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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눈썹, 혹은 잃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 - 도서부 친구들 이야기 ㅣ 꿈꾸는돌 37
최상희 지음 / 돌베개 / 2023년 9월
평점 :
2023-88 《속눈썹, 혹은 잃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최상희 지음/돌베개)》
대전에 있는 남자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책을 읽자고 얘기하면 아이들은 학습만화부터 꺼낸다. 그나마 책이라도 꺼내는 친구들은 고마운 편이다.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들의 눈길을 책으로 옮긴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 학생이 없는 건 아니다. 적을수록 더욱 반짝이는 존재들이다.
처음 근무하던 학교가 이 책의 배경과 같은 여자고등학교였다. 처음 만나게 된 여고생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관심을 다양한 분야에 쏟고 있었다.
머릿속의 ‘문학소녀’라는 이미지는 차분하고 말수 없는 조용함과 얌전함의 절정이었다면, 현실에서의 ‘문학소녀’는 자신의 관심 분야에 진심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참신한 시각을 갖춘 학생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녹주, 오란, 차미처럼.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내내 그 시절 내가 만났던 여고생들의 모습이 오늘로 이어진 느낌이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이 커다란 통과의례와 같다. 시간이 지나 어영부영 잊히는 인연도 있지만, 평생의 죽마고우가 되는 운명 같은 만남도 있다. 녹주, 오란, 차미도 그럴 거다. 오란과 차미가 먼저 친구 사이였다고 녹주와의 관계가 약한 고리일 수는 없다.
친구가 되려고 녹주의 속눈썹 분실 사건이 터진 것이다.
도서관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것처럼 도서부 활동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고 사건의 얼개가 되지만, 꼭 도서부가 아니라도 좋다. 우리 아이들이 열정을 쏟고 관심을 두는 영역이라면 어떤 것이든 소중한 보석과 건강한 양식이 될 수 있다.
가랑잎만 지나가도 까르르하던 그 시절의 행복은 어른이 되어 사라질 수 있지만, 함께 웃던 친구의 웃음은 평생 가슴에 남는다.
쏟아지는 빗속에 우산 하나만 쓰고 우리의 삼총사가 아옹다옹하며 걸어가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우산은 하나로 충분했다.
1박 2일로 진행되는 ‘책의 밤’ 행사에서의 토끼 찾기. 그리고 도토리를 남겨놓는 다람쥐를 찾기 위한 삼총사의 추리 수사극.
도서관에서 책을 몰래 숨겨 놓는 사람을 가리키는 다람쥐. 그리고 도서관 다람쥐가 숨겨 놓은 책을 부르는 말 도토리. 매주 금요일 오후마다 발견되는 도토리. 다람쥐는 과연 누구?
고2 여름방학, 오란이의 이모네 책방으로 떠난 여행. 그곳에서 만난 고양이 탄과 파.
오란이의 추적 대상이 된 길고양이 코점이. 작은 생명에 대한 애정과 연민.
그것이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작고 소중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초콜릿을 입에 넣고 녹여 먹으며 도서관을 나섰다. 문을 닫기 전에 고개 돌려 잠시 둘러보았다. 도토리를 찾아 책장을 뒤지던 봄과 여름, 토끼를 쫓고 함께 새벽을 맞았던 밤, 000번부터 900번 책장까지 햇빛을 따라 옮겨 다니며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 순간 책장 너머로 누군가 사라졌다. 잘못 봤음을 이내 깨달았지만 어쩌면 착각이 아니라 그 아이는 내가 잘아는 누군가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대신 전해 드립니다> 중에서
50분의 수업은 너무나 지루하고 시간이 멈춘 듯하지만, 결국 3년의 고교 시절은 KTX보다 빨리 지나간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성장하고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한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방법을 연습한다. 실수를 통해서 혹은 성공을 통해 계속 지켜가기도 하고, 새로운 소중한 것을 찾기도 한다.
떠밀리듯 내 것이 아닌 것을 억지로 떠안고 지내지 않기를, 내 것이 아닌 것들 때문에 내게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녹주, 오란, 차미가 지켜내는 것처럼.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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