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골의 밤

 

미천골의 어둠은 짐승 같아서

외딴곳에서 마주치면 서로 놀라기도 하고

서늘하고 퀴퀴한 냄새까지 난다

나는 그 옆구리에 누워 털을 뽑아보기도 하고

목덜미에 올라타보기도 하지만

이 산골에서는 그가 제왕이고

상당한 재산을 불야성에 바치고

어느날 앞이 캄캄해서야 나는

겨우 그의 버러지 같은 신민이 될 수 있었다

저녁 밥숟갈을 빼기 무섭게 시커먼 밤이 내려오면

구렁이처럼 친친 감아오는 어둠에 숨이 막히거나

커다란 젖통에 눌린 남자처럼 허우적거리면서도

나는 전깃불에 겁먹은 어둠들이 모여 사는

산 너머 후레자식 같은 세상을 생각하고는 했다

또 어떤 날은 산이 노루새끼처럼 낑낑거리는 바람에 나가보면

늙은 어둠이 수천 길 제 몸속의 벼랑에 몸을 던지거나

햇어둠이 옻처럼 검은 피칠을 하고 태어나는 걸 보기도 했는데

나는 그것들과 냇가에서 서로 몸을 씻어주기도 했다

나는 너무 밝은 세상에서 눈을 버렸고

생각과 몸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어둠을 몸처럼 입고 다녔으므로

나도 나를 잘 알아볼 수 없었다

밤마다 미천골의 어둠이 더운 고기를 삼키듯 나를 삼키면

그 큰 짐승 안에서 캄캄한 무지를 꿈꾸거나

내 속에 차오르는 어둠 때문에

나는 때로 반딧불이처럼 깜박거리며

그 속을 날아다니고는 했다

 

 

 

- <창작과비평> 108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8-02-1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원도 양양 미천골을 말하는게지요?
선원사지 절터가 남아있고, 불바라기약수가 있고 휴양림이 있는.
어느해 9월의 깊은 밤의 추억이 있습니다.
짐승같은 어둠속에서 계곡물소리를 듣던.

달빛푸른고개 2008-02-1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원도의 순수함이 뭍어나는, 소박하고 정감있는 시를 쓰시는 이 시인은 제가 항상 존경하는 분입니다.
'언제 한번 놀러오라' 하시면 언제라도 달려가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