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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1
나는 곧 하나의 세계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세계는 외부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즐겁고, 슬프고, 화나고, 유쾌한 일들은 오직 나만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다. 이를 두고 장 그르니에(Jean Grenier)는 ‘인간은 하나의 섬’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차가운 철제 침대 위에 당신이 누워있다고 상상해보자. 두려움이 몰려온다. 수술실로 들어간다면 과연 어떤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까. 수술이 진행되고 마취가 서서히 풀린다. 생살을 도려낸 고통이 몸 전체로 퍼져간다. 하지만 수술과정에서 발생하는 두려움과 고통은 당신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그 누구도 당신의 두려움과 고통을 완벽하게 느끼거나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어린 시절, 즉 나라는 세계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뒤섞여 있었다. 자신만의 세계가 아직 형성되기 전이었기에, 하나의 세계 아래 함께 존재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 시절엔 고독이란 단어를 몰랐다. 고독과 외로움은 자신만의 세계가 형성되고,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은 철저히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때부터 인식되기 때문이다. 무수한 인파 사이에서도 뼈저린 외로움이 밀려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린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지는 간극 사이로 소통의 작은 불빛은 소멸해간다.
2
또래에 비해 일찍 결혼한 나는 종종 ‘결혼하니까 좋아?’란 질문을 자주 받는다. 보통 ‘응 좋아’라고 얼버무리는 데, 간혹 ‘뭐가 좋은데’라며 호기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다. 그럴 때면 참 곤란하다. ‘응 밤에 누군가와 함께 자는 게 좋더라.’ 또는 ‘아침밥을 꼬박 챙겨먹을 수 있어서 좋아’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좋긴 좋은데 뭐가 좋은지 간단명료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인간은 외부와 고립된 하나의 세계란 점에서, 결혼은 표면적으로 두 세계가 결합되는 순간이다. 만약 ‘나’라는 세계의 역사를 기록한다면, 결혼은 맨 첫 장에 등장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일 테고, 향후 ‘나’라는 세계가 나아가는 데에도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란 건 확실하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두 국가의 수평적 통합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물론 결혼이라는 두 세계의 통합으로,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만의 고립된 세계는 분명히 존재한 채, 두 세계가 강력한 끈으로 묶이는 것뿐이다. 이런 점에서 결혼은 화학적 반응이라기보다는 물리적 반응에 가깝다. 때문에 결혼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이 완벽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두 명의 외로운 영혼이 함께 손을 잡고 같이 외로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혼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제도다.
3
‘나’라는 세계 주변엔 높은 담이 세워져 있다. 겉에서 보면 외부와 철저하게 고립된, 하나의 굳건한 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계는 쉽게 붕괴될 정도로 취약하다. 붕괴는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된다. 때론 우연적 사고가 발생해서, 때론 우연처럼 보이지만 톱니바퀴처럼 여러 단계의 인과관계 속에 벌어진 사고로, 각각의 세계는 붕괴하고 만다.(다시 말해 우연처럼 보인다고 전부 우연은 아니라는 말이다.) 갑작스런 아내/애인의 이별 통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같은 상실, 또는 계획했던 시험의 낙방이나 해고, 부도와 같은 실패는 지구 위에서 끊임없이 벌어진다. 각각의 상실과 실패는 수많은 세계를 붕괴시킨다. 한 때 잘나가던 샐러리맨이 한 순간에 서울역의 노숙자로 전락하고, 전도유망한 사업가가 한 순간에 치정 살인의 주인공이 된다. 지구의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세계를 붕괴시키는 상실과 실패의 움직임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나’라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미국의 시인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en Poe)는 세계를 붕괴시키는 움직임을 두고 ‘어둠의 힘(power of blackness)’이라고 불렀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이를 ‘부조리(l'absurde)라고 명명했다. 소설가 김연수는 세계의 붕괴를 두고 ‘서사’, 다시 말해 이야기의 붕괴라고 설명한다. 내가 좋은 대학에 가서 대기업에 취업을 한 뒤, 아름다운 애인을 만나 결혼하고,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곳까지는 이야기의 전개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샐러리맨이 노숙자가 된 사연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도대체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바로 이야기가 붕괴되는 지점에 세계의 붕괴가 숨어있다.
4
너무나 허무한 구조다. 견고한 세계 위에서도 인간은 온갖 고독과 외로움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세계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니. 때문에 개인의 세계로 구성된 세상은 거대한 암흑이다. 하지만 암흑 속에는 작은 불빛이 있다. 인간은 희미한 빛을 비춰도 금세 모이는 플랑크톤처럼, 빛을 따라가고자 하는 주광성이 있다. 때문에 불빛의 강도가 희미할지라도, 작은 불빛을 바라보며 붕괴된 세상을 재건하고, 끊어진 이야기를 이어가고, 삶은 계속된다. 밤하늘을 수놓은 작은 불빛 한 곳에 결혼이 살고 있다.(물론 여기서 결혼이라 함은 단순한 사회학적 결합이 아닌, 사랑을 매개로 이어진 관계를 의미한다.) 저마다의 굳건한 세계 안에서 살고 있는 개인들이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완벽한 이해 위에 이뤄지는 소통은 안드로메다만큼이나 요원하다. 하지만 결혼은 불가능한 임무를 위한 첫걸음이다. 결혼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 위에 이뤄진다. 상대방의 세계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서로의 세계가 편찬한 국사책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서로의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상상해본다. 실재하는 상대의 세계와 내가 상상하는 세계가 비슷해질수록, 이해도는 높아져 간다. 상대의 고통과 즐거움을 최대한 짐작하게 될 때, 소통의 첫 걸음이 시작된다.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메리올리버, <기러기>)’ 세계가 붕괴되더라도, 소통이 살아 숨 쉰다면 세계는 다시 재건될 수 있다. 여기에 결혼이 쏟아내는 작은 빛이 숨어있다.
5
김연수의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보며 소통의 희망을 떠올려본다. 김연수가 바라 본 세상은 단순히 우연의 산물만은 아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작은 인과들이 맞물리면서 개인과 세계가 형성된다. 무수한 인과가 숨어있다는 점에서 각각의 세계는 긴 이야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세계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모른다. 이야기가 배제된 상태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타인의 세계를 지탱하는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가며 진정한 소통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소통을 시도하는 일. 이것이야 말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네 옆에 사랑하는 누군가만 있다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넌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메리올리버, <기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