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질 청년 소설 르네상스 5
김원우 지음 / 책세상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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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기성세대'가 이만집의 '젋은 날의 비망록'을 우연찮게 손에 넣게되면서 시작되는 액자식 소설이다.

이 소설은 대학노트에 꼼꼼히 써내려간 이만집의 세 권의 잡기장을 읽어나가면서

기성세대의 눈을 통한 젊은 세대의 열정과 갈등, 세상과의 마찰 등을 덤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시선에는 다소의 의아함과 호기심, 염려와 힐난, 그리고 공감과 너그러움이 배여있다.

 

여기서 무기질은 유기질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기질이 없다'는 뜻의 '무기질'이기도 하다.

'나는 무기질이기에 존재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만집은 잃어버린 자신의 잡기장을 되찾게 되자 말한다.

 

"수고스럽지만,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려버리시죠.

아직 전 무엇인가를 고이 간직할 나이가 아닌 것 같아서요.

전 지금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요. 좋지않습니까?

우리시대가 무슨 과거나부랭이, 지난날의 기록따위를 가지기엔 너무 개판이었잖아요.

어쨌든 과거는 없어진거니까요.

더욱이나 제 개인적인 과거에 집착하기에는 워낙 망신스러워서요."

 

어쩌면 그 잡기장은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세대의

'의아함과 호기심, 염려와 힐난, 그리고 공감과 너그러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참, 관련 기사를 찾아 읽다가 발견한 사실, 작가 김원우는

며칠전 리뷰를 올렸던 <마당 깊은 집>의 작가 김원일의 친동생이라고 한다.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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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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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
있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
구제 받지 못한 상태에 대한 연민,
모순에 대한 예민한 반응,
혼란한 삶의 모습 그 자체.
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 뿐.



(김승옥 | 1980년 ‘작가의 말’ 전문)



어릴적 방학마다 내려가 시간을 보내던 진주와 경주의 시골이 생각났다.

나는 문득, 방학마다 쫓듯이 어린 세자식들을 시골로 내려보내야 했던 고달픈 얼굴들을 기억해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당시에 시골은 어린 나에게 즐거운 곳이었다.

도시에서 자란 나도 덕분에 비닐팩에 포장되지 않은 살아 있는 소도 돼지도 만났으니까.

공동묘지가를 지나며 밤새해도 모자랄 무서운 이야기들을 상상하고,

사촌들과 어울려 냇가에서, 논밭에서, 자갈밭에서 뒹굴었고,

엉덩이가 델 정도로 장판이 눌러붙었던 시골집 방안과, 아궁이에 구워먹던 고구마....

 

나에겐 적어도 그렇게 향수할 '시골'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시골은 나의 '고향'은 아니다.

나의 고향은 어디까지나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굴뚝 사이로 다세대 단칸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도시의 한 복판이다.

 

나는 문득 다시 생각했다.

나는, 어쩌면 우리 세대는,

돌아가지 못할 시골을 가진 부모세대와

회귀할 시골조차 같지 못한 더 어린 세대의 중간에 끼어 있구나...하고.

 

언제부터인가 시골에 가는 것이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시골에 가도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나의 그리움은 오래전에 바닥 낳고, 지금의 시골도 더이상 즐겁기만 하던 시골이 아니다.

세상도, 나도, 너무 빨리 자랐다.

 

<무진 기행>은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너무 빨리 자라고 변해버린, 그리고 떠나가 버린, 바닥나버린 그리움. 

더이상 즐겁지만은 않은 그런 시골, 또는 고향의 이야기 말이다.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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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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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무성코미디영화의 시대. 데뷔한지 1년 반 정도 된 감독이자 배우인 헥터 만이 사라졌다.

집도, 모든 소지품도 자동차도 은행계좌도 그대로 남겨둔 채, 한 남자가 증발해 버린 것이다.

그는 도대체 왜 사라진 것일까?

도대체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죽었다면 그의 시체는 어디에 있을까?

 

60년이 지났다.

문학교수 데이비드 짐머가 있다(이번 책의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의도적이고 독특하다).

비행기 사고로 아내와 두 아들을 잃고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킨채 술과 슬픔에 빠져있다.

그런 그가 우연히 헥터 만의 영화를 보게 된다.

그는 술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처방으로 헥터만의 영화를 연구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에게 편지가 왔다.

 

헥터만의 아내 프리다 스펠링.

헥터가 살아 있으며,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편지를 쓴 장본인이다.  

과연 그를 찾는 헥터는 진짜 헥터인가?

프리다 스펠링의 진심은 무엇일까?

 

알마 그룬드, 한 여자가 찾아왔다.

얼굴에 큰 점이 있고 총을 가지고 위협하는 그녀가 전해주는 지난 60년간의 헥터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짐머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목격할 증인으로 선정되었다.

알마는 지난 3년간의 상실의 애도에 종지부를 찍어줄 것인가? 


 

폴 오스터가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여기 또 하나의 엄청난 이야기가 있다.

 

액자를 보고 있다. 액자 안에 액자가 있고, 그 액자 안의 액자에 또 다른 액자가 있다.

그것이 내가 일곱번째 만난 폴 오스터의 글이자, 아홉번째 만난 폴 오스터의 이야기 <환상의 책>이다.

그의 글이 언제나 그렇듯 이 책 역시 운명과 우연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수레바퀴다.

어느 순간 위로 솟아오르더니, 어느순간 거꾸로 곤두박질 치게 되는...

 

달이 그자리에 있어도 우리가 그 달을 보지 못한다면 그 달은 거기에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사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진실과 사실에 눈이 가려져 있고, 제한된 진실과 사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까?

 

늦은 밤, 수많은 의문과 감탄으로 책을 덮으면서 잠을 이룰 수 없다.

창 밖이 어둡고 안개인지 구름인지 가리워져 달은 보이지 않는다.

달은 늘 저 자리에 있는데, 내가 보지 못한다면 그 달은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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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유재현 지음 / 강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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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2년의 기한을 두고, 남미 장기 여행을 준비하는 중이다.

같은 목적으로 관련 책을 구매한 친구의 협찬(?)으로 이미 여행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쿠바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보아야 할 책이다.

살아있는 쿠바의 현지정보가 꿈틀꿈틀한 것도 매력이지만,

우리가 쿠바에 가서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할지,

무엇을 생각하고 좀 더 고민해보아야 할지 이 한 권에 다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

 

처음엔 저자가 소설가 맞아?-할 정도로 문장이 거칠고 난삽했다.

그런데 소설가 맞더라.

작가적 호기심과 해석이 돋보이는 일화가 넘쳐나고,

독특하고 참신한 비유와 문구들도 돋보인다.

 

10일간의 여행이라니.... 10년을 산 사람처럼 글을 썼다.

물론, 10개월전에 이은 두번째 방문이라서 그렇겠지만,

무엇보다 그만큼 작가가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다.

결코 날치기해서 얻을 수 없는 세계 역사, 정치, 문화 등에 관한 풍부한 배경지식도 믿음직하다.

 

쿠바를 바라보는 그의 애정과 관심은 결코 잠시 머물다 떠날 '쿠바'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몰락을 면하고 여전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현실사회주의국가일 뿐인 쿠바.

지구 반대편의 이 이상한 나라를 부에나 비스트 소셜 클럽 이상으로 이해할 필요가 우리에게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쿠바의 시선으로 쿠바를 보면 그 너머에

우리 안의 일상화된 잔혹함과 비인간성의 음습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꼴을 볼 수 있다.

그 그림자가 주는 영감으로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좀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회주의적 영감이 사라진 자본주의만큼 참혹한 체제는 없는 법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그렇다.

우리가 여행을 하고 다른 문화를 배우는 것은

그 다른 문화를 일방적으로 찬양하거나 비하하는 그 이상이어야 한다.

우리는 어느 곳을 여행하든, 어느 곳에 반하고 빠지게 되든, 그 관심과 애정은

결국 나의 일상이 뿌리 내린 그 곳으로 끊임없이 돌아오게 마련이다.

못나든 잘났든 그 '거울' 속에 있는 건 바로 '내'가 맞다. '우리'가 맞다.

 

작가는 낭만주의적 시각을 피하면서도 굉장히 포용적이고 열린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이 단순히 사회주의나, 쿠바나, 체 게바라를 찬양하는 글이 아니라서 고맙다.

때문에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진정 배울 게 많다.

 

고처 말해야 겠다.

이 책은 쿠바를 알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한국을, 더 나아가 세상을 알고 싶은 사람이 꼭 보아야 할 책이라고.

그리고 그 안의 인간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방인의 미덕이란 그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의 발걸음을 한 발 뒤로 물리는 데 있다.

그저 볼 뿐이다.

끌려들어가서도 참견해서도 돌 하나를 옮겨서도 안 되는 존재가 이방인이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걸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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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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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의문과 호기심이 일던 명제에 대해서 명쾌 통쾌하게 써내려 갔다.
저자의 의도대로 어설픈 범신론자였던 나는 '무신론자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도저히 종교를 가질 수 없었고, 유일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손해보고 억울한 심정이었던가 말이다.
그리고 다소 그 결과가 두렵기까지 했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ㅡㅡ;;
(지금은 내 주변의 '선한 기독교'인들이 이 글 때문에 맘이 상할까 두렵기도 하다)

이 글은 종교비평이자, 문화비평이고 사회비평이다.
또 권력, 인종, 인권, 여성, 소외 문제를 다룬 정치비평이기도 하다.
글쓴이가 얼마나 조리있게, 그리고 실랄하게 조목조목 따지고 있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동물학자인 과학자가 이정도 배경지식과 연구력, 그리고 유머감각까지 겸비하고 베스트셀러가 될만한 인문학적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존경심마저 우러난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모든 과학자가 인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던가?!)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과연 신의 존재는 인간의 삶에 유익한가, 유해한가?

물론 그것은 취사선택의 문제다.... 고 혹자는 말하겠다. 예전이라면 나역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도, 신의 존재를 삶에 유익하게 또는 유해하게 적용하는 것도. 그러나 그렇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 자체가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와 모순되지 않는가?
애초에 '신의 존재'와 '인간의 선택' 사이에는 어떤 논리관계도 성립하지 않는 게 아닐까. 모든게 궤변일 뿐이다.

나는 나와 세상이 전지전능한 '신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것'도 신을 만들어내고 왜곡하고 악용하는 '인간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것'도 똑같이 불쾌할 뿐이다.

무신론자도 유신론자도, 그 중간쯤에 있는 자도 꼭 한번 읽어보고 깊이 탐구해보길 권하는 바이다.
그리고 더욱 명쾌하고 통쾌한 유신론자의 반론도 슬쩍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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