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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지만 무너지지 않는 삶에 대하여 - 탈진의 시대, 인류사 내내 존재했던 피로의 인문학 A to Z
안나 카타리나 샤프너 지음, 김지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9월
평점 :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2024년 여름을 보내고 반가운 가을을 맞고 있다. 결실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들리는 소식은 배추 한 포기 2만 원, 송이버섯 1kg에 170만 원 등 풍요롭지 못한 결실에 관한 이야기들. 뜨거운 태양과 세찬 바람을 거쳐야 열매를 맺는다지만, 그 또한 자신을 보전하는 범위 안에서나 일어나는 이야기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 너무나 혹독한 계절을 거치다 보면 열매 맺기 어려운 자연과 다르지 않다.
영국 켄트대학교 문화사 교수이자 번아웃 전문 코치로도 활동하는 저자는 우리가 마주하는 탈진의 문제를 철학·심리학·사회학·문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우리가 겪는 전염병은 코로나로 그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오늘 우리가 겪는 번아웃이라는 전염병을 저자는 인문학적으로 살펴보며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이어가고자 한다.
이 책은 A부터 Z까지 총 26편의 짧은 글들이 실려있다. 인류사 내내 존재했던 피로라는 개념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이 26가지 키워드들은 번아웃의 근원과 역사를 탐구하는 동시에, 탈진의 잿더미 속에서도 마음의 피로를 돌보고 자신만의 행복을 재발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영감을 전한다.
exhaustion 탈진은 21세기에 등장한 현대인만의 병이 아니라 인류가 태초부터 지녔던 숙명이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탈진 상태의 근원에는 개인적인 문제뿐 아니라 문화적인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탈진의 문제를 철학적 사유와 역사적·사회적 통찰이 지닌 치유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도로 우상화하는 현대 사회의 문화적 압력으로 점점 더 아픈 사람이 들어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무시하고 개인에게만 탈진의 책임을 추궁하고 극복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탈진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의 출발 ‘A’의 자리에 저자는 ‘받아들임(Acceptance)’을 놓았다.
만사가 귀찮고 심신이 지쳐 탈진 상태에 이르렀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이 지경까지 몰아붙인 일을 계속해 나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을 길러라’, ‘깊이 심호흡해라’, ‘일과 삶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해라’ 따위의 조언도 탈진에 이른 사람에게는 힘이 되지 못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급진적 수용’이다.
급진적 수용이란 몸과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온전히 인식하되, 판단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탈진 상태는 에너지가 극도로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에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극심한 피로감과 무기력은 우리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일을 예방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잠깐 쉬어 가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 무한경쟁사회에서 실패는 곧 사회적 낙인과 같다. 우리는 ‘패배자’를 악인으로 간주하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지독한 생존자 편향에 사로잡혀 있다.
실패를 대하는 현명한 태도는 실패가 단순히 우리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실패가 열정의 또 다른 이면이라는 사실 또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블랙박스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블랙박스 사고방식이란 실패에 사회적 낙인을 찍는 대신 그 이점을 활용하려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K] 차례인 ‘카이젠(개선 Kaizen)’에서 저자는 우리의 삶의 변화를 이끄는 소중한 방법을 제시한다. 영혼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때,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나 홀로 길을 헤매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 그럴 때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한 가지 하는 것이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스트레스 요인을 전부 제거하려고 시도하지 말고, 한 번에 하나씩 작은 일부터 해결해 보라.
[S] 차례에서 소개되는 ‘스토아주의(Stoicism)’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현상은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고 이것에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절망하기보다는 통제할 수 있는 것, 즉 외부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에 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집중하라는 것이다.
스토아주의는 인생의 고통과 불행을 피하거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저 인생에서 무슨 일이 닥쳐도 침착하고 굳건하게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 태도, 즉 평정심과 회복탄력성을 기르고자 했을 뿐이다. 그것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 범위 안에서.
[X] 차례인 ‘환대(Xenia)’에서 저자는 수용전념치료(ACT)를 설명한다. 수용전념치료는 수용, 관찰, 놓아주기라는 세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쁨, 활력, 유대감, 사랑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싶다면 삶 속에서 슬픔, 수치심,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설 자리도 마련해야 한다. 긍정적인 감정만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감정은 아예 차단해 버린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면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포용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나의 집에 들어온 문제적인 감정에 맞서 싸우거나 이를 억누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
탈진 상태의 원인이 심리적이거나 신체적일 수도 있고 시대적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다. 우리는 각자 속한 문화적 맥락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존재다. 우리 시대의 문화적 경향에 나에게 부과하는 압력을 알아차리고, 잠잠히 살펴보고, 나의 삶과의 연결을 확인한다.
그러기 위해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정신 없이 달려만 나가는 이 시대에 나를 돌아보고 나를 돌보는 것이 우선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더욱 멀리 나아가고, 더욱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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