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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앎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린 분명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우리가 좀 더 유식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 쾌감을 느낍니다. 지식을 전달해주는 대표 주자는 책입니다. 지적인 책들은 책을 보기 전까지는 아무리 눈을 켜고 주변을 둘러봐도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알려줍니다. 감세와 경제 성장의 관계,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쾌락의 의미, 노동의 소외를 불러오는 분업, 차이와 동일성에 관한 들뢰즈의 사상 등은 평소에 자주 고민하고 생각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지식을 전달해주는 책을 ‘땅을 파는 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땅 밑에 숨겨져 있던 지식들을 직접 파헤쳐 우리 눈에 보여준다는 의미죠. 반면 공감의 즐거움을 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사실을 누군가가 비슷하게 이야기할 때, 우린 내 생각을 누군가가 이해해준다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커피숍에서 여학생들이 수다를 떨 때, ‘어머, 맞다 맞어 얘’라며 맞장구를 치며 즐거워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들은 신문을 보며 이야기를 못한다는 사실, 답문을 하지 않는 남자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사실, 성공하기 위해선 철저히 다이어리를 써야 한다는 사실 등에 대한 책들이 대표적이죠. 공감을 전달해주는 책을 ‘가리키는 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희미하게 보이던 사실들을 손으로 가리켜 알려준다는 의미입니다.
고대 그리스 수사학 학교에서는 좋은 연설의 기준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거나, 웃기든가, 아니면 유용한 정보를 줘라’, 이 세 가지가 필수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책도 마찬가집다. 유용한 정보를 주는 지적인 책은 좋은 책이겠죠. 섬세한 공감으로 감동을 주는 책 역시 고대 그리스 기준에 위배되지 않는 좋은 책입니다. 문제는 나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법은 이 세 가지 기준으로 충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죠. 예를 들어 들뢰즈의 책엔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와 헤라클레스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들뢰즈가 제공해주는 정보는 유용한 정보가 아닙니다. 땅 밑 1cm 밑에도 어떤 내용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들뢰즈의 책은 10만km의 내용을 보여주는 셈이거든요. 결국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책은 자칫 너무 난해하다는 어려움에 봉착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앎의 즐거움은 커녕, 스스로의 무식함에 대한 좌절을 겪게 될 겁니다. 가리키는 책에도 위험은 있습니다. 감수성이라곤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 수준인 사람에게 ‘이별은 슬프다’ ‘사랑은 달콤하다’ 따위의 뻔한 가리킴은 전혀 공감을 끌어낼 수 없습니다. 반대로 떨어지는 낙엽에도 눈물을 흘리는 습자지 감수성은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들 수 있고요. 시력이 0.1이라 눈 앞의 돌멩이만 간신히 보는 사람에게 섬세한 시집은 200m 전방에서 흔들리는 물망초의 모습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애매한 감수성과 지식으로 고민하는 분께 작가 한 분을 추천해드립니다. 바로 알랭드보통입니다. 알랭드보통은 앎의 즐거움과 공감의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해주는 작가입니다. 보통의 세상은 풍부한 인문, 예술 지식의 기반 위에 세워져있습니다. 깊이 있는 사실들이 글 곳곳에 묻어있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보바리 부인과 젖소부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보통이 전하는 인문 예술학의 향연은 함께 즐길 수 있는 파티입니다. 동시에 더듬이라고 부르고 싶은 탁월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주변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들을 가리켜, 그곳에서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사랑에 실패해본 사람이라면, 여행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나 <여행의 기술>을 보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통은 땅을 파는 작가일까요, 아니면 가리키는 작가일까요. 전 페인트를 뿌려대는 작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보통은 인문학, 예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땅 위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물들의 형태를 생생하게 복원해냅니다. 제 눈에 보통의 작업은 마치 공기 중 위에 부유하는 투명한 사물에 페인트를 뿌림으로써 그 형태를 잘 보이게 만들어 주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인문학적 지식이 페인트라면, 그의 섬세한 감수성은 페인트를 뿌리는 그의 손입니다. 때문에 보통의 글을 읽으면 앎의 즐거움과 공감의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일까>는 보통의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연애 소설입니다. 물론 말이 연애소설이지, 실제로 남성과 여성, 더 나아가 인간의 속성을 분석한 책입니다. 사랑의 주체는 인간입니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말초적인 차이점을 인식하기에 앞 서, 인간 특유의 성향과 본성을 이해해야만 성공적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랑일까>는 사랑에 대한 인간의 속성을 이야기합니다.
-A가 B를 바라보면 B는 A의 눈길에 담긴 생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A가 B를 작고 사랑스럽고 피부가 보드라운 천사라고 생각하면 B는 작고 사랑스럽고 피부가 보드라운 천사가 된 기분을 느끼기 시작한다. A가 B를 2+2도 못하는 천하의 멍청이로 생각하면, B는 그 생각에 맞게 자신의 능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어, 결국 2+2=6이라고 답하게 될 것이다. (=>비단 남녀 관계 뿐만 아닌, 모든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이죠?)
-그녀에게는 순수한 의식, 순수한 자신,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남았다. (=> 때문에 우린 모두가 돈을 보고 하는 사랑, 외모를 보고 하는 사랑 등이 옳지 못한 사랑이란 걸 압니다. 현실에서는 존재 때문에 하는 사랑이 매우 적기 때문에 사랑 자체가 영속적으로 즐겁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당신이랑 이렇게 있으면 정말 편안해요.”/ 그도 비슷한 말로 대답했으리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그 남자는 호응하지 않고 이렇게 물었다. “오늘 저녁 몇 시에 본드 영화를 하죠?”/ 맞은 사람도 없고, 멍이나 비명도 없었지만, 권력의 균형이 에릭 쪽으로 확 쏠렸다. (=>스탕달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사랑 크기가 똑같지 않는 이상 두 사람 관계의 권력이 인지되기 마련입니다. 결국 행복한 사랑을 위해선 비슷한 크기의 사랑이 중요하죠.)
알랭드 보통의 책을 지금까지 4권 읽었습니다. 언제나 중간 이상의 즐거움을 줍니다. 당연한 결과죠.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새로운 사실을 제공해주는 것이 좋은 수사학이라는 그리스의 기준을 고려할 때, 유머감각이 있으면서도 방대한 인문 예술학적 지식을 자랑하는 풍부한 감수성의 소유자 알랭드보통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그의 인기를 등에 업고 그의 전작들이 빠르게 번역되고 있는데요. 과거의 책들을 다 읽기 전에 그의 최신작이 나오길 바랍니다. 손꼽으며 차기작을 기다리는 작가가 또 한 명 늘었는데요. 이래서 독서는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