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산행기 - 평일에 산에 가는 나, 나도 정상에 서고 싶다
김서정 지음, 지만 그림 / 부키 / 2009년 1월
절판


이것은 어찌 보면 스스로를 방치하는 것이자 자신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것이었다. 아니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나는 아무리 노력해 봤자 출판 동네에서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무모한 취업 활동에 매달렸던 것인지도 몰랐다. 가족과 나를 위해 어서 다른 일을 찾아야 했지만 나를 더 짓밟으려고, 나란 놈은 세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요량으로 스스로를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는지도 몰랐다. 몇 달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아래로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산은 올라가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랬다.-100쪽

'육당 최남선이 겨울에 설악산에 올랐다고 했는데, 뭐 그 사람이 고어텍스 등산화를 신었겠어. 고어텍스 재킷을 입었겠어. 그래도 산만 잘 올랐고, <설악기행>이란 멋진 글도 남겼잖아. 장비 탓하지 말고 산에 맞는 몸이나 열심히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101쪽

그렇게 일주일을 더 고민하던 나는 아침 일찍부터 배낭을 꾸리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출판 동네에 다시 취직하는 것은 더 이상 바라지 말고 새로운 일을 찾아야겠다는 결의를 다진 순간, 일단 산에 가서 깊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술과 담배를 찾던 버릇이 없어졌으니까 말이다.-141쪽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생기면 생기는 대로 잃으면 잃는 대로, 상처받으면 받는 대로 눈물 나면 나는 대로, 욕심 나면 나는 대로 욕심 부리기 싫으면 또 그것대로, 뭐 그러니까 발길 닿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산이 굽이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기로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더는 내 안에 상처를 쌓지 않고, 나를 온전히 바라봄으로써 헐뜯지 않고 사랑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인생에서 모든 상황은 계속 변하고, 그래서 절망과 희망이 늘 교차하지만, 그 모습 그대로 항상 내 가까이에 있는 북한산을 보며 더는 좌절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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