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골의 밤
미천골의 어둠은 짐승 같아서
외딴곳에서 마주치면 서로 놀라기도 하고
서늘하고 퀴퀴한 냄새까지 난다
나는 그 옆구리에 누워 털을 뽑아보기도 하고
목덜미에 올라타보기도 하지만
이 산골에서는 그가 제왕이고
상당한 재산을 불야성에 바치고
어느날 앞이 캄캄해서야 나는
겨우 그의 버러지 같은 신민이 될 수 있었다
저녁 밥숟갈을 빼기 무섭게 시커먼 밤이 내려오면
구렁이처럼 친친 감아오는 어둠에 숨이 막히거나
커다란 젖통에 눌린 남자처럼 허우적거리면서도
나는 전깃불에 겁먹은 어둠들이 모여 사는
산 너머 후레자식 같은 세상을 생각하고는 했다
또 어떤 날은 산이 노루새끼처럼 낑낑거리는 바람에 나가보면
늙은 어둠이 수천 길 제 몸속의 벼랑에 몸을 던지거나
햇어둠이 옻처럼 검은 피칠을 하고 태어나는 걸 보기도 했는데
나는 그것들과 냇가에서 서로 몸을 씻어주기도 했다
나는 너무 밝은 세상에서 눈을 버렸고
생각과 몸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어둠을 몸처럼 입고 다녔으므로
나도 나를 잘 알아볼 수 없었다
밤마다 미천골의 어둠이 더운 고기를 삼키듯 나를 삼키면
그 큰 짐승 안에서 캄캄한 무지를 꿈꾸거나
내 속에 차오르는 어둠 때문에
나는 때로 반딧불이처럼 깜박거리며
그 속을 날아다니고는 했다
- <창작과비평> 1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