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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ㅣ Mr. Know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중남미 관련 문학서적을 검색하다가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한글 번역판을 구할 수 없는 입장이라 영어판을 구해 읽었다.
The Old Man Who Read Love Stories
120쪽에 불과한 짧은 글, 단숨에 읽어버렸지만 도무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시니컬한 치과의사의 허름한 원정 진료실에서 시작된 '이빨 뽑는' 이야기는 제목처럼 연애 소설을 읽는 한 노인의 오지 생존기로 건너간다.
아마존 계발 정책의 일환으로 장미빛 미래를 선전하는 정부 말만 믿고 주인공은 아마존의 오지로 떠났다. 그러나 척박한 땅은 경작이 불가능하고, 그나마 일궈놓은 땅도 우기가 되면 모두 휩쓸려가버린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아내 마저 말라리아로 떠나버리고, 혼자 된 주인공은 '정글'과 '운명'을 저주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정글을 미워할 만큼 충분히 정글을 알지 못했다.
토착 인디언의 도움으로 점차 아마존의 거대한 자연에 매혹되면서 정글과 하나가 된 주인공. 그가 정글을 받아들이고 존중하자 정글도 그를 품에 받아주었다.
결국 그가 미워하고 저주해야 할 대상은 '정글'이 아니었다.
정글의 생존법을 터득하고 자연의 법칙을 깨달아가면서 주인공은 인디오도, 문명의 일부도 되지 못한 채 겉도는 고독한 삶을 자처한다. 일년에 두 번 찾아 오는 치과의사가 건네 주는 연애소설, 그것도 굉장히 혹독하고 가슴 아픈, 그러나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하는 연애 소설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오만하고 이기적인 관광객들과 탐욕과 위선에 가득한 정부 관리, 황금과 돈에 눈이 먼 투기꾼들, 문명의 달콤함에 항복한 기회주의자들, 선하고 근면하지만 수동적이고 어리석은 이주민들, 그리고 정글과 더블어 살아가면서 문명을 피해 도망하는 인디오 족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대자연을 존중하고 겸허해 질 수 있는지 배운다.
아마존 개발을 위시한 자본가들의 손에 암살된 대표적인 아마존 보호 환경활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바쳐졌다는 서문만 보아도 이 글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불러 온 재앙과 비극은 비단 이 소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과거에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현실에 관한 이야기다.
'고통스럽지만 달콤한 해피 앤딩'이 보장되는 연애 소설로 도피하는 노인의 삶은 결코 해답이 아니다.그러나 그 속에 '희망의 알레고리'를 발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고리타분하게 훈계나 늘어 놓는 글이라고 오해하지 마라.
야생 동물의 습식과 사냥법, 아마존 오지의 생활상은 그것만으로도 무척 흥미롭고 매혹적이었다. 손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압축된 글이다.
2001년에 영화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꼭 한번 보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한글 번역판도 스페인어 원서도 꼭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