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진경 교수가 예전, 이정우, 홍윤기 교수의 들뢰즈 논쟁을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철학이란 철학적 문헌을 다루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사유하고 사유를 삶으로 만드는 것임을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이론과 개념에 대해 말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혹은 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지식이나 사유를 삶에서 분리된 것으로, 고상하고 그저 지적인 것으로 분리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이나 사상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당시 이 부분을 읽고 흠칫 놀랐었습니다. 나를 두고 한 말 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종종 사유와 삶의 괴리를 경험한니다. 책을 읽고,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하곤 하지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합니다. '사람은 삶의 준말입니다. '사람'의 분자와 분모를 약분하면 '삶'이 됩니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가장 아픈 상처도 사람이 남기고 가며, 가장 큰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옵니다.'란 신영복 선생의 말을 혼자 곱씹고,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를 읽고 '사람을 위한 정의만이 진정한 정의'란 결론을 내리면서도, 실제로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도움 한 번 준 적이 없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글 중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입니다. 현장이며 숲입니다.'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난 아직 생각이 마음으로도 온전히 내려오지 못한 상태입니다. 발까지 내려오려면 한 참 남은 것이고요. 나는 책 속에 들어있는 화석화된 형태로 지식을 받아들였습니다다. 피부가 세상과 마찰할 때, 몸으로 전달되는 살아있는 지식은 내게 별반 없습니다. 이런 이유가 발로 향하는 사유의 여행을 더디게 하는 것이고, 지식과 사유를 삶에서 분리시킨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을 읽고 육중한 돌을 가슴에 내려 찧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고민하던 생각들이 얼마나 뜬 구름 속에 머무르고 있는지를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생각은 인간에 대한 진실한 사랑, 그리고 감옥에서 겪은 육체적 고통이 어우러지며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진실함이, 사랑이, 지식인의 비판적 사고와 실천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세상에 남이란 없습니다. 네 이웃 보기를 네 몸 같이 하라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근대사는 타자화의 역사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보지 못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지 못하고, 인간을 타자화하고 자연을 대상화해온 역사입니다.'라는 글에서 알 수 있듯, 선생의 모든 사고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선생의 글이 뜬 구름 위가 아닌, 딱딱한 땅 아래 머무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은 인간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실천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관계가 중요하기에 저마다 잘난 나무가 되기 보다는 모두가 함께 어우러진 숲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나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며,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이상향인 것이죠. 평등은 자유의 최고치란 글에도 그런 생각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평등이 자유의 최고치'라는 메시지는 삶의 근본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언어입니다. 생각하면 이것은 '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평범한 양식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등은 자유의 최고치일 뿐만 아닐 자유 그 자체의 실체이며 내용입니다. 자유는 양적 접근으로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대한 진정한 긍정과 사랑에서 출발하기에 선생의 생각은 설득력 있게 우리 가슴에 파고듭니다. 우리 사회를 부유하는 무수한 정의의 담론들 속에는 없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선생은 진정한 정의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당신이 감옥에서 겪은 어려움을 정신적 발전의 단계로 승화시키려는 노력, 진정한 지식인이 갖춰야 할 태도 등이 <처음 처럼>에 담겨있습니다. 특히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선생의 생각들은 죽어있는 책 속의 지식을 통해 생긴 것이 아닌, 자신이 육체가 겪고 사유한 내용에서 기인합니다. 아마 이 점이 신영복 선생의 글 <처음처럼>이 지닌 가장 강한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책을 읽고 육중한 돌에 가슴을 맞은 듯한 느낌을 받은 이유는, 죽어있는 지식 속에 살고 있던 사이비 지식인의 생각들이 생생한 활어처럼 펄떡이는 사고의 역동성을 마주하면서 생긴 부끄러움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시작과 함께 <처음처럼>을 만난 것은 나름 행운입니다. 내 가슴 속에 아로 새겨, 일 할 때 마다 항상 되새기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처음 시작을 하는 내게 <처음처럼>에 담긴 글들은 성서의 말씀처럼 무겁고 신중하게 다가옵니다. '사상은 실천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입니다. 생활 소에서 실천된 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그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지붕에서 날리는 종이비행기가 그의 사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종이비행기), '올바른 인식은 솨학적 분석이나 많은 정보가 아니라 대상과 필자가 맺는 '관계'로부터 옵니다. 애정의 젖줄로 연결되거나 운명의 핏줄로 연결됨이 없이 대상을 관찰하는 관계는 '관계 없는' 것과 같습니다.'(인식과 관계), '사다리보다 너의 돼지 등이 좋다.'(돼지등)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함께 맞는 비), 히말라야의 높은 산에 살고 있는 코끼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자기가 평지에 살고 있는 코끼리보다 크다는 착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히말라야의 토끼가 주의해야 할 일)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오늘 한 내 생각들을 항상 유지해야 하는 일일겁니다. 앞으로 가슴 속에 새긴 말들을 일터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인간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오늘도, 내일도 기도하겠습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