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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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년인가,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가 열리던 기획재정부. 종부세를 둘러싸고 강만수 장관과 야당 의원들의 열띤 설전이 오가고 있었다. 야당의 김종률, 오재세 의원 등은 집중적으로 종부세 폐지의 부당성을 강조했고, 이에 강만수 장관은 종부세 자체의 부당성으로 맞섰다. 종부세 논의가 뜨거워질 즈음 민주당 양성조 의원이 종부세 폐지는 결국 서민 복지 축소로 이어져 서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바로 그 때. 강만수 장관은 변신했다. 장관 강만수에서 자연인 강만수로. 만수 형님, 울컥하셨다. 그리고 외쳤다. “서민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고, 부자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은 괜찮다는 겁니까!” 그야말로 투사의 새로운 현현이었다. 목소리엔 부당함에 대한 정의의 울분이 묻어있었고, 머리 주변에선 분노의 광채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순수한 장관을 난 아직 본적이 없다. 그 말은 자연인 강만수의 말이었고, 욱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현 정권의 커밍아웃이었다. 부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어떠한 일련의 과정도 막기 위해 탄생한 정권! 난 이 말과 함께 현 정권에 대한 감정적인 기대를 완전히 버렸다.


# 2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던 날. 그 날도 어김없이 청와대에선 브리핑이 이어졌고, 화북지역의 북방 중국인을 닮은 이동관 대변인이 등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 워낙에 큰 이슈였기에 그의 입에서도 미 대통령 선거에 대한 언급이 빠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입에서 튀어 나온 내용은 최근 외신에 등장한 ‘머리 둘 달린 양’보다 더 엽기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제시한 오바마와 변화와 개혁을 국정운영의 중요 가치로 삼아온 이 대통령은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헉. 정말. 현 정권이 돌았구나.)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이 대통령도 감세를, 오바마도 감세를 추진하니 다 비슷한 것 아니겠냐’라는 것이다. 이 정도의 아전인수라면 분명 악의는 아닐테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감세를 추진하는 현 정부와 달리 오바마는 상위 5%의 세금을 높여 나머지 95%의 국민 세금을 감세하겠다고 주장했다. 변화를 추진하는 것은 같을지 몰라도 왼쪽의 변화와 오른쪽의 변화는 180도 다른 변화다. 그걸 ‘어쨌든 변화는 변화니까 다 같은 편이지’라고 말한다면 이건 악의적인 눈속임이라기보다는 현 정권의 지적 수준을 드러낸 현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믿고 싶다.) 좌회전과 우회전도 결국 회전한다는 점에서 다 같다고 주장하는 정권! 난 이 말과 함께 현 정권에 대한 지적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게 됐다.


# 3

나름대로의 원칙이 하나 있다. 감정적으로 일치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면서 동시에 지적으로도 교차점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사람과는 절대 논쟁하지 않는다는 것. 물론 현 정권과 내가 논쟁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때문에 ‘논쟁하지 않겠다’는 원칙은 ‘비판하지 않겠다’로 바뀔 수 있겠다. 너무나 다른 정서와 지식을 지닌 현 정부에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야말로 남은 4년간 인고의 시절을 보내야말 할 뿐. 이럴 때 힘을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커트 보네거트와 그의 책 <나라 없는 사람>이다. 이 책은 절필을 선언한 후 나온, 보네거트의 최신작이다. 소설은 아니고 그의 에세이집인데, 글을 보다보면 할배가 뿔이 나도 엄청 뿔이났음을 알 수 있다. 82세의 노작가는 자기가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현재의 요지경같은 세상을 유머와 독설로 비판한다. 비판의 주요대상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 자본 권력들. 커트 보네거트는 <나라없는 사람>을 통해 감정적으로, 지적으로 전혀 일치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을 대하는 법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유머와 독설의 만남, 바로 풍자다. 보통 이런식이다.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한 남자가 익명으로 편지를 보냈다.

만일 어떤 남자가 주머니에 총을 감추고 당신을 위협하고 있는데 당신이 보기에 그가 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길 것 같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라크가 우리를 위협할 뿐 아니라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아무런 위험이 없는 듯 그냥 앉아 있을 수 있을까요? (중략)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제발 부탁하건데, 엽총을 들고 거리로 나가시오. 12구경 2연발총이면 딱 좋을거요. 거기 당신 동네에서 경찰은 제외하고 무장했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머리를 날려버리시오.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용사이자 자연의 훼손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하는 사람. 때문에 커트보네거트의 눈에 비친 문명은 그야말로 폭력의 정수다. 하지만 그는 유머 신봉자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유머는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자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동시에 엿같은 세상에서 아스피린이 되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유머다. 때문에 보네거트는 노망든 노인의 우레같은 독설을 날리면서도 절대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것이 정상이 사라진 비정상의 사회 속에서 몇 남지 않은 정상인들이 날릴 수 있는 똥침이자 동시에 아스피린이 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82년을 살아온 그의 눈에 비친 희망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듯 하다. 스스로 “너무 많은 충격과 실망을 겪은 탓에 이제 나는 더 이상 유머로 방어를 할 수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듯. 이 책에서 본 가장 슬프고 절망적인 문장이었다. 신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무신론자가 될 겁니다.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죠.’라고 말하면서도 커트 보네거트는 항상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희망을 버리기엔 아직까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점점 줄어드는 지금, 나 역시 작은 영웅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커트 보네거트의 존재도 폭력적인 문명이 전해주는 희망의 선물이다. 마크 트웨인과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생의 말년에 인류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고 한다. 특히 트웨인은 1차 대전을 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상위 5%의 대못질을 막기 위해 정책을 쏟아내며,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을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는 정권밑에서 살아가는 나 역시 희망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라없는 사람>을 읽는다. 위안을 받는다. 작은 희망을 되살린다. 일 9,500에 받는 최상의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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