기거나 쌀시장이 추가로 개방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상 쌀시장은 이미 다자관계인 WTO에서 개괄적인 틀로 결정된 상태다. FTA라는 틀에서 쌀시장을 다룰 이유가 별로 없다.
전략적으로는 미국이 약간 요구하는 척 하다가 양보할 것이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그래도 쌀시장을 지켰고, 그 대가로 다른 분야에서 좀 희생을 했다는 선전을 할 것이다. 정부가 양자관계에서 다룰 필요가 없고 다루지도 않는 ‘쌀시장’을 꼭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걸 보면서 이건 거의 ‘야바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한미FTA가 농민들에게 치명적인 것은 협상이 진행된다는 이유만으로 몇 년 후에 시행될 ‘농업죽이기’ 정책이 훨씬 빨리 진행될 것은 물론, 추곡수매가 사라진 다음 실질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던 보조금 정책 등을 ‘없던 얘기’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 농민들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확실하다. 한미FTA를 통해서 농민이 손해보고 그 대신 서비스업은 좋아질 것이라고 정부가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위험해진 미장원 주인들조차 농업이 망하고 어려워진 만큼 그 이익이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농민들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대다수 국민들이 절대로 농민들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히 안다.

사. 한나라당은 꼼짝할 수가 없다
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한미FTA에서만큼은 한나라당이 꼼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나라당에는 FTA가 실제로 어떠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어떤 부문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분석할 수 있는 실무전문가가 없다. 따라서 정부에 곤란한 질문을 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도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한나라당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구조상 불가능하다. 상당수 한나라당 당원들은 일단 ‘자유무역’이란 말이 들어가면 무조건 찬성하는 경향이 있다.

아. 국민들은 벤츠를 좋아해
한국정부는 자동차 부문의 협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은 모양새다. 미국정부도 한국시장에서의 자동차 판매에 꽤나 공을 들이고 있는 형편이다. 자동차 조금 더 팔자고 3,000cc 이상의 대형자동차에게나 적용될 제도들을 없애고, 배기가스 배출기준을 없애고, 심지어는 수도권 대기관리대책까지 없애라고 하는 미국의 요구는 내정간섭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기본적인 환경정책의 틀 정도는 지킬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게 진짜 협상의 핵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부문의 변화가 워낙 크기 때문에 어차피 타는 수입자동차, 독일제를 타나 미제를 타나 국민경제에는 별가시적 변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연소득 6,000만원 미만의 국민들에게는 어차피 해당사항 없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는 국민들이 미국자동차를 타지 않는 이유가 다른 복잡한 이유가 아니라 벤츠와 BMW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안다. 반면 미국 정부는 아직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독일제 자동차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나 보다.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캐딜락을 타고 싶다는 미국인들처럼 한국인들도 자신의 첫 번째 외제 승용차는 벤츠이기를 바란다. 물론 한국정부는 이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자. 국민들은 식품 안전에 관심이 없다
정부가 아는 또 한 가지 사실 중에서 가장 슬픈 일은 한국 국민이 식품안전에 사실상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사고가 터지면 벌떼처럼 떠들지만, 길어야 일주일이다. 광우병 의혹이 있는 미국산 축산물도 문제지만, 한미FTA로 정말 곤란하게 되는 것은 유기농산물의 기반이 무너지고,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안전한 식품공급시스템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붕괴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한국 국민들은 이런 근본적인 식품안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무엇보다도 OECD 국가 중에서는 유전자변형식품(GMO)에 대한 인식수준이 가장 낮은 국민이라는 점을 정부는 잘 알고 있다. WTO협상에서도 다른 선진국이 전부 만들어 넣은 학교급식 재료조달에 관한 예외규정을 하나도 만들지 않은 게 한국이다. 정말 한국정부는 다른 건 몰라도 국민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차. 그래봐야 이민 갈 용기가 있는 국민은 별로 없다
다음 장의 결론을 미리 당겨서 말하자면,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FTA체제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민직접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국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보인다. 이러한 경우에 유일한 의사표시 방법은 많은 국민들이 이민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그래봐야 이민 갈 정도로 용기 있는 국민이 별로 없다는 사실까지도 잘 알고 있다. 이미 붕괴된 교육시스템에 불만이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조기 유학을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뭔가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공부 못하는 애들 유학 보내봐야 인생만 망가진다”는 ‘조기유학 위험론’으로 협박을 일삼던 정부다. 가끔 소주 마시며 대통령을 씹어대긴 하지만, 사실 국민들이 미래를 불안하게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거라는 점을 노무현 정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쉽게 정리해보면, 정부는 한미FTA와 관련해서 정부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은 거의 모른다. 그런데 국민들과의 협상에서 이기는 방법은 너무 잘 안다. 진화적 게임이론으로 상황을 설명하자면 ‘노무현 시스템’은 외국이 아니라 국민들을 상대하는 감각기관이 기이하게 발달․진화한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정부’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 말고 대체 어떤 시스템을 가진 정부인지 좀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문 126~133>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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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에는 장봉군 화백의 만평이 실려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자동차를 끌고 과속질주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앞길에는 미국과의 FTA협상으로 국민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멕시코가 있다. 대통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협상 한 번 잘못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다."

아마도 우석훈 선생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협상 한 번 잘못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다. 대신에 이민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이 나라에서 이대로 살기도 어려운 국민들만 망하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FTA를 막을 길은 국민직접행동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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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8월 15일 오후 5: 20

; 이채 시너스

; 가족 전체..

; 끝나고 청국장집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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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35', 혁명가 이재유를 기억하라
[오마이뉴스 2006-08-12 15:28]    
[오마이뉴스 박현주 기자] 내 '독서일기'의 첫 작품은 안재성의 소설 <경성 트로이카>(2004, 사회평론)다.

이 책은 1930년대 젊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고난에 찬 삶과 죽음을 담담하고 차분한 필체로 전하고 있다. 격동하던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실존인물 이재유와 그를 중심으로 모인 수많은 경성 트로이카 활동가들이 명멸하고 있었다.

 
▲ <경성 트로이카>의 표지
ⓒ2006 사회평론
나는 요즘 KBS에서 방영하는 주말 드라마 <서울 1945>를 열렬하게 시청하고 있다. 주말엔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밤 9시 30분을 중심으로 시곗바늘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헌영·김삼룡·여운형 등 실존했던 혁명가들을 탤런트들이 버젓이 연기하고 있으니, 시대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 해방공간의 '왼쪽' 사람들을 그린 드라마가 한국방송공사에서 만들어지리라고 꿈에라도 기대했겠는가.

극중 인물 최운혁은 민전(민주주의민족전선) 사무국장이었던 이강국을 모델로 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일본강점기에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출중한 이론가였는데, 남한에서는 혁명가 이강국보다는 '여간첩' 김수임의 연인 이강국으로 더 잘 알려졌다. 김수임은 이강국을 숨겨주고 월북을 도왔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이승만 정권 때 사형당했다. 원로 수필가 전숙희는 이들의 안타까운 사랑을 소설로 그리기도 했다(<사랑이 그녀를 쏘았다>, 2002, 정우사).

이강국과 김수임처럼 조국의 해방을 꿈꾸며 1930년대 식민지 서울 거리를 활보하던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만큼이나 열정적인 삶을 살았고, 이들만큼이나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던 그들, 바로 이재유와 경성 트로이카.

이재유. 이름은 아주 오래전에 들어봤다. 대학 2학년 때니까 1993년이던가. 학술서 형식의 <이재유 연구>(김경일, 창비, 1993)가 단행본으로 출간됐을 때, 학생조직에 있던 나의 동기가 그 책을 읽는 걸 보았다. 나도 읽어 봐야지 하면서 읽지 못했다. 그 후 책이 절판돼 이재유를 만날 기회가 영영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운 좋게도 소설 <경성 트로이카>로 이재유를 만날 수 있었다.

소설 <경성트로이카>는 어떻게 나왔나

나는 짧지 않은 서문을 읽고 '열정'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나보다 먼저 '열정'에 꽁꽁 묶인 건 작가 안재성씨였고 난 그 열정에 감염됐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게다.

작가의 이력도 눈에 띈다. 그는 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구속과 동시에 대학에서 제적당한 후 20년간 노동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낙향하여 경기도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농한기엔 굴착기 운전을 하며 가계를 꾸리는 가난한 소설가다.

그를 '열정'의 바다로 이끈 것은 인사동 작은 화랑의 조각 작품이었다.

사실적이면서도 애끓는 비통함을 주는,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것 같은 여인상을 보면서 그는 알 수 없는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다. 작가는 그 조각상의 주인공을 만나면서 잊힌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1930년대 경성 거리를 활보하던' 경성 트로이카를 건져내게 된다.

작가는 경성 트로이카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조각상의 주인공인 이효정 할머니를 만나면서 그 때의 진실을 복원하기로 마음먹는다. 마산에 살고 있는 이효정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이재유 연구>를 쓴 김경일 교수를 찾아가고, 서울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일본강점기 사상범들의 재판 기록을 샅샅이 뒤지며, 퍼즐을 맞추듯 경성 트로이카 조직의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하다 이름도 명예도 사라져버린 '유령'들과의 약속을 지키게 된다. 그 '유령'들과의 약속의 소산이 바로 이 소설, <경성 트로이카>다.

이야기는 개마고원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이재유가 집을 떠나 삼수갑산의 고산준령을 넘고 넘어 경성으로 오는 긴 여정으로 시작된다. 이재유는 당시 사람들보다 키가 크고, 갸름한 얼굴형에 미소가 환한 미남이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가수 비와 조금 닮은 것도 같다.

이재유가 서울에 와 정착한 곳은 농촌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빈민가가 형성된 토막촌이다. 토막은 건축 자재가 없어 땅을 파서 벽을 대신하고 지붕은 거적이나 짚으로 대충 덮은 집을 말한다. 어린 이재유는 그 토막에서 혼자 살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학비를 조달할 수 없어 끝까지 마칠 수 없었다.

일본에 건너간 그는 70번이나 경찰에 체포되는 기록을 세운다. 일제는 그를 관부연락선에 태워 조선으로 압송한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이재유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함께 할 운명적 동지를 만난다. 훗날 그와 함께 경성 트로이카의 지도력이 된 이현상과 김삼룡이 그들이다.

식자층 위주로 구성되었다가 하릴없이 무너진 조선공산당을 이재유는 노동자를 기반으로 탄탄하게 재건하려는 꿈을 품는다. 그리하여 그 전위조직으로 1933년 경성 트로이카를 결성한다.

1933년 경성에서 만난 젊은 혁명가들

▲ 1937년 12월 이재유가 체포되자, 각 신문사들은 호외를 발간했다.
이재유는 낭만과 인간미를 지닌 혁명가이면서 뛰어난 이론가이기도 했고, 천부적인 조직가였다. 무엇보다 그는 노동자였다. 그래서 공장노동이든 막노동이든 농사든 거뜬히 해내며 활동한다.

경성 트로이카가 흥미로운 것은 '트로이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되지 않고 조직원들이 민주적으로 조직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그와 더불어 쟁쟁한 여성 운동가를 많이 키워냈다는 점이다.

경성 트로이카에는 남성과 비슷한 수의 여성 운동가들이 활동했다. 그동안 나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 중에 여성이 없었을까 늘 궁금했다. 1996년 창비에서 나온 <사회주의 인명사전>을 보면, 가뭄에 콩나듯 여성 운동가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경성 트로이카>에서는 많은 여성 활동가들의 이름뿐 아니라 출신과 성격과 활동상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작가에게 이재유와 경성 트로이카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이효정을 비롯하여, 김월옥·박진홍·심계월·유순희·이병희·이순금·이종희·이인행·초영·허마리아 등의 여성운동가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활동상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활발했다.

일본강점기 노동운동의 중심지였던 원산과 함흥은 중공업 지역이라 남성 노동자들이 많았던 반면에, 경성과 인천 등 경인지역의 공장은 경공업 위주였으므로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다. 값싼 임금에 퇴사마저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어린 여공들을 조직하려면 비슷한 나이의 여성 활동가들이 필요했다.

광주학생봉기를 겪으며 동맹휴학을 하고 일제에 항거하던 여학생들은 여학교 졸업 후 바로 공장으로 위장 취업해 들어갔다. 이들은 이재유의 지도를 받으며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해나갔고, 파업을 이끌었다.

이재유와 경성 트로이카는 8시간 노동,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실시, 아동 노동금지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강령을 선택했다. 이같은 의제들이 현재 모두 실현된 것을 볼 때 놀라운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이재유의 연인, 혁명가 '박진홍'

여성 활동가 중에 '박진홍'이란 여자가 있다. 경성 트로이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40년대 전쟁의 광풍 속에 한반도 전체가 일본의 병참기지가 되어 모든 운동세력이 힘을 잃고 와해하고 잠적할 무렵에도 경성 트로이카의 부활을 꾀했던, 경성 트로이카 계열의 마지막 지도자였던 박진홍 말이다.

이효정의 증언에 따르면, 박진홍은 좌우익을 통틀어 가장 똑똑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수재보다는 천재에 가까웠다고 사람들은 평가했다. 성격이 외향적이라 무척 쾌활하였다고 한다.

박진홍은 장차 평화시대가 오면 소설가가 되려고 하던 문학처녀였다. 일본경찰에 쫓길 때에도 문학작품의 한 장면에 빗대어 말하길 좋아했다. 그런 박진홍과 이재유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최운혁과 김해경처럼, 이강국과 김수임처럼 그들도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고단한 청춘을 서로에게 기댔다.

경성 트로이카의 동지들은 1940년대 운동의 암흑기 속에서도 살아남아 1945년 드디어 해방을 맞이한다. 일제 경찰에 쫓기며 투옥과 출옥을 반복하고, 고문과 가난을 견디던 사회주의자들에게 해방공간은 비로소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 얼마나 가슴 벅찼겠는가. 그들은 건국준비로 밤낮없이 일했다. 박진홍도 이순금도, 이관술·이현상·김삼룡·김태준도 집에 자주 못 들어갈 정도로 바쁘게 일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지하 활동가였던 그들은 이제 자유롭게 경성 거리를 활보하며 공식적인 단체의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일할 수 있었다.

 
▲ 큰 사진 이재유. 맨위부터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아래 왼쪽부터 이현상, 김삼룡, 이관술.
그러나 평화로운 세월은 길지 않았다. 자유의 공기를 마신 것은 채 1년도 안 되었다. 1945년 9월부터 1946년 6월 정판사 사건으로 줄줄이 구속되기 전까지 꼭 10개월이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은 조선 공산당 활동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당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일본강점기보다 더 참혹한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방은 왔지만...

일본은 사상범들에게 3~5년 정도의 징역형을 선고한 데 비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무기징역 혹은 사형을 선고했다. 독립운동으로 젊음을 바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교수대였던 것이다.

이관술·이주하·김삼룡·김태준이 남한의 이승만에게 죽임을 당했고, 박헌영·이승엽·이강국은 북조선의 김일성에게 죽임을 당한다. 마음씨좋은 아저씨 같았던 김삼룡이 친일경찰의 고문 틀에 묶여 심정을 토로하는 장면은 참으로 슬프다

"일정 때 우리가 놈들의 힘을 빼앗으려고 싸우는 동안 당신들은 자신들의 힘을 키웠소. 우리가 학업과 생업을 포기하고 공장과 감옥을 떠도는 동안 당신들은 국가를 운영할 기술을 배우고 사람 고용할 돈을 모았소. 일제가 물러나고 보니 우리 같은 사람은 쓸모가 없고, 당신같은 사람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구려. 참 허무한 일이오."

경찰이 왜 북으로 가지 않고 서울에 남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북으로 간 박헌영 동지가 저렇게 모진 천대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가겠소? 우리는 남과 북 어느 곳에도 갈 곳이 없소."

조선 공산당 총비서였던 박헌영은 6·25 전쟁 중에 간첩죄를 쓰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는 죄를 인정할 때까지 맹도견에게 물어뜯기는 고문을 당했다.

평생을 조국에 바쳤던 노구가 동지였던 김일성이 풀어놓은 개에게 뜯기는 신세가 되고 없는 죄를 고백하도록 강요받았으니 그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 것인가. 차라리 적의 총에 죽는 일이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이다.

마지막까지 경성 트로이카를 지켰던 '경성콤그룹'의 이관술은 정판사 사건으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 갇혀 있다가 6·25 직후 처형당했다. 아마도 대전의 산내학살 사건 때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닐까 한다. 박진홍은 이효정에게 북으로 가겠다는 말을 남긴 것을 마지막으로 행방을 알 수 없는 인물이 됐다. 북한의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전쟁 때 죽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체포, 고문, 사형... 이름없이 스러지다

이 책의 주인공 이재유의 투옥으로 박진홍과의 행복했던 결혼 생활은 산산이 깨어지게 된다. 그리고 신출귀몰하게 유치장을 탈출한다. 그는 박진홍이 그리워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근교에서 농사지으며 2년간 숨어 살았다. 박진홍이 옥중에서 아들을 출산했지만 만나러 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신문에서 오린 흐릿한 아들의 사진을 오래오래 바라보던 이재유.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우울한 얼굴로 술을 마시던 이재유. 경성콤그룹을 만들고 조직을 다시 규합하다가 투옥된 뒤 재판정에서 당당하고 기지 넘치는 항변을 하던 이재유.

그 이재유는 1937년 다시 체포되어 8년 동안 독방에 갇혀 있었다. 가족 이외에는 면회도 허락되지 않았다. 32세의 젊은 혁명가는 고문 후유증으로 서서히 죽어갔다. 빛나는 지성과 따뜻한 감성, 환한 미소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던 부지런한 손발이 쇠사슬에 묶여 쇠약해져 갔다.

그리고 40세 되던 해인 1944년에 숨을 거두었다. 폐병과 각기병,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의 육신은 병감에 옮겨진 지 얼마 안 되어 지켜보는 이도 없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이재유는 해방 1년 전에 죽었다. 해방 1년 후엔 그의 동지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6·25때 보도연맹 가입자 학살로 사회주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모조리 죽었다.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 씨가 말랐다. 완전 궤멸이었다.

순수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지닌 젊은 그들, 1930년대와 해방공간의 사회주의자들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폄하되고 고난을 당하며 기억해 주는 이 없이 사라졌다. 해방공간에서 조국이 분단될지도 모른다는 고뇌로 밤을 지새우던 그들의 어깨 위에 얼마나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었던가.

60여년 만의 명예회복, 이재유 훈장의 의미

지난 8일 국가보훈처는 올해 광복 61주년을 맞아 일제하 좌익계열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313명의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발표했다. 놀랍게도 그 명단에 이재유와 이효정의 이름이 있었다. 이재유는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이효정은 건국포장 포상이다.

정말 기쁜 일이다. 60년 후에야 회복되는 그들의 명예. 감개무량하다. 이제야 대한민국이 서서히 양쪽 다리로 땅을 딛고서는 것일까.

해방공간에서 좌익 활동을 했던 사람들까지도 명예회복되려면, 골 깊은 좌우갈등이 해소되는 시대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좌우 갈등의 해소. 이것은 모든 사람의 소원처럼 평화롭게 통일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효정 할머니가 여든을 넘어 쓴 시를 읽어본다. 젊은 시절의 뜨거운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다. 참 고결하다.

내 영혼 떠나버린 빈 껍질
활활 불태워
한 점 재라도 남기기 싫은 심정이지만
이 세상 어디에라도
쓰일 데가 있다면
꼭 쓰일 데가 있다면
주저없이 바치리라
먼 젊음이 이미 다짐해둔
마음의 약속이었느니

- 이효정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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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의 아이들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7
김재홍 지음 / 길벗어린이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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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엄마는 깨랑 콩을 팔러갔어요. 돌아올땐 순이색녀필하고 동이 운동화를 사온댔어요. 순이가 큰새한테물어봤어요. 큰새야 큰새야 우리엄마 언재오셔~~~~순이색연필 사갔고 오시는 중이래 순이는 아기곰한테 다시 물어봤어요. 아기곰아 아기곰아 우리엄마 언제오셔 아기곰이 그러는데 지금 오빠운동화 사가지고 오신는중이래 순이는 신이났어요. 쉿쉿 큰새와아기곰은 지금 자고있데 순이도집에가서잘까? 싫어싫어엄마중나갈거야~~~~으앙~~~알았어 알았어 그럼오빠가 물수제비뜨는거 보여줄게 그런데그때 엄마가오신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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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그랬어 - 여름 도토리 계절 그림책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 / 보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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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빤 밭을매러 가시고 동히만 혼자나맜다, 동히는 심심했다, 동물들이 동이를 웃으며 처다봤다, 동힌는 동물들 닭,토끼,소,돼지,염소. 를 우리 에서 풀어주었다, 닭들은 고추밭으로가 고춧잎을 쪼아먹고 토끼들은 무밭 으로가 무잎을먹고 소들은 배추밭으로 가~~~배추를 뜯어먹고 돼지들은 감자밭을 파헤치고 염소들은 호박밭으로가 호박잎을 뜯어먹고 동히는 엄마한테 혼날까봐 나무밑에서 울엇는데 스르르 잠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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