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 신대륙 발견부터 부시 정권까지, 그 진실한 기록
하워드 진.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김영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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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과 함께 싸웠어. 하지만 승리의 대가는 자주 독립이라는 허울뿐인 명분에 불과했어. 대륙의회는 장교들에 한해서만 원래 받던 급료의 절반을 평생 제공해준다는 법을 제정했지. 우리에겐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았어. 하지만 지도자들은 식민지의 승리를 위해서란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세금을 우리에게 앗아갔나. 계속되는 빚에 법정은 우리의 토지와 소를 압수해갔지. 영국 정부에 대항해 싸운 혁명전쟁의 결과가 바로 이런 거였지. 곳곳에서 ‘폭정은 폭정일 뿐. 누가 해먹어도 마찬가지구나’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지. 견딜 수가 없었던 우리는 들고 일어났어. 감옥을 부수고 나머지 빚 때문에 갇힌 농민들을 풀어줬지. 보스턴 차사건을 이끌었던 새뮤얼 애덤스가 법을 준수하라고 말하더군. 돈이 없는 우리는 ‘당신들도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하던 당시 법을 어기지 않았냐’고 항변했지. 700명의 베테랑 군인들을 중심으로 저항을 시작했어. 물론 우리가 무슨 힘이 있었겠나. 결국 나는 사면됐지만 함께 싸웠던 12명은 사형에 처해졌지. 당시 법원은 이렇게 말하더군. “왕에 대한 반란은 용서받아야 하지만 공화국 법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자는 죽어 마땅하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일궈낸 시기에 농민 폭동을 주도했던 다니엘 셰이즈(Daniel Shays)의 이야기다. 자유 독립을 쟁취했던 기쁨의 순간에 다니엘 셰이즈와 농민들은 가장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역사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하지만 미국사의 아이러니는 이뿐만이 아니다. 평등과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온 청교도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미국의 독립과 함께 체로키족은 눈물의 행로를 통해 백인들이 지정해놓은 곳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가는 도중 4000명 이상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또한 ‘명백한 사명(manifest destiny)’이라는 기치아래 팽창하던 미국의 움직임에 수많은 미국 군인들과 멕시코인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오하이오 주의 하원의원이었던 조슈아 기딩스는 미국의 팽창 움직임에 대해 ‘침략적이고 성스럽지도 못하고 정당성도 없는 전쟁’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미국은 승리했고 멕시코에게 1,500만 달러를 지급하고 뉴멕시코 일대와 캘리포니아를 얻었다. 다음날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고 한다. “우리가 강제로 정복해서 빼앗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백인들을 중심에 놓고 역사를 바라보자면 미국의 역사는 영광의 역사이자 승리의 역사이다. 무한히 성장하고 발전하는 역사였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연 최강국이 되었다. 약 20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고려한다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셈이다. 하지만 그 200년의 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무수한 미국인들의 삶을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너무나도 많은 착취와 억압, 그리고 이로 인한 피와 눈물이 겹겹이 쌓여있다. 자본가에게 억압받던 노동자들의 눈물도 있을 것이며,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 차별에 힘들어하는 흑인들의 울부짖음도 있다. 1960년이 돼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여성의 서러움과 주인에서 이방인으로 전락한 원주민들의 한도 있다. 수많은 눈물 위에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영광스런 미국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의 살아있는 양심이자 행동하는 지식인 하워드 진의 <살아있는 미국역사>는 미국 역사의 아이러니를 소개한다. 우리가 그동안 배워왔던 백인 엘리트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그는 미국 역사의 기저에 깔려있는 어둠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전하는 역사의 뒷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서글퍼진다. 헤겔의 말과 달리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역사는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량살상무기를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부시 정권의 정책은 서부 영토를 위해 멕시코를 도발하고 무수한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간 포크너 정권의 팽창 정책과 지독하게 닮아있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해서 더 답답하다. 1970년대 한국과 지금의 한국. 정권은 무수히 바뀌고 역사의 외관은 화려하게 성장하고 있는데 서민들의 삶은 항상 어려우니 말이다. 지도자들은 국가 발전이란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책의 실패가 가져다주는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지워진다. 후세의 역사가 지금의 미국과 한국을 어떻게 평가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제2의 하워드진의 현미경으로 이 시가의 굴곡을 살펴본다면 1800년대, 1900년대를 살았던 미국인의 눈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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