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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전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나는’이란 말을 참 많이 씁니다. ‘내 생각엔’ ‘내가 볼 땐’ ‘내 말은’ ‘상식적으로’ ‘솔직히’ 등등. ‘솔직히’나 ‘상식적으로’도 제가 하는 말을 강조해주는 수식업니다. 솔직해봤자, 더욱 순도 높은 ‘내’의견이 나올 뿐이고, 상식을 들이대 봤자 그 상식은 ‘내’ 상식일 뿐이거든요. 전 언제나 ‘나’를 강조합니다. 아내는 그런 제 말투엔 ‘제 뚜렷한 주관’과 함께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담겨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나는’ ‘내 생각엔’ ‘상식적으로’를 강조하면 할수록, 상대의 주장이나 감정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됩니다. 어머니도 가끔 제게 말씀하십니다. ‘넌 논리적이고 정확한 데, 감정은 좀 메마른 것 같아.’ 네 동생은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엄마 어디가 아파? 괜찮아? 많이 아파”라고 말하는 데, 넌 “병원 가봤어? 병원에 가야지. 병원 빨리 가봐”라고 말해’. 그럼 전 이렇게 대꾸합니다. ‘엄마. 나는 말이야. 솔직히 병원에 안 간 엄말 걱정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물론 대꾸 과정에서 또 다시 ‘나는’으로 시작하는 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늘어놓고 맙니다. 어머니의 말씀이 과연 옳긴 옳은가 봅니다.
솔직히(엇, 또 쓰고 말았습니다.) 전(이 말은 솔직히와 뗄 수 없는 단어죠.) 아픈 사람에게 병원 가라는 말이 가장 합리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이 단어도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많이 쓰는 논리적 단어입니다) ‘엄마가 아프다’란 말에 ‘병원가라’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 것이죠.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분명 어머니는 병원 가는 법을 몰라서 하는 얘긴 아니었을 겁니다. 초등학생도 아프면 병원 간다는 사실을 알거든요. 오히려 ‘엄마가 아프다’란 말 뒤엔 ‘엄마가 아프니 너도 함께 걱정해주지 않으련?’이란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아픔을 함께 해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하지만 전 초등학생도 아는 논리적 정답을 제공해놓고 의기양양합니다. 예전에 아내와도 이 문제로 종종 다투곤 했습니다. 한 때 취업 실패로 괴로워하던 아내는 1년 더 놀면서 입사를 준비해야할지, 아니면 작은 회사라도 일단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전 “그 직업을 도저히 포기 못할 것 같으면 한 해 더 하는 거고, 네가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다면 일단 취업하고 보는 거지”라는, 마치 “지금 상황에서 투수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직구 아니면 변화구입니다.”라고 말하는 야구해설위원처럼 뻔한 말을 냉정하게 던진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내는 자신의 심정을 누군가가 이해해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전 논리적 해답을 제공하는 데 그쳤습니다. 감정적 이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제가, 다름 사람의 마음에 종종 비수를 꽂는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결과입니다.
영국의 젊은 작가 마크 해던이 쓴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보며 제 행동을 떠올려봤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제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단점이 아닌, 질병 또는 장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은 자폐 증세를 보이는, 크리스토퍼의 이야기입니다. 크리스토퍼는 논리적,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분야에선 천부적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과의 어떠한 스킨십도 거부하는 소년입니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은 마치 자폐증 아이의 머릿속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는 것처럼, 자폐아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놀랍게도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때문에 책장을 넘기다보면 크리스토퍼의 행동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사실 크리스토퍼와 우린 서로 다른 원칙 속에 살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크리스토퍼가 갖고 있는 고유한 생각에 관심이 없습니다. 때문에 우린 크리스토퍼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외면합니다. 일반인들이 자폐아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됩니다. 영화 <레인맨>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전혀 모르는 형 레이몬드 배빗(더스틴 호프만). 하지만 오직 물질적 성공에 매달리는 동생 찰리(톰크루즈) 역시 형의 감정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겉으로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찰리 역시, 어떤 면에선 자본주의사회가 만든 중증자폐아일지도 모릅니다. 감정적 이해를 구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논리적 정답을 제공해주고 자신의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하는, 더 나아가 ‘내가 해답을 줬는데도 넌 왜 괴로워하니’라며 상대 감정을 할퀴는 제 모습 역시 개인주의 사회가 만든 질병의 한 단면입니다.
그래서 전 저와 같은 현대인의 증세를 후천성 감정 이해 부족증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후천성 감정 이해 부족증은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질병입니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에는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화내고 싶어도 화내지 못하는 크리스토퍼의 행동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크리스토퍼는 다양한 사건을 통해 한층 성숙해집니다. 타인의 감정에도 예전보다 관심을 나타내고요. 그럼에도 전 시종일관 크리스토퍼가 보여주던, 자기중심적 사고가 참 무서웠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을 예상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 소통은 불가능의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소통이 없는 인간은 더 이상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부를 수 없겠죠. 인간의 특징에서 ‘사회적 동물’이 사라진다면, 인간이 유지해온 사회와 문명도 지속될 수 없겠고요. 오직 혼란만이 있을 겁니다. 바로 여기에 후천성 감정 이해 부족증의 무서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후천성 감정 이해 부족증은 이미 개인의 질병을 넘어 사회를 좀 먹는 질병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 가정에서 ‘상식적으로 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니. 난 이해가 안 된다’라며 아내를 타박하는 환자들이 목격됩니다. 비단 가정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도 현재 서민들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전혀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거든요. 아니,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전경차로 소통의 광장을 차단해버립니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보면 크리스토퍼가 자신의 행동 원칙을 적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개만 소개합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게 화가 나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들을 때린다' 얼마나 많은 사회 지도자들이 후천성 감정 이해 부족증세에 시달리는 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에서 크리스토퍼는 한 단계 성장합니다. 영화 <레인맨>의 두 주인공도 우애의 감정을 깨닫게 됩니다. 선천적으로 이해 능력이 부족했던 크리스토퍼와 레이먼드의 소통능력이 향상된 것입니다. 소통이 완전히 차단된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희망의 작은 불빛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후천성 감정 이해 부족증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일단 감정 이해 부족증세를 보이는 저부터 변해야겠습니다. ‘나는’ ‘내 생각엔’ ‘내가 볼 땐’과 같은 말부터 줄여봐야겠습니다. 제 상식에 비추어 남의 감정을 재단하는 일을 그만둬야겠습니다. 그래야만 후천성 감정 이해 부족증에 시달리고 있는 높은 분들도 울부짖는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