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선배는 그를 진보 세력의 마키아벨리라 불렀다. 신영복 선생이 성(聖)의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 진보 세력의 정신적 지도자라면, 그는 현실 바닥에서 진보의 가치를 전략적으로 실현하고자 애쓰는 인물이었다. 대학 시절, 그는 운동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했다. 하지만 세상의 벽은 견고했고, 무수히 좌절했다. 그는 잠시 물러나 이론을 연구했다. 더 많이 보고 배웠다. 그 후 정치권에 진출해,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권력 투쟁에서 승리, 정권을 창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요직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6,17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했던, 그는 바로 유시민이다.


<청춘의 독서> 는 유시민의 생애에 큰 영향을 끼친 책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을 살아가며 갈림길과 장애물에 부닥쳤을 때, 그가 들쳐보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유시민은 오래 전 읽었던 책을 지금 다시 꺼내 읽고, 그 때의 소회와 현재의 느낌을 씨줄과 날줄 삼아 책을 엮어 나간다.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이 읽은 책의 서평 모음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 유시민이 걸어온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일종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책을 통해 그의 삶을 재구성해보는 것이 <청춘의 독서>가 지닌 또 다른 매력이다.

유시민은 올곧은 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부터 다양한 책을 접했다. 독서를 통해 학생 유시민은 자신의 내면에 진보적 정치인 유시민의 씨앗을 뿌린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을 읽고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한다. “‘어째서 착한 사람들이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할까?’ ‘인간 사회는 이러한 부조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죄와벌>을 읽는 내내 이런 의문이 나를 사로잡았다.” (P.17) 그는 책을 읽고 막연하게 가난의 책임이 사람이 아닌 사회에 있음을 느꼈다. 난 바로 이 질문이야말로 정치인 유시민이 탄생하게 된 근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은 정치적 억압의 시대이자 독재의 시대였다. 농촌법학회에 들어간 유시민은 그 때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했다.’(P.35)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보며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모습을 고민했고,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읽으며, 착한 사람을 가난하게 만드는 사회에 저항해야 한다는 신념을 공고화한다. “억압과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이, 단지 자기 자신의 행복을 도모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종식하고 역사와 문명의 승리를 앞당기는 거룩한 행위가 된다는 신념은 그 얼마나 매력적인가!” (P.53) <전환시대의 논리>는 청년 유시민의 개안을 가져왔으며, <공산당 선언>은 청년 유시민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그는 2002년 개혁국민당을 창당하며 정치에 입문한다. 그는 국회 안에서 보수 정치인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그 해 말 대선에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핵심 참모로 활동하며 그의 당선을 돕는다. 화염병과 돌멩이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던 청년 유시민이 권력의 중앙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몇몇은 권력의 핵심에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그를 비난하기도 했다.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을 온 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단순히 지식소매상으로 남아있기에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나 뜨거웠다. 그가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남긴 내용이다. “유방과 한신은 야수적 탐욕이 판치는 정치, 사회적 혼란과 전쟁의 한복판에 몸을 던졌다. 때로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고 때로 스스로 야수가 되어 싸운 끝에, 야수의 탐욕이 지배하는 혼란의 시대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냈다....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P.180)


'왜 착한 사람이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에 몰두하던 소년 유시민은 가난한 사람에 관한 정부의 정책을 움직이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된다. 그래서인지 <청춘의 독서>에는 서민의 복지를 담당했던 책임자로서의 고뇌의 흔적이 엿보인다. 그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인간의 평등과 생존권을 옹호하는 모든 사상과 이론은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유해한” 것’(P.83)이란 주장에 강력히 반박한다. 또한 그는 다윈의 주장을 통해 보건복지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윈은 국가의 공중보건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을 “우리 본성의 고결한 부분”이 만들어낸 것이며, 만약 이것을 버린다면 “어느 정도의 이익”과 “극도의 죄악”이 공존하는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보다.’ (P.219)


(여기서 잠깐. 맬서스는 산술급수적인 식량 증가가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해 결국 많은 인구가 굶주릴 것이라는 어두운 미래 전망을 했던 경제학자다. 우린 보통 맬서스에 대해 여기까지 알고 있지만,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인구를 조절하기 위한 자연의 조치다. 때문에 굶주리는 사람을 돕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므로 철저히 금지해야 한다. 이것이 맬서스가 했던 끔찍한 주장이다.)


2007년 유시민은 모든 공직생활을 끝냈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이름은 서울 시장 후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정치인 유시민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청춘의 독서>에서 보여준 그의 박식함과 인간적인 솔직함을 바라보며, 그가 정치를 한다면 지금 보다 세상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렇다면 그가 야인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정계로 복귀하게 될까?


그는 <청춘의 독서>의 마지막 서평 책으로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소개한다.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질은 과거 여러 세대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자기의 잠재능력을 발전시켜나가는 데 있다....현대인은 여러 세대의 경험에서 배우고 그것을 자기의 경험과 결부시킴으로써 사고의 효율성을 몇 배로 확대하였다....역사는 획득된 기술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보다.” (역사란 무엇인가 中) 역사의 진보를 믿는 그는 <청춘의 독서>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나는 지쳤다. 존경했던 이들은 먼 곳으로 떠났고, 사랑하는 동료들은 시대의 삭풍에 떨고있다...다른 생각 없이 그저 잘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하면서 나에게 친숙한 작은 공동체 안에서만 머무르고 싶다. 그런 나를 선생(E.H 카)은 따뜻하게 격려해준다. “역사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 믿음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의 격려를 받아들여야 할까?’ (P.312)


24년 전, 유시민은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때,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의 마지막단락에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시를 인용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난 그가 다시 속(俗)의 싸움에 복귀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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