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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감각 - 〈에브리타임〉에서 썰리고 퇴출당하며 벼려낸 청년들의 시대 감각
나임윤경 외 지음 / 문예출판사 / 2023년 9월
평점 :
2023-90 《공정감각(나임윤경 외 지음/문예출판사)》
‘에브리타임’에서 썰리고 퇴출당하며 벼려낸 청년들의 시대 감각
이 책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인 저자가 개설한 <사회문제와 공정>이란 강의 계획서에서부터 시작한다. 저자의 강의 계획은 한 학생의 고소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저자의 학교 학생 A가 2022년 5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이 수업권을 침해한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6월에는 두 명의 다른 학생과 더불어(이후 한 명은 취하)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이 고소와 소송 소식에 온라인 대학교 커뮤니티플랫폼 <에브리타임>에는 자신들의 ‘수업권 방어’를 위해 고소와 소송을 진행해준 이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글이 올라왔는데(물론 비판 글도 적지 않았다), 그 내용은 수업권 방어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비난과 비아냥 등을 포함한 혐오 표현이 다수를 이뤘다.
<에브리타임>에 올라오는 학생들의 주장들 속에서 ‘진실’이 맥없이 지워지고 ‘사실’이 근거 없이 조롱과 폄훼를 당하는 것. 거짓일지라도 혹하게 할 만한 선정적 소문과 풍문, ‘카더라’, 맥락을 삭제해 그럴듯하게 이어 붙인 가짜뉴스. 거짓, 가짜, 짜깁기로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동원하고 물리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권력과 권위 그리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현실.
저자는 이것을 ‘반지성주의’라 부른다. 반지성주의는 ‘아는 것이 힘(권력 혹은 권위)’이 아니라 전혀 모르거나 알려 하지도 않고 알면서도 비틀어버린 ‘거짓과 가짜가 진실과 사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힘’이 팽배해진 상태다.
진실과 진짜가 아닌, 거짓과 가짜가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대학은, 대학생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들어가며: 자꾸 삭제되니 책으로 만들어버리자> 중에서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2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을 통해 현재 대학생들의 의견과 주장, 그들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진리와 자유를 추구하는 대학이라지만, 우리의 학생들은 초중고를 오로지 대입만을 위해 달려왔다. 그 전력 질주의 시간이 우스워지리만큼 대학은 진리나 진실 추구와는 거리가 있는 공간이다.
<에브리타임>은 진리를 탐구하고 신봉하는 줄로 알려진 대한민국의 대학교의 넓은 반경으로 똬리틀고 앉아 수능점수와 내신등급의 차이가 ‘별것 아님’을, 다만 심증이 아니라 물증으로 정확하게 보여주는 반지성주의의 현장이다.
현 대통령이 대선 슬로건으로 내건 구호, 공정과 상식.
공정은 대한민국 최대 이벤트인 지난 대선의 핵심 키워드였고, 특히 20대와 30대의 젊은 층엔 소구력이 강한 단어이다.
이 책을 통해 젊은 세대의 보수화와 공정이란 기준 설정의 배경을 살펴볼 수 있다.
<에브리타임>에 단골로 등장하는 여성 혹은 남성에 대한 혐오 표현, 중국 유학생, 지역 캠퍼스 재학생들에 대한 차별, 성소수자 혐오 등 혐오 표현이 적지 않다.
인국공 사태에 대해서는 “노력 안 한 사람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임” 등의 언설로 비정규직, 고졸, 전문대 출신 취업자들을 향한 혐오 표현과 이모티콘이 뒤따랐다.
입학 수능점수에 따른 ‘서열’이 낮다고 생각하는 대학교, 여대, 비서울권 대학교, 전형이 다른 입학생, ‘서열’이 낮다고 생각하는 단과대, 분교 등의 순으로 혐오를 뱉어내는 학력과 학벌에 대한 혐오도 등장한다.
공정의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한 인국공사태는 물론, 서울 소재 사립대학교 학생이 제기한 청소노동자에 대한 학습권 침해 소송 역시도 4년제 대학교 학생으로서 누리는 쾌적한 학습 환경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과 불이익에 기초한 매우 불공정한 ‘3루’임을 모른 채, 3루타를 친 자신이 받아야 할 ‘당연한’ 보상(권리)이 침해된 것으로 착각하는 능력주의의 모순을 보여준 사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한 처우는 당연시하면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부당한 이득’ 에 개입하려는 정책적 시도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공정’의 이름으로 저항하는 것은 발전주의 패러다임을 신봉해온 한국 사회가 낳은 청년들의 능력주의 신화 때문이다. -<나오며: 반지성주의로부터 반페미니즘 그리고 ‘그’ 공정> 중에서
<에브리타임>은 “다양한 의견을 배척하고 여론을 하나로 수렴하는 행위” 혹은 “기타 정치·사회 관련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행위 일체” 혹은 이와 관련한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금지 조항은 한국에서 ‘사회적 소수자’로 구성되어온 저임금 노동자, 여성, 장애인, 지역대학 출신, 성소수자 등에 관한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쓴 글, 혹은 혐오 댓글러들이 가장 저항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게시글이 지속적으로 신고당하는 ‘명분’이 되고, 그에 따른 삭제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진리가 아니라, 정연한 논리를 담은 진정성 있는 사유가 아니라, ‘PC인 척’한다며 비아냥거리는 조롱과 멸시, 혐오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반지성주의가 공기처럼 퍼져 있는 곳이 <에브리타임>이다.
이 <에브리타임>을 민주적 담론의 장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을지 모색하던 저자와 학생들의 시도는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이 책은 <에브리타임>을 민주적 공론장으로서 기대했던 학생들의 삭제된 (혹은 삭제될) 글들의 모음집이다. 저자는 20대가 ‘다른’ ‘다양한’ 사유의 주체라는 것을 삭제된 글들의 복원을 통해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좀 다르고, 다양한 동시대 청년들의 글을 통해 지금의 ‘공정감각’이 사실은 ‘공존감각’을 지워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있다.
다양한 존재(와)의 공존 없는 공정의 결과는 무엇일까. ‘어떤’ 존재들을 온전히 존재치 못하게 하는 ‘그’ 공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존을 염두에 두지 않는 공정이란 얼마나 무의지하며, 무엇보다 이율배반적인가와 같은 질문에 개인과 공동체가 나름의 답을 찾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대학의 현실, 그리고 자유와 정의, 진리만을 외칠 것같은 우리의 젊은 세대의 실상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세대가 사회적 의식, 특히 공존감각을 상실하게 된 경로를 진지하게 추적한다.
자본에 영혼을 빼앗긴 대학에 대한 대유metonymy다. 학생들은 대학 교육을 민주시민의 권리가 아니라 교육시장의 ‘상품’으로 보며, 자신을 교육 소비자로, 교슈를 교육 소매상으로 본다. 자본의 논리로 새롭게 재편된 대학에서 학생들은 자본의 착취에 항의하는 노동자를 적대시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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