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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ㅣ 우리시대의 논리 10
임종인.장화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월
평점 :
사건 하나.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아들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이용, 탈법적 상속을 시도한다. 이후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은 시민단체들의 고발을 통해 검찰 수사 및 재판까지 이뤄진다. 결과는 '전 현직 사장의 배임혐의일 뿐, 그룹의 조직적 공모는 없다' 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재판 과정에서 삼성의 증거 및 증언의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사건 둘.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자산가치가 약 62조원의 외환은행을 약 1조원의 헐값에 매입하게 된다. 당시 은행 관련 법에는 사모 펀드가 은행을 구입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때문에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입하는 과정에서 정부 인사들의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나오게 된다. 두 사건은 거대 자본이 한 국가의 시스템을 흔들고자 했던 불법적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두 사건 모두에 한국 최대 법률 사무소 김앤장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앤장. 한국 최대 법률사무소라는 사실 외에 언론에 공개된 점이 거의 없는, 베일에 싸여있는 조직이다. 건물에는 간판도 없다. 하지만 추정 매출액은 4천억원에 달하는 거대 법률회사다. 이 회사 대표 변호사의 한 해 수입(약 600억)이 2005년 이건희 회장보다 많아 화제가 된 적도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전직 경제 관료들이 퇴직 후 많이 몰려있다는 점과, IMF이후 외국 자본과 함께 급성장했다는 사실 외에 알려진 것이 없다. 이처럼 법률로 완전히 무장한 김앤장을 한 시민운동가와 국회의원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법률 사무소 김앤장>이다.
물론 한계는 많다. 알다시피 김앤장은 한국 최고의 법률 전문가가 모인 집단이다. 어설프게 파헤치려고 했다간 거액의 소송을 당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뉴스메이커는 '김앤장은 론스타 게이트의 숨은 몸통?' 이란 기사를 썼다 10억원대의 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뉴스메이커의 정정 보도로 이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김앤장이 쉽게 파헤칠 수 없는 조직임을 명확히 알려준 일이었다. 때문에 책에 나오는 구체적인 정보는 KBS와 한겨레 등이 취재한 내용, 론스타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친 저자의 활동, 그리고 국회의 정보 청구 등을 통해 얻어졌다. 다시 말해 시중에 돌아다니는 김앤장의 정보를 모조리 끌어다 쓴 책이다. 특별히 김앤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구체적 증거가 추가되진 못했다. 그 부분이 이 책의 한계이자 우리 사회의 한계다.
김앤장은 법률전문가 집단답게 대놓고 불법적인 역할을 하진 않는다. 아니,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든다. '뭔가 나쁜 놈 같긴 한데, 구체적인 증거는 없는/ 나쁜 놈이긴 한데 정확히 뭐가 나쁜 놈인지 모르겠는' 식이다. 책에 담긴 김앤장의 불법적인 행위도 대부분 의혹제기의 수준이다. 김용철 변호사로 인해 어느 정도 공개된 삼성과 달리 아직 김앤장의 내부는 철저히 밀폐되어있고, 이런 이유로 아직 김앤장의 문제점을 시원하게 규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김앤장의 의혹을 정리하는 임종인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실력도 있는데 문제는 실력을 넘어서는 권한 들을 이용해 되지 않는 일도 되게 만든다는 점이다.' 실력을 넘어서는 권한은 무엇이고 되지 않는 일을 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실력을 넘어서는 권한이란 김앤장이 전직 고위 관료들을 이용해 인맥을 이용한 불법 로비를 시행한다는 의혹이다. 물론 정확한 증거가 포착되진 않았다. (돈을 받지 않는 한, 즉 인맥을 이용한 로비는 누군가의 폭로 없이 드러나기 힘들다.) 하지만 정황은 포착된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상임위원은 마이크로소프트 사에 과징금을 부과한 적이 있다. 이 때가 2006년 2월이다. 하지만 이 상임위원은 7개월 후 김앤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참고로 김앤장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과징금 불복 소송을 담당했다. 국세청 직원들도 최근 잇달아 영입하고 있다. 과세소송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황재성, 이주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김앤장으로부터 각각 6억 9천만원, 4억 천만 원을 받았다. 고문 자격으로 받은 급여인데, 아무도 이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 이런 식이다. 정확하게 로비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관련 사건을 담당하던 고위직 공무원을 영입하고 이후 관련 사건을 해결한다. 두 사안(고위직 관료 영입과 문제해결)의 명확한 인과관계가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의혹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되지 않는 일을 되게 만드는 것은 더 파헤치기 어려운 부분이다. 론스타 사건을 보자. 위에서 밝혔듯, 론스타는 사모펀드이기에 국내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다. 이에 김앤장은 관련 조항을 결정하는 재경부와 금감위에 '은행법 8조 2항의 부실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예외를 인정하는 조항' 을 이용, 론스타의 자격문제를 해결한다. 물론 외환은행은 예외 조항을 적용 받을 만큼 부실하진 않았다. 재경부와 금감위는 비공식적으로 김앤장에게 이런 내용의 자문을 받아 론스타의 매입 자격을 제공해줬다. 당시 김앤장에는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이 고문으로 재직 중 이었다. 마찬가지로 재경부와 금감위는 김앤장의 조언을 그대로 따랐다. 되지 않는 일을 되게 만들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정황은 충분하다.
<질병판매학>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사회는 자본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시대다. 약을 팔기 위해 병을 만들어내고, 기업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판사와 검사를 통제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자본의 힘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권력은 자본으로 넘어갔다' 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자본 위에 법률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이 시스템 위를 휘젓고 다닐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존재가 바로 일부 법률 전문가들이다. 전 삼성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는 재직 중에 김앤장의 힘이 삼성 법무 팀을 훨씬 능가함을 여러 번 느꼈다고 한다. 때론 본인들의 치부를 김앤장에게 너무 많이 공개해 이들에게 끌려 다닌다는 인상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한 대기업의 법무팀장은 김앤장과의 불화로 자리를 잃기도 했다. 김변호사의 말을 빌리자면 '삼성 위의 김앤장' 인 것이다. 불법을 교묘하게 합법화 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돈이 된다고 모두 수임을 맡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법에는 변호사의 사회적 책임, 즉 공적 의무에 대해 적어놓고 있다. 이 의무에 따라 김앤장은 스스로 제기된 다양한 의혹을 밝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