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의 세계에 사자인 척 하며 얼룩말 말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샴고양이가 나타난다. 샴고양이는 얼룩말 말로 경계심이 낮아진 얼룩말들을 쉽게 잡아먹는다. 얼룩말들은 공포에 빠진다. 일부는 사자의 유령이 나타났다고 믿는다. 한편 얼룩말 이야기꾼은 얼룩말 말을 하는 샴고양이를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그 때 샴고양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얼룩말 이야기꾼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이 불쾌하다며 뒷발로 샴고양이를 차서 죽인다. 스펜서 홀스트(Spencer Holst)의 '얼룩말 이야기꾼<The Zebra Ztoryteller>'에 나오는 짧막한 우화다. 스펜서 홀스트는 얼룩말 이야기꾼을 통해 소설의 의의를 설명한다. 여기서 샴 고양이는 우리를 현혹시키는(deceptive) 현실을 상징한다. 이야기꾼은 그런 거짓 현실을 미리 상상한다. 우리는 이야기꾼의 상상(소설)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현실에 맞딱뜨렸을 때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일반인은 현실을 제한적이고 고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얼룩말이 샴고양이의 위협을 사자의 유령이라고 잘못 파악하듯이 우리도 기만적인 세계에 쉽게 농락당하곤 한다. 하지만 홀스트는 "소설과 이야기는 예상하기 어려운(unexpected) 현실에 우리가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소설을 통해 현실 이면에 있는 진실 인식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는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허구의 외투를 뚫어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야기 형식으로 말이다. 김영하의 <굴비낚시>를 읽다가 예전에 읽었던 홀스트의 짧은 우화가 떠올랐다. <굴비낚시>를 한번 천천히 읽고 있으면 왜 내가 김영하를 이 시대의 얼룩말 이야기꾼으로 생각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굴비 낚시>는 '영화 이야기'란 형식을 빌리고 있다. 하지만 다른 영화 서적처럼 영화를 설명해주는 책이 아니다. 여기서 영화는 단순한 매개체다. 추억의 매개체이며 세상을 파헤치는 수단이다. <바람과함께사라지다>를 통해 그는 고3 때 만난 간호사를 추억하며 <대부>를 통해 인간관계의 정치를 파헤친다. 다시 말해 이 책에는 자세한 영화이야기는 없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쉽사리 이해 안 가는 부분도 있다. 그렇다. <굴비 낚시>는 세상읽기 형식의 에세이집이다. 내가 <굴비 낚시>를 읽고 얼룩말 이야기 꾼을 떠올린 이유는 김영하의 날카로운 눈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자행세를 하고 얼룩말 말을 구사하는 샴고양이를 보고 그는 샴고양이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야기해준다. 그의 날카로운 눈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만약 또 다른 이야기꾼이 머리 둘에 날개가 달린 요상한 괴물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다면? 일반 얼룩말들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특별한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얼룩말들도 생각하고 있다. 얼룩말 말을 구사하지만 모양은 사자도 아닌 존재, 뭔가 이상하다. 이 때 이야기꾼이 말한다. 저건 얼룩말 말을 하는 샴고양이야. 그 때 우리는 간지럽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즐거움을 맛본다. 맞다. 저건 샴고양이구나. 샴고양이가 얼룩말 말을 하다니... 난 김영하의 날카로움 이면에 솔직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도 그가 생각한 내용들을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얀 도화지에 비친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애써 무시하고 싶었을게다. 우리 모두 자신의 욕망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지 않는가. 하지만 김영하는 거침없다. 직접 바라보고 상세하게 얘기해준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미학적 마조히스트라 칭하지 않던가. 특히 <대부>를 읽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대부에 열광한다. 이탈리아 갱들의 후까시에 매료되고 그들 사이에 흐르는 암투를 즐긴다. 형이 동생을 죽이려하고 동생이 형을 죽이는 냉혹한 세계. 김영하는 우리가 <대부>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부>속에는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다.........."우리는 똑같은 위선에 살아갑니다.".....그의 아내 케이는 마이클의 살인을 비난하지만 그것이 먹히지 않자 뱃속의 아이를 살해하는 것으로 그에게 맞선다. 결국 그들은 손에 피만 묻히지 않았다 뿐 똑같은 살인자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그는 정치적 드라마의 밑바닥에 서정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배신 당할 줄 알면서도 사랑하고, 끊임없이 우리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 가족에게 애틋함을 느끼며, 등에 칼을 꽂은 친구를 비난하면서 그리워한다." 이렇게 김영하는 소설가의 눈으로 인간관계를 해부하고 있었다. 날카로움만 있다면 그게 뭐 대수겠는가. 역시 뛰어난 이야기꾼 답게 짧은 에세이에도 재미란 요소를 잊지 않는다. <주유소습격사건>을 이야기할 때는 여러명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 자신이 소설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싶은 듯하다. <매트릭스>를 이야기하며 다리를 걷던 자신의 경험을 재밌게 묘사한다. <부기나이트>는 롤라걸과 바퀴라는 애매모호한 대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재밌다는 의미다. 산문집을 읽다보면 작가가 천착하는 문제, 고민하는 생각들이 얼핏 들어난다. 그의 단편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을 샀다. <굴비 낚시>에서 조금은 직접적으로 얼룩말 말을 하는 샴고양이를 드러냈었다. <엘리베이터...>에선 어떤 방식으로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희긔한 샴고양이를 설명해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