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감각 - 〈에브리타임〉에서 썰리고 퇴출당하며 벼려낸 청년들의 시대 감각
나임윤경 외 지음 / 문예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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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0 공정감각(나임윤경 외 지음/문예출판사)

에브리타임에서 썰리고 퇴출당하며 벼려낸 청년들의 시대 감각

이 책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인 저자가 개설한 <사회문제와 공정>이란 강의 계획서에서부터 시작한다. 저자의 강의 계획은 한 학생의 고소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저자의 학교 학생 A20225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이 수업권을 침해한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6월에는 두 명의 다른 학생과 더불어(이후 한 명은 취하)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이 고소와 소송 소식에 온라인 대학교 커뮤니티플랫폼 <에브리타임>에는 자신들의 수업권 방어를 위해 고소와 소송을 진행해준 이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글이 올라왔는데(물론 비판 글도 적지 않았다), 그 내용은 수업권 방어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비난과 비아냥 등을 포함한 혐오 표현이 다수를 이뤘다.

 

<에브리타임>에 올라오는 학생들의 주장들 속에서 진실이 맥없이 지워지고 사실이 근거 없이 조롱과 폄훼를 당하는 것. 거짓일지라도 혹하게 할 만한 선정적 소문과 풍문, ‘카더라’, 맥락을 삭제해 그럴듯하게 이어 붙인 가짜뉴스. 거짓, 가짜, 짜깁기로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동원하고 물리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권력과 권위 그리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현실.

저자는 이것을 반지성주의라 부른다. 반지성주의는 아는 것이 힘(권력 혹은 권위)’이 아니라 전혀 모르거나 알려 하지도 않고 알면서도 비틀어버린 거짓과 가짜가 진실과 사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힘이 팽배해진 상태다.

진실과 진짜가 아닌, 거짓과 가짜가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대학은, 대학생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들어가며: 자꾸 삭제되니 책으로 만들어버리자> 중에서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2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을 통해 현재 대학생들의 의견과 주장, 그들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진리와 자유를 추구하는 대학이라지만, 우리의 학생들은 초중고를 오로지 대입만을 위해 달려왔다. 그 전력 질주의 시간이 우스워지리만큼 대학은 진리나 진실 추구와는 거리가 있는 공간이다.

<에브리타임>은 진리를 탐구하고 신봉하는 줄로 알려진 대한민국의 대학교의 넓은 반경으로 똬리틀고 앉아 수능점수와 내신등급의 차이가 별것 아님, 다만 심증이 아니라 물증으로 정확하게 보여주는 반지성주의의 현장이다.

 

현 대통령이 대선 슬로건으로 내건 구호, 공정과 상식.

공정은 대한민국 최대 이벤트인 지난 대선의 핵심 키워드였고, 특히 20대와 30대의 젊은 층엔 소구력이 강한 단어이다.

이 책을 통해 젊은 세대의 보수화와 공정이란 기준 설정의 배경을 살펴볼 수 있다.

 

<에브리타임>에 단골로 등장하는 여성 혹은 남성에 대한 혐오 표현, 중국 유학생, 지역 캠퍼스 재학생들에 대한 차별, 성소수자 혐오 등 혐오 표현이 적지 않다.

인국공 사태에 대해서는 노력 안 한 사람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임등의 언설로 비정규직, 고졸, 전문대 출신 취업자들을 향한 혐오 표현과 이모티콘이 뒤따랐다.

입학 수능점수에 따른 서열이 낮다고 생각하는 대학교, 여대, 비서울권 대학교, 전형이 다른 입학생, ‘서열이 낮다고 생각하는 단과대, 분교 등의 순으로 혐오를 뱉어내는 학력과 학벌에 대한 혐오도 등장한다.

 

공정의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한 인국공사태는 물론, 서울 소재 사립대학교 학생이 제기한 청소노동자에 대한 학습권 침해 소송 역시도 4년제 대학교 학생으로서 누리는 쾌적한 학습 환경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과 불이익에 기초한 매우 불공정한 ‘3임을 모른 채, 3루타를 친 자신이 받아야 할 당연한보상(권리)이 침해된 것으로 착각하는 능력주의의 모순을 보여준 사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한 처우는 당연시하면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부당한 이득에 개입하려는 정책적 시도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공정의 이름으로 저항하는 것은 발전주의 패러다임을 신봉해온 한국 사회가 낳은 청년들의 능력주의 신화 때문이다. -<나오며: 반지성주의로부터 반페미니즘 그리고 공정> 중에서

 

<에브리타임>다양한 의견을 배척하고 여론을 하나로 수렴하는 행위혹은 기타 정치·사회 관련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행위 일체혹은 이와 관련한 행위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금지 조항은 한국에서 사회적 소수자로 구성되어온 저임금 노동자, 여성, 장애인, 지역대학 출신, 성소수자 등에 관한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쓴 글, 혹은 혐오 댓글러들이 가장 저항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게시글이 지속적으로 신고당하는 명분이 되고, 그에 따른 삭제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진리가 아니라, 정연한 논리를 담은 진정성 있는 사유가 아니라, ‘PC인 척한다며 비아냥거리는 조롱과 멸시, 혐오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반지성주의가 공기처럼 퍼져 있는 곳이 <에브리타임>이다.

 

<에브리타임>을 민주적 담론의 장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을지 모색하던 저자와 학생들의 시도는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이 책은 <에브리타임>을 민주적 공론장으로서 기대했던 학생들의 삭제된 (혹은 삭제될) 글들의 모음집이다. 저자는 20대가 다른’ ‘다양한사유의 주체라는 것을 삭제된 글들의 복원을 통해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좀 다르고, 다양한 동시대 청년들의 글을 통해 지금의 공정감각이 사실은 공존감각을 지워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있다.

다양한 존재()의 공존 없는 공정의 결과는 무엇일까. ‘어떤존재들을 온전히 존재치 못하게 하는 공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존을 염두에 두지 않는 공정이란 얼마나 무의지하며, 무엇보다 이율배반적인가와 같은 질문에 개인과 공동체가 나름의 답을 찾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대학의 현실, 그리고 자유와 정의, 진리만을 외칠 것같은 우리의 젊은 세대의 실상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세대가 사회적 의식, 특히 공존감각을 상실하게 된 경로를 진지하게 추적한다.

자본에 영혼을 빼앗긴 대학에 대한 대유metonymy. 학생들은 대학 교육을 민주시민의 권리가 아니라 교육시장의 상품으로 보며, 자신을 교육 소비자로, 교슈를 교육 소매상으로 본다. 자본의 논리로 새롭게 재편된 대학에서 학생들은 자본의 착취에 항의하는 노동자를 적대시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공정감각 #나임윤경 #문예출판사 #사회문제와공정 #에브리타임 #책읽는샘 #함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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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철학자 - 자라난 잡초를 뽑으며 인생을 발견한 순간들
케이트 콜린스 지음, 이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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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9 정원의 철학자(케이트 콜린스 지음/다산초당)

자라난 잡초를 뽑으며 인생을 발견한 순간들

런던대학교에서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서 정원을 가꾸며 생활하는 저자.

단순하고 아름답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강한 정원을 가꾸며 13년째 살고 있는 그의 이야기.

정원을 가꾸는 것은 결국 인생을 가꾸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정원을 가꾸는 철학자다.

저자가 정원을 가꾼다고 해서 화초나 원예 작물에 관한 책도 아니고, 철학 전공자라고 해서 전문 철학책도 아니다.

꽃과 열매, 흙과 정원, 잡초와 병충해, 곤충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이루는 우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원이라는 작은 세계를 채우는 요소들의 순환에서 우리 삶에 적용할만한 삶의 태도와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이야기는 생생하게 경험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철학과 결합하여 나의 삶으로 전달된다.

 

은퇴한 선배들 절반 이상이 텃밭을 일구고 있다. 은퇴 이후의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한 일에 만족도가 꽤 높다고 한다. 경제적인 면으로는 결코 이득이 되지 않지만, 힘은 들어도 재미가 있다고 한다. 과연 무슨 재미일까?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생명과의 만남이 주는 의미 또한 크다.

 

정원을 가꾸는 건 우리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식물과 교감하는 것은 생명과 우주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이 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멋지고 놀라운 일들이 발생한다. 생명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비롯된다. 씨앗은 성장하고 번성할 기회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정원 가꾸기는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취미가 아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는 일이다. 아주 작은 발코니든 이웃들과 함께 거니는 마을 속의 화단이든 포장된 길의 틈새든, 식물이 자랄 공간만 있다면 그곳에서 생명은 시작된다. 어디서든 자태를 드러내는 자연은 그 신비로움으로 인생의 단단한 의미를 전한다.

 

날씨와 식물, 그리고 곤충에 대해 우리는 인간의 가치를 기준으로 좋고 나쁨을 가린다. 좋은 날씨와 나쁜 날씨, 잡초와 해충으로 여기는 모든 상황과 생명에 대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박테리아·곰팡이·진딧물·민달팽이··토끼·오소리·사슴·멧돼지처럼 우리를 공격하는 무언가를 삶에서 완전히 추방하려 한다면, 이러한 행동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나쁜 식물이라고 하는 잡초는 알고 보면 단지 자리를 잘못 잡은 좋은 식물이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다’, ‘불리하다’,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는 데 익숙하지만, 그건 모두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기인한 아주 협소한 결론일 뿐이다. 귀찮고 성가신 일들, 주변 사람들과의 사소한 갈등,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잘한 불편을 겪을 때 우리는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며 좋은 대우를 받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 생각을 버리고 숙고해 보면, 세상사에 절대적이고 올바른 답은 없다. 삶은 훨씬 더 상대적이고 미묘하다. -<1장 봄 삶의 토대가 되는 것들> 중에서

 

고교 시절 열성적인 윤리 선생님에게 배웠던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사상별 학파별 주요 학자와 개념을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있다. 문자로 기억되는 철학의 내용이 정원에 피어난 꽃이나 함부로 자란 듯한 잡초들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책이다.

곤충과 작물의 특징으로 철학 사상들을 설명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니체, 루소, 공자, 노자, 붓다, 볼테르, 헤르만 헤세, 버지니아 울프 등등. 그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와 문학가들의 이야기가 정원에서 시작된다.

 

또한 저자는, 정원사나 농부처럼 바깥에서 자연에 둘러싸여 땅을 일구는 사람들을 철학자로 규정하고 있다. 정원사의 일상에서 수많은 철학적 사유와 주제가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작은 땅을 일구는 이들은 자신의 규칙에 따라 살고 일한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자다. 또 민달팽이나 해충이 주는 피해를 견뎌내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자기 행동을 조정하려 하므로 스토아학파와 같은 금욕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식물에서 벌어지는 작지만 놀라운 변화를 목격하고, 기이하고도 흥미로운 변이를 관찰하므로 양자역학과 진화론을 연구하는 생활 밀착형 과학자라 할 수 있다.

 

흙 묻은 손에는 숨겨진 지혜가 가득하다. 꽃과 나무를 돌보다 보면 우리 마음을 다잡는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정원은 철학이 꽃피는 장소가 된다.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막을 수 없듯 때로는 그저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꽃 피고 열매 맺고 다시 흙으로 순환하듯 우리 삶 역시 계속 흘러간다는 것도 정원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지혜다. 삶을 가꾸는 정원사가 되는 것,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우리의 삶이 불확정성으로 가득하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양자역학에서 불확정성 원리는 우리가 미래를 완전히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의 미래 또한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고 상황도 끊임없이 변하여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니 어차피 안 된다고 생각하며 미리 결론을 내리지 말고 우리의 인생을 끊임없이 즐겁게 탐구해 보자. 세상이 결정한, 이미 증명된 답에 갇히지 않을 때 우리는 삶이 선사하는 다양한 가능성과 선택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장 여름 성장의 진정한 의미> 중에서

 

저자가 소중하게 키워내는 철학은 단지 교실에서 교과서로만 배우는, 관념 속의 철학이 아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동시에, 지금 우리가 가진 최선의 지혜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실천의 철학이고 실용적인 철학이다.

그래서 실수가 아무리 많더라고 일단 해보는 게 최선의 학습이다. 공자는 청이이망 견이이기 주이이동(聽而易忘 見而易記 做而易懂), 들은 것은 잊어버리게 되고, 본 것은 기억하지만, 직접 해본 것은 이해하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세상이란 정원으로 나가 몸소 부딪혀 보자.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정원의철학자 #케이트콜린스 #다산초당 #인생을배우는정원 #책읽는샘 #함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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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눈썹, 혹은 잃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 - 도서부 친구들 이야기 꿈꾸는돌 37
최상희 지음 / 돌베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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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8 속눈썹, 혹은 잃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최상희 지음/돌베개)

대전에 있는 남자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책을 읽자고 얘기하면 아이들은 학습만화부터 꺼낸다. 그나마 책이라도 꺼내는 친구들은 고마운 편이다.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들의 눈길을 책으로 옮긴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 학생이 없는 건 아니다. 적을수록 더욱 반짝이는 존재들이다.

 

처음 근무하던 학교가 이 책의 배경과 같은 여자고등학교였다. 처음 만나게 된 여고생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관심을 다양한 분야에 쏟고 있었다.

머릿속의 문학소녀라는 이미지는 차분하고 말수 없는 조용함과 얌전함의 절정이었다면, 현실에서의 문학소녀는 자신의 관심 분야에 진심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참신한 시각을 갖춘 학생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녹주, 오란, 차미처럼.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내내 그 시절 내가 만났던 여고생들의 모습이 오늘로 이어진 느낌이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이 커다란 통과의례와 같다. 시간이 지나 어영부영 잊히는 인연도 있지만, 평생의 죽마고우가 되는 운명 같은 만남도 있다. 녹주, 오란, 차미도 그럴 거다. 오란과 차미가 먼저 친구 사이였다고 녹주와의 관계가 약한 고리일 수는 없다.

친구가 되려고 녹주의 속눈썹 분실 사건이 터진 것이다.

 

도서관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것처럼 도서부 활동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고 사건의 얼개가 되지만, 꼭 도서부가 아니라도 좋다. 우리 아이들이 열정을 쏟고 관심을 두는 영역이라면 어떤 것이든 소중한 보석과 건강한 양식이 될 수 있다.

가랑잎만 지나가도 까르르하던 그 시절의 행복은 어른이 되어 사라질 수 있지만, 함께 웃던 친구의 웃음은 평생 가슴에 남는다.

 

쏟아지는 빗속에 우산 하나만 쓰고 우리의 삼총사가 아옹다옹하며 걸어가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우산은 하나로 충분했다.

 

12일로 진행되는 책의 밤행사에서의 토끼 찾기. 그리고 도토리를 남겨놓는 다람쥐를 찾기 위한 삼총사의 추리 수사극.

도서관에서 책을 몰래 숨겨 놓는 사람을 가리키는 다람쥐. 그리고 도서관 다람쥐가 숨겨 놓은 책을 부르는 말 도토리. 매주 금요일 오후마다 발견되는 도토리. 다람쥐는 과연 누구?

 

2 여름방학, 오란이의 이모네 책방으로 떠난 여행. 그곳에서 만난 고양이 탄과 파.

오란이의 추적 대상이 된 길고양이 코점이. 작은 생명에 대한 애정과 연민.

그것이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작고 소중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초콜릿을 입에 넣고 녹여 먹으며 도서관을 나섰다. 문을 닫기 전에 고개 돌려 잠시 둘러보았다. 도토리를 찾아 책장을 뒤지던 봄과 여름, 토끼를 쫓고 함께 새벽을 맞았던 밤, 000번부터 900번 책장까지 햇빛을 따라 옮겨 다니며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 순간 책장 너머로 누군가 사라졌다. 잘못 봤음을 이내 깨달았지만 어쩌면 착각이 아니라 그 아이는 내가 잘아는 누군가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대신 전해 드립니다> 중에서

 

50분의 수업은 너무나 지루하고 시간이 멈춘 듯하지만, 결국 3년의 고교 시절은 KTX보다 빨리 지나간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성장하고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한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방법을 연습한다. 실수를 통해서 혹은 성공을 통해 계속 지켜가기도 하고, 새로운 소중한 것을 찾기도 한다.

 

떠밀리듯 내 것이 아닌 것을 억지로 떠안고 지내지 않기를, 내 것이 아닌 것들 때문에 내게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녹주, 오란, 차미가 지켜내는 것처럼.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속눈썹혹은잃어버린잠을찾는방법 #최상희 #돌베개 #도서부친구들 #책읽는샘 #함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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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BEER천가 - 본격 맥주 교양 원샷툰 한빛비즈 교양툰 27
몰트다운 지음, 블리자두 그림 / 한빛비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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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7 BEER천가(몰트다운 글·블리자두 그림/한빛비즈)

본격 맥주 교양 원샷툰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21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 결과 성인 한 명이 한 해에 읽는 책의 수는 4.5. 먹고살기 바쁘고, 다른 매체나 콘텐츠를 이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봐야 책과 너무 멀리 생활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속한 세상에 관한 지식을 넓히고 교양을 쌓아가는데 무관심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렇다고 책과 담벼락을 쌓고 지내는 분들에게 책! ! ! 이렇게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의 부드러운 해결책이 바로 교양툰이다.

이제 더 이상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로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이다.

만화를 통해 배우는 것이 딱딱한 책보다는 쉽다. 재미와 교양을 함께 누리는 행복한 시간이다.

 

이번 교양툰의 주제는 바로 맥주!

술을 좋아하는 내 눈에 번쩍 뜨인 이번 책을 통해 그동안의 궁금증들을 해결하는 기회를 얻었다. 첫 잔의 상쾌함으로 기억되는 맥주 만드는 방법과 그에 따른 분류, 세계 유명 맥주의 유래까지. 맥주라는 주제 자체도 신나지만, 설명 방법이 바로 B급 감성 풍부한 만화로 제시되어 웃다 보면 얻어걸리는 맥주의 상식이 넘쳐난다.

 

나에게 맥주는 다른 술과 다른 차이가 있다. 맥주는 기쁠 때 마시는 술이다. 슬플 때는 독한 술을 마신다. 시원하게 들어가는 그 첫 잔의 기쁨이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1516, 독일 바이에른이 내놓은 법이 바로 맥주 순수령이다.

이 법에 따르면, 맥주의 기본 재료는 보리(몰트), , , 그리고 효모라는 미생물이다.

 

몰트(Malt, 맥아)는 보리를 물에 담가 발아시키고, 이를 다시 고온으로 로스팅해 건조한 것을 말한다. 몰트는 풍미와 도수, 색과 거품 등 맥주의 모든 외형에 영향을 미친다.

은 경수(Hard Water)와 연수(Soft Water)로 나뉘는데 경수는 미네랄 함량이 많은 물로 서유럽 같은 퇴적암 지형에 많다. 경수는 맥주의 풍미를 도드라지게 하므로 맥아 느낌이 강한 에일 맥주와 궁합이 잘 맞는다. 연수는 미네랄 함량이 적은 깔끔한 물이다.

홉은 맥주의 각종 향과 특유의 쌉싸름함을 낸다. 홉은 천연보존제로 중세 이후 맥주의 원거리 유통에 크게 기여했지만, 냉장 유통과 살균 처리가 가능한 현대에는 보전제로서의 기능보다 다양한 향과 맛을 내는 역할로 쓰인다.

효모는 다른 잡균과의 생존 경쟁을 위해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내놓으며 효모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낸다.

 

맥주의 양대 산맥, 에일과 라거의 차이는 단순하다. 효모의 차이다.

15~25도에서 1~3주의 발효를 거치는 에일

4~10도에서 6~12주의 발효를 거치는 라거

 

저온발효 효모(라거)와 고온발효 효모(에일)로 구분할 수 있다.

에일의 높은 발효 온도는 더 많은 에스테르 화합물(냄새유발자)을 방출하고, 재료의 풍미를 강하게 만든다.

반면 라거 효모는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오래 발효된다. 그래서 깔끔하고 맑아지기 쉽다.

이런 이유로 몰티(맥아를 강조)한 맥주나 효모의 풍미를 강조하는 맥주에는 에일이 낫다.

하지만 라거로도 그런 연출은 충분히 가능하다.

 

에일 맥주는 맥아나 홉을 강조하므로 재료비가 많이 들지만, 발효 기간이 짧은 만큼 시설비는 적게 든다.

반면 통상의 라거 맥주는 발효 기간이 긴 만큼 대규모 발효 탱크나 냉장 시설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큰 시설비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주류 회사가 라거를 생산한다.

 

보리(몰트), , 효모, 4대 요소가 합쳐진 곡물 발효주맥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맥주는 분쇄, 당화, 여과, 끓임, 냉각, 발효, 숙성의 7단계로 만들어진다.

맥주의 제조 과정을 강력한 B급 감성의 패러디만화로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같은 맥주라도 더 깊은 풍미를 느끼려면 음식과의 페어링이 좋아야 하고, 잔의 형태도 중요하다.

풍미는 코와 혀, 그리고 입안으로 느낀다. 이때 잔은 입과 코가 동시에 맥주를 접하게 만드는 핵심 기능을 한다. 그래서 코 담그기(nose-dive)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어떤 맥주가 좋은 맥주일까? 진리는 단순하다. 바로 당신에게 맛있는 맥주가 좋은 맥주다!

 

현대 크래프트 맥주의 아이콘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IPA(India Pale Ale).

IPA의 역사는 영국의 인도 식민 지배의 역사와 연결된다. 영국 본토에서 식민지 인도까지 페일에일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변질되는 일이 반복됐다. 그 대안은 양조사들에게서 나왔다. 인도 수출을 담당하는 런던 동부의 양조장들은 도수가 높고 홉 향이 강한 페일에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시작한 IPA에 이어, 1970년대 미국에서 홉을 많이 넣고 도수를 높인 IPA가 등장한다. 특히 뉴잉글랜드 IPA가 등장하기 전까지 많아진 홉의 양만큼 더 많은 맥아(몰트)를 사용해 알코올 도수까지 함께 높였는데, 그렇게 센 맥주에 지친 일부 애호가들은 오히려 가벼운 맥주를 다시 찾았고 그래서 세션(Session) IPA가 탄생한다.

반대로 홉과 도수가 다 높아지면 더블(Double), 그보다 세지면 임페리얼(Imperial)이라는 표현을 쓴다. 세션, 더블, 임페리얼을 포함한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맥주는 2000년대 전 세계로 퍼져나가 IPA의 전형을 만들어낸다.

 

재치 넘치는 캐릭터와 패러디가 폭탄주처럼 터지다 보면 맥주 한 캔을 들이켜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화제작 모두를 패러디로 그려내는 작가의 열정과 감성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다 보면 책도 술술 읽히고 맥주도 술술 들어간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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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2 - 위기의 신들 한빛비즈 교양툰 29
김재훈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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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6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2: 위기의 신들(김재훈 글·그림/한빛비즈)

인간을 둘러싼 신들의 욕망을 다룬 인류 탄생의 뒷이야기!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을 통해 신화란 결국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이 어울려 만들어진 판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편은 신들의 전쟁에서 승리한 올림포스 12신족의 이야기였다.

이제 2편이다. 신의 이야기가 인간과 연결되는 신화에 있어서 2편은 초입 부분에 해당한다.

제우스의 요청으로 인간이 만들어지는 순간과 인간이 문명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준 프로메테우스, 인간에게 불행이 닥친 이유, 대홍수와 인류의 재생까지 소개된다.

 

서양 문화의 배경을 이루는 거대한 신화의 도입 부분에 해당하지만, 케케묵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에도 살아있는 신들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도록 흥미를 유지하며 읽어나갈 수 있도록 교양툰으로 탄생했다.

 

교양툰이라고 해서 작가의 마음대로 이야기를 비틀거나 휘두르는 일은 없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와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를 원전으로 충실하게 반영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명작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1편과 2편의 주인공은 제우스지만, 그에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실상 2편의 주연이 바로 제우스의 가장 가까웠던 친구이자, 가장 간교한 배신자였던 프로메테우스다.

프로메테우스. 먼저 생각하는 자.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만든다. 생김새는 신들을 닮았고, 닮았기에 신을 흉내 내고, 신들처럼 원하는 걸 갖고 싶어 하는.

힘은 세지 않지만, 나름 도구를 쓸 줄 알아서 제 앞가림 정도는 할 줄 아는 새로운 종족인 인간. 그런데 인간은 신들에게 없는 한 가지를 가졌다.

그게 바로 결핍이다.

무엇으로도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지독하고 끈질긴 모자람.

없음은 무언가 생겨나고 채워지기 위한 조건이고, 없음이야말로 창작의 기반이며 동인이 된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인간에게 전달한다.

그 불은 신들에겐 영광의 빛이지만, 인간들에겐 탐욕을 지피는 화근이 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 때 원한 것은 자연에 순응하고 신을 연모하는 인간이 아니라, 온전치 못해 불안해하고 욕망으로 생을 분쇄하는 타락한 인간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불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가르쳐 줬다. 이에 올림포스의 신들의 분노는 폭발하고, 제우스 역시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다.

몰래 불을 빼돌린 행동도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의 화를 더 돋운 건 그 일로 프로메테우스가 인간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칭송받게 된 상황이었다.

 

제우스는 아들 헤파이스토스에게 명령해서 여신들과 요정들도 시샘할 만큼 빼어난 매혹적인 첫 번째 여자를 만들게 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판도라’. Pan(모든) Dora(선물).

이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덜떨어진 동생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물. 절대 뚜껑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바로 그 상자.

포노스(고난), 프세우데아(기만), 리모스(굶주림), 디스노미아(무질서), 네이케아(다툼), 포노이(살인), 마타이(전쟁) 등이 담긴 항아리,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는 판도라의 상자.

 

판도라는 신의 경고를 망각하게 하는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결국 뚜껑은 열렸다.

황급하게 뚜껑을 닫았지만, 이미 흉하고 끔찍한 재앙들은 다 빠져나가고, 오직 하나 남은 것은 바로 엘피스’, 희망이었다.

 

최고신인 제우스의 뜻을 거역했다는 죄목으로, 카우카소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끝없이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주장은 다르다.

제우스의 알량한 자존심과 질투심, 인간에게 자신보다 더 나은 평판을 얻는 게 못마땅했다는 것이다.

 

기간토마키아.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땅에 웅크렸던 거한들, 기간테스를 사주해서 일으킨 반란. 이 반란으로 제우스의 올림포스 체제가 붕괴될 위기를 맞는다.

우여곡절 끝에 헤라클레스의 활약으로 힘겹게 승리하지만, 가이아가 보낸 최강의 빌런 튀폰에 의해 제우스는 패배를 경험한다.

튀폰이 뽑아낸 제우스의 힘줄을 도둑의 신인 헤르메스가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으로 찾아온다. 이어지는 복수의 성공. 제우스는 최고의 신의 자리를 지킨다.

 

최고의 신 제우스의 피할 수 없는 마지막 근심거리.

네 아들이 너를 능가하리라.”

 

이제 신들의 이야기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신들의 이야기보다 더 현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죽음을 내다볼 줄 아는 피조물 인간의 이야기.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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