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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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혀를 끌끌차면서 '허허' 웃다가, 울분이 울컥울컥 치솟으며 눈물이 고이다가도 이내 다시 웃음이 나고 흐믓했다.
재미있게 참 잘 써나갔다. (군데 군데 오타가 있는 게 좀 거슬렸지만)


인생을 바꿀만한 책이 있다면, 아마 이 책을 그 목록 제일 위에 넣어도 좋을 것 같다.
여러모로 귀감이 되는 글이었다.

먼 훗날 누군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나 사건이 있냐고 묻는다면,
'최병수'와 '이 책을 읽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아니,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살고 싶다.



2008년 4월  

 


최병수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다르다.

그에게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아니 도무지 어떻게도 풀 수 없을 것 같은 곤혹스러운 문제들이 여럿 담겨 있다.

아마 그 자신도 그렇게 된 이유를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의 삶은 그리고 그의 작품과 그가 해왔던 많은 일들은 '사회적인 문제들'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그가 늘 이 사회와 정면으로 맞닥뜨려 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항상 그의 방식대로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이 사회와 마주하는 과정조차 사회적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이야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 개인의 출신과 배경 그리고 품성이 최병수처럼 그대로 사회적 관계 속에 복잡하게 엮여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마 그에 대한 당혹스러움은 거기서 시작될 것이다.

그가 철저하게 그런 삶을 자청하고 나섰으며 도무지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그가 갇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최병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그걸 누구나 알고 있을 거였다.

 

최병수는 화가다.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한다.

거기에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다.

하지만 그는 화가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어떤 조건도 예술가로서 상투적인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가 미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국졸출신이라는 것, 마지막 직업이 목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의 작업의 내용과 방법에서도 그는 상투적인 화가의 조건에서 벗어나 있다.

 

격정의 시간이 저만큼 흐르고 모두가 또 다른 좌절과 침묵의 시간을 보낼 때도

여전히 그의 핏줄은 곤두서 있었으며

모두들 과거의 후광 속에서 현재를 만끽하고 있을 때도 그는 여전히 목말라 했다.

다른 편에서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끈을 풀어버리려 안달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는 여전히 어리석게도 자신을 더 단단한 끈으로 동여매고 있었다.

 

본문 12-14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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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CURIOUS 24
셜리 우 지음, 김지현 옮김 / 휘슬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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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큐리어스' 시리즈의 타이틀에 맞게, 스위스에 관해 궁금하다면 입문하기 좋은 책이다.

각 나라와 문화는 보는 이의 관점과 문화적 배경에 의해 달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스위스에 대해 영국인들이 쓴 글과, 미국인이 쓴 글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한국사람이 쓰고 옮긴 글은 또 다를 것이다.

때문에 어떤 문화에 대해 알고 싶다면 다양한 출신과 문화, 관점의 다양한 글들을 읽어보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공평할 것 같다.

아무튼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스위스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늘 일관성 있는 이야기들은 존재하기 마련. 그런 정도의 호기심을 채우기엔 부족함도 없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내용도 분량도 가벼운 책. 


다만 원작이 쓰인지 좀 오래되었는지, 몇몇 항목이나 수치가 현재와 맞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읽을 때 주의해야 겠다. 그리고 번역가가 현지 발음과 무관하게 영어식으로 옮겨 놓은 엉터리 이름들이 눈에 거슬린다.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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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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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디오 파일로 일단 두 번째 듣고 있고, 조만간 원서도 읽을 참이다. 그만큼 한번 들어보고 말기에 너무 아깝고 재미있었고, 두번 들어도 다시 읽어보고 싶을 만큼 유익하다는 말이다.

 

이 책은 킹의 글쓰기 '개인사'와 글쓰기의 기본 자세,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 책 소개에서 퍼 온 마지막 첨부 글을 참고하라. 나는 다만 거기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몇 가지 사항을 덧붙이겠다.

 

우선, 킹은 글쓰기 위한 조용한 방의 중요성을 말한다. 반드시 문이 있어야 하며, 책상은 중앙이 아니라 구석에 놓는 것이 낫고, 창문은 없거나 있다면 커튼을 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즉, 세상과 최대한 격리된 공간을 창출하라는 것이다. 특히 초보 작가에게는 그런 글쓰기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한다고 한다.

 

플롯에 연연하지 말고 이야기 자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캐릭터가 직접 말하게 하라는 조언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 모든 것도 일단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저절로 그렇게 풀려나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니 일단 앉아서 써보라고, 외부 세계와 문을 닫고, 가상 세계를 열어보라고 말한다.  

 

킹은 글쓰기를 악기 연주와 비교하는데...진짜 재능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뭐라든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며, 손가락이 찢어지고 마비될 때까지 악기를 연주할 것처럼, 글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때문에 그는 '글쓰기 강좌' 같은 것에도 회의적이다.
물론, 그러한 작문수업이 도움이 되는 것은 인정하지만, 만약 작문수업을 위해서만 글을 쓰고 훈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전업 작가의 운명은 아닌 것 같다고 냉정하게 말하고 있다. 이런 전런 핑계를 대면서 머리속에서만 글을 쓰고 있는 나 같은 사람도 결국은 그런 '작가의 운명'은 타고나지 않았다고 따끔이 일침을 가한다.

 

또 기억에 남는 구절은 그가 일년에 적어도 7-80권의 책을 읽는데, 그가 책을 읽는 이유는 그들이 순순히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서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하면서도, 킹은 남들이 말하는 고상한 기준 따위는 잊고,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읽고, 또 그런 글을 쓰라고 한다.

또한 킹은 온갖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글을 읽는데, 늘 가방에 책을 가지고 다니고 운전중이나 이동 중에 오디오 북을 듣는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동지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나 역시 출퇴근 길이나 운동시간을 활용해 독서(?)량을 늘이는 오디오 북 '애찬론자'이다.

 

'과잉 묘사'로 독자를 지루하게 하는 걸 피해야 한다는 조언도 흥미롭다. 이는 보통 '혹시나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까'하는 걱정에서 비롯되는데, 가장 초보적인 실수라고 한다. 이 역시 이야기 자체가, 캐릭터 자체가 스스로를 설명하게  하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너무 '친절한' 작가는 별로 매력이 없기 마련이다. 

 
글 읽기와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귀감과 응원이 되고,  한글 번역 책 제목처럼 진정 글쓰기를 '유혹하는' 글이었다. 


2008년 4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고 딱 잘라 얘기하는 스티븐 킹이 속 시원하면서 무척 부럽다. 그리고 신체적 묘사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손쉽게 드러내려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왜 지금까지의 그의 소설들이 스토리텔링을 위주로 하면서도 상습적인 진부함을 벗어날 수 있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창작론'이라는 꽤 묵직한 부제가 붙어있긴 하지만 스티븐 킹의 유머러스한 자서전에 더 가깝다.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그의 소설들이 그러했듯 무척이나 확실하고 간결하기에 어려운 단어문장에 찌들리지 않고 신선한 정신상태를 유지시키면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다.

꼭 작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야하는 우리들, 논술고사를 앞둔 학생들에게 유쾌한 글쓰기 가이드가 될 것 같다. 글을 잘 쓴다는 건 삶에 있어서 일종의 '덤'이 아닐까.

 

■ 최정상에서 은퇴를 선언한 미국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소설 창작론 "나는 이렇게 독자를 사로잡았다"

글쓰기는 창조적인 잠이다. 글쓰기에서든 잠에서든 육체적으로 안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낮 동안의 논리적이고 따분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정신과 육체가 일정량의 잠을 자듯이 깨어있는 정신도 훈련을 통하여 창조적인 잠을 자면서 생생한 상상의 백일몽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것이 바로 훌륭한 소설이다. -스티븐 킹-

■ 왜 스티븐 킹인가?

스티븐 킹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존 그리샴, 톰 클랜시 등과 함께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소설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스티븐 킹 산업'이라 불리울 정도로 상업적인 것은 물론 문학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며 천문학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하였다. 또한 그의 첫 장편소설인 《캐리》를 위시하여 거의 모든 작품들이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소설로 일가를 이룬 스티븐 킹은 국내 독자들에겐 소설보다 여러 영화들(《미저리》《쇼생크탈출》《돌로레스 클레이본》의 원작자로 더욱 알려져 있다.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스티븐 킹의 재능은 공포 내지 환상소설 분야에서 단연 독보적인데, 아직까지 한국의 대중문학 시장은 이제 막 성장하려고 하는만큼 그의 소설은 앞으로 새롭게 개척해나가야 할 분야이자 그 분야를 개척해 나갈 작가들이 전범으로 삼아야 할 교본이다. 여성적 취향의 연애소설이 대중문학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척박한 대중문학풍토를 자극하는 것이 바로 스티븐 킹의 작품들인 것이다.

■ 영상시대를 사로잡은 퓨전문학의 기수

우리나라는 영화가 산업으로 탄탄하게 자리잡아 가고, 영화적인 소설 읽기에 열광하는 젊은 영상세대들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문자보다 영상에 보다 친숙한 젊은 독자들은 보다 속도감있고 영상과 가까운 소설을 원한다. 이미 오래전에 이런 변화를 겪은 미국에서 스티븐 킹의 작품들이 헐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대중의 그런 욕구들을 정확히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가 정석화 씨는 스티븐 킹을 두고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을 아우르는 퓨전문학의 기수라고 평가했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 플롯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속에도 플롯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진정한 창조의 자연스러움은 절대 플롯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상황이 제시되고 등장 인물들은 자기 방식대로 움직인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작가는 소설의 창조자일 뿐 아니라 최초의 독자(스티븐 킹은 글을 쓰는 자신조차도 결말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히고 있다)이다. 즉, 스티븐 킹의 작품은 미래의 소설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범이라 할 수 있다.

■ 그 누구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글쓰기를 묻지 않았다

문학적 우수성에 이끌려 소설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비행기에 가지고 탈만한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엄청난 양의 닭튀김을 팔아치운 샌더스 대령(KFC의 조리법 개발자)에게 그 과정을 묻지 않듯이 누구보다 많은 소설책을 독자에게 읽혀온 그에게 글쓰기의 과정을 진지하게 묻는 사람은 없었다. 업다이크나 스타이런같은 작가에게는 물어보지만 대중소설가 스티븐 킹에게는 묻지 않았다.
스티븐 킹은 찰스 디킨즈가 저급 독자층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비평가들의 공격을 받는 것을 예로 들면서, 비평가나 학자들이 작가의 대중적인 성공을 수상쩍게 본다는 것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들의 의심이 정당할 때도 많지만 '한번 삼류는 영원한 삼류'라는 견해에는 반대를 한다. 스티븐 킹이나 존 그리샴, 마이클 크라이튼같은 사람이 소설로 그렇게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까닭은 어떤 신비롭고 통속적인 요소들을 잘 써먹기 때문도 아니고, 완고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문단의 기득권 세력이 깨닫지 못하는 진정한 위대함 때문도 아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허위의식과 근심을 버려야 한다. 허위의식이란 어떤 글은 '좋다' '나쁘다'라고 규정하는 것이며, 이런 태도는 근심에서 비롯된다. 그는 글쓰기의 목적은 상관없으나 경박한 자세만은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글쓰기는 인기투표도 아니고 도덕의 올림픽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눈화장이나 세차와는 분명 다른 일이다).

■ 소설만큼이나 명쾌하고 속도감 넘치는 글쓰기 교본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은 예의 그의 소설처럼 속도감있고 솔직하며 명쾌한 글쓰기를 얘기한다. 소설의 목표는 정확한 문법이 아니라 독자를 따뜻이 맞이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기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유혹 행위인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소설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아이디어 창고나 소설의 보고, 베스트셀러가 묻힌 보물섬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허공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소설가를 찾아오는 듯하다. 전에는 아무 상관도 없던 두 가지 일이 합쳐지면서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가가 해야 할 일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막상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옥석을 접함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창작의 가능성을 경험한다. 무엇보다 독서는 창작의 과정에 친숙해지고 그것이 편안해지는 최상의 방법이다. 다음으로, 아는 것에 대하여 써야한다. 미국 중하류층 출신인 스티븐 킹이 그것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소설로 대중의 사랑을 받듯이, 자기가 좋아하고 잘 알고 있는 소재를 쓰고 삶, 우정, 인간관계나 성, 일 등에 대하여 개인적인 체험들을 섞어서 독특한 것으로 만들면 그 소설은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항상 가상독자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써야 한다. 가상독자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며 누구보다도 그들의 의견을 비중있게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스티븐 킹의 경우엔 그의 아내 태비사 킹이고 먼지 속에 묻어둘 뻔 했던 《캐리》도 그녀 덕분에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의 가장 큰 맥락부터 수동태와 부사의 남발을 피할 것, 서술(narration)·묘사(description)·대화(dialogue)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연장들 등에 관해서도 풍부한 예화와 함께 상세하고 재미난 설명을 곁들인다.

■ 소설이라는 커다란 화석을 발굴한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

소년 시절 스티븐 킹의 어머니는 꼬마 스티븐이 소설 한 편을 완성시킬 때마다 25센트 동전을 주었고, 그것은 미국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밑거름이 되었다. 십대 초반에 썼던 첫 소설이 앨라배마 지방의 작은 공포잡지에 실린 것에 고무되어 소년 스티븐은 꾸준히 여러 잡지사와 출판사에 자신의 소설을 투고했다. 출판사들로부터 날아오는 거절 쪽지들을 꽂아놓는 전용 못을 더 크고 튼튼한 것으로 바꿔야 할만큼 숱한 거절을 당하고서도 그는 글쓰기를 버리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첫 베스트셀러로써 《함정과 진자》(권당 25센트)의 9달러를 벌었던 사건, 학교 선생님들을 풍자한 <빌리지보밋>이라는 신문으로 처벌을 받았던 사건을 회고한다. 왜 쓰레기같은 글로 시간을 낭비하느냐고 따져묻는 선생님의 비난에 그는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작품들을 부끄러워했다. 그러다가 시든 소설이든 단 한 줄이라도 발표한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에게서 하늘이 주신 재능을 낭비한다는 비난을 듣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마흔 살 무렵, 그때서야 비로소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외에도 아내 태비사와의 만남, 결혼과 아이들,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창작활동, 첫 장편소설 《캐리》의 성공(당시 스티븐 킹을 발굴해낸 편집자가 존 그리샴 또한 발굴해냈다는 것이다)이후 미국 최고의 작가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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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 현대 프랑스 철학총서 11
미셸 푸꼬 지음 / 인간사랑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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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신나게 술술 읽어나갔다.
무릎과 손뼉을 탁탁 쳐가며 말이다. 
그러나 이내 나는 혼란에 빠졌고, 지루함에 빠졌고,
결국엔 겨우 겨우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아무리 나의 철학적 배경지식이 얇고, 철학적 사유 능력이 박하다 하여도
이 글의 번역된 문장을 보면 그래도 좀 너무하다 싶다.
진실, 즉, 푸코의 문장력이 고작 이 정도였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선
프랑서어로 쓰여진 원서는 무리라도, 영어판이라도 구해서 다시 읽어봐야지 싶다.

글 자체는 매우 흥미롭고 충격적(?)이었다.
'광기'를 다루는데서 보여진, '이성'의 '비이성'에 대한 억압과 권력의 역사. (사실 책에 대한 요점은 나 보다 딴 사람들이 더 잘해두었다. )

 다양한 미술작품과 문학작품을 근거자료와 참고자료로 들며 글을 풀어나가는 푸코의 문체는 신랄하고 희극적이다.
(그나마 혼란스러운 번역문장 속에서 길을 잃고 말지만)


사실상 세계 학생들과 지성인 사이에 '필독서'라 할 만큼 교양서적이 되어 버린 이 글은 철학전공자만 읽을 수 있도록 쓰여지지도 않았고, 그렇게 번역하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필자서문을 보면 번역가가 지식이 부족하거나, 글 자체를 못 쓰는 것 같진 않은데....

왜 이렇게 읽기 힘들게 글을 옮겼을까...
읽는 내내 문장을 재조립하며 힘들고 안타까웠다.
그저, 내가 공부를 좀 더해야겠거니...하며 한숨을 쉴 뿐이다.


내가 읽은 책은 초판 7쇄로 1994년에 출판된 구판이다. 신판과 표지부터도 다른데, 99년에 나온 신판은 새로워진 표지만큼 글도 새롭게 찍어냈는지 모르겠다. 그러길 희망할 뿐이다. 이왕이면 다른 번역자의 글을 추천한다.


쓰다보니....결국 나의 리뷰도, 글을 읽을 때 만큼이나 삼천포로 빠질 수 밖에 없다. 어려운 글을 한 권 '끝냈다'는 뿌듯함은 커녕, 한숨과 혼란만 남는다.

 

2006년 7월,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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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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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감히 예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줄거리를 이야기하면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뉴욕에서 일어나는 세 가지 이야기 모두, 독립적이면서도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진 방>

세 가지 이야기는 한 사람이 비연속적으로 꾼 초현실적 꿈의 몽타쥬 같다.

<유리의 도시>에선 사립탐정으로 오해 받은 한 추리소설 작가 '퀸'은 아들을 해칠지 모르는 아버지를 추적한다. (그는 막 정신병원에서 퇴원했다)
<유령들>에서는 '블루'라는 초보 사립탐정이 '화이트'의 의뢰에 따라 전후 내막도 모른체 '블랙'을 24시간 감시하게 된다.
<잠겨진 방>에서는 한 남자가 실종된 어린시절 친구의 아내로부터 연락을 받고, 친구의 미발표 글들을 발표하면서 친구를 찾아나선다.

 

모두가 쫓고 쫓기며, 관찰하고 관찰당한다. 그 와중에 쫓는자도, 쫓기는 자도, 관찰자도 관찰당하는 자도,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서로를 닮아가고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다.

 

폴 오스터 (1947~)

 

주인공들이 대체로 '작가'인 폴 오스터의 작품.
그러나 주변인물들의 직업과 이력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그 직업과 이력을 묘사하는 정보와 지식, 개성은 추종할 수 없는 폴 오스터의 장점이다. 등장하는 수 많은 인용 문학들이나 책 목록만 보아도 그의 독서 범위와 깊이를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와 지식, 재해석'의 광장이야말로 폴 오스터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은 절대 진부함이나 통속적인 뼈대와 결말을 거부한다는 점. 그의 작품을 읽을 때 마다 한동안 휴우증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떻게 글을 쓰고,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늘 그런 화두를 내게 남겨준다.

 

그랫서 나는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늘 조금은 화가 나 있고, 조금은 부끄럽고, 부럽기도 하고, 흥분과 혼란 때문에 머리와 심장이 아프다.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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