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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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참 좋았다. 사실 모든 역사적 만행은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인종차별 역시 유색인종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시작되었으며, 동성연애자 차별 역시 동성연애자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에서 유래했다. 최근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가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에이즈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역시 그 근저에는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무지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인간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그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자연스레 방어적 공격을 가한다. 할리우드 영화에도 외계인이나 이방인(Alien)은 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제국주의의 횡포도 사실 상대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했다. 조셉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에도 이방인을 묘사하는 제국주의적 시선이 잘 나타난다. 제국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불안, 그리고 아프리카 원주민에 대한 일말의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제국주의자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아프리카 원주민을 다룬다.


그래서 그 문구 한 마디(알면 사랑한다)에 바로 최재천 교수의 <인간과 동물>을 샀다. 게다가 동물 이야기는 누구나 좋아한다. SBS의 <동물 농장>이나 KBS의 <환경스페셜>이 항상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만 봐도 사람들이 일단 동물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른들은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며 ‘동물 세계는 징그럽게 우리 삶이랑 닮아있어’ 라고 하며 흥미롭게 시청한다. 이 때 어른들을 동물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힘은 동물세계와 인간 세계와의 유사성이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어머,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지’ 라고 놀라며 동물의 행동에 빠져들기도 한다. 우리와 다른 무엇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그동안 동물 이야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때의 관심은 철저히 대상화된 동물을 향한 그것이다. 나와 다른 곳에서 사는 생물에 대한 피상적 관심이 동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내가 갖고 있는 관심은 18세기 백인들이 유색인종에게 보인 관심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이유로 좀 더 알고 싶었다.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 나오는 내용 보다는 좀 더 깊고 자세한 동물들의 정보를 얻고 싶었다.


동물들의 행동은 크게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는 본능적 부분과 경험으로 학습하게 되는 후천적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내가 특히 관심을 가진 부분은 후천적 부분이다. 사실 동물에 대한 편견도 동물은 오직 본능에 기초해 행동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이 지닌 학습능력이 가장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예를 들어 호박벌을 먹고 침에 쏘여 크게 당한 두꺼비는 다시는 그 비슷하게 생긴 곤충을 건드리지 않는다. 경험을 통해 ‘호박벌=고통’ 이란 공식을 터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푸른 어치 역시 제왕나비 애벌레를 먹다가 제왕나비 애벌래에서 나온 해당강심제(심장을 멎게 하는 화학물질)에 호되게 당한다. 이후 푸른 어치는 제왕나비 애벌레와 비슷하게 생긴 벌레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동물도 경험을 통해 학습한다는 좋은 사례다. 지능이 높은 침팬지의 행동에는 동물도 학습한다는 사실이 잘 나타나있다. 예를 들어 침팬지는 열쇠와 자물통을 주면 수많은 시도 끝에 적합한 열쇠로 자물통을 연다. 미로를 하는 경우에도 침팬지는 무턱대고 덤비기 보다 미로를 충분히 살핀다고 한다. 침팬지와 인간의 DNA가 99%나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외에도 책 속에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동물들의 행동습관이 세밀하게 분석되어 있다. 이 분야의 1인자답게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이용해 깊이 있는 내용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즉 쉽게 읽히면서도 내용의 깊이는 전공서적 못지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이런 쉽게 풀어쓴 깊이 있는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책을 읽고 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점, 그리고 기회가 되면 책에 있는 내용을 영상으로 표현해보고자 하는 욕심 등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알면 사랑한다는 그의 명제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동물 행동학 분야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다윈의 이야기를 끝으로 동물에 대한 내 애정의 근거를 밝히고자 한다. “다윈주의는 한 마디로 개체를 중요시하는 이론입니다. 이전 사상들에게서는 전체가 중요했고, 목표가 뚜렷한 전체를 위해서 개체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 따로따로 숨쉬는 개체, 그리고 개체의 번식을 통한 형질의 계승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변이를 통해 변화가 일어나며, 이것은 다시 각각의 개체를 이전의 개체들과 다르게 만듭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것이 우리의 본질이며, 그 다양성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다윈은 주장했습니다. 플라톤 본질주의와는 전혀 딴판이죠.” 동물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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