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에 멈춰 선 태양" 니체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문명을 위와 같이 표현했다. 무슨 의미일까? 오후 2시에 태양이 멈춘다면? 신혼 부부들은 들끓는 성욕(생산욕)을 분출하지 못해 어둠을 찾아 헤멜 것이며 멜랑콜리한 여성들의 감성을 살살 녹이던 카사노바들의 '사랑의 세레나데'도 약발을 다할 것이다. 광란의 사랑을 찾아 헤메는 젊은 남녀들의 파티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밤. 그것은 단순히 해가 진 시간이 아니다.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 낮의 견고한 질서가 잠시 느슨해지는 순간, 이성이 잠시 자리를 피하고 감성이 원기를 회복하는 순간이 바로 밤이다. 니체는 당시 유럽에서 밤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오후 2시에 멈춰선 태양의 이글거림은 밤에 만개하는 우리의 상상력을 녹여버렸다. 소설가 박형서가 두 번째 단편집 <자정의 픽션>을 냈다. 제목을 보자. <정오의 팩트>가 아닌 <자정의 픽션>이다. 이 것만 잘 이해해도 소설 전체 성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자정은 밤의 절정이다. 그의 소설은 밤이 지닌 속성을 그대로 가진다. 터무니 없는 내용(물론 이성의 기준에서)이 소설의 기둥 줄거리가 되기도 하고(<두유전쟁>) 심지어 내용이 없기도 하다. (서사가 없다는 의미다.<사랑손님과 어머니 음란성 연구>). 설사 이해되는 내용이라 해도 갑자기 삼천포로 빠진다.(<날개>를 비록한 대부분 작품) 또 작가는 소설 줄거리와 전혀 무관한 내용에 핏대를 세운다.(<사랑손님과어머니 음란성연구>를 비롯한 다수 작품. 계란 얘기하다가 불알 얘기하는 식이다.) 작가는 텍스트란 공간 안에 언어의 축제를 벌여 놓은 셈이다. 밤의 축제처럼 그의 소설은 무질서하다. 하지만 동시에 자유롭다. 서사가 없다. 그는 그저 언어를 가지고 놀고 있을 뿐이다. 흥부전의 주제는 착하게 살자이며 춘향전의 주제는 배신하지 말자라고 배워온 독자들은 무질서에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이 이 소설의 묘미다. 가장 재밌게 읽은 <두유 전쟁>은 머리에서 유전을 방불케 하는 기름이 생산되는 저능아를 두고 벌이는 전쟁 이야기다. 미국은 인간 유전을 얻기 위해 스파이와 특공대를 한국에 보낸다. 한국의 대통령과 군 수뇌부는 인간 유전의 처리를 두고 고심한다. 인간 유전은 현대 문명의 고뇌를 상징하지도, 그렇다고 국제 정치의 냉혹함의 희생양을 상징하지도 않는다. 그저 '간이 안 좋으면 더 많은 기름이 생산되는' 인간 유전일 뿐이다. 물론 내용은 재밌다. 의미도 없는데 문체마저 무미 건조하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을 가장한 일기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견해로 붕산칼슘처럼 생긴 문학평론가 정찬호의 논문이 있지만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라든가 '그렇게 불려진다면 인도의 간디라도 물레를 움켜지고 쫓아올 것이다.'('두유 전쟁')란 문체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지독한'유머를 선보인다. 그는 소주 3병에 쏘맥 5잔 반을 마신 재치꾼 김부장이 캬바레서 떠들법한 이야기들을 재밌게 표현해 놓았다. 그렇기에 평론가 김형중은 박형서의 소설은 소설의 정의 상자에 쉽사리 안 들어간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의도 없는 메시지가 강한 법이다. 김형중의 말처럼 그의 소설엔 메시지가 없다고지만 그 어떤 소설보다 강한 이야기를 한다. 바로 '오후 2시에 멈춰버린 태양'같은 우리 사회에 대한 강력한 조소다. 그는 소설을 둘러싸고 있는 이성적 질서를 무시했다. 그 질서를 까려고 했건, 아니면 그냥 기존의 소설작법이 재미없어서건 작가로서 그의 행동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 그것이 바로 이성중심의 사회에 대한 비아냥이자 조롱이다. 내 코드와 이 소설이 맞 닿은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결국 님도 보고 뽕도 딴 격이다. 소설이 아닌, 텍스트란 넓은 공간 위에서 언어로 놀면서 동시에 이성에 대한 조롱도 날렸으니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가 초대한 밤의 축제에서 유쾌하게 놀면서 동시에 많은 사색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게 바로 소설을 읽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