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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는 집요하다.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그가 쓴 산문집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동시에 그는 냉소적이다. 그의 냉소에서 바로 유머가 나온다. 그가 지닌 냉소와 집요함이 결합할 때 ‘김영하스러운’ 산문이 완성된다. 내가 아는 김영하는 지금까지 이래왔다. 그래서 헌병 시절 군화 닦는 자신의 모습을 집요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한다. (심지어 구두약 홈페이지 소개까지 하고 있고 자신이 몇 번째 방문객이었는지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집요함 뒤에는 군대의 비효율성을 가볍게 냉소하는 김영하의 비웃음이 숨어있다. 그래서 김영하의 글은 집요함을 통해 냉소를 실현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랄랄라 하우스>에도 ‘랄랄라~’ 뒤에는 김영하의 냉소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김영하스럽게 재밌다.
<랄랄라 하우스>는 김영하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냥 편하게 쓴 글이다. 어떤 의미를 두고 쓴 글이 아니란 이야기다. 다르게 말하면 가볍게 읽어달라고 그는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친구 집 놀러가서 친구가 올 때까지 남의 방에서 뒹굴며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기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김영하는 이 책을 소개한다. 이처럼 김영하는 독자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썼다. 하지만 예의 김영하의 날카로움은 이 책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인상을 자주 주고 있다.
우선 이 책에서도 김영하의 날카로움은 냉소와 집요함을 무기로 등장한다. 야호에 관한 글을 보자. 김영하는 야호를 하지 말래도 하는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조소한다. 바로 그들에게 야호를 적극 권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여기서 김영하의 집요함은 시작된다. ‘문화시민은 야호를 합니다’에서부터 ‘57분 교통정보에서 “오늘 주말을 맞아 산에 가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 야호 잊으시면 안되겠죠?”라고 멘트하도록 하자’는 말까지 10개 정도의 문구를 예로 들며 야호를 권장하라고 한다. 그리고 말한다. 이렇게 권장하면 그들도 안 할 거라고. 김영하가 집요하게 야호 권장 문구를 패러디하는 글을 계속 읽다보면 그의 재치에 웃지 않으려야 안 웃을 수가 없고 동시에 시원함도 느낀다. 펜으로써 규정을 어기는 등산객들을 풍자한다고나 할까.
김영하는 이런 식이다. 그는 유머를 안다.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적은 없다. 그건 정공법이다. 효과는 둘째 치고 딱딱하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이용해 어렴풋하게 무언가를 비판하고 불평을 토해낸다. 그가 뛰어난 문학가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작가와 철학가의 차이는 이렇다. 철학가는 자기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표현해낸다. 하지만 작가는 철학가가 생각한 것을 생각함과 동시에 그것을 이야기의 형식에 담아서 표현한다. 독자가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일단 이해하고 나면 문학작품의 메시지 전달 효과는 철학의 그것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김영하는 작가란 의미다. 그는 그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냉소와 집요함, 그리고 유머란 포장지에 싸서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냉소와 집요함이 박민규 코드와 다르고 또 성석제 코드와 다른 것이다.
이렇게 대충대충 쓴 글들 같지만 중간 중간에는 날카로움과 진지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태극기 단상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국가주의적 잔재에 대해 비판한다. 또한 불빛을 잡으려고 애쓰다 항상 허탕만 치는 사냥개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 인생의 허황됨을 이야기해준다. 막 웃으며 그의 글들을 읽다가도 중간 중간에 ‘잠깐 책을 덥고 이 부분은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라는 김영하의 말이 들리는 듯 하다. 그래서 김영하의 글을 웃고 끝나는 글과 다르다.
책은 처음에는 그가 기르던 고양이 이야기를 자세하게 하고 있다. 그 후 짧은 단상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마지막에는 자기가 쓴 문학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이처럼 자세하게 자신의 생각과 생활, 그리고 문학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이 책을 다 읽고나면 김영하의 서랍은 원 없이 뒤진 느낌이 든다. 대화 한 번 나눈 적 없는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그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느낌마저 든다.
수능이 끝나고 책을 읽고 싶지 않지만 특별히 할일이 없는 사람, 또는 자기 전에 가볍게 읽을 책을 찾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물론 심각함이 좋고 진지함이 좋다면, 좀 더 거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김영하의 책은 금물이다. 하지만 그 외 사람들이라면, 인생에서 유머를 중시하는 분이라면 정말 모두에게 이 책을 강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