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국숫발

 

슬레이트 지붕에 국숫발 뽑는 소리가

동촌 할매

자박자박 밤마실

누에 주둥이같이 뽑아내는 아닌 밤 사설 같더니

 

배는 출출한데 저 햇국수를 언제 얻어먹나

뒷골 큰골 약수터에서 달아내린 수돗물

콸콸 쏟아지는 소리

양은솥에 물 끓는 소리

 

흰 국숫발, 국숫발이

춤추는

 

저 국숫발을 퍼지기 전에 건져야 할 텐데

재바른 손에 국수 빠는 소리

소쿠리에 척척 국수사리 감기는 소리

 

서리서리 저 많은 국수를 누가 다 먹나

쿵쿵 이 방 저 방

빈방

문 여닫히는 소리

아래채에서 오는 신발 끌리는 소리

헛기침 소리

 

재바르게 이 그릇 저 그릇 국수사리 던져넣는 소리

쨍그랑 떵그랑 부엌바닥에 양재기 구르는 소리

솰솰솰솰

멸치국물 우려 애호박 채친 국물 붓는 소리

 

후루룩 푸루룩

아닌 밤 국수 먹는 소리

 

수루룩 수루룩

대밭에 국숫발 가는 소리

 

- <무릎 위의 자작나무>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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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07-2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돌아가셨는가.

파란여우 2008-07-2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는 상가에서 국수 내는 집이 있었죠.
잔칫상에 올려지던 명줄 길다던 국수가 문상객들의 속을 풀어주던.
지금은 장례식장에서 간단하게 치뤄지는 터라 국수먹고 오는 조문은 없어진지 한참되었습니다.

국수 삶는 일은 보기보다 쉽지 않아서 펄펄 끓는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피고
연륜 많은 노인네가 주로 국수를 삶았죠.
국수 퍼지기 전에 동물적 본능으로 건져 올리는 기술이 필요했으므로.
오늘은 시원한 국수 국물을 후르륵 마시고 싶네요.

달빛푸른고개 2008-07-25 09:3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예전에 상가집 졸졸 따라다니며 얻어먹던 국수가 생각나는군요.
'장례'와 관련된 직접적인 표현 없이 그 풍경을 그려낸 작품이라 허락도 없이 올려보았습니다.
(워낙 시가 안 읽히는 시대라 이것도 허망한 일이지만...)

빈한한 집을 가끔 찾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