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왜 좋은 제목을 이렇게 의역해놨을까. 이 책은 철학이 우리의 삶에 주는 위안을 적은 책이다. 철학이 있었다면 젊은 베르타르가 슬픔 대신 기쁨을 맛봤을 것이란 이야긴가본데, 별로 감흥이 없다. 원제가 훨씬 좋다. 어설픈 제목만큼이나 번역도 별로고. 읽기 참 힘들었던 책. 역시 번역서에서 번역의 중요성이란....)

 

Q)

       얼마 전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습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갑자기 때려 치려 했던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약 1년 전, 새로운 꿈이 생겼거든요. 법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로스쿨이 생기면서 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전 회사일을 뒤로한 채 1년 가까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로스쿨의 문은 턱없이 좁았습니다. 마지막 결과가 발표 나던 날, 술을 마시고 여자 친구에게 전화 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제대로 로스쿨 준비를 해보고 싶다고요. 여자 친구는 그런 절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몇 달 뒤, 여자 친구는 결국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저보고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하더군요. 로스쿨 준비로 회사 일을 뒤로 미뤄놨던지라, 이미 회사에선 선배 동료들과 멀어질 대로 멀어진 상태였고요. 친구들조차 제 로스쿨 도전을 두고 ‘무모하다’고 말하며, 절 한심하게 쳐다봤습니다.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이 30을 훌쩍 넘어가지고 갑자기 회사를 때려 치고 새로운 꿈을 찾으려는 도전이 과연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여자친구는 떠나가고, 성적은 도통 오르지 않고. 정말 괴롭습니다.  

 

1) 소크라테스

       음. 일단 진정 하시고요. 로스쿨 도전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 정말 싸늘하군요. 하지만 외로워 할 필요 없습니다. 일단 우리 주변을 둘러보죠. 현실은 당신에게 끊임없이 인생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하고, 돈을 벌어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서 행복하게 살고, 등등... 이것이 바로 당신이 사는 세상의 상식일 겁니다. 그러니 현실에 발을 담근 30대 중반의 남성이 새롭게 꿈을 꾸자 비난이 이어지는 겨죠. 하지만 당신을 비난하는 그 상식의 기준이 과연 온당할까요. 전 20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비합리적인 상식과 사회적 관습을 탈피하기 위해 거리에서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믿는 상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식이었죠. 일부는 제 질문을 듣고 잘못된 상식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수는 상식에 도전하는 절 불편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 그리스 젊은이들을 현혹시켰다는 이유로 독살 형에 처해졌습니다. 참으로 억울했죠. 하지만 분명한 건 상식이란 것이 다수가 믿는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우리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어떤 반대에 봉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을 그릇된 것으로 확신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49)’는 것이죠. 반대의 양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계속 정진하십시오. 

2) 에피쿠로스

       또 그 놈의 돈이군요. 사랑이 현실이란 이름의 돈 앞에 무릎 꿇는 일을 수없이 지켜봤습니다. 여자 친구는 돈을 벌지 못하는 남편을 받아들일 수 없었겠죠? 돈.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죠. 그러나 돈이 가장 중요할까요? 그 부분은 조금 달리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행복이죠. 그렇다면 무엇이 우릴 행복하게 만들어줄까요. 전 세 가지를 꼽습니다. 당신이 내뱉은 말을 이해해 줄 우정, 변덕스러운 자의 요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 불안을 다스려줄 사색, 이 세 가지면 충분합니다. 실제로 저희 학파는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 위에서 함께 모여 사색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2000년 전에도, 상업 활동이 있었지만, 우리는 검소한 삶을 사는 대가로 노동을 버리고 자유를 택했습니다. 그 결과 우린 인생에서 쾌락을 즐기는, 쾌락주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당장 돈을 벌지 못하는 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혹시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도, 꿈을 쫒아가는 일이 더욱 행복하다면, 더 큰 쾌락을 쫒아가는 일은 당연한 겁니다. ‘기분을 모든 선한 것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아라.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쾌락이다.’(115) 힘내십시오.
 

3)세네카

       당신은 현재 좌절했군요. 음. 사실 모든 좌절은 우리의 희망과 그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핵심입니다. 당신은 로스쿨에 합격하기를 희망했고, 또 설령 낙방하더라도 여자 친구가 당신의 결정을 환영해 줄 것이라 희망했습니다. 물론 현실은 낙방과 이별이었지만요. 그 간극에서 좌절이 발생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당신만 좌절을 겪는 건 아닙니다. 어차피 현실과 사람의 희망은 정확히 일치할 수 없는 거거든요. ‘만약 당신이 모든 근심을 날려버리길 원한다면, 당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그 일이 분명히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십시오.’(153) 이를 통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고요. 또 무엇보다 차분한 상태에서 실제로 당신의 걱정을 분석해본다면, 그 걱정이 얼마나 사소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의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당신은 애초부터 혼자였습니다. 연인과의 이별은 결국 원래대로 돌아온 것일 뿐, 그리 대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슬픔이 이를 못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변화 불가능한 현실을 파악하고, 이를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지혜입니다. 슬픔과 좌절은 더 큰 슬픔을 부르는 법. 평정심을 하루 빨리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4)몽테뉴

       간단하게 두 가지만 말씀드리죠. 첫 째, 진리로 여겨지는 사회적 관습, 전부 상대적인 진리일 뿐입니다. 소크라테스 선생 말씀대로 사회적 관습이 모두 옳은 건 아니란 말입니다. 어떤 부족 사회에선 40넘도록 일을 하지 않는 가장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젊었을 적, 2년 가까이 유럽 전역을 여행해봤기 때문에 아는 겁니다. 때문에 갑자기 직장을 때려치우려는 당신의 행동이 21세기 한국 사회의 눈에는 이상할 수도 있지만 중세의 눈, 또는 아프리카 부족의 눈엔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는 사실 명심하고요. 두 번째로, 로스쿨 성적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당신은 현재의 어려움을 통해 법전 한 권을 다 외워도 얻을 수 없는 인생의 지혜를 습득하는 과정이니까요. ‘지혜란 어느 인생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들이 제아무리 소박하다 하더라도 옛날의 그 많은 책에서보다 우리 자신에게서 더 위대한 통찰력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264) 저 역시 제 명저 <수상록>을 쓰면서 스키피오 아에밀리아누스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자주 혼동했는데요. 그게 뭐 중요한가요? 확실하지도 않는 사회적 관습에 얽매여, 다양한 경험과 사고를 통한 지혜의 습득을 놓치는 것이 분명 더욱 불행한 일일 겁니다.

5)쇼펜하우어

       사랑.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사랑의 실상을 한 번 들어보면 생각이 조금 바뀔 수도 있을걸세. 혹시 자네, 내가 말한 ‘생에 대한 의지’라고 아나. 우리 삶은 바로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생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차있지. 우리 몸은 생에 대한 의지의 하인에 불과해. 우리의 의식은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 믿겠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게 무의식을 지배하는 생에 대한 의지의 작용으로 이뤄지는 거니까. 결국 생에 대한 의지는 삶에 대한 맹목적 요구고, 그 의지가 우리를 사랑하게 만드는 거야. 우리의 종족을 더욱 번식하게 만들기 위한 맹목적인 생의 의지가 사랑이란 형태로 나타나는 거란 말이지. 결국 자네 여자 친구가 자넬 버린 것도 그녀의 생에 대한 의지가 자넬 거부한 것일 뿐이야. 더 나은 종족 번식에 자네가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거고. ‘사랑이란 것은 생에 대한 의지가 이상적인 상대를 발견했다는 것을 의식 밖으로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거든.’ (299) 그러니까 이봐. 사랑이란 게 애초부터 자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었어. 평생 어둠 속에서 흙을 파야 하는 두더지의 삶이나, 사랑을 추구하고 카페에서 잡답이나 나누고, 아기를 가지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312) 그러니 특별히 힘들어하지 말게. 원래 삶이 그런 거니까.

6)니체

       너무나도 괴로운 당신. 몽테뉴 선생이 말씀하신대로 자네가 겪고 있는 고통이 자네에게 어떤 지혜를 안겨줄지 한 번 생각해보지 않겠나? 고통은 결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네. 왜냐하면 인간의 완성이란 ‘고통을 피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고, 고통의 역할을 “선한 무엇인가를 이루는 과정에 겪는 자연스럽고 또 피할 수 없는 단계”로 인정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라네.’(333) 다시 말해, 자네가 겪는 실연, 낙방, 그리고 외면 같은 고통을 통해 자넨 한층 더 강해지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거란 말일세. 산에 오르는 것이랑 비슷한 걸세. 오르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그 결과를 겪어야만 정상이라는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거지. ‘우리가 만약에 과실을 많이 맺는 비옥한 들판이라면, 어떤 것이든 다 흡수하지 않고 그저 흙바닥을 통과하게 내버려두는 일은 없을 것이며, 어떤 사건이나 사물, 사람에서도 유익한 비료를 발견할 것일세.' (354) 중요한 것은 고통이 아닌, 고통을 어떻게 위대함으로 끌어올리느냐 일세. 좌절 속에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그건 산에 오르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 않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거든. 고통을 긍정의 힘으로 성숙시켜 더 위대한 인물이 되게. 그럼 그 고통은 고통이 아닌 축복이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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