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형제분은 큰아버님. 아버지 그리고 막내 삼촌 이렇게 세분과 고모님 세분 이렇게 여섯분이셨다.
큰아버님 위로 한 분이 더 계셨다고 했지만 6.25때 돌아가셨다고 어머니가 그러셨다.
오늘 문득 막내 삼촌 생각이 난다.
나의 막내 삼촌은 뇌성마비로 전신이 온전하지 못했다. 요즘 말하는 2급장애인 쯤 될것이다.
막내 삼촌-윤태 삼촌은 매일 다리를 절룩거리는 걸음에 꾸부러진 손을 가슴에 대고 흔들며 다녔었다.
철이 없던 어릴적엔 그런 막내 삼촌을 부끄러워하기도 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분명 부끄러워했었을것이다.
하루에 하는일이라고는 소꼴을 베어 지게에 지고 나르고 -불편한 몸에소꼴을 지게에 한짐이나 지곤했었다.-여물을 끊이는 일이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은 찿아보기도 힘든 소형 라디오-뒷쪽에는 항상 큰 밧데리가 붙여져 있었다-를 듣는 일이 삼촌에게는 유일한 기쁨이였었다.
큰댁에서 할머니랑 같이 살았었는데, 할머니는 물론 막내삼촌 역시 무단히 큰어머니 눈치 보느라 고생했을 것이다.
뇌성마비로 30세를 겨우 넘긴 막내삼촌은 시름시름 앓다가 몹시도 추운 겨울날에 돌아가셨다.
막내삼촌이 돌아가시던 날 아버지는 경운기에 실려가는 삼촌의 관을 따르며 서러움에 하염없는 우셨었다.
그때, 나는 우리아버지의 눈물을 처음으로 봤다.
그때, 나는 울지도 않았던것 같다.
특별히 삼촌에게 사랑받은 기억이 없었고 내가 삼촌에게 잘해준 기억이 없던 나로서는 삼촌이더라도 서먹함이 더 많았었다.
그러나 지금 불쑥 생각나는 삼촌에게 말한마디 내가 먼저 걸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분명 막내삼촌은 나에게도 좋은 삼촌이였을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