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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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는 프랑스인의 삶만큼이나 자유분방하다. 딱히 정해진 주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이야기도 없다. 가끔 주제가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지만, 정해진 틀이 없는 만큼 대화의 내용은 훨씬 풍부하다. 보통 술자리의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 때 주로 사용되는 접속사는 ‘근데’다. 디스트릭트 봤냐. 진짜 재밌더라’ ‘근데 그 영화 피터 잭슨이 제작한 거래.’ ‘근데 원래 피터 잭슨이 B급 영화 감독 출신이라며.’ ‘근데 내가 옛날에 본 B급 영화엔 브래드 피트가 나왔었어.' '근데 브래드피트랑 졸리는 여전히 잘 살고 있냐' 등등. 이야기는 ‘근데’를 매개로 변형되고 확장된다. 영화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스포츠와 최신 인기 여성그룹을 지나 연애 문제까지 뻗어나간다. 꼬리에 꼬리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딱딱한 회의나 토론회에서보다 더 기발하고 창의적인 내용이 쏟아지기도 한다.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는 술자리 대화 같은 책이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미술 이야기에서 시작해, 철학, 역사, 사회적인 내용을 거쳐 다시 미술로 돌아온다. 표면적으로는 미술 관련 서적이지만, 내용은 인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전방위적 인문학 담론을 펼쳐내는 것이다.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의 주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변환될 때마다 지적 유희의 쾌감은 극대화된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진중권이 좋아하는 12개의 그림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 좋아한다는 의미는 그 그림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거나 행복감이 몰려왔다는 말이 아니다. 관객은 보통 작품을 보고 정서적 감동을 받거나, 지각적 쾌감을 얻거나, 지성적 자극을 받거나, 영성적 울림을 받는다고 한다. 네 가지의 감상 방법 중, 저자는 그림을 보며 지성적 자극에 많이 끌리는 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교수대 위의 까치>가 난해한 그림을 설명해주는, 또는 그림에 대한 공식적인 해석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때문에 책에는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 읽기’부제가 달려있다.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그런 일반적 해석과 관계없이, 때로는 그것을 전복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과 머리를 찌르는 효과가 있다. 오직 보는 이 혼자만이 느끼는 이 절대적으로 ‘개별적’인 효과를 바르트는 ‘푼크툼(Punctum)'이라 부른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바로 회화의 푼크툼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프리 안젤리코의 ‘조롱당하는 예수’를 통해 초현실주의 사상과 맞닿아 있는 중세의 상상력을 설명한다. ‘중세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수난의 잔혹한 묘사는 화면에서 사라진다. 반면 르네상스로 내려올수록 수난의 잔혹함은 점점 더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중세엔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중세만의 상징이 존재했다. 그리스도의 성흔을 마치 여성의 입술처럼 그리거나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적인 고문 도구만으로 표현한다. 암흑시대로 알려진 중세이지만, 사람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숭어떼처럼 펄떡였다. 히에로니모스 보슈의 ‘광우의 돌’과 브뤼헐의 ‘교수대위의까치’에서 20세기 현대 철학과 맞닿아 있는 사상적 배경을 살핀다면, 조반니 프란체스코 카로토의 ‘그림을 든 빨간 머리 소녀’와 요하네스 굼프의 ‘자화상’은 아동화와 자화상이라는 회화 장르 자체를 깊게 파고든다. 가스브레히츠의 ‘뒤집어진 캔버스’는 눈속임 그림을 뜻하는 트롱프뢰유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트롱프뢰유에 내재한 현대 미술의 요소들을 짚어본다. 조르조네의 ‘폭풍우’나 티치아노의 ‘신중함의 알레고리’는 그림 자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그림 해석이 갖는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한정된 분량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교수대 위의 까치>를 보며 마르지 않는 진중권이란 샘도 서서히 바닥이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미술에 관한 그의 모든 책을 사서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레퍼토리도 서서히 한계에 도달한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진중권도 신이 아닌 이상에야 모든 책에 새로운 내용을 채워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엇 이건 어디서 본 내용 같은데’란 생각이 예전에 비해 많이 들었다. 마치 오래전 히트곡과 함께 두 세 개의 신곡을 첨가한 유명 가수의 베스트 앨범을 구입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진중권을 잘 모르는 사람에겐 재밌고 흥미로운 알맹이로 독자의 지적 욕구를 자극할 수 있었겠지만, 이미 그를 잘 아는 팬의 입장에겐 신선함이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정 주제를 정해놓은 것이 아닌, 12개의 그림을 두고 술자리에서처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책의 형식도 열독자의 기시감을 부채질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방대한 지식을 술자리에서 농담 따먹기 하듯 쉽게 설명하는 진중권의 능력은 언제 봐도 대단하다. 지하철에서, 잠들기 전, 시끄러운 카페에서, 어디서든 그의 글은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덮고 난 뒤, 강의실이 아닌 호프집에서 시원한 맥주를 시켜놓고 신나게 이야기하는 만담꾼이 떠올랐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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