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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 라틴아메리카 문화기행
우석균 지음 / 해나무 / 2005년 9월
평점 :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대략 반 년 전쯤이다.
3분의 1정도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라틴 문화 기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보다 정확하게 말해 '남미 음악 기행' 그것도 '남미 민중 음악 기행'이라고 보는 게 맞다.
무지했고, 또 무관심했던 남미 민중 음악이라니....
당연히 책 읽는 속도도 더디고 재미도 없었을 수밖에....
읽다가 포기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냥 묻어둘 수가 없었다.
3월에 떠나는 남미 여행 때문만이 아니라도, 저자가 민중 음악과 악기에 실어 들려주는 남미 민초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혁명 이야기가 귀에 솔깃했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단한 삶 속에서 민초들의 노랫가락이 전하는 메시지는 저항의식과 질긴 생명력을 담기 마련이고, 다분히 치료적이고 또 혁명적이었다. 그 치료와 혁명의 경험을 마저하지 못한다는 게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예 남미 민중 음악에 대해 좀 관심을 갖고 메모지와 팬까지 준비해서 읽었다. 나중에 유트브에서 다 찾아봐야지 하면서 관심가는 음악과 가수 이름을 기록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남미 문화와 문학, 정치 경제적 상황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성, 역사에 대한 냉철한 시선이 어울어진 멋진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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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저자가 남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남미 음악과 전통 악기, 가수들, 노랫말의 고향과 뿌리를 찾아 간 문화 기행문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미의 인디오문명, 식민시대와 군부독재시대, 극악한 식민 자본주의의 발톱 아래서 소모품으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마침내 민중항쟁과 혁명의 역사가 녹아든다.
처음엔 다소 낯설던 남미 음악과 지명, 인물들 이름이 점차 익숙해지면서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갈 수록 책 읽는 속도와 열정, 재미도 배가 되었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체 게바라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관심을 갖게된 칠레의 아옌데 전대통령이나 국민시인 네루다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참 반가웠다. 특히 기구한 삶을 살았던 음악가이자 혁명가 비올레타 파라나 빅토르 하라의 이야기, 대초원의 비정규 노동자들, 어둠을 헤매는 광부들의 이야기 등에 가슴이 뭉클했고, 중간중간 눈물을 훔쳐내야 했다.
우리가 7-80년대 겪었던 억압과 고문의 시대를 90년대 재현했던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이야기는 요즘 한국정치상황이랑 오버랩되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노래꾼이 침묵하면 삶이 침묵하게 되고, 침묵은 악을 감싸는 비겁한 짓이다"
- 오라시오 과라니, '노래꾼이 침묵하면' 중에서
우리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의 빛을 잃지 않고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웠던 이름없는 음악가와 시인들, 정치가, 혁명전사들을 기억한다. 이 책은 그들을 위한 서사시였다.
나는 곧 그 서사시를 내 목소리로 노래하게 될 것이다. 칠레 산티아고를 시작으로 멕시코까지 5개월간의 여행 중, 나는 이 책에서 보고 들은, 그리고 배운 시와 노래들을 기억할 것이다.
남미가 거대한 땅 덩어리에 사라진 고대문명이 있는, 그저 값싼 여행지가 아니라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가 있는 대륙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남미 음악에 무지하고, 또 갑자기 남미 음악의 팬이 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고작 두 권의 책을 정독했지만, 우석균의 팬이 되었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나는 이번 여행에, 아니 이 삶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준, 더 큰 목적의식을 심어준 이 글에 깊이 감사한다.
2009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