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댁이 정자 옆에서 쉬고 있다.
다가간다.
"엄니 배추는 어때요?"
"자네 배추 보담은 낫제."
금년 배추가 아주 힘들다.
이틀 전까지도 구례의 한낮 기온은 섭씨 33도였다.
초반전에는 햇볕에 어린 모종들이 녹아버렸다. 한 번 더 옮겼지만 역시 힘들다.
가장 결정타는 가뭄이다. 여름부터 비는 부족했다.
마을마다 농수용 저수지가 없었다면 금년 농사는 끝장이었을 것이다.
매일 네댓 평의 사무실 앞 배추밭에 물을 주지만 하늘에서 내린 물과
사람이 주는 물은 차원이 다르다. 비가 너무 오지 않아 밤은 씨알이 작고
송이버섯은 보이질 않는다.
그 다음 문제는 개인적인 문젠데 벌레다.
배추밭에 농약을 하지 않으니 벌레 천국이 된 것은 뻔한 이치다.
그 아이들도 무농약이나 자연농법을 좋아한다.
허우대만 멀쩡한 나의 배추는 곳곳에 구멍이 송송하다.
조금 전에도 담배 피러 나가서 손으로 10여 마리를 잡아냈다.
가뭄과 햇볕에 기를 못 펴는 모종은 그렇다 하더라도
몸집을 키워가는 배추조차 내 입으로 들어가기 전에 속없는 배추가 될 판이다.
"엄니 아침에 약 하러 갈 때 나 배추밭에 약 좀 해주쇼."
"염병하고 자빠졌네. 작년에는 약했다고 난리더만……."
"긍께 딱 한번만 해달라니깐요."
"호랭이가 물가겠네. 아 약 안 함담서!"
월요일 아침을 기다린다. 그래도 한번 해 주시겠지.
그리고 하늘이시여, 제발 비 좀 내려주세요!
- 출처 : www.jiri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