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원의 철학자 - 자라난 잡초를 뽑으며 인생을 발견한 순간들
케이트 콜린스 지음, 이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9월
평점 :
2023-89 《정원의 철학자(케이트 콜린스 지음/다산초당)》
자라난 잡초를 뽑으며 인생을 발견한 순간들
런던대학교에서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서 정원을 가꾸며 생활하는 저자.
단순하고 아름답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강한 정원을 가꾸며 13년째 살고 있는 그의 이야기.
정원을 가꾸는 것은 결국 인생을 가꾸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정원을 가꾸는 철학자다.
저자가 정원을 가꾼다고 해서 화초나 원예 작물에 관한 책도 아니고, 철학 전공자라고 해서 전문 철학책도 아니다.
꽃과 열매, 흙과 정원, 잡초와 병충해, 곤충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이루는 우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원이라는 작은 세계를 채우는 요소들의 순환에서 우리 삶에 적용할만한 삶의 태도와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이야기는 생생하게 경험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철학과 결합하여 나의 삶으로 전달된다.
은퇴한 선배들 절반 이상이 텃밭을 일구고 있다. 은퇴 이후의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한 일에 만족도가 꽤 높다고 한다. 경제적인 면으로는 결코 이득이 되지 않지만, 힘은 들어도 재미가 있다고 한다. 과연 무슨 재미일까?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생명과의 만남이 주는 의미 또한 크다.
정원을 가꾸는 건 우리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식물과 교감하는 것은 생명과 우주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이 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멋지고 놀라운 일들이 발생한다. 생명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비롯된다. 씨앗은 성장하고 번성할 기회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정원 가꾸기는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취미가 아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는 일이다. 아주 작은 발코니든 이웃들과 함께 거니는 마을 속의 화단이든 포장된 길의 틈새든, 식물이 자랄 공간만 있다면 그곳에서 생명은 시작된다. 어디서든 자태를 드러내는 자연은 그 신비로움으로 인생의 단단한 의미를 전한다.
날씨와 식물, 그리고 곤충에 대해 우리는 인간의 가치를 기준으로 좋고 나쁨을 가린다. 좋은 날씨와 나쁜 날씨, 잡초와 해충으로 여기는 모든 상황과 생명에 대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박테리아·곰팡이·진딧물·민달팽이·쥐·토끼·오소리·사슴·멧돼지처럼 우리를 공격하는 무언가를 삶에서 완전히 추방하려 한다면, 이러한 행동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나쁜 식물이라고 하는 잡초는 알고 보면 단지 자리를 잘못 잡은 좋은 식물이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다’, ‘불리하다’,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는 데 익숙하지만, 그건 모두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기인한 아주 협소한 결론일 뿐이다. 귀찮고 성가신 일들, 주변 사람들과의 사소한 갈등,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잘한 불편을 겪을 때 우리는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며 좋은 대우를 받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 생각을 버리고 숙고해 보면, 세상사에 절대적이고 올바른 답은 없다. 삶은 훨씬 더 상대적이고 미묘하다. -<1장 봄 삶의 토대가 되는 것들> 중에서
고교 시절 열성적인 윤리 선생님에게 배웠던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사상별 학파별 주요 학자와 개념을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있다. 문자로 기억되는 철학의 내용이 정원에 피어난 꽃이나 함부로 자란 듯한 잡초들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책이다.
곤충과 작물의 특징으로 철학 사상들을 설명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니체, 루소, 공자, 노자, 붓다, 볼테르, 헤르만 헤세, 버지니아 울프 등등. 그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와 문학가들의 이야기가 정원에서 시작된다.
또한 저자는, 정원사나 농부처럼 바깥에서 자연에 둘러싸여 땅을 일구는 사람들을 철학자로 규정하고 있다. 정원사의 일상에서 수많은 철학적 사유와 주제가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작은 땅을 일구는 이들은 자신의 규칙에 따라 살고 일한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자다. 또 민달팽이나 해충이 주는 피해를 견뎌내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자기 행동을 조정하려 하므로 스토아학파와 같은 금욕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식물에서 벌어지는 작지만 놀라운 변화를 목격하고, 기이하고도 흥미로운 변이를 관찰하므로 양자역학과 진화론을 연구하는 생활 밀착형 과학자라 할 수 있다.
흙 묻은 손에는 숨겨진 지혜가 가득하다. 꽃과 나무를 돌보다 보면 우리 마음을 다잡는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정원은 철학이 꽃피는 장소가 된다.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막을 수 없듯 때로는 그저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꽃 피고 열매 맺고 다시 흙으로 순환하듯 우리 삶 역시 계속 흘러간다는 것도 정원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지혜다. 삶을 가꾸는 정원사가 되는 것,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우리의 삶이 불확정성으로 가득하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양자역학에서 불확정성 원리는 우리가 미래를 완전히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의 미래 또한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고 상황도 끊임없이 변하여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니 ‘어차피 안 된다’고 생각하며 미리 결론을 내리지 말고 우리의 인생을 끊임없이 즐겁게 탐구해 보자. 세상이 결정한, 이미 증명된 답에 갇히지 않을 때 우리는 삶이 선사하는 다양한 가능성과 선택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장 여름 성장의 진정한 의미> 중에서
저자가 소중하게 키워내는 철학은 단지 교실에서 교과서로만 배우는, 관념 속의 철학이 아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동시에, 지금 우리가 가진 최선의 지혜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실천의 철학이고 실용적인 철학이다.
그래서 실수가 아무리 많더라고 일단 해보는 게 최선의 학습이다. 공자는 청이이망 견이이기 주이이동(聽而易忘 見而易記 做而易懂), 즉 ‘들은 것은 잊어버리게 되고, 본 것은 기억하지만, 직접 해본 것은 이해하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세상이란 정원으로 나가 몸소 부딪혀 보자.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정원의철학자 #케이트콜린스 #다산초당 #인생을배우는정원 #책읽는샘 #함께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