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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929년. 무성코미디영화의 시대. 데뷔한지 1년 반 정도 된 감독이자 배우인 헥터 만이 사라졌다.
집도, 모든 소지품도 자동차도 은행계좌도 그대로 남겨둔 채, 한 남자가 증발해 버린 것이다.
그는 도대체 왜 사라진 것일까?
도대체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죽었다면 그의 시체는 어디에 있을까?
60년이 지났다.
문학교수 데이비드 짐머가 있다(이번 책의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의도적이고 독특하다).
비행기 사고로 아내와 두 아들을 잃고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킨채 술과 슬픔에 빠져있다.
그런 그가 우연히 헥터 만의 영화를 보게 된다.
그는 술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처방으로 헥터만의 영화를 연구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에게 편지가 왔다.
헥터만의 아내 프리다 스펠링.
헥터가 살아 있으며,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편지를 쓴 장본인이다.
과연 그를 찾는 헥터는 진짜 헥터인가?
프리다 스펠링의 진심은 무엇일까?
알마 그룬드, 한 여자가 찾아왔다.
얼굴에 큰 점이 있고 총을 가지고 위협하는 그녀가 전해주는 지난 60년간의 헥터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짐머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목격할 증인으로 선정되었다.
알마는 지난 3년간의 상실의 애도에 종지부를 찍어줄 것인가?
폴 오스터가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여기 또 하나의 엄청난 이야기가 있다.
액자를 보고 있다. 액자 안에 액자가 있고, 그 액자 안의 액자에 또 다른 액자가 있다.
그것이 내가 일곱번째 만난 폴 오스터의 글이자, 아홉번째 만난 폴 오스터의 이야기 <환상의 책>이다.
그의 글이 언제나 그렇듯 이 책 역시 운명과 우연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수레바퀴다.
어느 순간 위로 솟아오르더니, 어느순간 거꾸로 곤두박질 치게 되는...
달이 그자리에 있어도 우리가 그 달을 보지 못한다면 그 달은 거기에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사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진실과 사실에 눈이 가려져 있고, 제한된 진실과 사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까?
늦은 밤, 수많은 의문과 감탄으로 책을 덮으면서 잠을 이룰 수 없다.
창 밖이 어둡고 안개인지 구름인지 가리워져 달은 보이지 않는다.
달은 늘 저 자리에 있는데, 내가 보지 못한다면 그 달은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200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