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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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로부터 가장 동떨어진 외곽에서 '무숙자'의 삶을 살았던 시인이 자본주의의 중심을 공격했다. 그의 전투가 도덕적일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궁핍과 결핍 때문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얼마간은 현재 수준의 가난을 뛰어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영웅이 거대자본가나 대중문화의 스타가 아니라고 본다. 자본주의에 대한 진정한 승자는 오직 '가난한 시인'이다. - 이문재, <내가 만난 시와 시인들> 본문 244~261쪽 중에서

 이문재 시인이 소개한 함민복 시인의 삶이 남같지 않았다. 그 가난과 자학, 그럼에도 놓치 않았던 문학의 길. 책 속에 인용된 함민복의 시들도 마음에 들었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본 시들도 좋았다. 특히 '눈물은 왜 짠가'라는 촌스러운 시에 '투가리가 부딪히듯' 나도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내친김에 이 시가 수록된 세 번째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와 같은 제목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를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친정을 거처 거의 일 년만에 내 손에 들려진 시집과 산문집은 참 술술 읽히면서도 쉽게 소화가 안된다. 

"자본주의에 대한 진정한 승자는 오직 가난한 시인이다"고 한 이문재 시인의 묘사는 탁월했고 옳았다. 그 구질구질한 일상의 경계에서 피워낸 꽃들이 서럽지만 따뜻하다. 함민복의 산문은 그의 시처럼 '시인지 산문인지' 애매하다. 그만큼 시는 산문적이고 산문은 시적이다. 그 경계를 짓는 게 애초 어리석은지도 모르겠다.

다른 산문집을 읽어보지는 못하였으나 이번 산문집 만큼은 굉장히 '자전적'이다(물론 세상 어디에도 자전적이지 않은 글은 없다). '일기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함민복'이라는 개인과 그 주변인물들의 역사가 빼곡히 들어차있다.  지난한 삶의 흔적이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살갑게, 때로는 궁상스럽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도 돼지 새끼를 받는 농장 이야기, 숭어나 낙지를 잡던 갯벌 이야기는 '인간 극장' 한 토막을 보듯 흥미진진했다. 삶은 역시 아이러니다. 타인의 가난과 상처가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로 둔갑할 수도 있으니. 그리하여 함민복 시인의 한 템포 느린 일상과 한 많은 역사도 또 다른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으니. 

그러나 나처럼 '가난한 시인'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가난한 시인'을 일방적으로 흠모하는 것은 위험하다. 위선이고 가식이다. 차라리 그 궁핍과 결핍을 원망하자. 그래서 최소한 같이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도록, 같이 '자본주의라는 새 아버지'와 싸울 수 있도록.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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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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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은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와 마찬가지로 쉽게 술술 읽다가도 숨이 턱턱막혀 책을 덮는다. 솔직히 고백하자. 나는 시를 읽을 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시집을 읽는 적정 속도'를 알지 못한다. 다만 미술관에서 '그림을 읽는 적정 속도'란 없듯이, 그저 마음을 울리는 작품 앞에서 온 몸을 베베 꼬며 자위하듯 괴로워하며 시를 읽을 뿐이다. 

그렇게 읽고 난 함민복의 세번째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무서운 은유'로 나를 위협하고 위로한다. 시 속의 '가난'과 '부조리'의 은유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눈 앞에 흑백 활동사진이 펼쳐진다.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의 '시 버전'이라고 해도 좋다. 자전적이라 필연적으로 자조적인 이 시집은 궁상맞고 못났다. 그럼에도 '모든 경계에서 꽃을 피우는' 그 순박함과 인간애, 삶의 의지가 못내 따뜻하다. 

분명, 시인에게 '700원을 적선한' 의미 이상은 있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중략)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 '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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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마리오네뜨
권지예 지음 / 창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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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어느 날 EBS 라디오 독서실로 권지예의 단편 <섬>을 만났다. 다른 글들도 꼭 읽고 싶어 책을 주문해둔지 1년 반. 2009년이 가기전 뒤늦게 후다닥 읽고 이제야 리뷰를 쓴다. 

첫 작품 <고요한 나날>은 '훈련된 작가' 답지 않게 문장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소재도 줄거리도 진부해서 다소 실망을 안겨주었다(6인 병실에서 만난 다양한 인간군이 흥미롭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역시 완전 새롭진 아니다). 하지만 그 다음 작품부터 이어지는 일종의 '파리 연작'은 내가 단 번에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말았던 이유를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파리야 여행삼아 두 번 다녀온 게 다이고, 그나마 미술관 위주로 돌다보니 파리 구석구석에 대한 추억이 많지도 않다. 게다가 불어도 할 줄 모르고, 지극히 현실적인 내가 딱히 '파리의 낭만'에 동요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갈 수 있고, 또 다시 가고 싶은 파리는 강력한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곳이다. 어렵게 불어를 배워서라도, 그 우중충한 겨울비를 맞으면서도 꼭 한 번 살고 싶은 곳인 것이다. 어쩌면 이루지 못한 그림 공부 대한 꿈과 미련이 파리에서라면 어느 쪽으로라도 결판이 날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 때문일까.  

이 책의 중단편들이 내 마음을 끌어당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파리'라는 공간적 배경 때문이었다. 권지예 작가가 8년 파리 유학의 경험과 그 전후의 삶을 단편 소설이라는 틀 속에 담아 놓은 이 소설집은 내게 일종의 대리만족 같기도 하고,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자전적 경험의 예지몽 같기도 했다. 나도 스위스에 8년쯤 살고나면 이런 소설집 하나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막힌듯 정체하면서도 끊임없이 꿈틀되고 유형하는 캐릭터들이 마음에 들었다.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다양한 화자를 오갈 수 있는 작가의 열린 관점도 마음에 들었다. 때론 잔잔하고 감성적으로, 때론 도전적이고 열정적으로 풀어내는 문체도 좋다. 결코 진부한 해피엔딩을 말하지 않는, 그러나 희극도 비극도 아닌 스토리텔링도 좋다(첫 번째 수록작만 빼고). 무엇보다 내 창작욕을 자극해서 좋다. 

마리오네트처럼 보이지 않는 줄에 얽혀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는 서울 아내와 파리 남편, 정육점 붉은 빛처럼 뜨겁게 사랑하고 섬뜻한 칼 날처럼 차갑게 사라져간 여자, 금을 넘어 사랑한 대가와 이중의 기만,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물귀신, 동시에 모든 것을 갖고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여자, 끝내 내 것이 아닌 훔쳐 본 사랑, 잔혹한 혈혼극에서 쾌감하는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본질, 변화무쌍한 삶의 스팩트럼에서 반사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짧지만 묵직한 이야기들, 가볍고도 묵직한 캐릭터들...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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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 지음, 임지호 옮김 / 경당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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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좋아하기만 하면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도 방 안에 들여놓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입어서 좋기만 하면 기묘한 옷일지라도 고집스럽게 입는 것이다. 또 그것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글을 쓰지 않는 것보다 쓰는 것이,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보다 그리는 것이, 노래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연기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감독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면 제발 마음 가는 대로 하기 바란다.

보장받을 수 없다고 해서 꿈을 꺾어버리는 것은 자기에게 무책임한 일이다. 진실은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신에게 달려 있다. - 본문 302~303쪽 

 
 

위에 인용한 글에서 이 책의 성격과 특징을 알 수 있다. 장단점도 분명하다.

"창조성이 막힌 예술가"들의 창조성이 막힌 원인들을 풀어가면서 창조의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그리하여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기운과 용기를 북돋아준다. 특별히 이론이라고 할 것도 없다. 쉬운 말로 쉽게 쓰여진 글은 읽기 편하고 무엇보다 적잖은 동기부여와 위로가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 속 부록에 작가가 남긴 이 책의 '목적'을 보면 보다 명료하다. 

첫째, 예술가에 관한 부정적인 신화를 벗겨내는 데 도움을 준다.
둘째, 사람들이 자기 안의 창조성을 발견하고, 가다가며, 창조성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도와준다.
셋째, 사람들에게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자신의 인생행로에서 마주치는 장애요인들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사람들이 자기 욕망과 꿈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도움을 주고, 그런 꿈과 욕망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또한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하는 점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돕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참 진부하고 지루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번역체의 난삽한 문장이 눈에 많이 거슬렸고, 늘 '신'이나 '창조주' 타령하는 것도 불편했다(물론 저자는 말머리에 이 책에 줄기차게 나오는 '신'을 꼭 기독교의 신으로 규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친절하게' 전제해준다). 이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이 책은 12주 동안 꾸준히 함께 실천하고 확인할 과제를 제시해줄 뿐, 결국 '창조성을 일깨우는 몫'은 독자에게 있다. 따라서 그 과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적용하고 실천하는 가에 따라 이 책의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이 책은 서점에 널린 흔하고 흔한 그저 그런 처세 스테디셀러가 될 수도 있고, 인생을 바꾸는 단 한 권의 책이 될 수도 있다. 모두 '나 자신'에게 달렸다.

나도 처음 몇 주는 '모닝 페이지'를 꾸준히 쓰고 매주 과제도 열심히 했지만, 이사하고 연말연시를 지나면서 어느새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시간이 갈 수록 '동어반복'하는 것에 실증이 나면서 귀찮아 진 탓도 있다. 하지만, 처음 몇 주라도 진지하게 모닝 페이지를 쓰고 과제를 하는 동안 내 안의 창조성이 보다 확실하게 꿈틀거렸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꼭 책에서 시키는대로 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과제와 테마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내게는 참 흥미롭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읽는 듯 마는 듯 하면서,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은 아이러니는 바로 그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이 독자로 하여금 퇴색한 창작 동기를 일깨워주고 의기소침해진 창조성과 자아를 응원해준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스테디셀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늘 그렇듯 실제로 '창조성을 일깨우는 일'은 본인에게 달렸지만, 이 책이 폭풍속 정글에서 길을 잃은 영혼들에게 기본적인 나침반이 되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진부하고 지루한' 책을 앞으로도 몇 번이나 또 읽게 될 것 같다. 

길은 결코 곧게 뻗어 있지 않다. 성장이란 온 길을 되돌아가며 재평가하고 재편성하는 나선형의 과정이다. - 에필로그 333쪽 중에서 

자기 회의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해나가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자기 회의를 경험하지 않는다고 믿기 쉽다. 사실 예술가들은 회의와 더불어 작업하는 법을 터득한 사람들이며, 회의하면서도 작업하는 사람들이다. 창조성 프로그램은 지나친 자기 검열과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도록 해줄 것이다. - 부록 341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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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베어 하트 지음, 형선호 옮김 / 황금가지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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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은 올바른 인생이 아니다. 때로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바람을 거슬러가야 할 때도 있다. - 본문 316쪽 


여기저기서 이 책의 인용 문구를 접한 뒤, 나도 책 제목처럼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를 배우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목이 잘 못 된 건 아니었으나, 책은 생각보다 재미없고 지겹고 진부했고,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웠다. 우선 번역투가 심해서 글이 부드럽게 읽히지 않는 것도 문제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멋진 인용 문구 그 이상의 배움과 지혜를 얻기엔 어딘가 역부족이다. 

가령, "그냥 오래 살기만 하는 것과 오래 살면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전혀 다르다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선물을 받았네. 그냥 늙은 사람이 되지 말고 무언가를 배워야 하네" 이런 문장은 아무리 되새겨도 지나치지 않을 가르침은 맞다. 그러나 이 책이 그런 '지혜'를 나누어주는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터다. 솔직히 나는 그런 뻔한 이야기 말고 진짜 무릎을 탁 치고,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인디언만의 무언가'를 원했다. 

물론 그런 것이 영 없는 건 아니다. 그나마 저자가 성장하고 주술사로 훈련받는 이야기, 다양한 병을 앓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화들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가장 배울 점이 많은 부분이었다. 그런 부분이라도 없었으면 300여쪽을 어찌 다 참고 읽었을까 싶다.

더구나 이 기적을 행하는 위대한 인디언 주술사는 얼마나 독실한 기독교신자인지, 모든 것을 '세상에 유일한 창조주'의 공으로 돌리는 겸손함까지 갖추었다. 거의 '아전인수' 격으로 모든 인디언 전통과 문화를 성경과 기독교 윤리, 유일신이란 존재로 해석하고 적용시키고 찬양한다. 오히려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뿐, 인디언이 먼저 '그 높은 존재'를 인정하고 믿어왔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다가 내가 전도서를 읽는 것인지, 인디언의 지혜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베어 하트의 독실함은 내가 그동안 다른 글과 방법으로 접해왔던 세계 각지의 다양한 인디언들의 종교, 문화, 전통, 신념 등과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그렇다고 베어 하트가 훌륭한 인간임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편견도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었겠지만, 기독교에 정치, 문화, 철학적 뿌리를 든 서구인들(특히 너무나 '종교적인' 미국인들)과는 달리 불교와 무손신앙을 바탕으로 '개'신교가 '개'지랄을 하는 한국사회에서 자란 한국인들은 같은 글도 분명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번역문(특히 잘 팔리고 널리 읽히는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가장 괴롭고, 가장 안타까운 부분. 지금까지 20여권이나 번역했다는 영어강사 출신의 전문번역가가 한국어 문장 공부를 얼마나 소흘히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었다. 한편 그럴 수밖에 없는 열악한 번역현실을 또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씁쓸한 독서였다. 

아무쪼록 이 리뷰를 같은 책에 관한 별 다섯개 짜리 리뷰와 함께 참고하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바람을 거슬러가야 함'을 잊지 말고 '바람이 부는대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이와 같은 책들을 꼼꼼히 살펴 읽고 소화할지어다.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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