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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드보통 글의 소재는 일상이다. 일상은 무미건조하다. 일상은 습관의 무의식적 반작용이 만들어낸 삶의 모습이다. 파블로프의 개가 음식 앞에서 침을 흘리듯, 우리도 습관처럼 일어나 밥을 먹고 회사에 간다. 밥을 먹는 행위와 회사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일에는 우리의 자유의지가 결여되어 있다. 때문에 일상은 무미건조함과 동시에 무색무취다. 특색이 없다. 하지만 알랭드보통은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바로 무색무취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있는 파스텔톤 색깔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알랭드보통이라는 압착 증류기를 통과한 일상은 완전히 응축이 되어 자신의 정수를 드러낸다. 그 정수는 때론 달콤하고 화려하며, 때론 쓰고 우울하다. 그 형태는 다양하나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알랭드보통의 눈을 거친 일상은 절대 무미건조하거나 무색무취가 아니라는 점. 동시에 그 어떤 스펙타클한 광경보다 많은 메시지가 일상 속에 숨어있음을 알랭드보통의 글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정말 부럽고도 대단한 능력이다.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다. 야심차게 마음을 먹고 서울을 떠났다. 일본에 향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다양한 낭만적 상황들이 떠올랐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문구처럼 내 자신이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는 도시의 자유인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일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방전된 내 안의 배터리를 충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닥 낭만적이지 못했다. 도착한 순간부터 길을 찾지 못해 헤맸으며, 낯선 사람은커녕 일주일 내내 외롭게 도쿄의 밤거리를 음습하게 서성거려야 했다. 돈과 버스표도 잃어버렸고, 폭풍이 들이쳐 하루는 종일 숙소에 머물러야만 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도시의 전문직 남성은 순식간에 여행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풋내기 대학생 외톨이로 전락해버리는 상황이었다. 땅을 치고 괴로워 할 때, 아내가 날 위로한다고 알랭드보통의 글을 소개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순간 고베 대지진 수준의 감정의 진폭이 있었음을 지금에야 고백한다.
“<기대에 대하여>라는 글이야. 내용은 대충 이런 거야. 여행지 사진들을 보거나 하면 사람들은 설레잖아. 일상에서 아주 먼 곳으로 가서 가뿐하게 그곳을 즐기고 싶단는 생각을 하잖아. 근데 막상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도 일상임은 변함없이 일상이라는 거야. 발리 해변을 보고 발리 해변에 앉아서 일광욕 하는 나를 기대하며 그곳에 가지만, 결국 발리 해변까지 가려면 비행기를 갈아타고, 더운 곳에서 호텔을 찾아 헤매고, 옷을 갈아입고, 찐득거리는 썬크림을 바르고 뭐 그런 식의 세세한 일이 다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알랭드보통은 남들이 지니지 못한 더듬이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더듬이는 항상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 의미를 뽑아낼 수 있는 상황을 포착해낸다. 물론 그가 섬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방대한 인문학적, 예술적 지식으로 더듬이가 포착해낸 일상의 상황을 맛있는 메뉴로 만들어 놓는다. 지식에 뛰어난 표현력이 더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산문집 <동물원가기>는 그런 알랭드보통의 대표 수필을 모아놓은 책이다. 때론 사랑의 진정성에 대해 남녀의 유쾌한 상황을 통해 이야기하고,(‘진정성) 때론 ‘일과행복’이라는 맑스적 사회 주제에 대해 무겁게 논하기도 한다. ‘따분한 장소’(취리히)와 공항에 간다는 일상적 상황(‘공항에 가기’)에서 예의 의미 뽑아내기 실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슬픔이 주는 기쁨’이라는 인문학적 역설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통해 기가 막히게 설명하기도 한다. 알랭드보통은 ‘글쓰기’란 수필을 통해서 글에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내가 보기엔 적어도 그의 글쓰기는 본인이 원하는 수준에 거의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이들을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
아마 알랭드보통의 능력은 선천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예민한 더듬이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던가. 우리가 무생물이지 않는 이상, 매 순간 우리는 일상의 모습을 보며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지닌다. 단지 이를 인식하지 못했을 뿐. 하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 몸에 나있던 예민한 촉수를 거세하려 한다. 우리의 삶은 내 자신을 삶의 일상 속에 매몰시키려 한다. 결국 의식하지 않으면, 더 나아가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이 마비된 이성의 불구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난 알랭드보통의 타고난 더듬이 밑에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있다면 거세된 더듬이를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눈을 가지려 노력해야 한다. 눈보라 몰아치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 핀 작은 노란 꽃과 취업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캠퍼스를 붉게 수놓고 있는 단풍나무의 화려한 위용을 볼 수 있는 그런 눈을 말이다. 알랭드보통을 통해 배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