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베어 하트 지음, 형선호 옮김 / 황금가지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은 올바른 인생이 아니다. 때로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바람을 거슬러가야 할 때도 있다. - 본문 316쪽 


여기저기서 이 책의 인용 문구를 접한 뒤, 나도 책 제목처럼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를 배우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목이 잘 못 된 건 아니었으나, 책은 생각보다 재미없고 지겹고 진부했고,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웠다. 우선 번역투가 심해서 글이 부드럽게 읽히지 않는 것도 문제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멋진 인용 문구 그 이상의 배움과 지혜를 얻기엔 어딘가 역부족이다. 

가령, "그냥 오래 살기만 하는 것과 오래 살면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전혀 다르다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선물을 받았네. 그냥 늙은 사람이 되지 말고 무언가를 배워야 하네" 이런 문장은 아무리 되새겨도 지나치지 않을 가르침은 맞다. 그러나 이 책이 그런 '지혜'를 나누어주는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터다. 솔직히 나는 그런 뻔한 이야기 말고 진짜 무릎을 탁 치고,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인디언만의 무언가'를 원했다. 

물론 그런 것이 영 없는 건 아니다. 그나마 저자가 성장하고 주술사로 훈련받는 이야기, 다양한 병을 앓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화들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가장 배울 점이 많은 부분이었다. 그런 부분이라도 없었으면 300여쪽을 어찌 다 참고 읽었을까 싶다.

더구나 이 기적을 행하는 위대한 인디언 주술사는 얼마나 독실한 기독교신자인지, 모든 것을 '세상에 유일한 창조주'의 공으로 돌리는 겸손함까지 갖추었다. 거의 '아전인수' 격으로 모든 인디언 전통과 문화를 성경과 기독교 윤리, 유일신이란 존재로 해석하고 적용시키고 찬양한다. 오히려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뿐, 인디언이 먼저 '그 높은 존재'를 인정하고 믿어왔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다가 내가 전도서를 읽는 것인지, 인디언의 지혜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베어 하트의 독실함은 내가 그동안 다른 글과 방법으로 접해왔던 세계 각지의 다양한 인디언들의 종교, 문화, 전통, 신념 등과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그렇다고 베어 하트가 훌륭한 인간임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편견도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었겠지만, 기독교에 정치, 문화, 철학적 뿌리를 든 서구인들(특히 너무나 '종교적인' 미국인들)과는 달리 불교와 무손신앙을 바탕으로 '개'신교가 '개'지랄을 하는 한국사회에서 자란 한국인들은 같은 글도 분명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번역문(특히 잘 팔리고 널리 읽히는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가장 괴롭고, 가장 안타까운 부분. 지금까지 20여권이나 번역했다는 영어강사 출신의 전문번역가가 한국어 문장 공부를 얼마나 소흘히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었다. 한편 그럴 수밖에 없는 열악한 번역현실을 또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씁쓸한 독서였다. 

아무쪼록 이 리뷰를 같은 책에 관한 별 다섯개 짜리 리뷰와 함께 참고하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바람을 거슬러가야 함'을 잊지 말고 '바람이 부는대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이와 같은 책들을 꼼꼼히 살펴 읽고 소화할지어다.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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