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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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운영한지 3년이 다 되어 간다. 주로 책을 읽고 든 생각과 느낌을 정리했다. 올 한 해가 가는 지금, 내가 그동안 정리했던 글들을 보니 내심 뿌듯하다. 하지만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생긴 나름의 스트레스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항상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엔 어떻게 블로그에 소개할까'하는 압박감. 이 압박감이 가끔은 소설읽는 재미를 앗아가기도 한다. 게다가 대학 전공 공부의 영향이었을까. (전 영문과를 나왔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해석하려 하고, 때론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심지어 박형서의 <자정의 픽션>를 읽고 난 다음에도 니체가 한 말을 떠올렸으니. 이 정도면 내 압박감이 꽤 심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읽었다. 이기호의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 책은 유달리 편하게 잘 읽혔다. 별 생각, 고민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추운 겨울날 따스한 아랫목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실제로 작가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다.), 구라를 신명나게 잘 푸는 남대문 시장 건어물 가게 수다쟁이 김창식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실제로 '나쁜 소설'은 '읽는 소설'이 아니라 '듣는'소설이다.)이 든다. 편하고 재밌다. <자정의 픽션>이나 <카스테라>를 읽을 때처럼 박장대소하게 되진 않지만, 입가에 미소는 끊이지 않게 되는 책. 그 책이 바로 이기호의 <갈팡질팡.....>이다.  

 

일단 재밌다. 소설가는 기본적으로 이야기꾼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 이기호는 탁월한 소설가다. 소설가 박경리 옆 집에 살았던 한 친구가 '단지 옆 집에 살았던 이유'만으로 박경리에게 조폭 친구가 운영하는 단란주점 상호 '토지'의 허용권을 받으러 가게 되고('원주통신'),  세 남자가 제각각의 사연으로 세 개의 국기게양대에 밤 새 매달려 있게 된다.('국기게양대 로망스-당신이 잠든 사이에2')  형식도 기발하다. 실제로 읽어주는 소설도 있고('나쁜 소설'), 요리 책 처럼 문단 앞에 번호가 붙어있는 소설도 있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 흙') 독자가 등장인물(할머니)이 되어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구성된 소설도 있다.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 지루할 틈도, 뭘 고민하고 생각할 틈도 없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중에 나와 있는 가벼운 명랑 코믹 소설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두 작품 '나쁜 소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리고 조금 무거운 분위기의 '수인'에서는 '소설'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과 고민들이 담겨있다. '당신이 살고 있는 소설 같은 현실과 '윤대녕' 소설 속에 그려지는 현실 같은 소설 사이에 세워진 벽'(나쁜 소설), '나는 에라이, 뿅! 만큼 살았으니, 에라이 뽕!같은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갈팡질팡.....')같은 문장에서 나타나듯, 작가는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이 사실은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고민은 잠시 제쳐두고 싶다. 일단 재밌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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