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일주
마이크 혼 지음, 이주희 옮김 / 터치아트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내년 3월부터 떠나게 될 5개월간 중남미 여행을 앞두고 '용기'를 얻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들었다. (사실 책이 나오자마자 관심을 가졌고, 마침 고맙게도 친구에게 선물 받아 소장한지는 벌써 오래다)  

책을 읽으면서 혀를 끌끌차다가도 숨을 죽이며 몰입하였다.
스위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마이크 혼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알고보니 아내가 스위스 사람으로 스위스 불어권 지역에 살고 있다.
남아공 출신의 탐험가 후원팀에 스위스 인들로 가득한 것도 그래서였다.  

암튼, 생각보다 가까이 살고 있는 마이크 혼의 모험담을 읽어나가는 내내 기분이 묘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진부한 표현이 안성맞춤이다. 안면도 없는 '정신 나간 모험 중독자'의 글에 이렇게 흠뻑 빠져들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정말 그랬다. 손에 놓기가 아쉽게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 책은 혼자서 17개월 적도를 따라 3대양, 3대주를 무동력으로 완주한 마이크 혼의 기록이다.

 

물론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엄청난 자금과 장비를 지원해주는 팀과 후원자가 뒤에 있었다.
여행 중에도 수많은 인연을 만들어간다.  


특히 '무동력 적도일주'의 온갖 첨단장비와 '후덕한' 후원사와 후원자, 세계 곳곳에 어디든 필요한 장비를 보급해주러, 또는 단순히 응원해주러 지구 반을 순식간에 날아와 주는 팀원들, (도대체 그 경비가 다 어디서 나오는지, 팀원으로 활동하지 않을 때 이 사람들의 생업이 무엇인지 마이크 혼은 일일이 설명하진 않는다. 영리한 선택이었다.)  


더구나 신기하게도 정계와 경제계의 요직에 두루두루 박혀 있는 그의 넓은 인맥에 혀를 내두르며 '역시 세계 일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하는 냉소주의가 글을 읽는 초반 나의 감정을 지배했다. (부러운 마음에 시기심이 발동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1개월간 대서양을 횡단할 때도, 5개월간 아마존 정글을 통해 남미를 횡단할 때도, 3개월간 태평양의 폭풍과 싸울때도, 그리고 또 인도양과 섬들을 지날 때도,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내전지를 통과할 때도.... 

마이크 혼의 적도일주 알맹이, 그러니까 진짜 의미는 그의 팀과 후원자들, 그리고 독자들도 함께 할 수 없는 저 너머 어딘가에 있었다. 
 

덕분에 나는 초반의 냉소를 극복하고 그의 탐험에 함께 몰입할 수 있었다.
책을 덮고 나자 그의 일주가 17개월만에, 아니 내 입장에서는 책 한권으로 요약될 만큼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에 괜히 실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내가 모험가나 탐험가 체질이 아닌 것을 잘 안다.
기껏해야 배낭매고 남들보다 오래 걸어다닐 자신만 있다.  

나는 문명이 미치지 않은 정글 속을 뱀과 모기와 식물과 싸우며 횡단할 자신도 악어나 원숭이를 사냥해 먹을 자신도 홀홀단신으로 8미터 삼동선을 타고 사이클론(은 커녕 일시적 폭우와도)과 싸울 자신도 없다. 내전이 한창인 부패한 독재국가를 지나는 무모한 짓도 나를 추적하는 군인들을 밀림에서 따돌릴 자신도 없다. 5000미터 고봉을 하루만에 등반하거나 수천키로를 자전거 패달을 밟을 체력도 담력도 없다.

 

그래서 이 책이 그렇게 흥미진진했나보다.
대리만족이랄까....
동시에 여전히 마이크 혼이란 존재와 그 삶이 조금은 불편하고 껄끄러운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수시로 생사를 걸고 모험을 떠난 뒤 뒤에 남겨진 아내와 딸, 그 가족들이 더 용기 있고 가상하게 여겨진다. 가장이 생업(?)을 갖지 않고 세상의 오지를 떠도는 동안 혼자서 딸들을 키우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비결은 알바가 없지만(그리고 궁금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오지로 떠나보내는 아내의 두려움과 절망, 걱정과 관용, 그리고 희망과 기다림에 대해서는 나도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마이크 혼의 모험을 따라할 필요도, 욕심도 없다.
그러나 무모할 정도의 '긍정과 낙관', 불굴의 '의지'만은 배우고 싶은 미덕이다.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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